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외 1편
이귀영
다달이 오던 금괴가 검은 관(棺)으로 왔다.
다른 길 다른 노래 부르는 자
다른 연극 다른 미술, 표현에 못 박아 자유를 가두었나
그래서 검은, 구두 검은, 셔츠 검은, 넥타이 검은, 검은 이름들
‘이 땅에서 시를 쓰는 者는 모두 블랙리스트다’*
굳은 언어는 관 뚜껑의 백서!
관 뚜껑을 열면 항변이 터져 나올 듯하여
먼저 쓰다듬어 본다.
‘너무/ 깨끗해서/ 두려운/ 당신의/ 그 두근거리는/ 심장을/ 돌려주고/ 싶었네’
시화(詩畵)에 시는 검은 각주다. 분석하고 토로하는 전망 백서다.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보이지 않는 두려움으로 우리는
왜 썩어 가는가 무너져 가는가 벼락이 몇 번 왔다 갔다.
팔 벌리고 서있으니 살아있는가
바람이 단단해서 빗방울이 단단한 형질을 이루고
울음도 단단해서 흐르는 게 없구나
왜 우는가, 초원이 사라지고 있다.
꽃무늬 벽지 곰팡이가 몸에 번져 오르는데
숨어 다니는 별이 묻어나는데
화살표대로 가는데 왜 점점 빈 벌판인가
몸을 바닥에 눕혀 등에 파스를 붙이려는데
뒷거울로 붙이려는데 접힌다.
손 하나는 자유로웠으면 허용 받을 이유 있다.
채식주의자 광물주의자 명단주의자 다 사라지는데
명단에 기록한 자와 기록된 자가 백년 후에 같은 꽃길 걷고 있을까
날아가는 모자와 날아가는 가면은 줍지 마라.
우리의 노래는 거기 없으므로
*2017년 2월호 어느 시문학지
미세먼지
―나쁨
이귀영
갈랫길 너는 염소 너는 양, 오늘은 나쁨 오늘은 좋음, 환경 전광판을 믿는다. 오늘의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일산화탄소 염화수소 미세먼지, 측정 현황을 바라보며 이렇게 회색인 날 쓸쓸히 강남에 도착하면 캐러멜 마끼야또 한 잔 마시고 푸른안경과 장갑과 KF94마스크를 사야겠다 생각하며 무릎 위에 커다란 가방을 더듬는다. 작은 책 작은 노트 볼펜뭉치 화장품파우치 손수건 머플러 키홀더……, 달리는 창밖 이른 봄나무에 갈잎도 푸른잎도 없다. 휴대폰으로 버스는 탔는데 지갑이 없다. 오랜만의 외출에 외식도 쇼핑도 기웃거릴 생각들이 정지선에 닿으니 춥고 배고프다.
강남 상점들이 어룽어룽 꿈의 도시이거나 펼친그림이거나 외계에서 왔다거나 하자. 물신주의자 나는 금빛시계 진주목걸이 회색자동차 버버리코트 볼사리노모자 루이뷔통핸드백 어떤 스타일 어떤 부피 어떤 무게에 취한 구토다. 나는 주름, 나는 먼지, 빈 털털이라 가벼워진 몸이라 커다란 가방이 나를 이끌고 날아오른다. 지구 중심에서 멀리―, 높이―, 오르는 순간 사방이 나의 프레임이다. 수천수만 빛들이 최소량의 처방으로 숨 쉬는 나를 쏘아 올려 나는 저절로 경계를 횡단한다. 저절로 강을 건넌다. 먼지 익는 냄새 너는 염소,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나쁨] 환경전광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