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의 「눈송이 당신」 감상 / 김겸
눈송이 당신
문정희
처음 만났는데
왜 이리 반갑지요
눈송이 당신
처음 만져보는데
무슨 사랑이 이리 추운가요
하지만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 같아요
발자국도 없이 내 곁에 온
하늘의 숨결
눈송이 당신
슬며시 당신을 좀 먹고 싶어요
당신의 눈부심을
당신의 차가움을 혀로 핥고 싶어요
이윽고 당신의 눈물과 함께
깊이 땅속으로 녹아들고 싶어요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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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화자는 눈송이를 당신으로 호명하며 이를 관능의 대상으로 매개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만져보자 그 차가움에 “무슨 사랑이 이렇게 추운가요”라고 말하지만 이내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라고 수긍한다. 보통 사랑은 뜨거움이라는 감각과 연결되는데, 이 시는 이러한 상투성을 거부하며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처럼 “발자국도 없이 곁에 온/ 하늘의 숨결”인 눈송이 당신과의 차가운 사랑을 꿈꾼다. 당신의 차가움을 긍정한 나는 이윽고 너를 먹고 싶다 말하며 “당신의 눈부심을/ 당신의 차가움을” 핥고 싶다는 농밀한 육감(肉感)을 표한다. 이윽고 당신이 나에게 녹아 눈물이 되면 “땅속으로 녹아들”어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다. 대지의 생생화육하는 모든 물생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비에 젖어 그와 하나 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역시 화자가 눈송이와 맺고 있는 관계와 유비적인 자리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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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겸 /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 평론집 『비평의 오쿨루스』 등.
첫댓글 이 시에서 화자는 눈송이를 당신으로 호명하며 이를 관능의 대상으로 매개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만져보자 그 차가움에 “무슨 사랑이 이렇게 추운가요”라고 말하지만 이내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라고 수긍한다. 보통 사랑은 뜨거움이라는 감각과 연결되는데, 이 시는 이러한 상투성을 거부하며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처럼 “발자국도 없이 곁에 온/ 하늘의 숨결”인 눈송이 당신과의 차가운 사랑을 꿈꾼다. 당신의 차가움을 긍정한 나는 이윽고 너를 먹고 싶다 말하며 “당신의 눈부심을/ 당신의 차가움을” 핥고 싶다는 농밀한 육감(肉感)을 표한다. 이윽고 당신이 나에게 녹아 눈물이 되면 “땅속으로 녹아들”어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다. 대지의 생생화육하는 모든 물생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비에 젖어 그와 하나 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역시 화자가 눈송이와 맺고 있는 관계와 유비적인 자리에 놓인다.
-김겸/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 평론집 『비평의 오쿨루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