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키스의 암호 (외 2편)
김추인
우편함을 열어야 하는데요
뻐꾸기를 꺼내야 하는데요
길은 멀고 떨리거든요
그 여자 몇 개의 사구를 넘어
사막의 겨울을 건너가는 중인가 본데요
무릎 꺾일까 열 발톱을 세워 모래의 나라를 움켜
밟고 가는데요
당신들, 사막이 아름다운 까닭을 아실까 몰라
신기루 속을 내달려오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내 외사랑의 시
그의 홀로그램을 보는데요
모래폭풍 아니라도 눈이 먼 여자
그의 사랑 눈물 입술
입 속의 검은 잎*조차 훔쳐내고 싶은
관절을 꺾어서라도
비의(秘意)의 자모음 끌어내고 싶은
아무도 닿지 못한 프렌치키스를 위해
뻐꾸기를 꺼내러 가요
그의 우편함은 살구나무에 걸렸다는데
모래의 땅 그 너머에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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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시인의 작품집 표제.
이소 (離巢)
문은 늘 샛강처럼 손짓했지
날마다 이소 하라 하라
뒤로 뒤로 새끼 치며 내빼며 나를 유인했지
어미 청호반새가 먹이를 물고
줄 듯 줄 듯 뒤로 물러서는 동안
새끼는 조금씩 더 멀리
날갯짓을 하지
어미를 향해서 문을 향해서
더 멀리 발을 떼고 어린 날개를 펄럭여 보는 동안 이소가 준비되는 거거든
노상 문은 시간 저쪽에 있다는 거
거리의 개념으로
좀씩 좀씩 물러앉는다는 거
넌 알고 있었니?
이제야 눈치채다니 나 바보 맞지
봄, 그 발긋거리는 것들
무희들이 돌아올 시각이다
이정표 하나
안전표지 한 조각 없이
무사 귀환할 수 있을까
하늘빛도 물빛도
파릇한 옹알이 눈치챘지만
자고 깨면 새로 당도한 풋것들의 북적거림에
덩달아 마음이 뜬다
취재라도 하듯
카메라를 치켜들고
봄의 경계를 쑤셔보지만
번번이 그들 착지시점을 놓친다
푸른 드레스 밑 흰 맨발이 보고 싶다
한밤중 세상의 잠 속을 빠져나가
가만가먼 서로를 부르는 소리 듣고 싶다
오늘밤 눈꺼풀 아래 초막을 치고 엿보면
푸른 족속들 흰 발꿈치가 보이지 않을까
춤추는 토슈즈 얼핏 드러나지 않을까
발 치고 울타리 치고
제 살비듬 하나도 들키고 싶지 않던 여자가
웬일로 웬일로
철 이른 뜰 앞에서
스륵 치맛말을 내린다
꽃무덤 둘, 라일락 꽃숭어린가 싶은데
깜박깜박 커서 비슷한 것이 뜨고 있다
내부로 가는 여자의 통로가
좀씩 열릴라는지
어쩔라는지
— 시집 『프렌치키스의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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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인 / 1947년 경남 함양 출생.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 『나는 빨래예요』, 『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의보』,『벽으로부터의 외출』,『모든 하루는 낯설다』,『전갈의 땅』,『프렌치키스의 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