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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13일(목요일).
백악산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산행코스 : 옥양폭포주차장-물안이골-수안재-부처바위-대왕봉-덕봉-백악산-옥양폭포주차장.
▣산행시작 : 옥양폭포주차장 07시 36분.
▣산행종료 : 옥양폭포주차장 14시 00분.
▣전체거리 : 약 14km.
▣전체시간 : 06시간 23분.
▣운동시간 : 05시간 27분.
▣휴식시간 : 00시간 56분.
▣누구하고 : 둘리님. K님. 요산(필자).
07 : 36 옥양폭포주차장.
07 : 51 입석분교.
08 : 57 수안재.
09 : 23 부처바위.
10 : 00 807봉.
10 : 05 대왕봉.
10 : 39 덕봉.
11 : 13 백악산.
13 : 51 옥양폭포.
14 : 00 옥양폭포주차장.
▲ 07시 36분 : 옥양폭포주차장..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1리.. 날머리인 옥량폭포 입구를 확인하고.
▲ 32번 지방도를 따라서 화북초교 입석분교쪽으로..
▲ 입석교를 건너자 말자 좌측의 입석분교를 보며 물안이골 입구로 진입..
▲ 어모사(籞侮祠) 가선문(嘉善門)..
김령 김씨 이암공파 사당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조선 시대.. 정3품 당하관의 무관 품계다.
▲ 입석분교에서 1.8km의 물안이골 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이어지는데.. 그렇게도 서슬퍼렇게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태풍영향으로 한풀 꺾이면서 열대야도 물러가고 낮은구름이 드리워 땡볕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 물안이골 도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 나타나는 본격적인 백악산 산행 들머리다.
▲ 주인을 잃은 움막같은 폐가인데.. 땔나무 창고에는 다 태우지 못한 땔감이 남아 있고.. 연기를 멈춘 굴뚝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길고 긴 물안이골이다.. 폐가에서부터 수안재 아래까지 몇차례의 개울을 건너고 나서야..
▲ 수안재 오름길이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산사태로 쓸려나간 사면길을 조심스레 지나가는데..
▲ 잘생긴 영지가 홀로 서있다.
▲ 08시 57분 : 수안재..
입석분교에서부터 바람끼 1도 없는 물안이골을 따라 1시간 가량을 힘들여 수안재에 올라서니 충청북도 괴산군의 대방골에서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 아니게 시원하다. 완전 에어컨 바람 수준이다.
▲ 09시 23분 : 부처바위.. 라는데..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부처님스럽지가 않다..
▲ 부처바위에서 서북쪽으로 바라본 낙영산군.. 그너머에는 도명산인데 무영봉에 가리웠다. 암골미가 뛰어난 낙영산은 충북 괴산의 명산으로 명나라 의종 황제가 세수를 하는데.. 대얏물 속에 이 산의 그림자가 비치었다하여 낙영산이라 불리웠다는 산이다.
▲ 낙영산에서 이어지는 가령산 뒤편으로는 사랑산에서 칠보산까지 병풍처럼 도열해 있다.
▲ 내려다 보이는 부처바위..
▲ 당겨 보아도 부처님의 모습은 안보인다.
▲ 침니바위 갈림길..
▲ 침니바위에 자라는 소나무.. 경이롭다.
▲ 침니(Chimney)란..암벽에 난 굴뚝 모양의 세로로 갈라진 큰 균열로 바위와 바위사이로 사람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있는 것을 말한다.
▲ 10시 00분 : 807m봉... 여기에서 약 5분 거리의..
▲ 대왕봉에 다녀오기로 한다.
▲ 10시 05분 : 대왕봉.
▲ 대왕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 가야할 백악산 방향.. 지난번에 다녀온 도장산이 반갑다며 눈도장을 찍는다..
▲ 대왕봉 돌탑 오석비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대한민국의 번영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대왕봉에 오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전국의 돌을 모아 위 소망을 기원하는 이 탑을 쌓았습니다. 산 사랑을 위한 실천 부탁드립니다. 2010년 7월 3일. DS25 산악회(덕성초교 25회).
▲ 덕봉 오름길에 뒤돌아본 물안이골.. 위에서 보아도 길고 멀다.
▲ 위쪽에 덕봉으로 가는 밧줄이 걸려 있다.
▲ 덕봉 가는길이 쉽지는 않다.. 밧줄을 잡고 왼쪽으로 몸을 옮겨서 올라가면 쉽게 오를수 있다.
▲ 10시 39분 : 덕봉.
▲ 덕봉은..
돔형바위라고도 하는데.. 국토지리 정보원 지도에는 주추리봉(822m)으로 나온다.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
▲ 사통팔달.. 덕봉의 풍경 맛집 메뉴는 사방으로 막힘이 없다. 만경창파에 한 점 돌섬바위를 향해 첩첩이 몰려드는 파도처럼 끝도 없는 산야가 겹겹이 둘렀고 곳곳에 우뚝우뚝한 대야산.. 군자산.. 속리의 문장대와 저마다의 봉우리속에 감춰진 기암괴석들은.. 언제 쌓아 올려놓고 천 번을 쓰다듬고 만번을 씻어 어루만지며 기다린 세월이 얼마인지 만상을 연상케 한다.
▲ 가야할 백악산..
▲ 밧줄이 없다면 상당히 어려운 구간이다.
▲ 내려와서 본 모습.. 마치.. 거대한 맘모스의 귀밑으로 지나 오는것 같다.
▲ 뒤 돌아본 덕봉.
백악산 오름길의 전망좋은곳에서 뒤 돌아본 덕봉과 언제 말라 죽었는지 하얀 뼈만 남은 앙상한 고사목도 함께.. 한참을 그렇게 바라 본다.
▲ 11시 13분 : 백악산(857m).
▲ 백악산(857m)은..
속리산 문장대에서 북쪽 화양동 계곡 방면으로 이어진 긴 능선 위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경북 상주와 충북 괴산의 도계를 이루고 있어며.. 규모는 작지만 화강암으로 된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웅장미를 보여주며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백악산은 백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 신선대라 이름지어도 좋을만한 바위다.
▲ 멀리 희양산이 보여서 당겨본다.
▲ 사진으로는 감이 오지 않지만.. 상당히 까탈스런 백악산 내림길이다.
▲ 안부에서 헬기장이 있는 832m봉 오름길이 오늘의 오름구간중에 가장 힘들었던 오름길이다.
▲ 뒤 돌아 본 백악산.. 덕봉 능선..
▲ 12시 06분 : 헬기장이 있는 832m봉.
▲ 오늘 하산길 중에 가장 까탈스런 마사토 내림길이다.
▲ 12시 43분 : 솥뚜껑바위.
안내문을 보니 예전에 "강아지 바위"로 불리웠었는데.. 솥뚜껑바위라는 이름은 국립공원 페이스북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름이라고 되어있다.
▲ 솥뚜껑바위를 지나서 부터는 편안한 능선길을 이어 가다가..
▲ 여기서 능선길을 버리고 옥양골로 내려 간다.
▲ 보굴암(寶窟岩)과 약사여래불. 계단 끝부분에 석굴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보굴암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한 흥미진진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1873년 고종때 서유영(徐有英)이 지은 야담집(野談集)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전해지는 얘기다. 의령 현감을 지낸 서유영은 암행어사의 무고로 유배됐다가 풀려나 고향인 충남 금산에 돌아와서 이 책을 썼다. 말년의 외로움을 달래고 소일을 위해 일생 동안 보고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역사와 설화를 버무려 쓴 이야기들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세조에게는 공주 하나가 있었다. 어질고 덕이 많아서 단종이 물러나고 김종서와 육신(六臣)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이 파헤쳐져 옮겨지는 일이 발생하자 공주는 울면서 옳지 못한 처사라고 끊임없이 아버지 세조에게 말했다. 세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분노했다. 이에 정희대비가 유모를 불러 보석을 주면서 공주를 데리고 도망가도록 했다. 충북 보은에 도착한 공주와 유모는 한 청년을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1년 정도 사는 동안 청년과 공주는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혼인을 하면서 서로의 신분을 밝히게 된다.
▲ 보굴암(寶窟岩)과 약사여래불.
공주는 세조의 딸이고.. 청년은 김종서의 손자였다. 세조는 말년에 사찰을 다니며 참회했는데... 하루는 공주가 사는 마을을 지나다 자신을 몹시 닮은 아이를 만났다고 한다. 그 아이를 따라가 공주를 만난 임금이 크게 기뻐하면서 가마를 보낼 테니 서울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승지를 보냈지만 공주는 이미 가족과 함께 도망치고 없었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는 자신의 딸이 숨어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족보에서 이름을 지웠다고 한다. 더 이상 천륜을 저버리지 않고 딸의 행복을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숨어 살던 굴은 결국 원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굴이라 하여 '보배로운 굴'인 '보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조가 죽은 뒤 그들은 보굴암을 떠났다.
세조가 죽은 지 400여 년이 지난 뒤에 딱 한 편 설화집에 나온 이야기를 사실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 꾸며낸 이야기라는 확증도 없다. 세조에게 딸 둘이 있었는데.. 둘째 딸 의숙공주만 기록으로 남아 있고.. 큰딸의 행적은 묘연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보굴암은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처로 이름이 났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는 김만성 스님이 보굴암 아래 초암(草庵)을 짓고 암울하고 흉흉하던 시절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도처로 삼았다. 초암은 1970년경에 미등록 사찰이라 하여 철거 되었다.
▲ 보굴암 약사여래불과 마주보는 약사전..
▲ 보굴암 아래 석벽에 새겨진 석문동.. 석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 석문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중요무형문화재 74호인 성재(誠齋) 신응수(申鷹秀) 대목장이 지었다고 한다. 그는 숭례문 해체와 보수작업을 했고 광화문 복원을 총지휘한 장인이다. 석문사는 극락세계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모신 기도 도량으로 1990년 이굉용(李宏龍)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어느날 스님의 꿈에 가사를 곱게 입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은 부처님과 함께 황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길을 달리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다가 비탈길을 내려가 어느 들판에 섰다. 부처님이 손수 땅을 파헤치자 땅속에서 청룡과 황룡이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때 부처님이 손가락으로 흰 바위로 뒤덮인 산을 가리켰는데 그곳에 거북 모양의 큰 바위산이 보였다. 바위산으로 향하자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서 길이 열렸다.
부처님이 어느 바위 굴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팔베개를 한 채 모로 누우니 총과 칼로 무장한 수많은 군인들이 나타나 부처님을 호위했다. 굴 아래에는 작은 초가 한 채가 있었는데 노인 내외가 키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쌀을 손질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눈처럼 흰쌀을 수레에 싣고 굴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스님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후 스님은 꿈에서 본 들판과 바위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입석리 들판이었고.. 바위투성이 백악산과 보굴암이었다.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스님은 이곳에 절을 짓고 석문사라 했다. 석문(釋門)은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아가는 문'이란 뜻이다...
▲ 석문사 감로수.. 바위를 타고 내려온 계곡수라.. 물맛이 괜찮다.
▲ 옥량폭포 음각 글씨.
옥양 폭포는 상부, 중부, 하부로 나뉘며 그 상부에는 천작 돌다리라는 3m길이의 거대한 돌이 "ㄱ"자 모양으로 누워 있어서 마치.. 돌을 뚫고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신비로운 경관을 이룬다.
▲ 옥량폭포.
옥양골의 석문사 깊은 계곡에서 구름다리 사이로 흘러내린다. 위에 천연적으로 된 옥량(玉樑)이 있어서 아름답다. 옥량은 길이 약 20m, 넓이 2m 입석이 대들보와 같이, 또는 교량과 같이 폭포 위에 걸쳐져 있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 밑에서 올려다 본 옥양폭포.. 수량이 많다면 장관일텐데..
▲ 책바위.
▲ 13시 59분 : 입석리 옥양폭포 주차장.
▲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는 백악산은 백개의 암봉이 솟아 있다고 해서 '백악'이라고 했다던가.. 악소리 나게.. 결코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자연이 빚어놓은 기암과 괴석의 전시관이었고.. 막힘없는 조망에.. 그 힘듦이 용서가 되고.. 뒷맛이 개운한 하루였다.
그리고.. K님의 운전 보시로.. 대구로 무사귀환..
첫댓글 감솨하고
수고했습니다.
왕사남의
엄홍도도 단종의
시신을 안착 시키고
3명의 아들들을
다 각자 흩어지게~
김종서의 손자도
목숨이 위태로워
이곳으로 왔고.
세조의 딸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김종서
자손을 만나러 왔다고 하는 설화도~
바위위에는
혹시나 모를 사람들이
올까 봐 바윗쪽으로
세조를 만나고 그리고 둘이는 조용히 사라졌다는
설화가~~
암릉과 침니구간을
안전한 산행과
요소요소의 자리에
구연설명을 짱👍
역사에 박식한 아우님의 댓글에 힘이 나네~ㅎㅎ
멋진 작품 사진 감사합니다. 잘 감상하고 나 갑니다. 멋진 밤 되세요.
멀고 지루했지만 그래도 조망이 일품이라 즐기면서 완등했네요..
운전 보시 수고 했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