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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시편 주석 편집자 서문(1)
여기서 우리는 제임스 엔더슨의 편집자 서문을 두 차례 나누어 살핍니다.
1. 사람들이 시편을 단순한 시집으로 간주하기에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품위와 교양을 갖춘 사람들은 시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시편을 연구했습니다.
또 이 점에서 시편의 탁월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영국 시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밀톤(Milton)은 이 거룩한 시들을 언급했습니다.
'시편이 모든 서정시보다 뛰어나 이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 없는 것은 거룩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구성에 있어서 매우 비평적인 묘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위대한 학자 Sir Daniel K. Sandford 는 '서정적인 흐름과 열정 그리고 압도적인 힘과 장엄함에서 시편은 한때 시내산의 번개치는 구름을 뚫고 들렸던 그 무시무시한 소리를 여전히 울려주고 있는 듯한데 구약의 이 시들은 인간의 가슴 속에 불탔던 가장 최고의 걸작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2. 그러나 우리가 시편에 주목하는 것은 시편의 본질적인 탁월성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에 시편의 주제는 그 기원을 하늘에 두는 가치입니다.
일반적으로 시편에는 유대 백성의 민족 역사가 자세히 서술되었습니다.
또 시편에는 삶의 특별한 부분들과 개인적인 체험 및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예언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각 시편은 광범위한 분야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신앙 진리들을 포함합니다.
또 우리가 품어야 할 의무인 모든 열렬한 감정의 여러 가지 예들과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영혼의 모든 갈등을 담습니다.
시편에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은 단 한 분 참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 장엄하심 그리고 완전하심과 함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기 백성에 대한 특별한 돌보심입니다.
또 시편에서 우리는 중생한 영혼이 받는 여러 가지 단련에 접합니다.
또 이 영혼이 한편으로는 기도를 들으시는 이에게 열렬한 간구를 드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그분의 사역을 찬양합니다.
또 한편 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열렬한 사랑의 고백을 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불신 및 타락과 더불어 투쟁합니다.
또 이 영혼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로 신음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혼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은 용서의 환희에 즐거워합니다.
또 모든 것을 이해함으로 주어지는 평화를 즐거워합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메시아에 관해서와 그분의 비하, 고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하여 아버지 우편에 앉으실 것에 관한 놀라운 예언들을 봅니다.
또한 자기 백성들의 중재자로서 하늘에서 행하시는 사역 및 우주의 왕으로서 권위, 그리고 성령의 감화력의 나타나심과 모든 민족들이 복음을 믿게 되는 회심에 관한 기이한 예언들을 풍부하게 제시합니다.
우리들이 시편을 통해 보는 것은 마지막 심판, 모든 의인들이 하나님께로 모이게 되는 사실, 사악한 자들이 행복과 소망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되는 사실들입니다.
3. 시편 자료는 가장 우아한 문체의 시와 감정의 중요성과 위대성에 관계되는 장엄하고 고상한 어법에서 나타나는 주제들과 그와 유사한 주제들로 구성됩니다.
이 주제들은 시편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요 단순히 인간의 천재성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한편 이 시편의 주제들은 시편의 성격과 경향이 이방 세계의 천재들에 의해 쓰여진 가장 존경받는 시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시편은 어떤 부패한 정열에도 공헌하지 않고 어떤 허구적인 덕도 권면하지 않습니다.
또 시편은 그 아름다운 향기가 미신의 신당에서 드려지는 것을 경멸합니다.
시편이 가르치는 것은 가장 고귀한 경건과 가장 순결한 도덕입니다.
시편은 다만 인간의 본성을 순결케 하며 고귀하게 하는 힘을 지닙니다.
또 시편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들어올리는 힘을 지닙니다.
시편은 영혼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하고 사랑하게 하여 정열을 억제시키고 감정을 순결케 하며 참된 것, 정직한 것, 올바른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이며 무엇이나 개발하도록 자극하는 힘을 갖습니다.
시편은 성도가 회의와 시련을 당할 때에 그를 인도해 왔습니다.
시편은 성도가 자아를 부정하며 고통 당할 때 그를 격려해 왔습니다.
시편은 죽음의 순간에도 성도에게 이겨낼 힘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시편은 모든 시대의 위대한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시편의 탁월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많은 공을 기울였습니다.
아다나시우스는 시편의 양식을 '성경 전체의 압축판' 이라 하였습니다.
바질(Basil)은 '모든 신학의 요약서' 라 하였습니다.
루터는 '작은 성경, 구약의 요약서' 라 하였습니다.
멜랑톤은 '세계에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 최고의 우아함을 갖춘 작품' 이라 하였습니다.
칼빈이 본 시편을 어떻게 평가하였는가는 그의 탁월한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의 주석 중 머리말 부분은 신자들의 주의를 끕니다.
4. 새 번역 칼빈 시편 주석 영역본은 시편 이외의 다른 성경에 대한 칼빈의 주석으로 위대한 명성을 획득하게 한 그 탁월성으로 빛납니다.
칼빈이 시편 주석 집필에서 최우선했던 큰 목적은 성령의 뜻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확인하려고 칼빈은 멜랑톤이 세웠던 원칙, 곧 '성경은 문법적인 이해가 우선되지 않고서는 신학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라는 말에 입각하였습니다.
칼빈 이전 시대는 신비적이고 우화적인 성경 해석 방법이 만연했던 시대였습니다.
이 방법에 따르면 주석가는 문자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숨겨져 있는 비유적 의미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그 의미가 해석자의 상상력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이러한 해석 방법을 거부합니다.
주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주의깊은 연구와 주께서 사용하신 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고 있는 취지와 의도에 보다 성실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서 문법적이고 문자적 의미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5. 이러한 해석원칙은 아무리 과대하게 추천되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주석자는 먼저 이 해석 원칙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소홀히 여기면 거룩한 성경 해석의 근본 원칙이 흔들립니다.
칼빈은 이 해석 원칙의 중요성에 아주 민감했습니다.
칼빈의 이 원칙에 입각하여 주석을 집필하였습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문자적 의미뿐만 아니라 예언적 복음적 및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시편은 일차로 다윗과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이지만 동시에 다윗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모형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신약의 교회를 내용으로 갖습니다.
사실 칼빈은 이 원칙에 입각하여 시편을 해석합니다.
칼빈에게는 두 가지 복음적 진리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칼빈은 적절한 기회마다 그것들을 끊임없이 가르치며 수고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율법의 행위공로 없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원을 얻은 자가 주의 은총을 입은 자로 살기 위한 성화가 필요 교리였습니다
6. 칼빈의 시편 주석의 또 다른 탁월성은 그 실천적인 성격에 있습니다.
칼빈은 마치 자신이 희랍이나 로마의 고전을 주석하는 것처럼 단순히 문법적 연구라는 무미건조하고 생명력 없는 세세한 묘사에 자신을 제한시키지 않았습니다.
칼빈의 모든 설명은 실제적인 답변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에 칼빈의 작품은 실제적 주해와 비판적이고 문헌적인 서술과의 조화입니다.
7. 여기서 우리는 다시 칼빈의 건전하고도 식견 있는 판단력을 발견합니다.
이 점에서 칼빈은 널리 칭송되었습니다.
칼빈의 판단력은 수많은 주석들 중에서 그가 선택한 것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칼빈의 선택은 분명히 참된 선택이었거나 가장 가능성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때때로 칼빈은 어떤 해석은 불충분하고 불만스럽다고 토로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느 해석이 양측 논쟁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경우 주의 깊게 검토를 한 다음 어떠한 해석보다 이 해석이 보다 좋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견해가 약간 우세하여 지지받는 경우에는 다른 해석에 대해 결정적인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한편 칼빈은 어떤 문장이나 표현에 관해서는 확고한 견해를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이한 해석들 간에서 결정을 보류합니다.
이 모든 예에서 칼빈이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풍부한 통찰력과 판단력입니다.
물론 칼빈도 어느 특별한 구절을 해석함에 실수를 범하는 일이 때때로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랫동안 봉인되어 온 책이며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여러 도움과 비교할 때 그가 받을 수 있었던 도움이란 극히 적었고 불완전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칼빈이 시편의 참된 의미를 밝힘에 멋지게 성공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참으로 그의 강직한 사고력, 활기있고 명철한 지성, 그리고 그의 비상한 판단력에 우리는 기꺼이 찬사를 보냅니다.
8. 이 주석이 최초로 출판된 이래 시편에 대한 수많은 비평물과 해석물들이 나온 것처럼 상당한 양의 번역도 나타났습니다.
광범위한 문헌적 연구, 히브리어 시의 병행귀에 대한 주목 그리고 시편의 내용과 유사한 동방의 관습과 행동 양식 및 현대 모험가와 자연 역사에 의한 발견으로 오늘날 우리가 획득하게 된 풍부한 정보에서 얻은 새로운 빛이 많은 구절에 조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주제에 관한 현대의 어떤 주석도 칼빈 주석에서 보는 판단의 예리함과 강의를 탁월하게 하는 성령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발견해 낸 점들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비록 칼빈 주석이 저술된 지도 거의 3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지만 시편을 비평적으로 연구하기를 원하는 오늘날의 학생들이 보다 중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편에 관한 단행본조차도 극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9. 칼빈의 저서에서 그의 판단력 못지않게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해석가로서 칼빈의 공평함과 완전성입니다.
칼빈의 가장 우선적이며 지배적인 목적은 성령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데 있었습니다.
칼빈은 어떤 전제된 견해나 이론을 확립하기 위하여 논쟁점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겸허한 학습자의 심정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에게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느 구절을 악용했거나 왜곡한 경우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칼빈은 다른 주석가들이 어떤 중요한 교리의 증거로 설명해 온 본문을 미련없이 포기합니다.
칼빈이 성경에 대한 억지 해석을 증오하지 않았거나 공정하고 논리적 해석 원칙에 집착하려는 엄격한 결단을 아니 했다면 칼빈도 동일한 견해를 가지게 됐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편 2편 7절의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구절을 어거스틴과 탁월한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원 출생에 관한 증거 구절로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이 구절들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칼빈은 비록 자기가 영원 출생의 교리를 주장하긴 하지만 이 구절이 그 교리를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라는 견해를 버리고 단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아들되심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라는 구절은 종종 그리스도의 일시적인 비하와 곧 뒤따르는 승귀의 예언으로 설명되어 왔는데 이 견해는 결코 업신여길 수 없기 때문에 지지 받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 구절이 주는 범위에서만 판단을 내리기에 이 구절을 오직 인간을 지칭하는 구절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구절을(히2:7)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께 적용시키고 있는데 비해 칼빈은 다만 조화의 방법으로 이 구절을 그리스도께 적용합니다.
또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33:6)는 말씀을 많은 신학자들은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여호와'는 아버지를 지칭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아들을, '여호와의 입기운'은 성령을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여호와의 말씀"이 '영원한 말씀' 곧 하나님의 독생자를 뜻한다고 인정하는 한편 그렇지만 '여호와의 입기운'이란 말씀의 경우 이 말이 성경에 평범하게 나타나 있다는 의미에서부터 칼빈은 이것이 찬양받기에 합당한 삼위일체의 제 삼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sermo(말씀하심)를 뜻한다고 논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삼위일체 교리나 성령의 신성에 관한 교리보다 기독교 체계에 있어서 더 본질적인 진리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톨룩(Tholuck)은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칼빈은 여러 증거자료를 불필요하게 희생시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칼빈이 원칙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인정을 받고 있다' 고 했습니다.
시33:6 칼빈의 시편 주석 편집자 서문(2)
칼빈의 시편 주석 편집자 서문은 칼빈과 시편 해설 이해에 유익합니다.
1. 칼빈의 시편 주석은 그의 학식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보여줍니다.
칼빈이 구약 성경해석에 중요한 히브리어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든 면에서 명백합니다.
그러나 교부 시몬(Father Simon)은 칼빈이야말로 히브리어에 무지했던 사람으로 알파벳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이는 시몬이 신랄한 논쟁을 벌인 탓으로 그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얕보고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칼빈이 살았던 시대에 비추어보아 히브리어에 대한 그의 지식이 정확하고 상세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그의 시편 주석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칼빈은 종종 원문에 대한 비평적 검토를 실시하며 문헌적인 진술을 통하여 히브리어에 대한 세밀한 지식을 드러냅니다.
칼빈은 그의 주석 안에서 현대 비판학이 보다 심오한 주석과 문헌학에 대한 보다 상세한 주목을 통하여 이룩한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종종 칼빈이 히브리어 원문을 전문적으로 비판하고 있지 않거나 혹은 비판적인 논조로 말하고 있지 않을 때 히브리어 학자들은 칼빈의 진술이 히브리어의 엄밀한 의미에 대한 밀접한 주의에 기초되고 있으며 그는 종종 힘찬 표현 적절한 표현 우아한 표현으로 히브리어의 정확한 의미를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주석에서 칼빈이 그 시대에 탐구되었던 지식의 전 영역을 편력했다는 사실이 명백합니다.
칼빈은 자신의 자료를 헬라와 로마의 고전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고대와 근대철학 체제로부터 그리고 세속사와 교회사로부터 끌어내고 있으며 조그마한 허식이나 현학적인 태도를 풍기지 않고 어떻게 그가 거룩한 진리의 예증을 위한 다양한 지식들을 쉽고 힘있게 채용할 수 있었던가를 보여줍니다.
2. 본서는 진정한 경건과 수많은 기독교적 체험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본서의 전체 어조는 경건의 심오한 작용을 느꼈던 한 영혼의 열매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 영혼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영혼이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과 행복을 추구한 영혼이며 매사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인지한 영혼이며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 영혼이며 하나님을 모든 복을 베푸시는 아버지요 벗으로 보았으며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와 복음에 전적으로 헌신한 영혼입니다.
또 본서는 어느 곳에서나 풍부한 신앙 체험을 쌓은 인간에 관해 말해 줍니다.
저자가 슬픔이나 그 비통함을 쏟아내고 있는 애달픈 시에 관해 주석을 하거나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섭리를 노래하고 있는 승리와 기쁨의 시에 관해 주석을 하거나 간에 경축되고 있는 것은 개인과 민족의 해방입니다.
칼빈이 다윗의 신앙 단련에 관해 언급하거나 그의 삶의 시련 혹은 내적 갈등에 관해 언급하건 간에 우리는 시편이 보이고 있는 많은 것을 체험했던 한 마음과 부딪칩니다.
칼빈이 시편 주석가로 탁월한 자격을 갖추게 한 것은 이러한 경험이었습니다.
칼빈이 자신이 쓴 시편 서문에서 생생하게 기술한 대로 종종 다윗의 형편과 유사한 형편에 처했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다윗의 사고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마치 눈으로 보았던 것처럼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다윗의 감정의 복잡함과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이 감정들을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감정들에 관한 기술을 정독하게 될 때 이것들을 다윗이 쓴 것이라고 착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3. 본서는 라틴어 원본에서 번역되었고 저자 자신이 썼던 프랑스어 판과 대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고 의심할 바 없이 자신의 눈앞에서 마지막으로 교정된 프랑스어 판은 1563년에 인쇄되었는데 그 표지에 기록되기를 '신중하게 개정되었으며 믿을만하게 라틴어 판과 비교되었기 때문에 새번역판으로 간주되어도 좋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자는 대본으로 라틴어 판을 선택하는 한편 저자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고 풍부하게 표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프랑스어 판과 대조를 신중하게 끝까지 완수하였습니다.
프랑스어 판은 라틴어 판 이후에 출판되었으며 칼빈의 모국어로 쓰여졌고 비록 그의 라틴어 작품들이 고전 어법의 순수한 면에서 찬양된다 할지라도 프랑스어 판은 확대된 수많은 사상과 표현을 포함함으로서 보다 압축되고 간결한 문체로 쓰여진 라틴어 판에 때때로 나오는 애매함을 제거해 주고 사어(死語; 라틴어) 보다는 훨씬 평이합니다.
때때로 라틴어 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완결된 문장이 프랑스어 판에서는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종종 있는 경우로 라틴어 판의 경우에는 있지 않는 것으로 하나의 소절을 한 문장의 처음, 중간, 혹은 마지막에다 프랑스어 판에 삽입함으로서 칼빈은 라틴어 판에서 모호했던 것들을 해설하고 있으며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 말을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해서 그 의미를 표현합니다.
역자는 이들 부가적인 소절들을 본문의 적절한 위치에 삽입시켰으며 이 경우 그 프랑스어 원문을 각 페이지의 하단에 주(註)로 첨가시켜 독자로 하여금 원문을 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번역자는 프랑스어 판이 라틴어판 보다 더욱 명료한 구절의 경우에서는 그 구절을 주(註)로 돌리지 않고 프랑스어 판에서 번역하였습니다.
프랑스어 판과 라틴어 판의 표현이 상이한 경우가 다소 눈에 띄는데, 이 경우 번역자는 라틴어 판의 표현은 원 문장에 실었고 프랑스어 판의 표현은 페이지의 난의 주(註)로 돌리는 방식으로 두 판의 표현을 모두 실었습니다.
4. 번역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역자가 입각해 온 원칙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너무 문자적 번역이 되는 것을 피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풀어지는 것을 피해 가며 가능한 한 원문에 맞는 대로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로 이 점이 역자가 독자들에게 저자의 스타일과 양식뿐만 아니라 의미까지도 성실하게 드러내 주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방법으로 여깁니다.
5. 성경 본문에 대한 칼빈의 사역이 영어 성경보다 우선하여 택해졌는데 이것은 그의 설명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번역은 서로가 거의 흡사합니다.
종종 영역본은 정확히 칼빈의 사역 그대로이고 때때로 영어 성경에 있는 난외 주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양자를 자주 구분합니다.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그가 구분을 하는 몇 경우에 칼빈의 번역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나타나며 원어의 감흥을 보다 명백하게 밝혀주며 영역본보다 더 큰 효과를 갖습니다.
역자가 인용하는 성경은 칼빈의 성경 사역이 취해져야 할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어 성경에서 인용하였습니다.
6. 본 주석서는 처음 출판된 수년 후에 아더 고울딩(Arthur Golding)이 영어로 번역했는데 그의 번역은 1571년에 런던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귀족 가정의 출신이요 런던 토박이인 아더 고울딩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치있는 고전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던 엘리자벳 여왕 시대에 로마 고전에 대한 가장 위대한 번역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고울딩은 저스틴의 "역사" (Justin's History), 시이저의 주석들(C sa's Commentaries), 오비드의 "변태론"(Orid's Metamorphoses), 세네카의 "행복론"(Seneca's Benefits) 및 기타 저서들을 번역한 바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의 수많은 저작 중 시편 주석 이외에도 다양한 근대 프랑스어 및 라틴어로 된 여러 저술 중 시편 주석 이외에도 다양한 근대 프랑스어 및 라틴어로 된 여러 저술들을 번역하였습니다.
그의 단 하나의 저술은 <1580년 4월 6일에 영국과 타기독교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에 관한 논의>였는데 이것은 16절지로 출판되었습니다.
와튼(Warton)은 '고올딩이 번역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고울딩은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학자이며 칼빈의 어체에도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번역이 거의 삼백 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의 번역본에는 이미 낡고 쓰이지 않는 단어와 어귀가 페이지마다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시대 이후로 영어가 커다란 변천을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와 같이 매우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점에서 그의 번역은 오늘날의 영어 독자들에게 칼빈의 작품을 올바르게 보이지 못할 뿐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이 작품에 높은 공로를 돌리지 못하게 하고 그 가치에 못 미치는 평가를 하게 만들고 맙니다.
거기다가 고올딩은 칼빈이 의미하고자 했던 것을 보다 성실하게 표현함에 있어서 번역자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프랑스어 판을 전혀 참고하지 않은 듯합니다.
7. 이 번역판에 실려 있는 각주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간단히 언급된 관계로 매우 모호했던 칼빈의 문헌적인 언급과 비평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이해하게 해 줍니다.
또한 그 각주들은 가장 탁월한 성경 비평가들이 그의 해석을 얼마나 자주 채택하고 지적하고 있나를 보여줌으로서 주석가로서 칼빈의 공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정확한 의미를 밝혀주거나 혹은 자연사의 어느 부분을 설명하거나 유사성을 갖고 있는 동방의 관습과 행동양식을 설명함으로서 이 성문서를 예증하고 있습니다
고대 성경 역본들은 난해한 구절을 설명함에 있어서 중요한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들의 특별한 본문에 대한 번역이 난해한 구절들을 해명하는데 공헌하거나 칼빈의 입장에 빛을 던져줄 경우에 종종 받아들여졌습니다.
칼빈이 참고한 것으로 나타나는 고대 성경 역본에는 칠십인역, 벌게이트 역본, 제롬의 역본들입니다. 칼빈이 가장 자주 참고한 것은 칠십인 역이었습니다.
8.칼빈협회가 이룩한 본 번역사업이 전 기독교 공동체를 염두에 둔만큼 기독교 공동체의 다양한 교파에 따라 견해가 다양한 신학적 문제 등을 취급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습니다.
주(註)들을 작성함에 있어서 편집자는 종종 칼빈의 성경사역을 히브리어 원문, 벌게이트 역본, 제롬의 역본 등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또한 편집자는 단권 저술을 하였거나 다른 성경과 동동으로 했건 간에 본 시편에 관해 저술한 몇몇 가장 탁월한 성경학자들의 수많은 비평작품들도 참조하였습니다.
편집자는 이 풍부한 박학의 보고를 자유로이 활용하였습니다.
이 작업을 진행시키면서 신중하게 편집자의 권위를 행사하였습니다.
이 권위는 칼빈의 진술을 더욱 무게 있게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용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은 탁월한 학식과 판단력 그리고 경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요 히브리어에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거룩한 책의 의미를 밝혀내기 위하여 수십 년 간 진지한 연구에 자신을 헌신해온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가장 난해한 구절의 경우에 있어서조차도 칼빈이 연구한 결과가 근대 비평가들이 엄밀한 해석학적 원칙에 따라 수행하여 도달한 결과와 얼마나 밀접하게 근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편집자의 주의를 끈 점으로 칼빈의 비평과 해석을 오늘날의 학자들의 연구와 비교하면 할수록 편집자는 이 위대한 주석가의 독창력, 통찰력, 학식 그리고 날카로운 비평안에 더욱더 높은 경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칼빈이 어디에서 자료들을 끌어내었는가는 잊혀졌지만 진정으로 주석과 비평서에서 발견되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해석들의 대다수는 칼빈이 써낸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언급될 수 있는 것들은 중요한 사실들입니다.
즉 편집자가 성문서의 문헌적 연구와 어떤 주제에 관한 비평서를 조사해 본 결과 칼빈이 성경 해석을 함에 있어서 히브리 원어의 의미에 얼마나 자주 집착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과 이 검토를 통해 또한 편집자는 번역함에 있어서 때때로 고울딩이 범했던 오류를 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정확하게 저자의 의도를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고울딩은 성경 구절에 관한 문헌학에 익숙하지 못했거나 칼빈이 간단히 진술하며 언급함으로 독자가 다른 비평서에서 보다 충분히 언급된 내용을 발견하지 않는 한 명백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한 비평에 익숙하지 못했기에 오류를 범한 것이 분명합니다.
9. 편집자는 본서 후반부를 준비할 때 자료를 도와 준 두 친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1) 그들은 알렉산더 던칸(Alexander Duncan)목사와 제임스 맥린(James M 'Lean)목사입니다.
그들이 시편을 훌륭히 번역해 주어서 편집자는 수정과 해설 외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편집자와 본 협회는 에딘버그 대학의 신학부 교수 토마스 맥크리(Thomas M 'Crie)목사에게 또한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교수는 자신의 경험만으로가 아니라 인쇄과정 중 이 책의 장을 검토하는 수고와 기타 많은 중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해주었습니다.
편집자는 그의 공헌을 이와 같이 공적(公的)으로 인정함에 커다란 만족감을 가집니다.
(2) 우리가 사용해 온 프랑스어 판의 표지의 복사와 아더 고울딩의 속 표지복사가 그의 헌사와 함께 본 권의 앞에 인쇄되어 있습니다(한글 번역판은 이 고울딩 영역본은 생략함-편집자 주).
(3) 하나 더 부언하고자 하는 것은 마지막 권에는 주석과 주에 실려 있는 주요 사항에 대한 색인, 그리고 약간의 성경본문 인용색인, 또한 언급되고 해설된 히브리어에 대한 풍부한 색인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한글 번역판은 각 권마다 색인을 포함시켰음 편집자 주).
1845 년 6 월
에딘버그에서 제임스 앤더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