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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7일(수) 고린도후서 3:1~18 '새 언약의 일꾼'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오늘은 고린도후서 3:1~18 말씀을 중심으로 '새 언약의 일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우리 마음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고 하면서 이 영의 직분은 살리는 ‘의의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6절에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라고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군 삼으심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다고 말합니다. 새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의 가사 1절을 보면 1절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직분을 주셔서 주의 일꾼 삼아주셨습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주님께서 구원해주셨을 뿐 아니라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겨 주셔서 주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시고 사용해 주심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일꾼’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리스도의 일꾼은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주님의 종, 즉 ‘노예’입니다. 이 말에 좀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리더가 되어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이끌고,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일을 성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럴 때 나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의 마음과 자세는 사도바울과 같은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종의 자세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일꾼의 자세입니다. 또한 주의 일꾼은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청지기는 집의 ‘매니저’입니다. ‘집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와 자기의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꾼은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자기의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여러 종류의 사람을 사용하시는 데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부르시고 사용하셨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사용하셨고, 많은 사사들을 사용하셨으며 다윗과 솔로몬도 사용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해 사용하되었습니다. 즉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말은 ‘구약의 일꾼’들과 비교하며 사용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맺은 언약은 ‘옛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옛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은 많은 일꾼들을 불러 쓰셨습니다. 옛 언약에 반하여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신 새로운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성취할 새 언약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세워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은 그 어떤 직분보다 더 영광스럽다고 합니다. 7,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합니다. 모세의 직분은 율법의 직분이었습니다. 그것도 물론 영광스럽고 존귀한 직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직분은 영적인 직분으로서 구약의 율법의 직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더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문자적인 가르침을 뛰어넘어 영적인 가르침으로 사람을 살립니다. 세상의 일은 돈버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성도의 직분은 귀중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연말이 되면 일년동안 맡은 일을 정리하고 내년에는 좀 더 편하게 신앙생활하려는 움직임들이 각 부서에서 보이는데,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고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지 않았으면 더 잘나가고 성공하는 정치, 종교지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이 그를 주목하고, 그를 만나보고 싶어하고 많은 부귀와 명예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의 일에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주의 일은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권세를 누리는 자리도, 큰 명예가 주어지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새언약의 일꾼의 하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바울은 2절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새언약의 일꾼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사명은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온전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언약의 일꾼인 우리들을 도구삼아 당신의 편지를 쓰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은 사람들 마음에 ‘구원의 편지’를 쓰게 하십니다. 그 일에 쓰임받는 자가 바로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것이고, 또한 그 일에 저와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새언약의 일꾼으로 우리는 어떻게 그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에게 주신 새언약의 일꾼으로의 직분을 잘 감당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오직 주님 맡겨주신 새언약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은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 주신 사명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일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새언약의 일꾼으로서의 직분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일꾼은 나의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6절에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을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십니다. 육은 사람을 전혀 살릴 수 없고 아무 도움도 안되는 무익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신음하고 탄식하며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살아나야 우리 영혼도 살고, 다른 사람의 영혼도 살릴 수 있게 되지, 내 영이 죽으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죽어가는 인생을 살리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새언약의 일꾼들이 주어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를 ‘성령에 취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고 번역합니다. 성령충만은 한번 기도원에 가서 단회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령충만한 상태을 유지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 중 성령충만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한 사람은 성경에 없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직분인 새언약의 일꾼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직분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시므로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