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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WMO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 7년은 기상관측 통계이후 가장 더웠던 7년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제 작년에는 라니냐 현상으로 온도가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효과는 있었지만 전반적 기온 상승 추세를 되돌리지는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2020년의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11℃ 높았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기록된 2020년 주요 기후변화 지표를 보여주는 4가지 통계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매년 기후환경변화가 악화일로라고 합니다. 온실가스 농도가 2020년 최고치를 기록하였고 지구의 연평균기온이 매년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해수 온도가 통계조사 이후 최고치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대기 온실가스의 해양흡수로 인한 해양산성화가 심각하고 이 때문에 해수면이 증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대기온도와 해양온도 상승은 극지방 빙하와 고산지대 만년설을 녹게 만들면서 해수면 상승이 이전의 속도보다 두 배 이상 빨라졌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는 이례적 폭염이 찾아온 곳이 많고 곳곳에 대형 홍수와 극심한 가뭄등의 지역적 편차가 크고 이상기후로 인한 더 강력해진 열대성 폭풍으로 지역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도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는 식량 재배가 불안정과 그로 인한 식량안보문제, 이재민급증의 문제도 발생시킨다고 합니다. 매년 통계를 내면서 밝혀지는 것은 지구의 기후상태가 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지구 전체 인류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면서 최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붕괴 문제 해결에 실패한 인류에 관한 암담한 내용”이라고 꼬집으며 화석연료의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월 6일 유럽의회에서 녹색분류체계 택소노미(Taxonomy)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발전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는 방안을 가결했습니다. EU 택소노미는 어떤 경제활동을 하거나 환경기준을 충족하면 환경· 기후친화적인 녹색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를 담은 분류체계입니다. EU국가들이 기후·환경 목표에 맞는 투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과 조건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기업과 투자자, 정책 입안자가 투자 활동에 참고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는 규칙입니다. EU는 이 분류체계를 공공자금 지원에도 적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원자력은 탄소배출을 하지 않지만, 방사성 쓰레기를 양산하고, 가스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원료이지만 EU국가들은 이를 더 위험한 석탄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도기적 이행 원료로 보면서 논란 끝에 택소노미에 포함시켰습니다. 경제가 먼저냐 기후환경이 먼저냐 이것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당장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금 기후상태가 나빠지더라도 화석연료를 사용해야겠고 미래의 후손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국가경제력이 떨어지더라도 화석연료를 금지해야겠고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지금 지구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지구의 자연환경을 돌이키자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원래의 자연환경으로 돌리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고민해봐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세계여러 나라들이 자연환경과 기후의 문제를 원상복귀키시려는 세상적인 노력을 하지만 정말 지구를 다시 원상복귀시킬 수 있는 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지구의 회복은 불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은 이미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마지막 날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도 종말과 심판, 천국과 지옥이라는 내세의 삶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잠시 자연환경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구의 원상태회복이라는 목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세상의 종말의 때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에 동참하며 우리가 천국가게 될지 기대하며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주의깊게 살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첫째로, 신앙을 흔들어놓는 악한 영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13장 5,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오늘 본문에서 “주의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는 βλέπω(블레포)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섯 번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βλέπω(블레포) 주의하라는 단어는 ‘무심코 관찰하거나 살펴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분별하여 행동해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번 살펴보았던 오늘 본문 앞부분에서 제자들이 성전에 대해 눈이 휘둥그래지며 웅장함에 감동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몰락,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부분에선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그럼 성전이 언제 무너질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외에 다른 어떤 이야기도 복음이 아니기에 그런 주장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 마지막 때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기에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않고 그 일이 일어날 징조를 주의깊게 살펴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세상은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대적 마귀, 사탄마귀는 우리를 삼키기 위해 돌아다닙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렇기에 근신하며 깨어있을 것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마가복음 13장에서 ‘주의하라’ βλέπω(블레포)라는 단어를 쓰시며 세상가운데 조심히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내용일 것입니다. 마가복음 13장에서 ‘주의하라’ βλέπω(블레포)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자들에게 성전의 건물을 보느냐’라고 책망하실 때 ‘보느냐’라는 단어에 βλέπω(블레포)가 사용하셨습니다. 또 다른 네 번은 말세의 징조와 관련해서 ‘보다, 주의하다, 조심하다’ 등등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헬라어 원어 βλέπω(블레포)가 사용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살펴보기를 원하십니다.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 않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계속 일하도록, 그리고 끔찍한 환란이 있겠지만 매우 짧을 것임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종말의 말씀을 공부하며 이 시대를 살펴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공포심을 조장하고 그것을 악용하여 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며 믿고 따르는 대상은 예수님 뿐입니다. 우리는 경험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것을 주의하여 비교해보며 사건과 사고가 아닌 예수님께 집중하십시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부르신 분께 집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2서 1장 7절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진리가 아닌 세상의 사람들이 만든 계명과 전통적으로 해왔다며 행해지는 말씀에서 벗어난 어떤 신앙가르침등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이 됩니다. 또한 인간지식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활, 천국과 지옥, 영의 세계 같은 것은 다 버리고 현실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는 것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세와 영혼을 부정하며 현세적인 종교를 만드는 것도 사람들을 미혹하는 짓입니다. 기독교를 단지 이 세상의 인간윤리, 도덕, 선한 삶으로 국한하는 것 또한 미혹된 신앙가치관이 될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 세상에서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도구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타락시킬 때 이것은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과 무관한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거짓의 영에 속아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무너뜨리는 자들은 예수님 때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마지막 때가 되면 극에 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이런 미혹에 넘어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잘 판가름하기 힘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께 매인 사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미혹에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는 자는 이런 상황속에서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주의깊게 살피며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노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동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6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말세의 상황에 대해 민감하십니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이 지금 조금씩 보여지고 있음을 느끼며 조심해서 신앙생활하며 조심해서 사회생활하고 있으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양의 탈을 쓰고 우리를 미혹하는 많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미혹하는 주장들이 우리의 귀에 들려올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바른 신앙적 가르침을 깨닫게 하셔서 늘 분별하며 바른 길로만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잘 분별하는 영으로 여러분이 붙들려있기를 기대합니다. 항상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서 흔들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둘째로, 전쟁으로 인해 혼란한 상태가 생깁니다.
마가복음 13장 7,8절입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면 이 곳 저 곳에 난리의 소문이 들려오고 갈등과 분쟁에 대한 소식이 늘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전쟁의 표현을 기록하고 있지만 어쩌면 다 그 상황으로 인해 내 내면에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이라며 전쟁의 양상을 두 번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림의 징조로 우리는 전쟁을 생각합니다. 제 3차 대전이 일어나면 세상의 끝이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로도 얼마나 많은 전쟁들이 있었습니까?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몽골의 징기스칸이 일으킨 전쟁으로 4천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4천만 명이면 거의 전세계 인구의 10%는 될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이라는 지구 전체를 흔들어놓은 대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또 이제 이제 주님의 재림 때가 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전쟁이 또 일어나는 것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말하면서, 지진과 기근과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들린다고 하셨습니다. 전쟁만이 아니라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이 있을 것입니다. 지진의 소식을 접할 때에 있습니다. 기근이 처처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걱정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것입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전쟁과 재난은 타락한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재앙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재앙입니다. 그래서 반복하여 일어나는 사건으로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3장 7절 하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전쟁의 소문을 듣고 지진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으로 인하여 죽어가는 소식들을 우리는 들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 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짓 예수가 오고 각종 재앙들이 우리를 미혹하고 두려움을 줄지라도 끝은 아니고 계속하여 재앙들은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의 미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기근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지진은 더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염병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 땅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소식, 각종 무력적인 갈등에 대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곧 종말의 날짜가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말은 노아와 롯의 때처럼 정확한 시기보다 그 상황을 통해 대비하고 준비되어 진 때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되어진 사람은 두려움이 없고 준비되어지지 않은 사람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으면 오지 않고 알고 있지 못할 때 온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정황은 있는데 우리가 일부러 대비하고 일부터 종말에 구원받는 백성인 척 살아가는 그 상황에서는 오지 않고 정말 진실하게 신앙생활하며 정말 진실하게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 오시고 종말의 때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은 복음의 사명이 완수되어질 때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음이 들어가고 신앙에 대한 내용이 알려지고 최소한의 복음전파를 위한 교회가 세워지게 될 때를 의미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에서 세상 끝에 대한 징조를 말씀하시는 것은 이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할 것을 말씀하시며 예고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지막이 임하기 전에 빨리 해결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면하고 영생을 얻으며 하늘의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소홀해진 사명과 직분에 더욱 충실해서 예비된 면류관과 상급을 잃지 않도록 자투리 시간도 아끼고 선용하여 열매를 맺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조가 있자마자 심판이 떨어지지 않고 징조가 있는 시기와 기간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고도 없이 그냥 끝을 내시고 심판해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내하고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이런 고통의 시간, 전쟁과 기근과 홍수, 전염병등의 어려움이 생길 때에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신앙을 다시 세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5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을 대비하지 않고 신앙을 멸시했던 땅에 대해 저주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 오실 날에 전쟁과 기근, 홍수등 재앙이 임하면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를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세상의 마지막 날 큰 재앙이 임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함을 입고 두려움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소문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신앙으로 살아가며 세상의 상황에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셋째로, 핍박과 박해당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마가복음 13장 9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주님이 오실 마지막 날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종말에 임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닥쳐올 극심한 핍박과 박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잡아서 이스라엘백성들의 공회에 넘기고 매를 맞고 고문당하고 세상의 권력자들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 구원에 대한 자신의 변호를 해야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배신을 당하고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2절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따르는 것이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핍박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어야 예수님의 임재와 이 땅에서의 사역과 결국에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알려지게 될 것을 오늘 본문 마가복음 13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금 읽은 마가복음 13장 9절의 끝부분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핍박과 고난을 통해 복음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압송되어져서 그 곳에서 재판을 받을 때에 로마에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대단한 궁금증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로마시민권자이기에 수년에 걸친 재판기간동안 사도바울을 만나러 남몰래 신앙을 지켜오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고 과연 바울이 믿는 기독교라는 것이 뭔지 궁금해서 찾아온 로마시민들이 있었기에 복음이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을 통해 더 빨리 복음이 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하는 이 치욕, 제자들이 경험한 핍박과 박해를 통해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뜻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할 때 그렇게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파했던 제자들,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이런 제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에서는 그 모든 과정도 하나님께서 다 행하셨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3장 11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결국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 우리가 굳건히 그 어려움을 담대히 견디게 할 능력은 바로 성령으로 인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에 매여서 살아가는 신앙인은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과 핍박을 당할 때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가 당하는 핍박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오늘 당하는 고난과 이 고통, 핍박과 박해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우리의 인생에 무의미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속에는 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뜻이 있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이런 상황속에서는 내가 이겨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끌어다가 사람들 앞에 세울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실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핍박은 앞으로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제자들, 사도들이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죽임을 당했고 구약시대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복음은 더 강력하게 보존되었고 더 강력하게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으며 언어와 문화구분으로 나눠진 전 세계 2만여 부족 거의 모든 부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결국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령님께서 우리가 시련속에서 이길 힘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때마다 해야할 말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담대하게 외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셔서 우리가 천국복음의 길을 걷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마지막 때 정세가 혼란하고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있는 이 때 특히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든 영적 핍박의 이 시대에 정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부터 우리는 말세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종말을 말씀하신 이후로 이 세상은 계속 노아의 때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이 타락의 세상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준비한 구원의 방주, 구원의 도피처를 선포해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방주, 우리의 구원의 도피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천국복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천국복음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 천국복음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에게 임해야할 귀한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 붙들려 살아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사람만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3절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싸워 이기며 정말 믿음을 지켜나기 위해 이 세상에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깨달은 구원의 역사를 지키며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그 날까지 담대하기 살아가기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개인적인 훈련을 쌓으려고 하는 율법주의, 성화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를 맡기고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며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그것이 어떤 힘겨움이 아닌 경건과 거룩이 삶에 묻어서 나오도록 만드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내가 경건해지거나 거룩해지거나 구원에 합당한 인간으로 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의 공로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인 부패, 전적인 타락, 전적인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를 소망하며 승리하신 하나님, 승리하신 주님, 승리하신 성령님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