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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류열풍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심우량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조선인의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케 하고 그들의 무기력, 무능함,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의 후손들에게 가르친다. 그리하여 조선 청년들로 하여금 그들 조상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든다.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은 자국의 모든 인물과 역사책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 패배주의, 노예거지근성, 피동적가치관, 가학적 상호비난에 빠질 것이니, 이때에 일본의 역사,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부임한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齌藤實)-
이러한 기치아래 일제는 역사조작의 가장 우선순위로 한민족의 국가시조와 상고사를 부정한다. 그래서 실제 역사적 사실인 단군조선을 부정하여 단군을 한 개인으로 둔갑시켜 신화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곰의 자손이 되어버렸다. 삼국유사 원본에는 한국->한웅신시배달국->단군조선 7천년의 역사가 이어지는데 일제는 이것을 한인->한웅->단군으로 조작하여 3대에 걸친 세 사람의 이야기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따라 우리의 실질적인 역사는 앞의 수천년의 역사는 날아가 버리고 소위‘삼국시대’부터 시작하게 된다. 현재 우리 국사교과서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국유사 임신 영인본(1921년 일제가 발표한것 환국을 환인으로 변조함)
이렇게 역사의 기간을 축소해 버린 후에는 한민족의 강역도 조선반도내로 역시 축소한다.‘너희는 한반도에만 국한되어 살았던 민족’이라고 세뇌를 시켰는데 이것이 이른바 ‘반도사관’이다. ‘한반도’라는 말도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다.
일제는 이이서, 한민족은 오늘날까지 완전한 독립을 해 본적이 없고 주인도 뿌리도 없는 유랑민으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분열을 일삼는 망국근성의 민족임으로 일본이 식민통치해 주는 것은 조선인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주입시킨다.
즉, ‘전국시대에 유랑민들이 떠돌아 들어온 곳이 한반도 인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져 싸움박질 만 하고 고려시대에는 음탕한 역사가 진행되었고 이씨조선시대에는 사색당쟁이나 사화가 끊이질 않았으며 , 영웅적 인물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족족 죽여 버리는 등 서로 용납하지 못하여 스스로 발전할 수 없고 추진력이 없이 살아온 미개 민족이다. 그러니 대동아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일본이 조선을 합방해서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와 같이 왜족은 자신들을 미개와 야만에서 문명인으로 개화시켜준 한민족의 은혜를 저버린 체, 미개하고 야만스런 옛 버릇이 도져 다시 야만적 역사조작을 오늘날 까지 해대고 있다. 개 버릇 남 못준다고 최근에는 우리의 유력한 사서‘한단고기’조차도 일부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저들은 아직도 정신적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족과 차이나족은 현재 국력과 사람숫자를 믿고 위와 같이 왜곡 조작된 역사를 세계 각국에 선전 광고를 해대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 각국은 저들의 국력과 사람숫자를 신뢰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남한만 빼고 북한까지 쥐나족의 영토로 표기된 세계유명지도가 허다하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가, 동해로 표기된 지도보다 훨씬 많다.
결국 이조시대와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역사는 완전히 창작소설로 변하였고 특히 일제의 치밀하고 체계적인 <조선사> 조작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참으로 알아왔던 역사가 모두 가짜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반도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일제가 왜곡조작한 역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용어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한자漢字 한문漢文>이라는 용어가 일제가 우리의 민족혼을 뽑아 버리고자 창조된 말이라는 것이다.
즉 한자도 한민족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은폐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가 <조선사>를 왜족조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자라는 말이 없었고 <참글>또는 <진서眞書>라는 말로 통했다. 이조시대에 간혹 한문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한나라 선비들이 지은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었지 결코 한자자체를 한문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제의 역사왜곡조작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뿌리가 깊은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서양세력에 의한 한민족 역사왜곡이다. 합리적 과학적 사고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일찌감치 근대화에 성공한 서양열강이 19세기 말부터 조선반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우수한 물질문명을 가지고 들어와 한민족을 압도하였다. 1945년 정치적 광복이후에는 이 역할을 아메리카가 조선반도 남쪽을 점령함으로써 이어 나갔다.
이들은 물질주의의 우수성을 주입시키고 모든 것을 서양 중심으로 재편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서양의 실증주의 역사관도 이식되었고 향후 한국역사학의 커다란 주류로 성장한다. 실증주의 역사관이란 역사를 논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물적 증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적 증거가 없이 말하는 역사는 역사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민족역사의 주 무대는 시베리아 바이칼지역의 광활한 땅과 한주(만주) 그리고 중원대륙이다. 그러니 조선반도에서는 제대로 된 유적이나 유물등 물적 증거가 나올 리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시각에 의하면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오늘날 한민족이 조선반도로 축소되고 차이나족과 왜족이 왜곡 조작한 역사를 의심 없이 수용하여 이를 확대 재생한 함으로써 서양은 한민족역사왜곡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중공이 조작하여 배포한 [한]나라 지도를 현재 서양세력이 사용하는 것
그러나 역사사라는 것은 단순히 물적 증거만 가지고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문학 철학 인류학 언어학 연대기학 고고학 그리고 생활풍습 전통문화 등이 어우러질 때 역사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넷째, 한겨레 스스로에 의한 역사 왜곡이다.
한민족 스스로에 의한 역사 왜곡이 구체적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시기는 이성계 조선시대다. 여기서 리조시대라는 용어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러한 용어는 일제가 한민족 말살의 한 일환으로 사용하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쓰면 안 되고 조선시대 내지 조선왕조라고 불러야 맞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조선이라고 하면 단군조선이 있고 이게 원래 우리 조선의 참모습이고 한겨레의 조국이다. 더구나 조선에는 기자조선 은조선 위만조선도 있는데 유독 이씨조선만 조선으로 부를 이유가 없으며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선생도 이씨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북한도 리조시대라고 한다. 또한 중공과 일본도 리씨조선이라고 부른다. 만약 새끼중국 노릇을 한 이씨왕조를 조선왕조(조선시대)라고 부른다면 단군조선을 부정해야한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정통성 측면에서 볼 때 이 둘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 다른 조선과의 구별을 위해서도 이씨조선이라고 해야 맞다.
더구나 리조시대는 한민족 전체역사를 놓고 볼 때 한민족을 위한 시대라기보다는 이씨왕조와 여기에 부역해온 귀족을 위한 시대였고 더욱이 중국 화하족(명나라)의 새끼중국 내지 지방정부로 존재하였다. 구한말 흥선대원군(고종)때까지 궁궐안에서 명나라 위패를 모셔놓고 명나라를 조상부모로 하여 제사를 지내왔다. 현재도 충북에서는 유림들의 주도로 명나라를 기리는 만동묘에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명나라에서 리조선의 국새(옥새)를 만들어 주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국새는 한 나라를 상징하고 외교활동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것인데, 이것을 명나라가 하사할 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리조정권은 자주독립국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이 처럼 리성계의 조선에서는 도저히 한민족 정권이라고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따라서 단군조선이 엄연히 살아있는데, 리성계 정권을 조선시대(조선왕조)라고 부르는 것은 한겨레 전체를 모독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리성계가 세운 조선을 리씨조선(리씨왕조)라고 불러야 맞다.
한민족 스스로에 의한 역사왜곡은 이성계가 위화도 대 반역을 일으킨 후 세운 새끼중국노릇하던, 이씨조선에 와서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새끼중국으로 살아가려면 대륙을 호령했던 위대한 정신인 실사구시 주인정신과 이에 기초한 한겨레참역사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 반역으로 세운정권을 정당화 시키려면 반역을 알고 있는 세력을 제거해야 하고 이론적 측면에서는 반드시 역사를 왜곡하여 이씨조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이성계 일당은 이씨조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고려의 지도세력과 충신 및 고려충성 생민들을 무참히 살육을 하였는데 무려 20여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나라를 새로 만들면서 불가피하게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1~2백명도 아니고 20만명이나 죽인 것은 세계역사상, 한민족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가 없다. 이렇게 백성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것은 이성계가 한민족이 아니고 그 뿌리가 이민족 이었기 때문이다. 남효은의 '추강냉화'에는 고려황족들을 유인하여 수장시키는 기록이 나온다.
이씨정권은 개국하자마자 먼저 차이나족은 황제국, 한민족국가는 제후국이라는 '고려사'를 새로 쓰고, 단군조선을 ‘고조선’이라고 하고, 차이나족의 갈래인 '기자조선'을 이어받았다는 뜻으로 주원장(명나라태조)으로 부터 '조선'이라는 국명을 하사받는다. 그리고 중국 명나라 주원장의 지시로 황제국 대륙고려를 위화도 반란으로 멸망시킨 이조정권은 한반도로 이주해와서 반도이씨조선을 세운다. 그리고 대륙고려를 주원장에게 넘겨버린다. 반도로 이주한 이씨정권은 반도한겨레를 원활하게 통치지배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정비한다. 먼저 글자를 새로 보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훈민정음이다. 결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만든것이 아니다. 또한 전국의 지리를 파악하기위하여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등를 펴낸다. 또한 반도의 인구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호폐제도'를 만들어 통치기반을 세운다. 참고로,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충령=이도)이라는 자는 재위시절에 명나라왕 영락이 죽자, 21일동안 상복을 입고 스스로 명나라 왕의 신하라고 하며 애도를 하였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편찬된 역사서를 왜곡 조작하여 새롭게 펴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삼국유사’ 등이다. 그러나 이름만 고려시대사람 '김부식' '일연'이지 모두 이씨정권이 변조개작하여 펴낸것이다. 김부식이 사대주의에 물들어 삼국사기를 지었다고 욕들 하는데 사실은 리조정권이 김부식의 원래 ‘삼국사기’를 수거하여 폐기처분하고 황제국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노예역사로 하여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현재 전해오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이와같이 리조정권이 새로쓴 제후국의 사서이며, 이를 일제가 약탈해 가서 다시 조작날조한 엉터리 사서임을 분명히 해 둔다.
따라서 오늘날 조작된 역사서‘삼국사기’에 기초하여 ‘삼국시대’라고 하는 용어는 틀린 말이고 고려(고구려)시대라고 해야 옳다.
또한 이씨조선 개국당시 전국에 산재해 있던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기록한 고서적들에 대하여 수거령을 내려 리조태조 이방원이가 불살라 버렸다. 이후에도 많은 리조왕들이 수거하여 모두 국가가 관리하였다. 어버이나라 차이나나족을 거스르는 역사서가 함부로 민간에 돌아다니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씨정권은 이렇게 수집된 우리 한단의 고사서를 폐기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한단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태백일사에 보면 이씨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우리의 역사서가 존재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씨조선은 이후 철저히 대 차이나족 사대주의를 표방하며 차이나족을 어버이로 떠받들고 모든 제도를 차이나족 중심으로 재편하고 차이나족 사상을 전 백성에게 주입시킨다. 그리하여 공자유가사상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사문난적’이라하며 가차 없이 처단을 하였다. 천자는 차이나족 뿐이며 새롭게 왕이 등극할 때 반드시 차이나족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모든 것을 차이나족에게 의지하는 새끼중국, 차이나족의 지방정권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리하여 사농공상 이라는 국가정책을 일관하였는데, 맨 위에 공자의 유가사상을 모시고 그 다음에 먹고는 살아야 하므로 농업을 중시하였다. 그 다음에는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상공업을 천시하는 정책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역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아갔고 한민족은 이씨조선시대 내내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여야 했다. 왕족과 귀족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원시생활이라고 해야 맞다. 옷을 물들여 멋 좀내고 싶어도 가난하여 물감이 없어 할 수 없이 흰옷을 입어야 했다. 우리민족은 흰색을 좋아하여 옷도 하얀 옷만 입는다는 백의민족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들으면 슬퍼해야 옳다.
이조말엽(구한말) 민초들이 광장에 모여있다.색깔옷과 사람얼굴은 후에 인위적으로 채색한것(선교사가 촬영-미 남가주대 소장)
이조시대 이전의 우리조상들의 복색을 보면 흰색 옷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고려(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색깔로 물들인 복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리조선시대의 흰옷은 민족정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다. 구한말 선교사가 사람들이 시장이나 광장에 모이면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한다고 감탄을 하였는데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정권유지가 급선무였으므로 백성이 똑똑하거나 배부르면 안 되었다. 깨어있는 정책입안자가 국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중요하니 도로망을 개설하고 넓혀야 한다고 했을 때도, 외적이 쳐들어오는 길목이 될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하는 엽기적 정권이었던 것이다. 또한 신분을 양반 상놈으로 나누고 양반은 다시 적서로 차별하여 오늘날 차별문화를 심화 시켰다.
후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개성상인’ ‘고려인삼’이라는 말이 잘 나타내 주듯이 상공업의 발달로 백성들은 적어도 기아선상에서 해매이지는 않았다. 아라비아 상인까지 들락거릴 정도면 국제무역측면에서도 엄청난 발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제국은 세계제국이었던바, 세계최초의 세계지도인 천하전여통도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을 서양미개인들이 '선교사'들을 동원하여 배껴다가 이후 세계일주 또는 신항로 개척에 이용해 먹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양세력보다 수백년앞서 세계일주를 하여 '천하전여통도'를 만들어냈다. 세계최초로 함포장착전함을 건조할수 있었기에 세계일주도 가능한 선박을 제작할수 있었다.
천하전여통도:19세기 사본, 남극까지 나타낼정도로 정밀하다.한반도를 중심으로 자오선이 지나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고려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조선시대에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군사무기나 과학 발명품도 따지고 보면 고려시대에 개발해 놓은 것을 응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씨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추어 버리고 거꾸로 돌아가고 말았다. 구한말에 궁궐을 지킬 병력이 없어 왜족의 깡패들에게 왕비가 살해되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발생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이와 같이 이조정권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온 황제국의 위대한 역사와 정신을 폐기처분하고 철저히 차이나에게 종속되어 있는 제후국의 역사, 사대모화중심적 역사로 왜곡 조작시켜버렸다. 그 결과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년에 가서는 농민들에게 조차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약골로 변해 버렸고 결국 나라가 사라져 버리는 한민족역사상 있을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또한 폐륜정권 이씨왕조의 이러한 역사왜곡의 결과 오늘날 터키(투르크), 티벳, 몽고(원제국) 만주(금,후금,청제국)족 위글족 그리고 소위 ‘흉노족, 거란(요제국)족, 말(갈)족’등 북방민족이 모두 우리 한민족과는 상관없는 다른 민족처럼 세뇌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나라와 민족은 우리와 한 핏줄인 한민족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리조개국과 왕위를 하사 받으려고 민족혼과 황제국의 역사를 명나라 사신이 지켜 보는 가운데 철저히 말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화도 반란군 수괴 이성개는 끝내 명나라 차이나로 부터 왕위를 받지 못하고 '고려권지국사'라는 이름을 안고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민족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 선 세력은 일제에 부역한 이른바 친일반역자 집단이다. 구한말의 기득권세력은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친일부역으로 친일반역자집단의 주류를 이루며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비호하에 정치 경제 문화 언론 군사 학문(역사) 등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배세력으로 자리를 굳힌다. 사학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독 왜독 양독에 물든 무리들이 사학계의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고 사대주의에 입각한 반도 식민사관으로 역사왜곡을 심화 고착 시킨다.
일제의 <조선사>조작 편찬에 참여한 이병도가 주도한 현행 국사 교과서의 편찬, 각종 국가 공무원시험과 고시에서 주 수험 교재로 사용되는 한국사교재는 이병도의 영향권 안에 있었고 실증주의로 무장한 이기백이 만든 것이 대세를 이루었다. 또한 초대 국사편찬위원장은 만주의 친일반역자로 알려진 이선근이 맡았다.
한편 뿌리 뽑힌 종교세력도 한민족 역사 왜곡에 일조를 하는데 종교 세력은 각 시대마다 자기종교에 유리하게 우리역사를 난도질 해왔다. 정사로 알려진 삼국유사를 승려일연은 석가모니와 관련시켜 역사기술을 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도 일제에 빌붙어 먹다가 정치적 광복이 되고 아메리카가 대세를 이루자 이번에는 미제에 빌붙어 자기종교에 유리하게 우리의 역사를 파괴하였다. 저들은 아직도 일제와 미제가 세뇌시킨 단군신화를 고집하며, ‘단군상은 신화속의 인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보는 대로 목을 쳐 버리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발호가 두들어 진다. 이들에게는 이제 미제가 어버이의 나라가 되었고 나라와 민족이라는 개념도 기득권 수호유지를 위하여 이용해 먹고 있다.
이와 같이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는 쥐나족과 왜족 서양세력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쥐나족과 왜족의 일부 양심 있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한민족사 왜곡조작을 사실대로 고백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만약에 사실대로 인정을 해버리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쌓아온 소위 ‘학문적 지식과 업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자신들이 학계에 설자리가 사라져서 밥줄이 끊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강단사학계가 한겨레 말살공작, 동북공정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내는 것도 사실은 조작날조 되어 동북공정의 원조 노릇을 하고 있는 현행 가짜국사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공정을 규탄하기에 앞서 현행 날조국사책을 불태워 버리고 이제까지 밝혀진 참역사를 바탕으로 국사책을 새로 써야 한다. 참고로 동북공정에 대항한다는 취지로 정부가 나서서 한국사 시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안 하니만 못하다. 왜냐하면 현행 가짜국사책은 보면 볼 수록 사대주의 패배주의 왜소주의로 주눅들게 하는 정신적 독극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세력들에 의해서 우리의 참역사는 심각하게 오염된 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현행 국사교과서는 일제가 한민족 혼을 말살할 목적으로 편찬한 <조선사>에 뿌리를 두고 있어 국사책이 아닌 정신적 독극물이다. 한국은 현재 정치적으로는 독립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제가 만들어 놓은 <조선사>에 기초한 국사교과서를 국가가 앞장서서 강요함으로써 아직도 일제식민통치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정기(고려정신)도 계속 말살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매국노 땅 소송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고 법관도 이들의 손을 들어 준다. 또한 매국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살고, 가산을 팔아가며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하면 3대가 헐벗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에 왜국은 대 놓고 독도를 침탈하고 있고, 왜곡 조작된 국사교과서를 먹고 자란 정치권과 정부는 왜구에게 참역사 의식을 상실한 체 맥없이 끌려 다니고 있다.
경기양주 옥정리 선돌-고인돌과함게 이집트오벨리스크,영국스톤헨지등의 원조
이집트나일강 룩소신전앞 첨탑오벨리스크-한반도 선돌이 오벨리스크의원조다.
하늘과 소통하기위한 상징물로 서양열강들이 대부분 약탈해가서 자기네 도시에
세워놓고 있다.미국의워싱턴 광장에도 거대한 첨탑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2.한민족 역사 왜곡조작의 폐해
민족정신의 토대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 한민족역사 왜곡조작은 한민족의 정신세계에 심각한 문제를 촉발시켰다. 역사왜곡조작은 사대주의를 낳았고 한민족을 뿌리 없이 방황하는 정신적 유랑민으로 만들어 버렸다.
1) 사대주의事大主義
사대주의란 말 그대로 큰 것을 섬긴다는 뜻이다. 작은 자는 큰 자를 넘볼 수 없고 섬기며 복종해야 하며 자기생각 보다는 큰 자의 생각이 더 우수하니 큰 자를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종살이, 노예살이를 달갑게 받아들여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수동적 피동적인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자기 색깔을 버리고 남이 하는 것을 흉내 내어 따라하자는 것이다. 이 사대주의는 이조시대에 본격적으로 발흥하여 이조시대에는 중화사대주의, 일제침략기에는 일제사대주의, 현대에 와서는 서양사대주의 특히 아메리카(미제) 사대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사대주의 풍토는 우리사회전반에 전염병처럼 번져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2)사대주의의 폐해
사대주의는 주인이면서도 종, 노예로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자기정신이 있으면서도 남의정신을 마치 자기정신인양 가져다가 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원래는 호랭이인데 고양이로 살려고 하는 것이고 왕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나 거지의 신분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다 보니 한민족은 자기가 주인인지 노예인지, 호랭이인지 고양이인지, 왕자인지 거지인지 헷갈려 혼란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었고 온갖 부정적 병리적 현상으로 고통을 당하며 이런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 체 끝없는 소모전을 반복하고 있다.
첫째, 이기주의의가 판치는 사회로 변해 버렸다. 노예 거지근성이 우리의 심리를 지배함으로써 우리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고 이를 보장받기 위해 가능하면 내 것을 많이 확보해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이는 나하나, 내 가족, 또는 내가 속한 집단만 잘 먹고 잘살면 그 만이라는 심리이다. 이기주의는 더욱 강고해져 이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지역적 이기주의로 까지 발전하였다.
오늘날 집단(지역)이기주의는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 학계 재계 공무원세계 등 자기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국가적 민족적 전체이익과 배치되는 것이라도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기주의가 생활화되면서 자신에게 특별히 이익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막무가내로 우기며 악을 쓴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은 지독한 이기주의로 금이 가 있다. 그러나 본래 우리의 심성은 이렇지 않았다. 한단시대의 고사서인 소도경전본훈(한단고기 태백일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22대 단군 색불루(기원전1285년)때에 풍속은 순박하고 두터운 것을 숭상하고 의로운 싸움에 용감하고, 공동의 이익에 힘쓰며, 공동의 일에는 민첩하며, 공덕公德에는 밝았다. 선업하고 잘못은 바로 잡고 스스로 예의 있고 자애로운 풍속을 이루어 같이 삼신께 돌아와 의지하여 교화되었다’. 즉 민족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민족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였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이기주의는 이씨조선 5백년과 일제36년을 지나오면서 발생한 사대주의의 폐습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사회가 되었다. 노예와 거지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또한 희망과 미래가 없다. 끼니를 해결하고 희망과 미래를 약속받는 길은 주인에게 잘 보이고 환심을 사야한다. 그러려면 주인의 눈치를 잘 살펴 두었다가 주인의 맘에 들게 처신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주인이 바뀌면 바뀐 새 주인에게 다시 충성을 해야 한다. 이게 기회주의고 노예와 거지의 운명이다. 반민족적 이씨왕조의 등장과 일제식민통치, 서양세력 그리고 이들에게 부역한 자들에 의한 역사왜곡조작은 사대주의를 탄생시켰고 한국사회를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풍토로 만들어 버렸다.
기회주의 민족반역자들이 우리사회 상층부를 장악함으로써 일반백성들도 이들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닮아가고 중독되어 좋은 게 좋다고 기회주의적 처신에 동조하며 이에 편승하게 된다. 그래서 사안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합리적 이성적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분위기 와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한다. 특히 기회주의 상층부 지배계급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아주 고약한 풍토를 만들어 냈다.
최근 검찰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공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작태를 보이며 국가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집단적 조직적 범죄를 가볍게 처리하며 적절히 타협하고 말았다. 바로 재벌에 대한 관대함이다. 반면에 절도 강도 등 생계형 일반 잡범에 해당하는 개인적 범죄에 대하여는 시퍼런 칼을 들이대고 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풍토는 자기보다 못하거나 못사는 사람에게 어설픈 주인행세를 하며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서슴치 않게 만들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과거 왜인들의 한국기생관광을 저주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당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인지 쥐나국이나 동남아의 저개발국가에 가서 왜인들이 하듯이 기생관광을 하며 온갖 엽기적인 행태로 한국의 위상에 먹칠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다.
잠잠할 만하면 터지는 초대형금융범죄, 정.관계 재계를 아우르는 천문학적 비자금 사건 모두 기회주의가 낳은 자업자득이다. 국가경제를 좀먹고 제2,제3의 환란을 야기 시킬 이러한 초대형범죄는 우리사회가 지금 어떤 자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라 하겠다. 겉으로는 정의와 국민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외치지만 뒷구멍으로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아부와 협잡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중적 위선적 변태들이 한국을 말아먹고 있다.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우두머리들이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기는커녕 뒷구멍으로 온갖 불법을 저질러 놓고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할 때는 무책임하게 도주해 버림으로써 기회주의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래놓고 이 죄 때문에 감옥에 갈 듯하면 사회에 몇 천억 기부하겠다고 하며 죄 값조차도 돈으로 사려는 아주 저질스럽고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경북칠곡의 선돌-고인돌과함게 세계거석문화의원조
셋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사대주의는 주인이 아닌 노예정신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주인만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지지 노예는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한국사회 상층부를 장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득권 매국노세력이 앞장서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화와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재정을 좌지우지 하며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함부로 쓰거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 각종정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되는 일을 벌려 놓는다. 고속철도사업, 청계천사업,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새만금 사업 등이 그것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는 특히 심각하다. 이것은 대권욕과 탐욕에 찌든 정치꾼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무책임한 사업인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만 수십조원이다. 새만금은 담수호로 유지되고 제2의 시화호가 되지 않게 하려면 상류의 강에서 유입되는 각종 공장, 생활하수를 정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새만금 사업 자체 비용을 제외하고도 추가로 지출되는 비용이 이 정도다. 따라서 투입대비 수익을 볼 때 처참하다. 정부는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둘러대지만 이미 국가적 대재앙은 시작되었다고 봐야한다. 사태가 이러한데 지금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편 1993년에 우루구아이 라운드라는 것이 열려 한국도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였다. 특히 쌀 시장은 한국도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유예기간을 주며 일정한 시기에 전면 개방하라는 것이다. 그때 농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에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며 전국적으로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치권과 정부는 농민들을 안심시키며 쌀 시장만큼은 절대 개방하지 않겠다고 천연덕스럽게 약속을 하면서 쌀을 제외한 농산물에 대한 급조한 각종정책을 요란하게 내놓았다. 그런데 그 유예기간이 지난 지금 그런 정책은 모두 실패하고 쌀 시장 개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전무한 상태로 개방을 맞이하고 있다. 책임지고 대책을 세우고 추진하겠다던 자들은 지금 일선에서 모두 은퇴한 상태다. 그리고 얼마 전 아메리카 쌀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농민들은 애써 수확한 쌀을 길바닥에 뿌리며 사생결단식의 저항을 하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우리에게는 어느새 상호혐오주의, 자학적 허무주의, 패배주의, 낙담좌절, 피해의식, 남 헐뜯기,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하기, 왜소주의, 불신풍조, 망각주의, 엽전근성, 아첨과 아부 문화가 자리 잡았고 불확실한 미래와 기약 없는 생활에 민족성은 급한 성격에 분위기에 휩쓸리고 다혈질적이고 즉흥적인 냄비근성으로 변해 버렸다. 이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독도문제다. 정신적으로 아직 야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섬나라 원숭이 떼, 왜족이 2006.3.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며 범 정부차원으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공식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는 1년 전에도 그랬듯이 신문방송이 앞을 다투어 격한 분노를 표출하고 관련전문가 데려다가 토론회 몇 번하고 만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단기적 자극적 대책만 내놓으며 이로 인한 정치적 이해득실만 저울질 한다. 정부도 주한일본대사를 불러서 항의하고 주일한국대사도 왜국정부에 찾아가서 따지는 정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잠잠하다.
왜족은 이러한 한국인의 냄비근성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더욱 노골적으로 독도침략을 치밀하게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미있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왜국은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고발한 일제의 구한말 한국침탈 수법을 오늘날 독도침탈에서도 그대로 써먹고 있다.
3. 한민족이 나아갈 길
이와 같이 우리는 나라 안에서 사대주의에 중독되어 이기주의 기회주의 냄비근성으로 혼돈의 늪에서 해매며 자학적 소모전으로 표류하고 있는데, 나라밖에서는 다시금 세계사가 재편되는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아메리카 중심의 세계가 새로이 떠오르는 차이나(중국)와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아메리카(미제)가 인도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아시아가 다시 세계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는 머리산업(소프트웨어산업) 차이나는 몸둥아리 산업(하드웨어산업)으로 세계역사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까지 일본과 아메리카를 제외한 국제경제관계에서 한국은 비교우위를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의 건재함과 차이나와 인도의 성장으로 우리의 설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한편 조선반도 정세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북한의 김씨조선은 김정일과 소수 공산당세력의 정권유지에 매달림으로써 조선반도 전체 한민족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차이나족은 이를 틈타 다시 김씨조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북한지역의 지하자원을 독점하고 경제 원조를 한다는 명분으로 물질적 문화적으로 김씨조선에 대한 지배를 가속화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내외적 상황을 보건데 가히 제2의 구한말이 찾아온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민족정신의 토대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 우리의 역사는 왜곡조작 되었다. 그리고 심각하게 오염된 역사를 우리는 지금까지 참된 역사로 배워왔고 그 결과 사대주의라는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주인이기보다는 노예정신으로 살아왔고, 왕자이기 보다는 거지정신으로 살아왔으며, 호랭이가 아닌 고양이의 삶을 강요받아 왔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오늘날 끝없는 혼란과 병리적 현상 그리고 이로 인한 고통과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본래 주인이요 왕자요 고양이가 아닌 호랭이라고 알려주는 우리의 참역사를 확인함으로써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와 혼란을 걷어내고 우리가 바라는 삶을 신명나게 꽃피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전환기를 맞이하여 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다시금 우리가 이를 주도하고 나아가 세계역사를 이끌어 가는 하늘자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심우량님, 황박사님 카페에서 뵙고 오랜만에 이 곳에서도 뵈니 반갑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