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其後高驪略有遼東,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晉義熙十二年(416),以百濟王余映為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鎮東將軍,百濟王.高祖踐阼,進號鎮東大將軍.少帝景平二年(424),映遣長史張威詣闕貢獻.宋
元嘉二年(425),太祖詔之曰:「皇帝問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鎮東大將軍,百濟王.累葉忠順,越海效誠,遠王纂戎,聿修先業,慕義既彰,厥懷赤款,浮桴驪水,獻騕執贄,故嗣位方任,以籓東服,勉勖所蒞,無墜前蹤.今遣兼謁者閭丘恩子,兼副謁者丁敬子等宣旨慰勞稱朕意.」其後,每歲遣使奉表,獻方物.七年,百濟王余毗復修貢職,以映爵號授之.二十七年,毗上書獻方物,私假台使馮野夫西河太守,表求《易林》,《式占》,腰弩,太祖並與之.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 밖에 있었다.그
후 고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의희12년(416;
전지왕12)
백제왕
여영을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장군백제왕으로
삼았다.
고조가
즉위한
뒤 진동대장군으로
벼슬을
올려 주었다.소제
경평2년(424;구이신왕
5)에
영이
장사 장위를 파견하여
조정에 공물을 바쳤다.
元嘉 2년(425;
구이신왕
6)
태조가
다음과
같은 초서를
내렸다.
“황제는 고하노라.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백제왕은
대대로
충성하고 순종하여 바다 건너에서 정성을
다하였소.
먼
지방의 왕위를 계승하고 조상의 덕을 이어 받아 닦음에 의를 사모함이 이미 드러났고 가슴에는 붉은 정성을 품었소.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보물과
폐백을 조정에 바쳤소.
그러므로
왕위를 잇게 하여 그 지방을 맡기노니, 동방에서 우리 조정의 번병이
되어
정사를
부지런히
하여 선대의
공업을 떨어뜨리지
말도록 하시오.
지금
겸알자 여구은자와
겸 부알자
정경자 등을
파견하여 勅旨를
펴고 노고를 위로하고자 하니 짐의 뜻에 맞도록 하시오.”그 후 백제는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원가7년(430;비류왕4) 백제왕 여비가 다시 공물을 바치므로 여영의 작호를 이어 받게 하였다.원가
27년(450;
비유왕
24)
여비가
방물을 바치며, 국서를
올려
사사로이 대사 풍야부를
서하태수로
삼을
것을 추인해 주고,
표문으로
역림·식점 및
요노를
요구하자
테조는
모두
들어 주었다.
주)송나라가
백제의 압력으로 작위를 주는 형식
毗死,子慶代立.北魏世祖大明元年(457),遣使求除授,詔許.二年,慶遣使上表曰:「臣國累葉,偏受殊恩,文武良輔,世蒙朝爵.行冠軍將軍右賢王余紀等十一人,忠勤宜在顯進,伏願垂愍,並聽賜除.」仍以行冠軍將軍右賢王余紀為冠軍將軍.以行征虜將軍左賢王余昆,行征虜將軍余暈並為征虜將軍.以行輔國將軍余都,余乂並為輔國將軍.以行龍驤將軍沐衿,余爵並為龍驤將軍.以行寧朔將軍余流,麋貴並為寧朔將軍.以行建武將軍於西,余婁並為建武將軍.太宗泰始七年,又遣使貢獻.
부여비가 죽고 그의 맏아들 경이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세조
대명원년(457;
개로왕3)
사신을
보내어 벼슬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자 詔勅으로 허락하였다.대명2년,
여경이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신의
나라는 대대로 특별한 은혜를 입고 문무의 훌륭한 신하들이 대대로 조정의 관작을 받았습니다.
행관군장군우현왕
여기 등 11명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여 높은 지위에 나아감이 마땅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모두 관직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이에
행관군장군우현왕
여기를
관군장군으로 삼고,
행정로장군
좌현왕
여곤과
행정로장군
여훈을 모두
정로장군으로,
행보국장군
여도와
여예를
모두
보국장군으로,
행용양장군
목금과 여작을
모두
용양장군으로,
행용삭장군
여류와 미귀를 모두
녕삭장군으로,
행건무장군
우서와
여루를
모두
건무장군으로
삼았다.태종
태시7년(471;
개로왕17)
또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倭國,在高驪東南大海中,世修貢職.宋 高祖永初二年(421),詔曰:「倭贊萬里修貢,遠誠宜甄,可賜除授.」太祖元嘉二年(425),贊又遣司馬曹達奉表獻方物.贊死,弟珍立,遣使貢獻.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表求除正,詔除安東將軍,倭國王.珍又求除正倭隋等十三人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號,詔並聽.二十年(443),倭國王濟遣使奉獻,復以為安東將軍,倭國王.二十八年(451),加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將軍如故.並除所上二十三人軍,郡.濟死,世子興遣使貢獻.世祖
大明六年(462),詔曰:「倭王世子興,奕世載忠,作籓外海,稟化寧境,恭修貢職.新嗣邊業,宜授爵號,可安東將軍,倭國王.」興死,弟武立,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왜국은 고려 동남쪽 큰바다 가운데 있는데 대대로 조공하였다.
고조가
영초2년(421)에
조서를 내려 "왜의
찬은 만리에서 수공하니
먼
정성이 드러낼 만하다.
제수를
내려줌이 가하다."라
했다. 태조가
원가2년(425),
찬(리중천황)은
또
사마조달을
보내
표를
받들게
하고 방물을
바쳤다.
찬이
죽고
동생 진(반중천황)이
서서
사신을 보내
공헌하고
스스로
‘사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육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며
표로 바르게 제수함을 구하니 조(詔)하여 안동장군왜국왕
진을
제수하고 또
왜수
등
13
명이
평서정로관군보국장군의
호를 제정하길 구하니 조사를 내려 모두 들어주었다. 영초20년(443), 왜국왕
제(개로왕=안경천황)가
사신을
보내
봉헌하고
다시
‘안동장군왜국왕’으로
했다.
영초28년,
‘사지절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육국제군사안동장군’을
더해 옛과
같이 하고 아울러 위 23
명을
군군에
제수했다. 제가
죽고
세자
흥이
사신을 보내
공헌하였다.
세조
대명6년,
조서
내리기를 "왜의
왕세자
흥은
특히 대대로 충성을
담아 해외에서
번병이
되고 공경히
변경을 교화하고 편안케 하며 조공의 일을 공손이 닦고 변경의
일을 새로 이으니, 의당히
안동장군왜국왕의
작호를 제수함이
가하다."
흥(곤지왕=웅략천황)이
죽고
동생(조카)
무(무령왕)가
왕의
자리에 올라 스스로
‘사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칠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
했다.
※김영덕,『일본을
낳은 다무로』,
바히네출판사,
2017.왕가해석 참조
宋
順帝升明二年(478),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籓於外,自昔祖檷,躬擐甲冑,跋涉山川,不遑寧處.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眾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王道融泰,廓土遐畿,累葉朝宗,不愆於歲.臣雖下愚,忝胤先緒,驅率所統,歸崇天極,道遙百濟,裝治船舫,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雖曰進路,或通或不.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
순제 승명2년 사신을 보내 상표하여 말하길,
"봉국은
편원하여
바깥에서
번국이
되며 옛
선조이래
갑주를 몸소
둘러 산천을
밟고 건너느라 어찌
편히 쉬겠습니까?
동쪽으로
모인
오십오국을
정벌하고 여러 오랑캐
육십육국은 서쪽으로
복속하며 바다북쪽
구십오국을
건너 평정하니, 왕도가
크게 떨치고 영토가 멀리
이르러 여러
대에 걸쳐 조공하여 해마다
거르지 않았습니다.
신(臣),
비록
천하고 어리석지만 선조가 남긴 사업을 감히 이으니 통치받는
것을 거느리고 몰아
가 천극에
돌아가 숭상하려 백제를
길을 빌어
지나고
배를 다스려 준비했는데, 구려가
무도하여 꾀하여
삼키려하고
변방의
하잘것
없는 자들을
노략질하기를 그치지 않아
매번 와서 막으며 좋은
바람의 실기하니
비록
나아갈
길을 말해도
혹은
통한다
하고 혹은 못한다 합니다.
신의
죽은 선친인 제가 원수들이 천로를 막음을 실로 분해하여 백만번
활을
당겨 의로운
소리에 감격하여 드디어
크게 일으키려 하였는데,
갑자기
부형의
상을 만나 유업의
성공을 얼마
안되는
분량도
얻지
못하고 양암에
거처하며
병기를
움직이지
못하니 이로써 걱정
없이 편히
누워 쉬지를
못합니다.
지금
병사와
무기를
다스리고 연마하고자
아버지와 형의
뜻을
펴니
의사들이
호랑이처럼
끓고 문무가
공들인
효험이 있습니다.
번뜩이는
칼이 서로
앞다투고 또한
돌아보지
않는
바입니다. 만일
황제의
덕이 하늘과 땅을
덮게
하려면,
저
강적을
꺾고 방난을
이겨내며 앞선
공을
바꾸지
마십시오.
감히
스스로를 개부의동삼사와
그
나머지를 감가하니
내려주셔서
충절을
권하십시오."라
했다.
조서를
내려 무를 ‘사지절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육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왕’에
제수했다.

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