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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룸미러에 나타난 검은 물체는 증기기관차처럼 파설을 날리며 무서운 속도로 신랑의 킹하운드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 검은 물체는 룸메이트 스즈끼의 빅그레이스였다.
스즈끼는 발정한 불곰처럼 후방 2m까지 무대포로 돌진했다.안전거리를 무시한 스즈끼의 대담성에 신랑이 노련함으로 맞섰다. 거의 충돌직전까지 근접한 빅그레이스는 신랑의 킹하운드를 추월하려고 세고이야 나무 사이를 끼고 비탈을 타며 오른쪽 틈으로 파고들었다. 신랑이 블로킹을 시도했다. 스즈끼도 만만하지 않았다. 교묘하게 신랑을 범피눈이 얼어붙어 딱딱한 노면로 몰았다. 까딱했으면 스즈끼에게 속아 홋카이도전나무 세고이야와 충돌할 뻔했다. 찬스를 놓치지 않고 스즈끼가 앞질러 나갔다.
그러나 신랑은 침착하게 킥스텝으로 응수했다. 신랑의 퀵스텝에 빅그레이스가 지그재그로 눈길에 미끄러지며 트랙을 4, 5m벗어났다. 전열을 가다듬은 스즈끼가 신랑의 옆 공간으로 파고들자 신랑은 신기술인 백핀치자동차의 뒷꽁무니를 흔드는 기술를 걸었다. 스즈끼가 깜짝 놀라 10m 이상 뒤로 물러났다. 신랑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즈끼가 물러난 곳은 눈 때문에 평지 같아 보여도 30%의 경사가 바닥에 도사리는 깊은 눈 수렁이었다. 스노디프였다. 스즈끼는 가속을 얻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헛바퀴질만 해댔다. 신랑은 쾌재를 불렀다.
“스즈끼! 조센징 된장 맛이 어떠냐? 또 미소된장이 맛있다고 지껄일 거야? 산쭈개새끼!”
신랑은 라이벌 스즈끼를 따돌렸다는 자만에 취해 룸미러를 보며 노래하듯 조롱했다. 이제 삿포로슬로프까지 남은 거리는 33km. 신랑은 두 손가락에 입을 맞춰 룸미러에서 허우적대는 스즈끼에게 날렸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웅. RPM출력의 급가속 굉음이 설원에 퍼졌다. 순간 시속 120km의 출력에 킹하운드가 울컹하고 눈 위를 날았다. 착지하는 순간, 전방10m 앞에 순록만한 홋카이도 사슴한마리가 나타났다. 신랑은 반사적으로 기어를 뺐다 넣으며 힐엔진블럭을 걸었다. 허지만 신랑의 능숙한 힐엔진블럭으로는 사슴을 피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바로 3m 코앞에 들이 닥친 사슴을 피하기 위해 신랑은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180도 꺾었다.
“소노 오카데 고사린 야코로가테 모 손조쿠시타노 가끼세키데수언덕에서 다섯바퀴나 구르고도 살아났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삿포로 홋카이도메디컬센터 신경외과원장이 혀를 내두르며 신랑에게 말했다. 이어서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부러진 다리의 골수와 혈관을 타고 눈 속의 질소와 얼음이 들어가 신경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서둘러 무릎부터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쉽게 말해 내근동상內筋凍傷이었다. 레이서에겐 사형과 같은 선고였다.
신랑이 한참 만에 의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자르지 않으면요?”
원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푸토모모 메이드 키리수테루마수 코레 니요리, 기소쿠모 데끼마센허벅지까지 잘라야 합니다. 그러면 의족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원장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런 일 없어야 하지만. 만약 질소가 혈관을 타고 뇌에 침투했다면 심각한 뇌장애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오빠는 그 후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목욕하는 걸 제일 싫어했고 심지어 머리도 감지 않았어요. 오빠가 너무 불쌍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언니사진을 제게 보여줬어요. 당연히 제가 물었죠. 오빠는 그림 속의 춤추는 여자얼굴과 바꿔치기 할 여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 달 후 제가 다시 오빠를 만났을 때 오빠가 달라져 있었어요.”
“어떻게요?”
“우선 외모가 달라졌어요.”
“궁금한데요?”
“의족을 한 거죠.”
“그럼 그때까지.”
“네, 다리 잘린 대로 살았죠. 바지를 접어 핀으로 고정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다이어트 했다고 접은 바지를 흔들며 자조적인 말만했어요. 체중이 줄었다는 말이었죠. 그러던 오빠가 갑자기 변한 건 언니 때문이었어요. 제가 언니와의 교재는 불가능하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왜죠?”
“언니를 사진으로 통해 봤지만 첫 느낌이 오빠의 짝은 아니었어요.”
“왜죠?”
“오빠에 비해 언니는 완벽했거든요. 허지만 오빠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트랙에서는 실패했지만 이 여자만은 포기할 수 없는 내 인생의 희망이라고 하더군요. 그냥 쳐다만 보더라도 절대 놓칠 수 없다고 말하면서요.”
시누이는 앞좌석 시트에 걸어두었던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 삼숙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그리고 삼숙의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언니. 너무 고마워요. 언니는 오빠와 저의 천사입니다.”
삼숙은 오랫동안 시누이의 두 손에 오른 손을 잡혀 있었다. 시누이의 뜨거운 혈액이 삼숙의 손가락을 통해 전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격정이 가슴에서 물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삼숙은 시누이 옆자리의 신랑을 돌아봤다. 신랑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신랑의 다리를 쳐다봤다. 얼마나 아팠을까? 삼숙의 마음도 아팠다. 여러 가지 상념이 난청처럼 윙윙거렸다. 운명의 선택을 조건 없이 긍정했다. 이번엔 삼숙이 시누이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첫눈에 오빠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오빠를 보자 저의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죠. 아니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오빠에게 단교의 말을 하려는 순간, 오빠의 눈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읽었어요. 절실한 눈빛이었어요. 그 순간 오금이 저려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빠의 그 눈빛을 피하려고 돌아가신 제 할머니를 떠올렸죠. 그때 제가 할머니를 왜 생각했는지 그건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옛날 전설 때문이었겠죠. 무서운 괴물과 싸우는 전사의 이야기 말이에요.”
시누이가 연민의 눈빛으로 삼숙을 바라봤다. 고개를 꺼덕였다.
“그렇죠.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오빠가 무서운 괴물로 보였겠죠.”
“그런데 이상한 건요. 할머니를 상상한 순간, 문득 오빠와 저는 업보의 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제 운명의 일부가 오빠와 얽혀 있는 것처럼. 아주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절대 풀 수 없는 매듭이 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오빠를 선택하라는.”
삼숙은 그 대목에서 숫하게 갈등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후회와 번민이 부풀어 오를 적마다 삼숙은 자신의 운명보다 아버지의 배를 먼저 생각했던 그때를 생각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삼숙이 말했다.
“그것이 다에요.”
시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삼숙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리는 어깨까지 감출 순 없었다. 울먹이는 시누이의 어깨를 바라보며 삼숙도 울었다.
울먹이며 신랑에 대해 물었다.
“그 후로 후유증은 없었나요?”
고개를 천천히 들며 시누이가 퉁퉁 부어 오른 눈으로 말했다.
“네, 그 후로 건강했습니다. 허지만 그토록 강했던 오빠가 정신적으로는 너무 피폐했어요.”
시누이의 말에 삼숙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신랑에게 슬픔이 없도록. 늦었지만 이제부터 다리병신이라는 열등감을 빠각빠각 갈아 뭉개버리고, 슬픈 과거를 싹싹 지워버리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둘이 합쳐 걸으면 다리하나 없어도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고. 몇 번이고 다잡아 다짐했다. 사촌오빠에 대한 의혹과 자신의 어정쩡했던 분노도 모두 희나리로 불태워 흔적 없이 소각한다고. 결단에 마침표를 찍었다.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너무 귀가 아팠다. 삼숙은 두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아 눌렀다. 시누이가 삼숙을 보고 말했다.
“언니 침을 삼켜 보세요. 그러면 공기가 빠져나가 덜 아플 거에요.”
삼숙은 시누이의 말대로 침을 억지로 꼴깍 삼켰다.
송곳으로 찌르는 고통이 고막에서 찌르륵 느껴졌다.
그 아픔 속에서 삼숙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가 이제 다 끝났다.”
돈무앙공항에서 후아인까지는 미니밴으로 3시간30분이 더 걸렸다. 9시간30분의 긴 여정이었지만 삼숙에겐 섬에서 40분 거리의 항구도시까지 가는 것보다 더 짧았다.
삼숙은 신혼여행 내내 너무 행복했다. 행복이란 상자를 개봉한 신데렐라였다. 개인정보 때문에 삼숙의 신혼내용을 소상하게 파헤칠 수 없어 법적인 문제가 닿지 않게 간략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은 일기를 쓸 수 있다.
첫째 날.
7성급 밀포드비치관광호텔에 체크인한 후 곧바로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 칵테일을 들며 새로운 날을 설계하느라 새벽3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
바다에서 들어 온 햇빛 때문에 더 자지 못하고 오전 10시 정각에 일어나 시누이가 준비해 온 배드푸딩으로 아침을 때웠다. 오후엔 맹그로브 숲으로 가서 산책한 후 저녁엔 시내 야시장으로 나가서 야시장요리와 열대과일로 짤끔짤끔 배를 채우며 돌아다녔다. 그 중에 절대 잊지 못할 추억하나를 만들었다. 오돌토돌한 두리안을 똥냄새 난다고 안 먹겠다, 안 먹겠다 버티다 시누이의 강압에 못 이겨 먹은 후 신혼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 두 개씩 까먹었다.
셋째 날.
점심은 태국쌀국수 꾸띠여우로 결정했지만. 태국고추 하바네로가루를 우리나라 고춧가루 정도로 생각하고 꾸띠여우에 넣고 후루룩 먹었다가 팔짝팔짝 뛰는 삼숙을 보고 신랑과 시누이가 배꼽잡고 웃었다. 삼숙은 30분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붉은 색만 봐도 놀라 침을 흘렸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엘레지 퀸여왕이었다.
넷째 날.
정오부터 호텔 앞에서 바나나보트를 탄 후 시누이와 단둘이 수상파라솔라이딩을 했다. 신랑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허지만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삼숙에게 비밀이 생겼다. 파라솔이 하늘로 치솟자 그만 오줌을 찔끔찔끔 싸버렸는데 혹시 누가 봤을까봐 노을이 질 때까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저녁식사는 야외씨푸드카페에서 몇 가지 게요리를 주문했는데 호세스크랩 껍질을 못 벗기는 삼숙을 유럽부부가 지켜보고 한참 웃었다. 그러나 삼숙은 맨손으로 끝내 투구게 껍데기를 홀랑 벗겼다. 유럽부부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다섯째 날.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시누이 친구와 함께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서울골프장에서 난생처음 공을 쳤다. 아이언 9번으로 세 번 만에 간신히 맞힌 공이 30m나 날아갔다. 삼숙은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후아인의 박인비. 후아인박인비는 신랑이 벙커에 공을 빠트릴 때마다 자동 볼걸ballgirl이 되었고 삼숙이 에러를 낼 때마다 공을 쉽게 치도록 티를 꽂아 주는 삼숙의 전속 티보이teeboy가 되었다.
여섯째 날.
맥주를 룸서비스 시키고 밤바다의 초록향연에 취했다. 밤마다 벌어지는 장관이지만 이날의 오징어잡이 어선은 초록집어등을 밝히고 태국전역의 어촌에서 다 집결한듯했다. 완전 초록빛야광으로 뒤덮인 환상의 밤바다를 보며 시누이가 삼숙에게 어록을 남겼다.
“언니 왔다고 오징어가 여기로 다 모였나 봐요.”
일곱째 날.
오전엔 바다낚시체험, 오후엔 튜브로 파도타기. 섬에서 자란 삼숙의 아이디어가 현지인들을 감동하게 했다. 다음해부터 태국신종해양사업으로 대박 터질 거란 풍문이 입소문으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허지만, 낚시는 처음 해본다는 시누이가 확실히 잘했다. 역시 물고기는 초짜에게 잘 엉겨 붙는 다는 말이 여기서도 맞았다.
여덟째 날.
기아카니발로 3시간을 달려 방콕의 보석빌딩에 도착했다. 세상의 진기한 보석들을 다 만나보고 감탄 또 감탄하는 삼숙에게 15mm 흑진주를 신랑이 선물로 사줬다. 삼숙은 신랑의 선물을 가방에 넣지 않고 한사코 손바닥에 쥐고 다녔다. 물론 삼숙도 시누이와 신랑에게 선물했다. 시누이에겐 5캐럿 토파즈를, 신랑에겐 보석빌딩의 자판기에서 뽑은 코카콜라 캔 한 개였다. 신랑도 흡족해했고, 시누이는 사파이어나 코냑다이아몬드 보다 더 기뻐했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저녁엔 알카쟈쇼를 보러 갔다. 코미디언이 짓궂게 풍선유방을 꺼내고 쏜 물총에 맞았지만 삼숙은 즐겁고 행복했다. 게이와 함께 사진도 찍었지만 삼숙은 게이를 불쌍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팁을 1불 또는 3불정도 주는데 팁을 10불이나 줬다. 게이한테 “하우맴최고야 코레아!” 라고 칭찬 받았다.
아홉째 날.
귀국 전야. 시누이와 호텔수영장에서 수영을 한 후, 비치파라솔테이블에 앉아 시누이로부터 결혼식장을 마을회관으로 한 이유와 시댁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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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진희님
신혼여행 가는길에 시누이한테 남편의 불구된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군요..
신혼 여행길 너무 행복한 모습 보기좋슴니다.
행복한 모습은 누구나 즐겁게 하죠
생각보다 많은 감동을 받은 삼숙이 신혼여행길이 너무 행복해 하네요..
천만 다행 입니다.
신혼여행인데요...그러나
그안에 행복을 느낀다더니
신랑에대한 화려했던 스포츠맨으로 알고 또그로인해 오늘의 불구가 되었다는것 알고
여행길에 감동받는 모습 보기좋슴니다.
인생의 첫걸음 삼숙이 행복 오래갔으면 저도 소망합니다
결혼식날 기분 나뻣든 일들이 일순간에 지워저버리고 시누이의 역활로
신랑에대한 것을 알면서 함께 떠난 신혼길에 행복하다는 주인공 삼숙이
과연 내가 바라는 마음이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신혼 여행길 만큼이나 행복이 쭉이어지길 기원 해봅니다.
시누이가 친구 같아 우리 삼숙이 좋아 보이죠?
느티나무님의 댓글 접하면 언제나 느끼는 감정이 있어요
여리고 착하고 너그럽고 배려하고....그 마음 변치 않기를요....좋은날되세요
절망적인 결혼 식으로만 생각했던 내자신이 잘못생각이였나봐요.
신랑이 스포스맨으로 열심히 다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했다는것
같은 또래의 시누이가 가까운 친구처럼 닥아와 결혼 첫날부터
황홀한 신혼이 시작되었다는것 너무나 바랐던 일이지만 너무 쉽게 행복감에 빠저있는 삼숙이
앞길에 해피엔딩으로 마감 잘되기를 기원 합니다.
소설읽으면서 행복이 무엇인가.노래도 감상 잘했슴니다.
사랑도 남다른 사랑을 다하는것 같아요..
몸은 비록 불구자였지만 신랑감으로 만족해 하는 삼숙이
그것이 바로 행복인것 같슴니다,... 잘보았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