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짝님이 쓰신 45년 전의 옛날 일기
초가지붕 추녀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동생들과 바지랑대로 따서 칼싸움을 하며 놀고 있는데
아랫집 점순이 엄마가 헐레벌떡 달려 와서
상감이 왔다고 알려준다.
상감.
말만 들어도 농부들이 벌벌 떠는
나무 조사꾼들이다.
모두가 나무를 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살아가기에
상감이 오면 어느 집이고 걸려서 난리가 난다.
더구나 우리집은 지난 여름 내가 이쁜애랑 놀다
헛간을 태운 바람에 새로 지으려고
산에서 몰래 나무를 잘라 놓은 게 있었다.
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가시고 안 계셔서
누나 형아와 나 엄마랑 같이
기둥으로 쓸려고 잘라다 놓은 나무들을
두엄 속에 감추느라 정신이 없다.
들키는 날에는 벌금도 내야 하고 징역살이도 해야 한다며
정신없이 두엄 속에 파묻어 댔다.
그리곤 삽작을 꼭 닫아 새끼줄로 잡아 매 놓고는
고무신짝을 들고 모두 웃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었다.
얼마를 그러고 있으니
계시유 하는 투박한 남자의 목소리.
틀림없이 상감이다.
이 소리에 엄마는 이가 딱딱 닿는 소리를 내며 벌벌 떨어 댄다.
몇 번을 불러 대니 엄마가 나에게
나가서 아무도 없다 말을 하라며 내몬다.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오니
검은 양복을 입은 이와 순경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입이 꽁꽁 얼어 붙어 말도 안 나온다
어른들 어디 계시니 하고 묻는 말에
얼마를 떨고 있다가는
웃방에 숨었어유 하고 말해 버렸다.
이 소리에 놀란 엄마 엉엉 울며 간신히 나와서는
순경아저씨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제발 한번만 봐 주세유 하며 통사정이다.
겁에 질린 누나도 형아도 나도 덩달아 함께 울어 댄다.
엄마의 간절한 빎에도 아랑곳없이
두 사람은 뒷곁으로 해서 한 바퀴 돌아서는
금방 두엄 속의 나무를 찾아내서 자로 재고 숫자를 헤아려 적어 댄다.
이때 아버지가 나무 지게를 지고 들어오시자
왜 나무를 잘랐느냐 호령을 해댄다.
아버지도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으나 들은 채도 않고
더 감춘 거 없나 찾아만 다닌다.
이장님 좀 어서 가서 불러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내가 뛰어가 이장님을 모셔 왔다.
상감 일행이 이장님과 악수를 나누고는 방으로 들어가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암닭을 붙잡아 삶아 대고
주전자를 들고 주막에 가 막걸리도 받아 왔다.
잔치 때나 볼 수 있는 푸짐한 상을 차려 방안으로 들여 보냈다.
이장님의 귀뜸으로 엄마는 옆집으로 달려가 돈을 꾸어다
두툼한 봉투를 만들어 들여보내고...
얼마 후 웃움소리가 들리더니 모두 밖으로 나온다.
신발을 신으려던 검은 양복이 구두가 안 보인다며 두리번거린다.
모두가 마당을 둘러보아도 안 보인다.
뒤꼍을 돌아가 보니 아뿔싸~
우리집 누렁이가 울타리 밑에 앉아서는 까만 구두를 물어 뜯고 있다.
달려가 빼앗아보니
이런 구두 코빼기를 물어 뜯어 갈기 갈기 찢어 놓았다.
이런 구두짝을 들고 가니 기가 막혀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다.
또 다시 엄마가 옆집에 달려가
돈을 꿔다가 구두값을 쳐 주고는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간 뒤에
형아와 동생들은 방에서 먹다 남긴 닭뼈를 빨아 먹어 댔지만
나는 또 부지깽이로 엄마에게 실컷 두둘겨 맞아야 했다.
등신같이 없다고 하라니까 왜 웃방에 숨었다고 했냐고...
첫댓글 이 글의 제목 '상감'은 '산감(山監.산감독)'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시골에선 그렇게 말했어요. 옛날에 최고로 무서운 건 곶감이었고요, 그 다음은 상감이었답니다.^^*
아 ,,그렇군요...산감 상감...
하하~~~ 웃음이 멈추어지지가 않아요. 워쩐대유 클났네. 저한테도 상감 보내주세유~~~*^^*
왜요? 그 상감 얼마나 무서운데요. 밀주단속반도 무서웠어요.
ㅎㅎㅎㅎ~~ 무료하던 오후시간에 얼마나 아름다운글 입니까??.... 저는 관사생활해서 잘모르지만 동네친구집에 놀러갔다 비슷한일 당하는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산골짝님 맨날 맞기만 하구~~~ 잉잉잉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게 신기하죠? 비비안엄님도 휴가철엔 좀 바쁘실 듯해요.
저도 지금 키득키득...애가 엄마 이상하다할겁니다...아니 설마하니 윗방에 있다고 얘기하지 않겠지 하면서 조마조마했건만..내가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산골짝을 믿다니...에궁...맞을짓을 했네요.이번엔 정말로...ㅎㅎㅎ 남 남은 닭 먹는 동안 부지깽이로 맞을만하네요...ㅎㅎ
하하, 본인도 이 글을 읽으면 기가 막힐 겁니다.^^
산골짝님 일기를 정가님이 왜 마구 옮기시는 거지? 전부터 나는 몹시도 궁금했지만 눈치 없이 아무 거나 묻는다고 부지깽이로 맞을까 봐.....
ㅎㅎㅎ 저는 알고는 있지만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드릴 자신이 없어서...그저 오래 전부터 두 분에게 친분이 있었다고만 ...
도요새님도 궁금한 건 못 참으시는 분이군요.^^ 산골짝님은 저와 갑장으로 갑장 카페에서 만났는데 거기에 산골짝님이 올린 글이 하도 재밌어 우리 카페에 제가 재연재했지요. 몇 년 전 식구가 적을 때 올렸던 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 다시 한번 올리는 거랍니다. 이젠 됐나요?^^
밀주 단속반은 저도 압니다. 울엄마 술담그시는거 참 잘하는데 단속이 무서워서 여름에 집에다 못담고 뒷 담 풀숲에 항아리 감추고 담아 두는 거 본 적 있습니다. 상감처럼 무섭게 단속을 했던것 같지는 않네요^^
저도 산감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산감 십바리차 다 첨들어보는 산골얘기네요. 산골짝님은 그야말로 대책없는 엉뚱한 짓으로 부모님에겐 화근덩이였지만 하는짓이 너무나 순진무구해 글을읽으면 번잡한 마음을 정화시키는것 같아요. 영혼이 맑은아이가 맨날 뜬금없는짓해 맞고사니 웃기기도하지만 거기있었음 엄마부지깽이 뺏고싶을정도로 짠해요.. 본능에 충실한 누렁이도 골칫덩이짓하는걸보니 산골짝님 단짝맞네요^^
정말 좋은 얘기라 우리만 보기엔 너무 아까워요.
책 내신다 하더니만 어찌 되었는지요?? 출판사 섭외가 잘 안되나요??
ㅋㅋㅋ 웃었더니 지현이가 이상하게 쳐다보아 얘기 해주었더니 지두 일기장 있다네요. 저두 밀주 단속반 때문에 술 담그진 날엔 집밖 멀리서 깜깜할때까지 있었던 기억은 납니다.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더러 있지 싶어요.
흐이구...웃방에 숨었어요...흐이구....부지깽이 들고 두들겨 줄까부다.
기껏해야 그렇지요 뭐.
그런데 산골짝님 몇학년때 일기기에 이렇게 잘 표현했나요?? (요것도 사실은 도요새님이나 왜요님이 궁금해할까봐서 제가 대신 묻습니다요 ㅎㅎㅎ)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참 슬픕니다... 저도 초등학교 2~6학년 다니면서 나무하러 다녔는데..
옛날엔 완전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산림정책을 엄격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산림녹화 성공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나라지요.
산골짝님 일기 언제 올리셨대유? 이거 올리실 땐 반다시 번개 두 번 때려서 대전 하늘에 별이 보이게 해 주세요.ㅋㅋ 딱딱 엄마의 이 닿는 소리에 같이 떨고 있었는데 "웃방에 숨었어유" ...하하하...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아휴... 골짝님하고 원제 막걸리 한 잔 기울이고 싶구먼유..^^;
근데 골짝님은 막걸리를 못 드셔요. 그날은 내가 대신 먹어줄게유.^^
두들겨 맞는데도 왜 이리 웃음이 날까~~~~~~~~~~~~~ㅎㅎㅎ
두들겨 맞는 데 하도 이력이 생겨서 우리 바람재 식구는 이제 아무도 불쌍하게 생각 안할 겁니다.
ㅎㅎㅎ 읽는 제가 다 오금이 저립니다. ^^얼마나 무서웠음 그냥 숨어있다고 말을 했을까 싶네요. ㅎㅎ 아무 생각도 안났을거에요 아마.ㅋㅋ
재밌지요? 저 아래 1편부터 읽어 보세요. 정말 돈 주고도 못 구할 얘기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