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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뜨거웠던 2026년 여름이었다.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 10월에도 로스앤젤레스는 화씨 90도에서 100도 (섭씨 32.22도~37.8도) 이상을 넘나든다. 추석이 지난 9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장시간 동안 농부들이 가꾸고 또 거두었을 농산물로 만든 각종 나물을 마켓에서 사다가 밥상에 올렸다.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은 성당에서 나누어 줘 잘 먹었다. 부모님 산소는 가지 않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추석이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 이유 중의 하나이다. 꼭 추석이 아니라도 날을 잡아 방문하면 되니까,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7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181개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중 2백만 명 이상이 미국에 거주한다. 미국 정부 통계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주(州)에 거주하는 혼혈을 포함한 한국계 주민은 57만 명 이상이다. 2위인 뉴욕주의 4배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조국인 미국에서 모국인 한국의 명절을 쇤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후세들에게 한국은 모국(母國)이다. 반면 미국은 조국(祖國)이다. 다시 말해 모국은 민족적 혈통 그리고 문화적인 뿌리가 있는 나라를 뜻하고, 조국은 본인이 귀속해 있는 나라로 국가적 정체성과 애국심을 강요할 수도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한국계 미국 디아스포라로 반세기 이상을 엘에이에서 살아온 나는 뼛속 깊이 지금도 한국인이다. 가족들과는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쓴다. 때로 콩글리시(Konglish)를 쓰기도 한다. 한국 음식을 바탕으로 만든 퓨전 한식을 자주 만들다 보니, 우리 집안의 음식은 국적 없이 태어난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계획하지 않은, 또는 실수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새로운 메뉴로 등장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페니실린이 실수로 만들어진 세계적 치료 약이 듯이 말이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7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 후예들은 모국 한국의 명절인 추석을 잘 지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 캘린더로 추석은 8월 15일인데, 그레고리안 양력 달력으로는 달이나 날짜가 매년 다르다. 나를 자주 혼동시킨다. 매년 8월, 9월 때로는 10월에 또 다른 날짜에 추석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진다.
추석이 미국의 명절이 아니고, 공휴일도 아니라 차세대 조카나 딸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 대신 `미국 추석` 추수감사절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추수감사절 때 유럽에 사는 식구들과는 함께 하지 못한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한국은 재외동포 기본법에 따라 10월 5일과 10월 3일~9일을 `세계 한인의 날` 및 `세계 한인 주간`으로 공식화했다. 재외동포를 위해 특별히 명명된 이날들을 조카와 딸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 외 미국 정부가 이름 지어 준 날들도 알려야겠다. 미국 상원과 하원은 지난 2005년 1월,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기념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월 13일은 한국인 첫 이민자들이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날이다.
그뿐 아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2019년 9월에 10월 9일을 한글날로 명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4년 후에는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도 같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은 교민 단체 대표들과 함께 `미주 한인의 날` 기념식을 올해 총영사관저에서 진행했다. 한국계 미국 시민들을 위해 한국 정부는 워싱턴 DC에 대사관을, 그 외 13군데에 총영사관, 영사관 또는 출장소를 두고 있다. 재외동포와 현지 학생들, 혈통ㆍ비 혈통들의 한국어교육을 지원하는 한국교육원도 여덟 군데나 있다. 문화원은 워싱턴디시, 뉴욕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세 군데에 있다. 정부와 관련 없이 비영리 단체로 한글 수업을 미 정규학교가 채택하도록 하는 한국어 진흥재단도 그런 교육기관 중 하나다.
이민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이민 일세들이 뿌린 노고의 씨앗을 3세, 4세들이 이루는 흐뭇한 이야기들을 미디어에서 접한다. 법조인, 의료인, 공무원, 교사로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한다. 비즈니스 관련 활동도 눈부시다. IT 계통, 부동산업, 상업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한인타운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한인들뿐 아니라 타 인종들도 함께 어우르게 하는 허브가 되는 곳도 꽤 있다.
그뿐이랴. 교민 1세들 중에는 이민자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사를 글로 나누기도 한다. 미국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1800년대 후반 블라디보스토크에 `신한촌`을 만들어 모여 살면서 한인회를 만들고, 신문과 문학지를 내지 않았던가. 한국을 떠나 1905년 멕시코에 정착했던 조상들의 후손인 이민 4세, 5세는 유카탄 `애니깽 한인`들로 알려져 있다. 그분들의 노력으로 멕시코 유카탄 수도 메리다는 매년 5월 4일을 `코리아 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간혹 어떤 일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나, 영어로 논문이나 수필을 쓸 때도 한국식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내 사고(思考)의 여정에서 작동하고 있다.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에 감사한다. 조국과 모국을 가진 이중언어 능력자라고 자부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