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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8:1-12) 회개할 것의 내용
오늘날은 작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들이 문을 닫고, 교인의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면, 이는 무엇 때문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에서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했는데 그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역시 종교 지도자들을 행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똑같았습니다. 이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 오늘날에 교회에 지도자들도 교인들을 향해 회개해야 한다. 라고 설교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회개”는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서 도덕적이나 율법적이거나 종교적인 잘못함을 뉘우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것을 말함이 아닌, 신분의 변화, 즉 세상 사람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꿔지거나 돌아서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다는 말에는 너희들이 교인은 되었으나 하나님 자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질타하는 것으로,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이 회개가 그토록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늘 백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회개가 성경이 말하는 회개여야 하는데, 회개 하라고 하는 자들이 그것을 모르거나, 또는 잘 못 알고 있다면, 종교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는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에 바른 깨달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회개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지만 잘 못 오해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유대인들이 유대 교리에 빠져 하나님의 자녀 되기까지 돌아서지 않을뿐만 아니라 예수를 죽이는 행동을 한 것을 볼 때 저들은 회개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의 내용이 회개하라는 것이었다는 것에는 성경이 말하는 그 회개 없이는 너희가 아무리 유대교 교리나, 오늘날에 기독교 교리로 산다고 할지라도 구원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말하는 회개를 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해야 하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매일 교회나 집에서 하는 그 회개는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 회개를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회개란 한마디로 “돌아섬”입니다. 이는 이런 사람에서 저런 사람으로의 “바꿔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꿔짐 없는 회개는 성경의 회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꿔짐의 내용이 어떤 것으로부터 바꿔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삶의 방식에서 교인으로 사는 방식의 바뀜이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삶의(생활) 바꿔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시작 부분에서 주님이 회개를 외치실 때 들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을 믿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어서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말씀이 말하는 대로 십일조의 돈을 드리기도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살고 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회개해야(돌아서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에서 다른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저들에게 돌아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저들의 삶을 주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로 살고 있어서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임에도 회개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저들 처럼 스스로 생각하기를 교회 다니고 설교듣고 헌금하고 하는 것이 말씀으로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말씀으로 살았다고 여기는 것에서 지금 자기 앞에 와서 말하는 예수의 말로 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삶인 종교로, 또 율법으로, 사는 방식에서, 말씀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이킨 거듭남의 삶으로 바꿔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주님이 오셔서 현재 우리의 믿음 신앙생활을 보신다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사실 이방인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지금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말씀을 읽고 또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우리는 우리의 삶을 뒤 돌아 볼 때 성경의 회개에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서 세상 방식으로 살다가 교회로 나온 후 교회 방식으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 되어서 구제 선교 등의 일을 하고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는 것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술 담배 하던 자가 끊고 교회에 나와서 교회 생활하는 것을 회개한 것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을까요?
매일 매주 반복적으로 자기의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나 종교 생활에 잘못한 것을 주님에게 가지고 나와서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회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성경의 회개란 “종교인의 삶”에서 “말씀이 말하는 삶의 돌이킴” 즉, 실제 적 생활이 말씀에 의하여 예전의 세상의 삶과 종교로 살던 생활에서 말씀의 삶으로 방향이 바꿔져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마치 유대 종교로 열심히 살던 사울의 상태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하신 말씀을 가지고 사는 바울로 완전히 바뀐 것을 회개에 합당한 사람을 사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삶의 목적이 나에게서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향으로의 사람으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라고 외쳤던 메시지의 참된 의미는 예전에 그 열심으로 산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삶”으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 돌아섬만이 회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롬 8장의 본문은 진정한 회개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장 앞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당시 유대 종교로 살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어기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와서 돌로 쳐 죽이려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에서 가르쳐주시는 진리는 돌을 들어 죽이려는 사람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사람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회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소인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의 고소의 근거는 여자가 현장에서 남자와 사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걸렸는데 그 걸림은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죽이는 것이 저들의 의무며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이 여인을 잡아와서는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주님이 말씀하는 회개를 봐야 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잘 살필 것은 율법의 삶으로는 (모세)돌로 여인을 치려는 역할을 하지만, 그 율법의 삶은 결국에는 돌을 든 사람과 여인 모두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갈 3:24)
물론 이 여인은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고, 그 상황에서 예수님 앞에 끌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돌을 든 저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돌아갔습니까? 그것은 모세의 법을 스스로에게 적용시켰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모두가 도망한 것입니다.
주님은 저들에게 모세를 들이댄 것이 아니라 율법의 율법 됨, 곧 율법의 역할은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임을 알려주면서, 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진정한 말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자신들이야 말로 종교와 율법으로 살고 있으면서, 온갖 죄로 먹고 마시면서 살고 있었으면서도 말씀으로 살았다고 자부하면서 손에 돌을 들고 죽이려는 자신들의 실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자신들에 눈에 보여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자신들의 의’를 가지고 고소하러 왔던 자신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회개의 대상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죄 없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 앞에 왔다가 하나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스스로의 의’ 때문에 예수 앞에 서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떠한 인간도 세상을 살면서 태어나면서 죄인이기에 모세의 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세의 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세워놓은 죄의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면서 의와 불의를 나누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배우고 안 그 율법을 따라 (혹은 자기 종교 교리)로 산 것에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로 바꿔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회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 온 그녀는 사람들에게도, 그 사회에서도, 율법에도, 하나님에게도 죄인 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자요, 돌로 친다 해도 항변할 능력이나 기력조차 갖고 있지 못할 진정한 죄인이었기에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 살기등등하게 예수 앞에 고소하던 모든 자들이 떠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간 후에 오직 예수와 여자만 남게 됩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 앞에 자기를 죽게 하는 율법이 사라진 것입니다.
정죄하는 자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에게 고소하던 모든자들은 사라졌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교인이 되었고 목사가 장로가 집사가 되었어도 그 무엇으로도 남에 대해 정죄의 삶을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로마서 8장의 바울의 선언과 같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는 말씀의 성취된 것과 같습니다.
해방이란 죄와 사망의 법. 즉, 돌로 쳐서 사람을 죽이는 죄와 사망의 법이 물러가고 아무도 그녀를 정죄하는 자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녀 앞에 있는 예수조차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예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계십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람이 세상 방식이나 종교적 율법으로 산다면 죄로 부터 벗어나기는커녕 여전히 같은 일만 되풀이하게 될 뿐이라는 말이며, 그러한 삶에서의 ‘회개’는 율법 아래에서 종교인으로 살던 삶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돌아서는 길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은 ‘가서 다시는 모세에게 속하여 살지 말라’는, 세상의 방식대로나 종교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아래 있는 자들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며, 그러한 저주 아래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다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은 모세와의 결별을 요구하는 동시에 ‘나를 따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 8:12)“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회개란 모세의 가치체계에서 예수의 가치체계로 삶의 자세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회개한다. 라고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여전히 예수의 이름을 뒤집어 쓴 모세의 삶(종교의 삶)을 산다면 그 회개는 천번 만번을 하더라도 진리로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복적인 것은 아무것도 자신을 어떻게 해주지 못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새로운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빛 가운데로 이끌어주지도 못합니다.
다만 개가 그 토하였던 것을 되풀이하여 먹고 또 토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밖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먼저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삶이 모세로부터 돌이켜 예수에게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창세기 2~3장에서 선악에 알게 하는 실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생명 과로 나아가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인생의 노정으로 들어서게 하는 방향의 전환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말씀이 그리스도가)이 가까왔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본문에 저들과 같이 종교적인 죄와 더불어 세상의 것으로 살면서 회개하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며 살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런 우리였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에 잠겨(세례받음=죽음의 과정)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부터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는 삶의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꿔졌을 때 회개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주님에게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꿔 돌아 서십시다.
그럴 때 우리의 회개의 합당한 열매(간음한 여인의 자유케 됨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맺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