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삶의 무의미함을 노래하는 전도서는 가장 난해한 책중에 하나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본서의 정경성을 의심했으며, 해석에 있어서 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본서를 단순한 비관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없는 인간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서는 성도에게 큰 은혜를 줄 것입니다.
1. 죄악의 결과
1) 만물의 허무
전도자는 헛되다는 말을 되풀이하여 말하면서 삶의 허무를 노래하며, 심지어 세상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전도자의 노래는 언뜻 생각하기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헛되게 되어 버렸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분리된 삶과 죄악된 만물은 전혀 의미 없고 공허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a. 죄의 보편성(시53:3)
b. 죄의 파괴성(시34:21)
2) 능력의 허무
전도자가 말하는 '해 아래서'는 하나님에게서 떠난 세상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일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은 수고의 땀을 흘릴지라도 땅이 가시와 엉겅퀴만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은 살인죄를 벌함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땅이 그 소산을 주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 속에서 수로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등진 인간은 지혜로울 수 없으며 유능할 수도 없습니다.
a. 수고의 헛됨(창3:18)
b. 노동의 무익함(창4:12)
3) 생명의 허무
인간은 자신을 일컬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모든 만물을 지배하며 그 이름을 영원히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애굽의 왕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진시왕은 영광을 영원히 누리고자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은 인간의 유한함을 보여 줄 뿐이었고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인간이 불순종할 때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a. 인간의 유한성(창3:19)
b. 죄의 삯(롬6:23)
2. 비유된 허무
1) 영원하지 못한 만물
전도자는 삶의 허무를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자연에 빗대어 허무를 노래합니다. 먼저 자연계의 계속되는 순환 과정을 통해서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삶의 허무를 지적합니다. 해와 바람은 위세가 대단한 것들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해의 찬란한 빛과 거센 광풍을 보고 인간은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러한 해와 바람의 위세는 일련의 순환되는 과정의 단면일 뿐이고 후에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성도는 깨달아야 합니다.
a. 피조물의 허무(롬8:20)
b. 자연의 순환(시19:6)
2) 채울 수 없는 욕망
삶이 허무한 이유는 채울 길이 없는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눈과 귀에 비유하여 전도자는 허무를 노래합니다. 전도자는 왕으로서 절대 권력을 가져 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모두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눈과 귀에 대한 욕망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은 삶을 불만족스럽게 하며 이러한 불만족은 인간을 더욱 괴롭힐 뿐입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족함을 얻어야 하며,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행복 할 수 있습니다.
a. 만족함 없는 욕망(잠27:20)
b. 눈으로 쏘는 신앙(욥42:5)
3) 썩어질 피조물
전도자는 인간의 무능력과 유한함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력에 빗대어 말합니다. 아무리 한 개인이 뛰어나서 뽐낸다고 할지라도 그의 업적은 결코 새로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와 같은 과학의 이기를 새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도자가 말하는 것은 삶과 우주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생활 방식이나 사물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즉 인간이 아무리 과학을 개발하여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지라도 결국 썩어질 피조물이며, 그 죄악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a. 탄식하는 피조물(롬8:22)
b. 허무한 데 굴복하는 피조물(롬8:20)
3. 헛된 영광
1) 헛된 지혜
솔로몬은 자신이 누린 영광을 생각하며 삶의 허무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으로 부임하자마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왕도 가져 보지 못한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을 잘 가르치고 다스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솔로몬의 결심도 죄악 앞에서 한낱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지혜로웠던 왕이었지만 죄악을 범하여 우상을 숭배함으로 그의 영광이 헛된 것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지혜라고 할지라도 지혜 그 자체만으로 인간이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교만한 지혜(사5:21)
2) 헛된 지식
부모도 자식에게 돈이나 명예를 유산으로 남겨 주기보다는 지식을 주고자 원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이든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열은 높습니다. 물론 지식이 돈이나 명예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으로 지식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얻은 지식을 후대에 남기려고 애써 왔으며, 그로 인하여 많은 책들이 지금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인간이 모두 읽거나 이해하기는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얻고자 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욱 피곤해질 뿐입니다.
a. 무지한 인간(욥42:3)
b. 지식의 유혹(사47:10)
3) 헛된 노력
노력은 그 사람의 성실성을 보여주며 인간성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헛된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한 노력은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a. 노력의 헛됨(잠16:26)
b. 은혜로 주신 노력(요4:38)
결론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고 이로 인하여 삶은 허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인간의 최종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가변적일 때 인간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의미와 참 행복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