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농하는 아들./ 엄상익변호사
이십 오년 전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었다.
인간을 수직적 체계에 몰아넣고 공부와 일등만을 추구하는 한국적 교육 현실이 싫었다.
아들은 농부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 얼마 후 유학 간 아들을 보러 갔다 온 아내가 말했다.
“이 녀석이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고 해서 몰래 가봤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햄버거를 만들고 손님이 가면 지저분한 탁자를 닦고
대걸레로 화장실을 반들거리게 닦는 거예요. 정신없이 일하니까
엄마가 온 것도 모르고 있더라구요.”
그 몇 년 전만 하더라고 장난감 로봇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면서
떼를 쓰던 아들이었다.
아들이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모처럼 아들이 있는 터론토로 갔었다.
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밖에 나가지 마세요. 햇볕이 뜨거워서 사람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요.
며칠 전에도 일사병으로 사람이 죽었어요.”
아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일하러 나갔다.
잠시 후 중고 자동차 판매장에서 일하는 아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넓은 땅 위에 수백대의 자동차들이 햇빛을 퉁기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의 삼층 주차장 건물은 차를 보러 온 사람들이 타고 온 차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감색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아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비지땀을 흘리며
차들을 반들반들하게 닦고 있었다. 그러다 고객이 오면 얼른 손님의 차를 몰아
주차장 건물 옥상에 가져다 놓고는 철계단을 따라 숨이 차도록 뛰어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아들이 나를 보고 자랑했다.
“나 이제 일하면 아빠 엄마 먹여 살릴 수 있어.”
아들은 유학을 가서 정직한 노동과 땀의 의미를 배우고 있었다. 아들이 덧붙였다.
“아빠 여기서 영어를 할 줄 모르면 시간당 6불짜리 노동자예요.
그런데 영어를 하고 전기기능공 자격증을 따면 시간당 275불 받아요.
결국 공부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요.
그래서 비디오를 빌려다 사투리나 슬랭까지 귀에 들어오도록 밤새 듣고 또 들었어요.”
아들은 왜 공부해야 하나를 몸으로 깨닫는 것 같았다.그 주일 가족이 터론토의
한 교회에 갔었다. 그 교회의 벽에는 처음 보는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목수인 요셉이 아들인 예수에게 톱질을 가르치는 장면이었다.
예수님은 평민이고 노동자였고 목수였다. 그가 그림 속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동이 행복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아라. 일하지 않는 것은 고통이다.
우두커니 앉아서 인생에 관하여 묵상하고 있는 것은 고통이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
돌이켜 보면 나도 어린 시절 틈이 나면 가족과 함께 일을 했다.
그 시절은 아이까지 온 가족이 합쳐서 일을 해야 입에 밥이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품팔이 뜨개질을 했다. 남이 입던 낡은 세타를 가져오면 그 실을 풀어서
새 옷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풀어진 실에 초를 먹여 깡통에 감는 일을 도왔다.
할아버지는 양복의 부품을 만드는 일도 했다.
가죽을 톱니가위로 반달같이 잘라 양복의 겨드랑이 부분에 붙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부품에 금박으로 글씨를 박는 수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뒷골목에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주위의 변호사들을 보면 과거에 별별 노동을 다 한 것 같다.
어떤 변호사는 용접공 출신이라고 하면서 지금도 용접경연대회에 나가면
일등을 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어떤 변호사는 비닐 슬리퍼 장사꾼을 하면서
절대로 찢어지지 않는다고 사기를 친 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나는 변호사를 지식노동자로 정의했다.
나의 작업실을 법률문서공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댓가를 받으려고 노력해 왔다.
변호사를 하면서 인간 시장을 구경하면 일하지 않는 하얀 손들이 많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노인이 될 때까지 땀을 흘리며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이 입으로는 세상에 대해 더 목청을 높였다.
노동을 모르는 그들은 추상이고 헛된 관념이고 그림자였다.
카페의 바닥을 청소하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글을 썼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보면 페이지 마다 독특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 같다.
시장에서 닭을 튀긴다고 하면서 깊은 의미가 담긴 댓글을 보내주는
‘치킨맘’이라는 분도 있다.
노동은 축복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