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7분 전. 1947년 탄생한 ‘운명의 날 시계(The Doomsday clock)’의 최초 시간이다.
‘운명의 날 시계’는 핵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1947년 자정 7분 전에서 출발한 시계바늘은 핵 관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움직인다.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시계는 자정에 가까워지고, 긍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반대로 멀어진다. 자정은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날을 의미한다.
앨런 무어의 그래픽노블 <왓치맨>은 자정 7분 전을 가리키는 시계와 함께 시작한다. 만화 속 세계정세는 이 상징에 걸맞게 흉흉하다. 극도로 치달았던 냉전의 끝자락,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전 세계가 긴장감에 휩싸인다. 소련의 핵 공격을 예측한 미국은 선제공격을 계획한다.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고, 세계 곳곳에선 범죄가 터진다. 이러한 세계정세 앞에서 <왓치맨> 세계관 속 히어로들은 그저 힘없는 개인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왓치맨>의 악역, 은퇴한 히어로 오지만디아스는 한 가지 사기극을 계획한다. 그의 목적은 ‘세계를 구하는 것’. 지구 외부의 위협을 창작하여 인류에게 공포를 심고 전 세계의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선 창작이 진실로 받아들여질 만한 희생이 필요했다. 그의 계획은 수백만 명의 죽음을 주춧돌로 삼아 성공을 거둔다.
그의 계획을 뒤쫓던 히어로들은 계획의 성공을 지켜봐야만 했다. 오지만디아스는 계획의 성공 이후 진상을 알아낸 히어로들에게 타협을 제안한다. 논리적으로, 지구를 지키기 위해선 타협을 받아들여야 했다. 히어로들은 그와 타협한다. ‘종말이 다가와도 타협은 없다’며 버티던 로어셰크는 갈등 끝에 죽음을 택하고 신의 손에 소멸한다.
<왓치맨>의 결말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것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히어로들은 결국 세상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공포를 공포로 억누른 것이며, 학살을 담보로 얻은 성공이다. 히어로들은 불의에 무릎을 꿇었다.
결말에서, 모든 것을 계획한 오지만디아스는 신과 대면한다. 그는 신에게 묻는다. “내가 옳은 일을 한 게 맞지요? 마지막엔 모두 잘 됐으니까.” 신은 대답한다. “마지막은 없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 이 말을 들은 오지만디아스는 절망한다.
오지만디아스는 운명의 시계바늘을 잠시 밀어놓았을 뿐이다. 시계는 결코 멎지 않는다. 미래엔 언젠가 다시 위기가 고조되고 자정이 다가올 거다. <왓치맨>은 로어셰크의 일기를 통해 이 점을 확실시한다. 마지막 장면, 작가는 ‘운명의 날 시계’의 작동 여부를 일개 신문사 직원의 손에 맡긴다.
반면, 작품은 ‘운명의 날’을 말하는 동시에 다른 것 또한 이야기한다. 세계가 파멸을 향해 치달아가고 아무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 상황. 그때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죽음의 향기와 함께 피어나는 꽃 한 송이가 있다. 그 꽃의 이름은 희망이다.
희망은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히어로들은 서로 싸우고 있을 때, 어떤 중요한 역할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시민들의 손에서 핀다. 오지만디아스가 세계를 구하기 바로 직전, 거리에선 싸움이 일어난다. 사회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이다. 거리를 지나던 정신과 의사 말콤 롱 박사는 싸움을 목격한다. 감옥에서 로어셰크를 만난 뒤 어두운 세상을 마주한 인물, 이후 어두운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그의 달라진 모습에 불만을 품고 집을 나갔다.
싸움을 말리려는 그에게 그의 아내가 다가와 말한다. “난 당신을 정신병자 같은 세상에,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에게 빼앗기고 싶은 생각이 없어. 내 삶을 그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 말콤 박사는 그 말을 듣는 와중에도 싸우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는 대답한다. “해야만 해. 세상이 이런데 서로를 돕기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중략) 미안. 이런 세상을…. 난 외면할 수 없어.”
말콤 박사는 싸움을 말리러 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거리에서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는 노인 백인 버나드와 매일 그 곁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년 흑인 버나드. 정직처분을 받은 경찰 스티브와 조. 싸움에 휘말린 여성의 회사 직원. 그들은 다 함께 모여 싸움을 말린다. 그냥 눈을 감고 지나가면 되는 평범한 싸움을 말리기 위해 시민들이 뭉친다. 세상의 끝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희망을 조직한다.
그 희망은 곧 실행된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에 소멸하지만 작품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 백인 버나드는 흑인 버나드를 지키기 위해 그를 껴안는다. 그들은 죽음의 순간까지 그렇게 인류애의 상징을 보여준다.
‘운명의 날 시계’는 무슨 짓을 해도 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시계바늘은 다시 자정에 근접할 것이고 세계는 다시 위협받을 거다. 그런 위기에 대한 해답, 그것은 바로 이 희망에 있다.
<왓치맨>의 마지막 이슈 제목은 ‘사랑으로 강해진 세상’이다. <왓치맨>은 매 이슈의 마지막에 문구 하나씩을 인용하는데, 마지막 이슈의 문구는 「더 강해진 세상. 사랑으로 강해진 세상일 거야. 우리가 죽을 곳은. -존 케일-」이다.
작중 죽음의 위기를 맞은 사람들은 이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혼란과 광기가 아니라, 도움과 협력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죽음 앞에서 오히려 더 강해졌다. 파멸해가는 세상은 죽음 앞에서 사랑으로 치유 받았다.
‘운명의 날’이 다가와도 이 사랑이 남아 있다면, 세상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왓치맨>이 제시하는 희망이다.
첫댓글 그 때 -> 그때
세상일거야 -> 세상일 거야
세상의 끝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희망을 창조한다.
-> 아. '희망을 창조한다'는 말보다 '희망을 조직한다'는 표현이 더 좋은 것 같다.
'희망을 조직한다'라는 말이 마음에 드는 걸. 희망을 조직한다.! 희망은, 창조하는 게 아니라, 조직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