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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이스라엘 비전트립 7 (10/9) in 2017
- 엔게디, 쿰란
* 엔게디 가는 버스
우리는 이제 사해를 뒤로 하고 간다. 우리는 익사하지 않고 가라앉지 않고 소프의 비밀, 왕국의 비밀 안에서 뜨게 된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게 놀랍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산다. 그러지 말라고 사해로 보내주셔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윗이 엔게디 요새, 마싸다에서 지내다가 갓 선지자가 가장 안전한 요새에서 나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소프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왕국 가르쳐주시기 위해 안주하는 다윗을 내보내신다.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을 피해 다니게 하신다. 이때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와 서로 마주하게 되는데 그 광야에 가서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갈릴리까지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북쪽으로 계속 올라간다.
기도 ) 하나님 아픈 사람들 배를 만져주시고 치유하여 주셔서 가르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십시오. 약속의 땅에서 뛰어놀게 하여 주십시오. 건강을 지켜주시고 힘 주시고 에너지가 파워풀해져서 주님의 심장, 지식을 아는데 열심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 엔게디
네페쉬 하야, 살아있는 혼의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배우러 왔다.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태권도 선수의 제자가 되면 태권도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것이다.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네페쉬 하야, 살아있는 혼이다.
사탄은 집중적으로 네페쉬를 파괴시킨다. 그러면 몸과 영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이 땅은 영이 움직이고, 모든 소스는 영인데 혼을 파괴시키면 영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영과 육이 따로 움직이고, 사울처럼 악신이 들린다. 살아있는 혼이 있어야 하나님과 육신이 연결되는데, 혼이 파괴되니 악신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 세상을 연결시키는 것을 왕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 네페쉬 하야가 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한 것을 게디라고 한다. 혼이 살아나려면 자유의지가 살아나야 한다. 그래서 이곳을 엔개디라고 한다. 자유의지란 뭔가? 영과의 연결, 진정한 생명과의 연결이다.
우리가 엔게디 광야를 보고왔다. 생명체가 살 것 같지 않고 황량하고 기암괴석만 있다. 그런데 여기에 나무가 있고, 물이 있기에 사슴들이 와 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갓 지파가 있다. 다윗은 이곳에서 자유의지가 살아나는 것을 경험한다. 자유의지가 살아나려면 물만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령님은 생수, 살아있는 물이다. 그래서 자유의지는 반드시 물을 찾아 헤메야한다. 여러분들의 자유의지가 사슴이 그 물을 찾아 헤메듯이 생수, 진리, 토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원한다. 그러면 자유의지는 살아난다.
안 그러면 여러분은 광야에 뚝 떨어진 존재와 같다. 여기서 죽을 것 같다고 그러는 것이다. 세상에서 죽을 것 같다. 온통 살 자신이 없고, 불안하고, 피곤하다. 뜨겁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살아나면 물을 찾는다. 그러면 겅 좌우에 나무가 살아나고, 생명체가 사는 것이다. 주님이 여러분들의 자유의지를 살려주시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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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윗 폭포까지 올라갈 것이다. 게디라고 하면 גד 가드, 공격하다, 베어버라다는 뜻이 있다. 군대가 갓이다. 우리가 왕국인데, 다윗이 여기서 갓의 기름부으심은 받은 후 군대가 몰려온다. 우리에겐 군대가 있다. 귻을 가드라고 한다. 베어버리는 것이 가드이다.
자유의지가 하는 가장 파워풀한 것이 나무를 배어버리는 것이다. 선악의 지식나무를 배어버리는 것이다. 이 가드를 훈련할 때 하나님은 왜 우리를 광야로 보내냐면, 광야에서는 내가 살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돈이 있다? 핸드폰이 있다? 충전은 어디서 할 것인가? 광야에 나가면 남자친구도 30분이면 죽는다. 오직 딱 하나 소용있는게 물이다.
다윗이 광야에서 쫓기다가 여기를 발견했다고 생각해봐라. 뜨거워 죽겠는데 말이다. 여기서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더웠는데 여기서 이렇게 행복하다.
자유의지는 토라의 중요성; 물의 중요성;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안목의 정욕, 새상의 정욕을 다 잘라버릴 수 있다. 그것은 광야를 아는 자유의지요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든 족장들은 광야에서 훈련받았다. 그러면 모든 정욕을 다 잘라버릴 수 있다.
토라의 생수, 성령의 생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기 바란다. 나는 말씀만 있으면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만 있으면 됩니다고 고백하기 버란다.
사반을 보았다. 사반은 형상을 말해내는 것이다. 사반조차도 얼마나 광야에서 평화로울까? 물 있는데를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반보다 못하게 살면 안된다. 사반도 저렇게 평화로운데,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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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다가 사울을 발견하고 아버지~ 라고 한다. 왜 그럴 수 있는가? 잡히려고? 다윗이 저 위에 있고, 사울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고 해보자. 불러도 못 쫓아간다. 이게 광야이다. 마주 대하고 있어도 쫓아갈 길이 없다.
이곳은 다윗의 폭포이다. 폭포 끝에 동굴이 하나 있다. 그런데 저기를 올라가려면 산을 돌아가서 기암괴석을 지나서 가야한다. 바위산을 기어올라가야 한다. 다윗이 저 위에 숨어있었다고 다윗 폭포이다.
엔게디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엔게디에서는 사울이 똥 누러 동굴에 들어왔다가 다윗이 있었는데 안 죽였다. 엔게디에서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다윗이 안 죽인다. 모든 것이 가능해도 안 죽인다. 심지어 사울이 죽었을 때, 사울의 죽음을 알린 사람이 상 받을 줄 알았으나, 다윗이 그 사람을 죽여버렸다. 이게 게디, 자유의지의 핵심이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가 자유의지이다. 나를 왕으로 기름부어놓고 광야에 집어넣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겁나 열받을 것이다. 크리스천 만들고 준게 뭐가있어? 자유의지는 어느 상황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윗은 돈 안 내고 여기에 와서 살았다. 여러분들의 자유의지가 살아나길 축복한다. 이 광야 한 가운데, 이렇게 놀라운 폭포가 있다. 때가 되면 사슴들, 산양들, 사반들, 고라니, 온갖 동물들이 와서 물을 먹는다. 같이 어우러지는 곳인 것이다.
이곳이 바로 성전에서 물이 나오면 그 물이 광야의 계곡을 타고 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있는가? 성전의 물이 흘러들어오기 위해서는 광야여야 한다. 우리나라 땅이면 다 흡수되고 안 흘러온다. 여러분의 삶이 광야인 곳은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이유, 섭리가 있다. 이게 자유의지이다.
가드, 가달, 자라고 성장하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훈련하면 성장한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을 신뢰한다. 이게 자유의지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인류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 삶이 광야인 이유는 물을 흘려보내기 위함인 것이다.
광야와 같기 때문에 마지막 때 하나님이 그 위에 물을 부어서 사해를 살리고, 그렇기 때문에 왕국에 대한 메세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곳이다. 지금 조금 흐르는 이유는 이게 예표라는 것이다. 모형, 심볼이다. 심볼, 예표를 가지고있는 자는 굉장한 힘을 가진다. 모델하우스, 먼저 만들어보는 것과 같다. 그러면 많이 만들 수 있다.
이곳에 성전에서 솟은 물이 이렇게 흐를 것이다. 엔게디 광야 밖에서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믿을 수 있다. 이 물이 반드시 사해를 살리는 물이 되어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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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가 살아난 사람들은 기름부음받은 자를 대적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사회는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는데, 게디, 자유의지가 살아나지 않아서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대적하는 시스템이 되어서, 리더십에게 상처 입고, 내가 어떻게해서, 올바른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왕국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다. 내 관점은 완전할 수 없다. 내 관점이 맞다고 하면 자유의지는 살아나지 않고 기름부음받은 자를 대적하면 혼이 파괴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왕으로 세웠어? 하나님이 틀린 자가 되고 내가 맞는 자가 된다. 맞는 말 같지만 큰 사탄의 궤계이다.
이곳에서 놀라운 치유가 임하길 축복한다. 자유의지가 살아나야 가달, 성장해서 위대한 사람이 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것이 다 이것이다. 신앙생활 2-30년 해도 제자 하나 훈련을 못 시킨다.
지금까지 모든 하나님의 역사에 대적했던 것, 아버지, 리더십, 기름부음받은 자에 대한 상처를 싹 씻기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이 창녀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사무엘이 태어났는데 양이나 치라고 한다. 이름은 사랑받는 자인데 사랑을 못 받고 컸다. 리더십에 대한 상처가 엄청 컸을 것이다. 엄청난 승전보를 올리는 장수가 되었는데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다윗은 이곳 엔게디에서 주님을 신뢰한다.
결국 주님의 헤세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으려면 반드시 우리의 죄악이 있어야 한다. 주님은 다윗뿐만 아니라 사울에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무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חסד 헤세드 : 생명의 비밀
쏘드에서 생명이 나온다. 네 깊은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배는 자궁이다. 자궁에서 생명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데려다놓은 이곳은 쏘드이드. 저 폭포 위의 모양이 쏘드와 같다. 쏘드에서 생명이 나와서 사해로 간다. 쏘드는 엄청난 비밀인데, 성을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의 기쁨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애 모든 자유의지의 회복이 있다. 모든 비밀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기 바란다.
이것은 여인의 양 다리와 같이 생겼다. 쏘드로부터 물이 흘러 사해로 가는 것이다. 생명은 쏘드, 비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나온다. 나를 즐겁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해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 나의 자유의지를 살아나게 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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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자유의지의 회복을 방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것을 알 때 자유의지는 하나님께 종속되어 살 수 있다.
마지막 때 사람들이 사탄의 궤계에 의해 하나님이 시원찮다고 한다.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가운데 우리를 두시는 이유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자유의지를 탄생시키기 위함이다.
다윗이 괜히 기름부음받아서 한 나라 왕이 쫓아다닌다. CIA가 쫓아다닌다면 죽을 것 같다. 수배자이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한다. 진정한 자유의지가 살아나자 군대가 생기고 왕의 기름부으심을 받는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틀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질서를 깨는 것이다. 리더,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광야에 보낸 것 같지만, 이렇게 좋은 곳에 보내신다. 뜨거운 여름에 오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 중턱에서 폭포 아래에서 맞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사슴이 와서 물을 먹고 그러면, 사울이 쫓아오는건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나의 생수가 되시고, 지키는 자가 되시고, 놀라운 분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회복시킨 것이다.
* 엔게디에서 쿰란 가는 버스
이곳은 작년에 룻이 버스를 놓친 곳이다. 고 목사님한테 혼나고 기차 타고 혼자 왔는데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훈련으로 여겨서 고 목사님께 100점을 얻어서 보아스와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긴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훈련으로 여겼는데, 이렇게 항상 모든 것은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쿰란 공동체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역사적인 점심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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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이 지나면 우기가 된다. 여러분은 지금 역사적인 광경을 보고 계시는 것이다.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폭포수로 흐른다. 이 비는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축복인데, 초막절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기도 중 하나가 비 오게 해다라는 기도이다. 3~4월까지 우기인데 우기의 긑은 유월절이 알리게 된다. 이때부터 뜨거운 건기가 시작된다. 우기 때 비가 와야 먹을 물을 저장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비오는 것을 보게 하시고 이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르겠다. 하늘에서 오는 물론 산다고 하는 것은, 애굽은 나일강의 물을 내가 끌어서 사는데, 이곳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는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것일 결정된다. 하늘에서 비를 안 내리면 광야가 되고 비가 내리면 이렇게 폭포수가 되는데, 모든 것이 하늘의 보호, 하늘의 Defense 안에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우리 실제 삶은 영의 세계에 따라 달라진다. 영의 세계를 얻으면 이 땅에서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의 세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영의 실제 세계에 대해 깊이 주님께로 받으시길 바란다.
* 쿰란
원래 성경은 천 년 전 사본이 가장 오래 되었었다. 그런데 여기서 2000년 전 예수님 당시의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제일 위기를 느낀 것이 이스라엘 정부이다. 성경을 근거로 세워졌는데, 1,000년 전과 2,000년 전 것이 다르다면 근거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걸 사다가 대조해보니 똑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성경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만 진짜라는 것이다.
여기에 엣세네파라고 하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외부와 차단된 거룩한 생활을 하였다. 로마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필사하던 성경을 뒤 동굴에 감춰놓은 것이다. 이곳이 베드윈들이 양떼를 치던 곳이었는데, 양치기가 동굴 속에 돌을 던졌는데 영 소리가 안 나고 쨍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다. 무슨 고문서가 있는 것이다.
이게 돈이 되겠다고 베들레헴에 가죽세공하는 사람에게 가져갔는데, 껌값을 주고 사서, 시리아 정교회 수장에게 양복 한벌 값에 팔았다. 이걸 챙겨서 시리아 정교회 수장직을 버리고 미국으로 나가서 경매에 붙였던 것이다. 수백만달러이다. 전세계 시대의 발견이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다 사들여서 연구했던 것이다.
그것 뿐만 아니라 쿰란 공동체에서 동굴 가득히 숨겨놨다. 도굴꾼들, 베드윈들도 샅샅히 뒤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이갈 야빈이라도 자기 아버지가 히브리대 고고학 교수였다. 베들레헴에 전쟁이 있어서, 자기 아버지가 꼭 구하고 싶다고, 아들이 몰래 베들레헴에 들어와서 몰래 입수해서 자기만 아는데 묻어놓고 찾으러 왔는데 1주일만에 다 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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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정결례를 하는 곳이다. 모든 공동체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임 : 물 = 진리, 토라
샤마임은 하늘이다. 물의 특징은 하늘이 그대로 비춘다. 이 시대의 마임은 다 하늘을 예표하고 았다.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진리 가운데서 하늘을 살게 되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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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dining room이다. 이곳을 야하드 공동체라고 한다. 에하드가 하나님의 손이 임해서 완성이 되면 야하드, 한 사람, single 단수가 되어버린다. 에하드는 단수긴한데 아직도 집합적이다.
주님이 여기에 보내는 핵심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굉장히 기름부으심이 강한 시편인데, 우리는 마지막 때 야하드를. 추구하게 되어있다. 야하드를 모르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른다. 모든 것이 야하드를 위해서 간다. 다 Together이다. 이것을 야하드라고 한다.
베야하드 요클루, 함께 먹고, 예바레쿠, 서로 축복하고, 요아쭈, 서로 충고한다. 모든 것을 함께하고 야하드를 향해서 산다. 모든 인류를 야하드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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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 공동체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성경 필사, 기록이었다. 성경을 가죽에 기록했기애, 그 가죽이 사해의 고온건조한 기후를 요구했던 것이다.
우리 같았으면 여기에서 도를 닦을 때 성경을 필사할까?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매 필사 때마다 정결예식을 해야하고, 틀려도 안된다. 유대인들이 했기에 우리가 원본을 받을 수 있던 것이다.
이게 왜 가능했고, 중요했는가? 이것을 카타브라고 한다. 적용해서 완성하는 시스템이다. 쓴다는 것은 중요한데, 재판할 때 쓴게 하나 있으면 결정적이다. 쓰는건 그마만큼 중요하다. 남편이 무슨 말 하면 꼭 써두시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곤한다. 써진 것을 가지고 만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이게 완성하는 시스템 중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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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우기, 겨울이 된다.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은 환상적인 날씨이다.
쿰란 공동체는 사해 끝자락에 있다. 북쪽 끝이다. 엔게디 광야, 사핼 앞에는 느보산이 있고, 좌측으로는 여리고이다. 사해에서 쿰란 공동체가 말씀을 기록하고 여기서 기록한 말씀을 전세계에서 보고, 말씀이 틀림없음을 본다.
말씀은 왜 써지고, 문자라는 것은 뭔가? 영에 속한 것을 담아서 그것을 어떤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문자라고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게, 남편이 옆집 여자에게 연애편지 쓴게 발견이 되었다.
쓴다는 것은 광장한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전달할 때 써서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오늘날 전세계는 글이 다스린다. 막스의 공산당 선언이라는 작은 책이 온 세상을 뒤집어놨다.
카타브는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이다. 영의 세계의 모든 것 하나님이 되는 법을 문자에 기록해놨다. 그래서 사람이 문자랄 해독하지 못하면 인간은 답이 없다.
마지막 때 성문서설이라고, 성경은 인간이 조작한 것이다. 이게 대체적인 신학의 흐름이다. 왜 그럴까? 문자 자체가 아니라고 해버리면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문자를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 인간이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길이 끝나고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우셔서 나에게 올 수 있는 틀림없은 문자라고 확신시키고, 목표는 나에게까지 오는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목적은 이 땅에서 사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것이다. 히브리어 문자를 내가 보존하렸다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제 너희는 히브리어 문자를 내 형상이 되는 법으로 해독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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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해 북쪽 끝이다. 타켈레크 하늘의 색을 가지고 있다. 저렇게 물이 많은데 물을 먹고 살 곳이 없다. 사해 사본은 1번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엔게디 광야는 동굴의 천국이다. 여기서 가득 발견되었다. 그러니 사울이 다윗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군대 한꺼번이 포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해 끝자락에 있는 산을 느보산이라고 한다. 요단 계곡이 헐몬산까지 가고, 아프리카 탄자니아까지 간다. 이 trans-jordan밖, 건너편에서 이스라엘이 올라온 것이다. 여기서 건너온 곳이다. 느보산에서 바라보고, 모세는 죽고 이스라엘 백성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 여리고 평야, 길갈에 진을 치고 있던 것이다.
여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200/600만명의 사람들,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난 어마어마한 군대를 지닌 도적 떼이다. 아모리 왕 바산 왕을 끝장냈다고 하니 달달달 떠는 것이다. 그런데 600만명이 새카맣게 넘어왔다고 해봐라. 여리고가 성벽을 굳게 닫아놓은 것이다.
이곳은 인류의 마지막 그림이 있는 곳이기에, 사해가 살아나고 성전의 물이 들어와서 인간의 영이 살아나는 그런 곳에 사해 공동체는 지냈던 것이다. 약속의 땅, 하마콤, 에덴의 회복, 이 모든 것이 있는 stage에 와서 살고있는것이다. 이곳에 여러분이 있는 것도 악속의 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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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앞이 제 4동굴이다. 비가 오면 형성되는 와디로 많이 깍여나갔다. 하나님은 왜 우리 여기로 보내셨다. 여기 오는게 창세 전부터 정해져있었다.
오늘날은 삶에 대한 해석이 제일 문제가 되고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에서 살았다. 뜨겁고, 어렵고, 성경을 필사했던 사람들이 2,000년 후에 한국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임을 깨닫게하기 위함임을 누가 깨달았겠는가? 이야기해도 미친사람 취급받았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삶에 고난, 고통이 온다면 그것이 언제 하나님이 쓰시기위한 것인 줄로 생각하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고, 무엇인가를 한다면 그게 언제를 위한 것이냐? 이것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영원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 나는 내 삶에서 즉시로 열매를 맺히 원했습니다. 파르, 열매를 보는 것이 파라오이다. 내가 인내하고, 경건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지고 형제 우애를 하는 모근 은은 영원의 세계에서 열매맺을 수 있다.
내가 뭔가를 했는데 지금 돌아와야하는 것을 음행이라고한다. 결국 내가 이 땅에서 열매를 보기 위험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제도은 많이 타락했다. 지금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 우리는 영혼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많은 헌신, 절재, 인내, 믿음이 영혼을 향해야 할 것이다.
이곳 엔게디에서 다윗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당신처럼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름부름박은 대적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우리도 그런삶을 살기 원합니다.
* 식당에서 솔로몬 가는 버스
갈릴리는 전체의 놀라운 힘이 있는 곳이다. 호텔 입성 후 중간평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카타브 배운대로 심플하게 육하원칙대로 써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이곳 북이스라엘은 엔게디와 달리 비옥한 땅이다. 디베랴, 티베리아스라는 도시를 통과해서 갈릴리 언덕 중턱에 있는 솔로몬 호텔에 투숙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요단강을 거슬러 온 것이다.
갈릴리 바다는 사해와 달리 물고기가 많고 온 이스라엘의 식수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은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왜 갈릴리냐?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이방 땅 갈릴리에서 제자를 부르신 이유. 갈릴리와 헐몬산에 머무르며 살펴보게 될 것이다.
* 호텔
이스라엘 전체 구조는 다 사람의 형상으로 되어있어서, 우리를 사람되게 하는 깊은 구조가 이스라엘에 있다. 이스라엘에 여러분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사람되게하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꾸 힘을 받기 위해서 어딘가 소속되고 친구를 사귀곤한다. 만약 친구가 없으면 힘을 못 받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사실 내가 결혼하는 이유도 힘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과 같이 살면 점점 힘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같이 살게되면 힘이 생긴다. 그러지 않고는 여기까지 올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같이 만나고, 생활하면서 힘을 받는다. 여러분들이 예슈아 비전교회에 자꾸 오는 이유는 힘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삶과 다른 힘을 주는 곳에 가면 힘을 못 받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디스코텍가는 삶이면, 예슈아 비전교회에서 전혀 힘을 못 받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에 따라서 힘을 받는게 또한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저라는 사람을 여러분들이 만나서 힘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에 와서 힘을 받을 수 있고, 못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것 속에 아주 놀라운,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를 넣어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람되게하는 힘을 받게하신다. 그게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희한한 곳이다. 괜히 막 좋다.
엘*나 형제는 파산했기 때문에 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놀라운 것이다. 파산했으니까 예슈아 비전교회에 와서 앉아있다. 안 그러면 안 와서 앉아있는다. 실제로 거기서 빼내셔야 한다. 완전히 다른 공간 속으로, 다른 사람들 속으로 빼내야 한다. 거기서 하나님의 형상, The Man, 진짜 사람되는 힘을 하나님은 부여해줘야 한다. 그런 사람되는 힘의 모든 원초, 소스가 바로 여기, 이스라엘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자꾸 이스라엘 속에 부르는 것이다
14번 불렀다는 것은 사람되기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저는 여기 살기도 하고, 계속 이런저런 이유로 불러서 인도하신다. 그렇게 사람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전한다는 것도 다 그런 것이다. 이스라엘을 전하고, 알게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사람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성은, 단에서부터 브엘쉐바까지라고 한다. 단은 헐몬산에 있다. 내일 텔단이라는 곳에 가볼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시작은 헐몬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헐몬홀에 있다. 히브리어로 חֶרְמֹן 헤르몬이라고 한다. חֶרֶם 헤렘이라고 하면 진멸하는 것이다.
헤렘을 건드렸다가 큰코 다친 사람이 아간이다. 여리고 성에서 나온 모든 것들은 헤렘, 다 없애야 한다. 그런데 아간이 시날 산 외투를 숨겼다. 옷을 조심해야 한다. 몇가지를 건드렸다가 완전히 이스라엘에 패배한다. 헤렘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헤렘이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חֶרֶם 헤렘 : 생명(ח)의 머리(ר)
헤렘은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다. 이것을 건드리면 안된다. 이건 절대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우리 삶 속에 그런 것들이 있다.
우리는 나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나라는 주체를 만들려면 내 것을 주셔야 한다. 립스틱도 내 입술에 발라야하고, 내 옷, 내 가방이 있어야 내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라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 내것이라는 착각을 준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내 것은 없고 다 하나님 것이다. 내 것이라는 착각을 줘야만하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한다.
볼펜은 달라고 할 수 있어도, 지갑은 안된다고 한다. 내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100불만 달라고 할 때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사람이 내가 생긴 다음에 하나님에게로 가기 위해서,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내거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이게 줬다 뻈었다 하는 것이다. 내거라는 인식을 버리면, 하나님이 너는 내꺼다라고 하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넌 내꺼다 하려면 너가 생겨나야 한다. 그럴려면 니꺼를 가질 수 있게 해야한다. 생겨났으면, 넌 내꺼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 꺼다라는 것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이것을 하나님이 안전장치를 해놔야 한다. 이것을 헤렘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는 항상 헤렘, 건드려서는 안될 것, 내꺼로 만들면 안될 것들이 있다. 이거 건드리면 완전히 끝장이다. 하나님이 가만 안 계신다. 나중에 넌 내꺼다 할 수가 없기 떄문이다. 인간이 돌아오질 않는다. 자기 것만 찾다가, 나만 찾다가 끝난다. 인간이 완전히 멸망한다. 그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은 것이 헤르몬, 헤렘이다. 그 헤렘만큼은 인간이 자기 것으로 못한다.
이 헤렘 중의 헤렘이 예슈아이다.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만큼은 인간이 절대 건드리면 안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것이 될 수가 있다.
이 헤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왜 이래? 할 수 있다. 나를 왜 여자로 만들었어? 여기에 답이 있는가? 없다. 그냥 하나님의 뜻, 카카, 그런 것이다. 나를 왜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어?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불만이었던 사람 손 들어보라. 또는 나는 왜 이런 부모 밑에 태어났는가? 그런 것들은 다 헤렘에 속한 영역들이다. 이런 것들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트렌스젠더가 되려고 하고, 성전환 수술을 하려고 하고, 미국 사람이 되고 싶다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헐렁헐렁한 바지 입고 다니면서 힙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되는 것이다. 헤렘을 건드리면 안된다.
여기서 모든 것들이 결정이 된다. 우리 인간이 배워야 할 가장 큰 겸손이 헤렘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단 한명의 이쉬이신데, 우리 주님의 별명이 헤렘이다. 어떤 인간도 주님의 자리에 올라가면 안된다. 어떤 인간도 그리스도가 되려고하면 안된다. 그런데, 나는 그리스도되려고 한적이 한번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스도란 그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을 이야기한다. מָשִׁיחַ 마쉬아흐라는 직분이다.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형상(שׁ)을 만들어놓고, 그 형상을 살려고 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헤렘이 인간의 형상이 뭐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직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내가 되고싶은 형상을 내가 그린다.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내가 그리고, 그것을 살아내려고 한다. 형상을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살아내려고 한다. 마쉬아흐이다. 이것이 헤렘을 건드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일 우리가 헐몬 산에 갈 것이다. 헤렘은 그 자체가 헤르, 머리가 들어가있다. 이건 건드리면 안된다. 우리는 몸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헐몬 산이 머리에 해당된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헐몬 산은 케테르에 해당된다. 지금까지는 계속 헤세드까지만 배웠다. 그런데 머리에 해당되는 것의 3개의 영역이 있다.
- 케테르, 호크마, 비나
케테르라고 하는 것은 면류관이라는 말이다. 면류관이 맨 위에 있다. 헐몬 산은 면류관과도 같다. 이 면류관은 인간이 절대 건드리면 안된다. 인간은 헤르몬, 헤렘을 알아야 한다. 이건 그리스도의 것이다
주님이 헐몬 산 아래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곳에 베드로를 데리고 간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는데, 여러가지 말을 하는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할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바로 헤렘이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야 할 형상이다. 내가 살 내 모습을 내가 그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헐몬 산이다.
우리는 헤르몬 산에 가서, 헤렘되신 그리스도의 기름부으심을 다시 받을 것이다. 우리가 되야할 모습은 다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인 것이다.
헐몬 산은 케테르이다. 여러분들이 갈릴리에 와 있는데, 갈릴리는 비나이다. 그래서 주님이 이 갈릴리에서 활동하신 것이다. 주님은 비나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비나는 아들의 통찰력이다. 통찰력은 아들이 되는 법이다. 여러분들은 통찰력을 왜 얻으시려고 하는가? 통찰력은 아들이되는 법이라고 한다. 통찰력이 있는 자만이 아들이 된다. 아들이 되는 것은 어렵다.
아들되는 법에 대한 비나, 통찰력이 있는가? 어렵다. 아들되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통찰력, 비나가 있어야 한다. 이게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다. 윤 권사님 연세에 영적 자녀가 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제 나이가 90된 랍비라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런데, 아들뻘인데, 아들되는 통찰력을 지닌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비나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통찰력이고 지식이다. 사람들은 다 이 비나를 얻으면 바나, 건축하는 힘이 생긴다.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건축해야 산다. 뭔가 자꾸 세워나가고, Establish, 경력, 학력을 세우고, 자기의 능력을 세운다. 지식, 학문을 세우고, 다 세워나간다. 바나해 나간다. 그런데 다 무너진다. 세울 것 같은데 또 무너지고, 안된다. 자기 집을 세우기도하고, 가정을 세우기도 하고, 계속 세워나간다. 재산을 세워나가기도 하는데, 계속 실패한다. 비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비나의 핵심이 아들되는 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비나의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뭘 얻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그게 비나이다.
하나님의 권력과 파워를 가져오는게 비나가 아니라, 비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되는 것이다. 아들되는 법이 비나이다. 이 갈릴리에서 여러분들에게 비나의 파워가 가득하길 축복한다.
헐몬 산이 케테르이고 갈릴리가 비나이다. 나사렛, 갈멜 산, 므깃도, 이쪽은 호크마이다. 비나와 호크마는 붙어있다. 헐몬과 지혜와 지식이 이스라엘의 삼각형, 머리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이 나왔다. 여기서 아들됨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몸을 형성한다. 우리는 거꾸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것이 사해바다에 가서 왕국이 된다. 이런 사람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아버지 품 안에, 집 안에 있는 것이다. 여기 와서 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주님이 준비해놓으신 것을 얻는 것이다. 아버지의 집에 가면 힘을 얻듯이 똑같은 것이다. 아버지 집에 가는 것만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아들됨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고아처럼 사는 것은 내가 살아야만 한다. 내가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내가 잘나야하고, 이뻐야 한다.
그런데 아들됨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능력자가 될 필요가 없다. 우리 아빠가 힘이 쎄면 된다.
어렸을 땐, 아빠한테 이르는 것이다. 아빠가 힘이 쎄면 되지, 자기가 힘쎌 필요가 없다. 우리 아빠는 차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 자라면 내가 차를 가져야하고, 내가 뭔가를 가져야한다. 아들됨의 굉장히 중요한 원리가 아버지의 어떠함이다. 다윗은 아주 그 아들이 되는 법을 알았던 자들이다. 아버지의 어떠함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다윗의 시편에는 매일 하나님이 내 산성이고 요새이다. 사울은 자기가 요새를 가져야한다. 여러분들은 아들인가?
이곳은 헤롯의 아들들이 여기에 와서 다스렸다. 여기가 아들됨의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롯의 아들들은 자기가 권력을 지니고 파워를 지니고, 뛰어났어야 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헤롯의 아들인가? 이곳에서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 사시길 축복한다.
아들됨의 첫 번째 통찰력이 아버지에 대한 통찰력이다. 그래서 아버지 사랑만 하고다닌다. 자기가 뭘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육신의 가족이 와서 영의 가족으로 승화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제 영적 개념들이 같아지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육신의 개념이 같았다. 카드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이 카드가 나중에 케뎀이 된다.
이 갈릴리에서 하나님 아버지만 자랑하시기 바란다. 아버지만 자랑하는 것이 아들의 통찰력이다. 내가 힘이 안 쎈데, 아버지가 힘이 쎄다. 내가 영광이 없어도 아버지가 영광받으면 된다
초막절 이스라엘 비전트립 8 (10/10) in 2017
- 헐몬 산, 팔복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 헐몬 산
이스라엘은 정말 변화무쌍하다. 네게브 사막, 사해, 헐몬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하다. 사실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이 이렇게 변화무쌍하다. 우리 특징이 변덕이 죽 끓듯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원래 우리는 이렇게 변화무쌍하다. 온갖 모든 생명이 우리 안에 다 담긴다. 그런데 그것을 선악의 지식나무를 먹고 하나의 욕구로 처리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오면 편안한 이유가 나랑 비슷해서이다. 어떤 곳은 사막과 같고, 무뚝뚝한 기암괴석이고, 어떤 곳은 풍요롭다. 너그러울 때는 엄청 너그럽고, 짠돌이일 때는 사해보다 더 짜고, 높은척할 때는 헐몬보다 더 높다.
이스라엘을 알게되면 정체성이 생겨나고, 우리 안의 변화무쌍한 것이 하나의 나라의 형태로 나타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헐몬 산 밑으로 오신다. 교회를 세우시고, 기초를 놓으신 후에 엿새 후에 베드로등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신다. 높은 산은 여기밖에 없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옷이 눈과 같이 희어졌다.
인간이 왕권을 가지는 것은 진리를 훈련하는 것인데, 인간이 변형되는 것이 진리이다. 그래서 이곳을 변형산이라고 한다. 이게 인간의 가장 중요한 왕권이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 홀연히 변형되게 되어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난다고 한다. 자하르, 자인, 비추는 빛이다. 우리가 해같이 빛나는 자인이 된다는 것이다. 주는 사랑, 비추는 빛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계시가 이 자인이다. 6일 후에 7일째 자인에 도달하는 것이다.
헐몬 산에서는 예수님이 홀연히 변화되신다. 이게 인류의 제일 중요한 계시이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더불어 보인다. 예수님 당시 1,500년 전에 모세가 죽고, 700년 전에 엘리야가 죽었다. 우리나라에서 1,500년 전에 죽은 사람이 누구인가? 을지문덕과 제가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기절초풍할 것이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신다. 그들은 안 죽었다. 이게 천국의 비밀이다.
이 헐몬 산은 왕권을 기름붓고 면류관을 씌워주신다. 누가 왕권을 받냐면, 인간은 안 죽는다이다. 단순한 진리 같지만 이것을 안 믿고 끊임없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연세드신 분들을 기도해드리다보면 정말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안 죽는다는 것을 안 믿고 끊임없이 살려고 한다. 주님에게 갈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가기 싫어한다.
여기서 주님이 하늘문을 여시고 제자들에게 말한 것이 안 죽는다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헐몬 산에서 인간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헤렘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호프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다. 베드로가 초막을 짓자고 한다. 초막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와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고 한다.
베드로는 이게 천국의 실제이고 하나님 나라의 실제임을 았다.
그리고 빛난 구름이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사랑하는 아들이다. 아들은 정말 놀랍다. 아들은 아버지만 있으면 된다. 아버지의 모든 것들을 이어받는 아들이 탄생한다.
우리는 헐몬 산에 올라서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변형되신 것을 믿으셔야 한다. 여러분들도 영원한 몸으로 변형될 것이다. The man의 일부분으로 변형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죽지 않으려는 걸에 대한 Reaction이다. 로보트이다. 조금만 죽이려고 하면 다 조종할 수 있다. 가장 조종하기 쉽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만큼 조종하기 쉬운 사람이 없다. 돈 없으면 죽어? 남편 없으면 죽어? 건강 없으면 죽어? 노예가 된다.
로보트의 삶이 완전히 끝나고 인간이 완전히 변형되는 것이 이 변형 산이다.
우리 주님이 홀연히 변화하신 이곳, 하늘문을 완전히 열어놓은 것이다. 여러분들이 케테르, 면류관을 쓰고 내려오면 이것으로 온 세상을 비추게 되어있다. 가는 곳마다 나라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 ) 주님 내가 그동안 사탄의 로보트로, 사망의 로보트로 살았습니다. 조그만 위협에도 두려워하고 겁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헐몬 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의 실제를 보며,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으며, 나도 죽지 않을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면류관을 쓰고 돌아올 것입니다.
해르몬, 헤렘,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믿음, 인간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해를 입지 않는다. 상처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절대 절명의 머리를 건드려왔고, 로보트로, 사망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헐몬 산, 헤르몬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며 이제 그분의 말만을 들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주님이 주신 면류관을 쓰고 온 세상에 이 빛을 비추며 살겠습니다.
—
내가 도대체 왜 사망의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욕구의 노예, 로보트로 살고 싶지 않다는 울부짖음이 있다. 나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 그래서 산에 올라오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과 부르짖음이다.
모든 인간은 홀연히 변하여 그분처럼 변한다는 계시, 모든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계시를 소리치자. 세상은 너 돈 있냐고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리쳐보자.
이 높은 곳이 있는 계시가 내려가게 되어있다. 이곳에는 헐몬 산 전투에서 죽은 사람의 위로가 있는 곳이다. 헐몬을 지킬 때는 죽음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죽지 않는다는 계시를 드러내려면 죽어야만 드러낼 수 있다. 헤르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그냥 죽는 것이다. 여리고 성 전투 때도 내가 챙기려고 전투하면 망한다. 사탄이 맨날 너 죽어 하면 날 죽여라 하는 것이다. 이것처럼 강한 용사가 없다. 아무리 해도 날 죽여! 하는 사람은 못 건드린다. 이제는 사탄이 무서워서 도망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장 높은 곳에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모세와 엘리야가 죽지 않았다는 믿음을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높은 곳에서 기도할 때 온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이 산지가 시온 산, 헤브론, 브엘쉐바까지 간다. 잉태의 줄기를 따라 이스라엘이 살게된다. 모든 인간은 변형되고 죽지 않는다.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하면서 기도해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지어다. 이 계시를 온 이스라엘에 뿌리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 소리를 들을지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아들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아들이 되고 사탄의 나라에서 해방되어 아들의 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
야훼 에하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입니다. 우리는 사망, 거짓 아비와 하나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모세, 엘리야, 우리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살아있습니다.
나는 사망의 공포가 나한테서 컸었다. 유난히 죽음이 두려웠고, 죽을 것만 같았고, 살 자신이 없었고, 죽고 싶었다하는 분들은 나와보라.
사실 우리 모두 다 그렇다. 모든 사망의 기운이 다 떠나갈 것이다. 내가 살려고 하는 것은 다 거짓이다. 왕권을 부어주실 것이다. 이제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죽지 않는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의 변형체다.
예슈아, 우리가 당신의 찬란한 모습을 봅니다. 모세, 엘리야, 우리가 당신들을 봅니다. 우리의 믿음의
아버지들, 살아있는 아버지들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죽었다면 우리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들이 살아있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아롭 베드로 요한 바울, 우리의 모든 아버지들이 살아계시고, 모든믿음의 선진들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도 당신들이 쓰신 면류관을 쓰고 당신을 따라갈 것입니다. 이제 거짓 아비가 씌웠던 어둠의 왕관을 벗어던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씌워주셨던 찬란한 케테르를 씁니다.
—
헤르몬, 헤렘의 진리는 너무 중요하다. 사람들이 자꾸 헤렘을 건드린다. 죽지 않는데 자꾸 죽는다고 한다. 우리는 헐몬 산에 와서 그것이 정결케되는 것이다.
높은 산은 높은 계시를 잉태하는 것이다. 그 산에서 내려가면 잉태된 높은 계시가 나타나는 것이다. 잉태하는 것은 그 산의 기억이 남으면 된다. 헐몬 산을 얻는 것은 일단 헐몬 산의 기억이 남으면, 사람은 사랑하게 되고, 그 산을 얻게되는 것이다. 우리가 헐몬 산에서 모이고, 기도하고, 이야기를 시키냐면 기억을 남기기 위함이다. 그러면 그 산을 얻는 것이다. 기억을 남기면 그 산을 얻는다. 가장 높은 계시를 잉태하는 것이다.
사람은 헤렘을 건드리면 답이 없다. 인생이 꼬이기만 한다.아간이 해렘을 건드리자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하는데마다 진다. 형제 자매가 죽어나간다. 정말 힘든 삶을 산다.
우리 자녀들이 죽음이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마음아프겠는가? 내가 차라리 죽겠다고 할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죽음이 가짜라는 것을 오셔서 죽음으로 증명해주셨다.
우리가 다니면서 1억을 쓰고 간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지? 일주일 사이에 1억 쓰고 가는게 크리스천에게 합당한가?
그런데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사망의 노예로 있다면 100억이 무슨 소용인가? 티코 타고 가다가 들이받아 죽으나, 페라리타다 죽으나 무슨 소용인가? 세상은 맘몬이 다스리고 있다. 우리는 부함에도 가난함에도 처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삶의 본질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줄 알아야 한다.
* 팔복교회
이곳은 산상수훈교회라고 알려져 있다. 산상수훈이란 산에서 예수님께서 토라를 가르치신 곳이다. 하나님께서 토라, 복을 가르치신 교회에서 보도록 하자. 결국 토라의 결론이 베조트 하브라카, 이것이 그 축복이라는 것이다. 결국 복이 토라의 결론이라는 것이다.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참 특이하신 것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많은 무리들이 올라왔는데, 산에 올라갔다는 말은, 올라갔다는 것은 영적 상승이다. 무리들을 보시고 올라갔다. 무리들이란 많은 백성들을 이야기한다. 많은 백성들이 결국 해야할 일이 영적 상승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다 꿈꾸는 것이 영적 상승이다. 그런데 올라는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On, Upon이란 뜻이다. 실질적으로 영적 상승하다는 것은 붙어버리는 것이다. 전기를 Turn on하는 것은 전선 2개가 붙는 것이다. 그래서 올라란 하나님과 붙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올라가셨다. 하나님과 붙어버리셨다. 무리들을 보시고 영적 상승을 하셨다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서 무리들을 본다면 무엇을 주시겠는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붙어버리면, 그것이 온 무리들을 이끄는 길인 것이다. 꼭 영적 상승을 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뭔가?
하하르 : 그 산 = 잉태하는 것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마법인데, 하나님과 붙는 길은 다 잉태하는 것이다. 부부관계, 결혼은 하나님의 토라에서 가장 중요한데, 너무 신비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결혼이란 잉태하는 것이다. 남편을 사랑하고 하나되는 길은 남편의 씨를 잉태하는 것이다. 남편과 하나되는 것이 육체가 붙는 것인 줄 알았다. 아내와 하나되라는 소리에 지렁이가 부러웠다. 지렁이는 암수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붙어있는 것인지 몰랐다. 내 몸뚱아리, 아내 몸뚱아리 2개가 붙는게 에하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 둘의 에하드는 *늘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헐몬 산에서도 내려와서 나누는데 펑펑 우는 것이다. 왜 우냐고 했더니, 그냥 펑펑 울고 싶었다고 한다. 나랑 똑같다. 노랑이이다. 그냥 개념없이 이상한 개념으로 말이다. 간증 나누는 삶들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냥 울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서 헐몬 산 갈 준비를 하는데, 그 준비하는 모습이 엄마랑 너무 똑같다. 거의 정리된거 없이 여기저기서 주워담는다. 우리 둘을 합쳐놓은 것 같다.
영적 상승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붙어버리는 것인데,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잉태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잉태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나온다. 그러면 그 나온 여호와는 하나님과 나의 하나됨이다.
우리는 왜 저 루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온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달려들고, 애를 케어하고, 왜 그럴까? 그게 진정한 영적 상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 올라왔다는 것은 잉태하러 올라왔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잉태하러 올라왔다. 그런데 제자들이 나아온다고 한다. 제자들만이 나아온다. 일반 백성들은 나를 복주는 것을 원하는데, 제자들은 그 개념을 넘어서서 여호와를 잉태하기 원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많은 무리들이 아니라 제자이길 소망한다.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제자들이 나아오면 주님이 입을 여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한다. 주님이 입을 열어서 우리로 살게 하신다. 주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온다.
1. 영이 가난한 자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그런데 천국이 바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 잉태하는 것이다.
영이 가난하다는 것은 뭘까? 가난의 뜻은 이 세상에서 가지지 않았고,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가난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것이 씨앗이다. 씨앗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약속만 있는 것을 가난하다고 한다. 정말 가난한 자들이다. 그런데, 영이 가난하다? 참 놀라운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다. 약속만 있고, 그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만 살아간다. 이 땅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약속만 있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이 땅에서 와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받을 것에 대한 약속만 가지고 있다. 이게 영이 가난한 자들이다.
영이 가난하지 않은 자들이 있는데, 약속이 있어도 그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을 수 있다. 그것은 영이 가난한게 아니다. 여기서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요새 번영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약속이 있는데, 이 땅에서도 아들됨을 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예수믿고 부자되어라. 복 받아라. 그거 다 여기서 버리고 가시길 축복한다. 여기서는 약속만 있다. 무엇에 부자이냐? 약속에는 부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약속의 부자가 아니라, 약속을 별로 Count하지도 않는다. 약속만 있는 것이 기분나빠서 별로 기억도 안 한다.
여기서 뭐 할 것이 아니다. 여기서 고아와 과부를 먹이고, 이게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의 약속을 약속이라고 한다. 그게 영이 가난한 자이다. 여기서는 받을게 아무것도 없고, 다음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믿는 자를 영이 가난한 자라고 하고, 여기에 기뻐하는 자, 이 세상에서 없다고 발버둥치지 않는 자를 영이 가난한 자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약속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약속보다 지금 나한테 어떻게 되느냐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주님의 첫 마디가 영이 가난한 자들이다. 약속으로 정말 너희가 살아가느냐? 약속을 카운트하고 있느냐, 돈을 카운트하고 있느냐? 이 땅에서 받을 것을 카운트하느냐? 약속을 카운트하느냐? 약속이 돈이라고 하면, 이렇게 카운트가 시원찮지 않을 것이다. 약속 하나당 100불짜리라면? 자기에게 100불짜리,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약속은 지금 당장 아니니까, 그냥 널부러놓다. 누가 줏어가던 말던 상관도 안 한다. 이것을 영이 더러운 자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팽개쳐버리는 것이다
부부관계도 약속과 언약을 팽개쳐버리면 더러운 것이라고 한다. 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약속으로 살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약속 & 언약으로 사는 자들은, 그러면 천국이 저희 것임이다. 천국을 다 소유하게 된다.
2. 애통하는 자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가 왜 복이 있느냐? 우리는 이 땅에서 애통하지 않으려고 한다. 애통하는 것이 뭔가? 우는 것인데, אבל 아벨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훈련하는 것을 애통한다고 한다. 아버지를 닮아가려고, 아버지를 훈련하는 자는 복이 있다. 아버지와 같지 않을 때 애통하는 것이다.
*늘이가 헐몬 산에서 애통을 했다. 뭔가 울고 싶은 것이다. 더 아버지같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를 훈련하려고 할 때, 늘 아버지와 같지 않은 것에 대한 애통함이 있다. 그때 위로를 받을 것이다. 나함, 노아흐, 수동적 생명이 임한다
3. 온유한 자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모세가 천하에서 가장 온유한 자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땅, 마음을 기업으로 받는다. 마음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기업이란 아버지의 것을 다 이루고 성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마음은 내 마음을 이루었다. 왜 그러냐고 하면 내 마음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기업인 것을 알아야 하낟. 기업은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의 것을 이룬다. 이제 이곳에서 마음을 기업으로 받으시기 바란다. 마음이 기업으로 받아지는 그 길이 온유함이다. 온유함이란, 성격 좋은게 아니다. 아버지의 관점에 신실한 것이 온유함이다. 아버지가 보는 방식으로 보는 것, 이것을 온유함이라고 한다
모세가 온유함이 천하보다 승했던 이유가, 항상 모세는 하나님 아버지가 보는 관점으로 봤다. 그렇게되면 마음이 기업이 되버린다. 아버지의 관점으로 보고, 아버지의 관점을 실현하려고 하면, 내게 있는 마음이 기업이 되어서 엄청난 파워가 되어, 이 마음으로 아버지의 관점을 다 실현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면 내 마음으 요동친다. 내 욕구란 이랬다, 저랬다 어둡기 떄문에, 마음이 기업이 아니라, 없었으면 좋겠는 것이 된다. 이놈의 마음은 왜 이랬다 저랬다하는지 모른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배부를 것이다 = 만족할 것이다.
Satisfied, 정말 여러분 삶의 충만한 만족이 있는가? 만족함으로 사시길 축복한다. 모든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은 만족이 있을 때이다. 만족이 없을 때는 죄가 유혹하면 끝이다. 그런데 만족하는 길이 뭐냐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다.
righteousness, 의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자기 중심이 아니라 타인 중심이다. 저희가 배부를 것이다.
5. 긍휼이 여기는 자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함이라고 하면 태, 자궁이 떠올라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란 뭐든지 잉태하고 해산하려고 하는 자이다. 긍휼이 많은 자는 잉태하려고 하는 자이다. 문제아가 딱 있으면, 보통 사람들은 저놈의 자식 언제 철이 드냐고 하는데, 긍휼히 여기는 자가 있으면 애를 잉태하려고 한다. 애를 품으리라. 잉태해서 낳으리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이시다.
그러면 이 자궁이 정말 강해져서, 쑥쑥 낳는다. 잉태, 쑥, 잉태 쑥이다. 최고의 기쁨이다. 잉태할 자를 찾는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 이제 막 영적인 엄마가 될 사람들, 긍휼히 여기는 자궁의 복이 임하길 축복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도 너를 잉태하고 낳아버린다는 말이다. 정말 놀라운 소리이다
6. 마음이 청켤한 자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볼 것이다 = 하나님에 대한 Vision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Vision을 가지고 이 Vision속에서 하나님이 되는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 것을 걸어간다. 본다는 말을 하존이라고 한다. Vision을 보고 Vision을 걸어가는 것이다. 제자의 비전을 보는 것이 이것이다. 하나님의 Vision,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쫓아가는 것이다. 바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말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르 히브리 숙어로 바르 레브, 마음의 아들이라고 한다. 테니스의 아들이라고 하면 테니스를 위해서 태어난 자란 뜻이다. 물질이 아니라,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살악나다. 외모가 아니라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Vision을 보고 걸어갈 것이란 것이다
7. 화평케 하는 자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이다. 샬롬이다. 화평케 하는 자들이란 샬롬을 추구하는 것이다. 늘 형상을 훈련하는 것을 추구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길이, 늘 형상을 훈련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던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되는 것을 훈련한다.
부부싸움을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되는 것을 훈련하고, 꿈을 꿔도 하나님의 형상되는 것을 훈련한다. 형*이가 계시적인 꿈을 꿨는데, 하나님의 형상되는 훈련을 한다.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하나님의 형상되는 훈련을 한다. 우리는 정말 놀라운 사람들이다. 그것을 샬롬, 형상을 훈련한다고 한다. 샬롬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일컬음을 받아서 그 아들됨이 온 세상에 공포되면 아무도 못 건드린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것이 뭔가? 주는 것이 간단한 것 같지만, 내가 받지 않으면 핍박이 온다. 나를 육신적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핍박한다. 내가 받아야지, Family는 나의 확장이기에, 내 확장의 일원들이 받는 일을 안 하면 이건 정말 악한 것이 되버린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받아오라고 한다. 여러분이 주는 삶을 살면, 육신에 속한 가족들이 여러분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너 그렇게 살면 안된다. 왜 그렇게 사냐? 당장 해보라. 재산이 있는 아들들은, 아버지 재산 갖다가 다 나눠줘보라. 어마어마한 핍박이 온다. 형*이가 변호사 하면, 변호사 직업 때려치고 선교사 간다고 해봐라. 그러면 핍박이 온다. 은*이가 핍박하고, 나 뭘로 먹여살릴래? 하면서 말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지막은 주님으로 인해서 욕하고 핍박받는 일을 당하면,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악한 말을 할 때 복이 있다. 오래오래 사실 것이다. 그러면 정말 복이 있다. 이것이 산상수훈에서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복이다.
이 복의 개념이 있어야 이 땅, 영원을 살아간다. 이 복의 개념이 없으면 우리는 영원을 살아가지 못하고 주님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이 모든 복을 다 하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가 욕을 받고, 핍박받고, 거짓으로 악한 말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는 것이다.
이 복 중에서 한 가지 복을 고르라.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복을 한번 골라보라. 이 복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사람을 형성한다. 여기 자기 전공과목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욕 먹는거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정말 자신있는 사람이 있다. 다른 것은 못해도 욕 얻어먹고 핍박받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것에 자신있는 사람이 있고, 마음으로 사는 것이 자신있는 사람이 있다. 제 아내는 실제보다 마음을 더 중요시여긴다. 마음이 도대체 뭐냐? 정말 살기 어렵다. 꽃 한송이 사줘서 헤헤거리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마음을 그렇게 따진다. 이런게 자신있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잉태하는 것, 그저 잉태하고 싶고 낳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애통하는 자, 아버지랑 같지 않으면 애통하는 자가 있다
벤 다*드는 너는 아버지 닮았다 하면 제일 좋아한다. 바*야가 카톡 하나만 보내주고, 카톡에 칭찬하고 아버지 닮았다고 하면 헤헤헤거린다. 아버지랑 같지 않은 것에 대한 애통함에 자신있는 사람이 있다. 각자의 전공과목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서 그것을 배운다. 이런 것이 같이 모이면 우리는 한 사람을 형성한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미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받을 복이 아니다. 복은 복을 받아야지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린다. 복을 안 받고 살 수는 없다. 이미 주님이 주셨는데, 우리의 욕구, 욕망은 아직 안 받았다고 한다. 이미 주님이 주셨다. 여기서 Take하시기 바란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그냥 잉태해서 해산해버리는 것이다. 욕구가 아니라 의, 주려는 것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다. 그러면 만족이 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수많은 약속으로 사는 사람은 놀라운 사람이다. 화평케 하는 자, 어떤 상황이 오던 형상됨을 훈련하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 아버지를 닮기 위해서 눈물흘리는 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아버지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나의 애통함이다.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아버지랑 관점이 늘 똑같은 자이다. 이제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이룬다.
기도 ) 우리가 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살았으나, 이제 주님의 복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아들로 살아갈 것입니다. 아들이 말씀하시는 사람의 모습, 형상으로 살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아들의 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이 사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 삶이 내 삶이 될 것입니다.
* 베드로 수위권 교회
요21장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갈릴리로 다시 돌아온다.
요21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우리는 육신이 보여진 것을 말하는 줄 아나, 아들됨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것이 기록된 이유는 여러분들에게도 나타내기 위함이다.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고기는 자유의지에 종속될 때 생겨난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로운 고기는 자유의지가 생겨나야지, 자유의지로 고기를 잡는다. 이 고기는 곧 주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헤세드의 고기, 게부라의 고기, 티프에레트, 감사, 절제의 고기가 있는가? 없다. 3년 동안 예수님 쫓아다녔으면 고기를 잡을 줄 알았다. 주님이 나타나야 한다. 토라를 바우면 될 줄 알았는데 안된다. 주님이 나타나셔야한다. 먼저 우리의 대답이 있어야 한다. 고기가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는 말은 샬라흐, 던지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샬라흐 하겠느냐는 말이다. 형상을 훈련하는 삶을 살겠느냐? 형상을 훈련하는 삶으로 던져져라. 사도가 되어라. 제자들이 샬라흐하다, 자기가 보냄받는 삶으로 나가자 들 수 없을 젙도로 잡는다.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내리는데 선수인 것 같다. 바다는 창1장이다. 겉옷은 기도숄이다. 여러분도 창1장, 비나의 바다로 뛰어들길 축복한다.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이 대목에서 의문이 있는데 부활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 겨우 떡과 생선을 굽는 일이다. 부활하신 하나님이면 천군 천사와 풍악을 울리면서 있어야지 생선 굽고 계신 것은 미스테리이다. 생선을 가져오라는 것으 분명히 태우셨던 것이다. 더 좀 가져와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적어도 생선이 불에 둥둥 떠다니면서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할거 아닌가? 이게 미스테리이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제자를 삼을 때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저는 선교사할 때 기적을 행해서 예수를 나타내고 싶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 나타난 장소에 여러분을 보내신 이유는 기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안되는 생선을 굽는 주님, 가장 일상의 삶 속에서 가장 작은 일로 살아있는 주님으로 나타난 것이다.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탄니님, Great fish가 등장한다. 베드로가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을 낚게된다. 사람낚는 어부가 된다고 했는데 낚을 수 없었다. 그런데 주님이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하자, 자기도 모르게 낚았는데 그게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예수님으 나타나야 하나님의 아들을 낚을 수 있다.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아침 먹었냐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내들이 결혼해서 제일 안주는 일이 조반이다. 주님 자타나는 일을 가장 막고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을 나타내게하는 방법이다.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세 번째는 샬로쉬, 형상을 훈련하신 것이다. 그게 중요한게 조반을 먹으라는 것이다. 가장 일상 속, 평범함 속에 나타나신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다음번에도 주님이 나타나신다.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람이 제일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나를 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람보다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주님이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신다. 처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양을 먹이는 것이다.
어린 양은 양 한 마리이다. 애기 양이다. 양을 먹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기 양의 악을 돌보라는 것이다. 사실 아기들은 다 악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다. 아기 양을 먹이라는 것은 악을 돌보라는 것이다. 우리 루아의 악을 돌보고 있다. 지
맘대로이다. 지 배고프면 울고 졸리면 울고 맘대로 한다. 이렇게 악한 자가 없다. 그런데 주님은 저 어린 양의 악을 돌보면, 그 악이 선이 된다. 그 악을 품으라는 것이다. 이게 제자도의 첫 번째이다.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악한을 제자삼는 것이다. 저는 당신의 악을 돌보고 먹이는 것이다. 그건 주님을 사랑하는 자그 할 수 있다.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이 말은 악을 돌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악에서 나오도록 Drive하라는 것이다. 운전대를 쥐어주어라. 양이 악에서 나오게끔 운전하라. 자아에서 해방되게끔, 애굽에서 나오게끔 운전하는 것이다. 유월절에 태워서 운전해서 오는 것이다. 네가 운전하겠느냐?
운전하시겠는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여러분들은 제자들을 운전할 수 있다.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은 어린 양이 아니라 이제 나온, 의를 추구하는 양떼이다. LTG할 때 한명 먹이기도 힘든데 이제 양떼를 관리하라. 양떼의 악을 돌보고 다 선한 경향성으로 이끌라는 것이다.
진*가 루아 악하다고 한명의 악함도 돌보라고, 더 안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양떼의 악함을 이끌라고 한다.
저는 여기서 부르심을 받았다. 네가 양때를 운전하라, 양때를 줄테니 먹여라.
그때 이스라엘 공동체에 3-4명 있었다. 3-4명 먹이기도 힘들다. 그런데 주님이 교회로 부르시면서 양떼를 줄테니까 네가 다 먹여라. 네가 운전해라. 그걸 어떻게 하냐고, 주님에게 따지진 못했으나, 내가 함께할 것이다. 나랄 사랑하면 내가 할 수 있다. 이게 아들되의 통찰력이다. 그냥 아들의 사랑, 아버지를 향한 사랑만 있으면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고,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이 되셨다. 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실 때, 사랑한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분들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양떼를 운전하고 먹이시길 축복한다. 어린 양을 먹이는데부터 주님의 양떼를 먹이기까지 가길 축복한다
기도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이 세상에서 기적, 이사, 거대한 일이 더 높은 가치의 삶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이 나타나는 것은 작은 것, 내 옆 사람의 악을 돌보고, 그 악에서 나오는데 운전하는 것에 있다.
주님은 당신이 나타나는 길을 여기서 제정하셨다. 오직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고백 하나에서 많은 주님의 양떼를 먹일 수 있다. 주님이 양떼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소망이고 교회이다. 반드시 어린 양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주님은 거기에 우리의 퓨ㅗ기적과 이사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아들이심에도 고기를 굽고 아침을 만들고 계셨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이 평범한 삶에 있다. 이제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양때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것을 몰라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예수님을 믿고 평범함 속으로 간 것이 아니라 더 큰 욕망 속으로 나아갔다. 이제 우리는 평범함 속으로 나아가자. 악에서 나와야하는 어린 양들을 우리가 바라보자. 기꺼이 그 양떼들의 아침을 하는 자들이 되자.
여러분들은 그 권리를 지니고 주님을 나타내는 자가 될 것이다.
* 호텔
주님을 사랑함이 우리의 왜 핵심적인 이슈인가? 사실 나를 사랑하면 어떠한 생명도 만들지 못한다. 결국 비나, 아들됨, 통찰력은 나를 사랑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면 어떤 양도 못 친다. 양 떼가 나를 따라오지도 않는다. 나를 사랑함은 블랙홀같이 한도끝도 없다. 어느 누구도 인도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나를 살아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함에 다다르는 것이 요한복음의 결론이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양떼를 맡긴다.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절대로 양떼를 맡기지 않는다. 우리 모두 갈릴리 바다에서 비나의 통찰력 가운데 있으시길 축복한다.
적는다, 카타브하는 것은 시스템, 집을 세우는 것이다. 설계도만 있는 것과 비슷한데, 글을 쓰면 실제로 집이 지어진다. 그래서 쓴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정 중에, 오전 시간에 헐몬 산에 다녀왔고, 오후 시간에 팔복교회와 베드로 수위권 교회를 다녀왔다. 카톨릭 같은 경우에는 베드로를 1대 교황이라고 여긴다. 수위권, 머리의 권위가 있는 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갈릴리 바다에서의 주님의 나타나심을 제정하신 요21장을 얻기 위해서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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