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선수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논란을 일으키려는 글이 아닙니다.
*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쪽지로 알려주세요. 확인 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프로필]
이름 : 박지성(朴智星)
생년월일 : 1981년 2월 25일
출생지 : 대한민국 고흥
국적 : 대한민국
포지션 :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 : 178cm, 73kg
[소속팀 & 스탯]
2000~2003 교토 퍼플상가(일본)ㅣ85경기 12골
2003~2005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ㅣ92경기 17골
2005~20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ㅣ205경기 27골
2012~현재 퀸즈 파크 레인져스(잉글랜드)ㅣ25경기 0골
[국가 대표 & 스탯]
1999~2004 대한민국 U-23ㅣ23경기 3골
2000~2011 대한민국 Aㅣ100경기 13골
[소개]
1981년, 대한민국 고흥에서 태어난 박지성은 1990년에 세류초등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시작하였다.
박지성은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엔 세류초등학교를 전국초등축구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덕분에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안용중학교와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친 박지성은 1999년에 명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박지성은 1년 뒤인 2000년에 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연봉 5000만엔의 조건으로
일본의 클럽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 : ryan-jihoon.blogspot.com)
박지성은 2000 시즌에 리그 13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프로 데뷔 시즌을 보냈으나
교토는 J2리그(2부리그)로 강등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박지성은 2001 시즌에 리그 38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 활약으로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교토는 박지성의 활약 덕분에 한 시즌만에 J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후로 한 시즌간 리그 25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은 박지성은 2003년 1월에 네덜란드의 클럽 PSV 에인트호번과
3년 6개월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무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사진 : sportopic.tistory.com)
그러나 유럽 무대에 입성한 기쁨은 잠시뿐이었고 박지성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며
반 시즌동안 리그 9경기에 출전했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기 시작했고
2003-04 시즌에 폼을 끌어올리며 리그 28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었다.
2004-05 시즌엔 더욱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리그 28경기에 7골을 넣었고
팀의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행을 이끌며 에인트호번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시 박지성의 활약은 안드리 솁첸코, 아드리아누 레이치 히베이루(現 CR 플라멩구),
사무엘 에투, 호나우지뉴 가우슈와 함께 UEFA 최고의 공격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을만큼 대단했다.
덕분에 잉글랜드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 영입에 관심을 나타나게 되었고
2005년 7월 14일에 400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맨유에 공식으로 입단하였다.
(사진 : 중앙일보)
2005년 8월 13일에 에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경기에서 맨유 데뷔전을 가진 박지성은
그 후로 리그 33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으며 에인트호번 시절의 저돌적인 모습을 재현해냈고
2005년 12월 21일에는 버밍엄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맨유 데뷔골을 넣었다.
2006-07 시즌엔 발목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오르며 리그 14경기에 출전했지만 5골을 넣으며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해냈고
팀의 리그 우승에도 일조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 4월에 치명적인 무릎 부상이 발견되어 다시 한번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고 약 1년동안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사진 : 뉴시스)
2008년 3월 1일에 부상에서 돌아온 박지성은 그 후로 리그 12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었고
부상에서 갓 회복한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돌적이고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맨유에서 두 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9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특히 바르셀로나와의 4강 1, 2차전에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을 결승전 무대로 인도하였다.
아쉽게도 첼시와의 결승전에 출전하진 못했으나 박지성의 활약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했다.
그 후로 네 시즌동안 리그 74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은 박지성은 자신의 우승 커리어에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를 추가하였고
2008-09 시즌에 아시아인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였다.
박지성은 일곱 시즌동안 맨유의 13번 유니폼을 입고 205경기에 출전해 27골을 넣으며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세웠고
2011-12 시즌이 종료 된후에 프리미어리그 하위권 팀인 퀸즈 파크 레인져스(QPR)와 2년 계약을 맺으며
오랫동안 몸담았던 맨유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사진 : OSEN)
그러나 박지성의 도전은 악몽이 되고 말았다.
스완지와의 리그 개막전 경기에서 QPR 데뷔전을 가졌지만
팀은 0-5 참패를 당하고 말았고 그 이후로 리그 19경기에 출전하였지만 QPR은 최악의 졸전을 거듭하다
결국 프리미어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풋볼 리그 챔피언십(2부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박지성은 시즌 막판에 사우스햄튼, 선덜랜드, 빌라와의 리그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강등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박지성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현재 박지성은 새로 이적할 팀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아시아, 중동, 미국, 호주의 몇몇 클럽들이 박지성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사진 : zimbio.com)
국가 대표에선 2000년 4월 5일에 라오스와의 AFC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A팀에 데뷔전을 가졌고
그 후로 A매치 99경기에 출전해 13골을 넣으며 대한민국 역대 8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또한 세 번의 FIFA 월드컵(2002년, 2006년, 2010년)과 두 번의 AFC 아시안컵(2004년, 2011년)에 참가한 경력을 갖고있으며
2000년과 2002년에 U-23팀 소속으로 시드니 올림픽과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경력을 갖고있다.
2011년 1월 31일에 A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박지성은 주로 측면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넓은 활동 반경과 엄청난 활동량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해 전문 수비수 못지 않은 수비력을 선보인다.
또한 수준급의 볼키핑 능력, 공격을 전개시키는 움직임, 볼 커팅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 플레이보단 팀 플레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도 상당히 능숙하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박지성의 능력을 더욱 극대화 시켜주며
측면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낸다.
[우승 경력]
# 교토 퍼플상가
일왕컵 우승(2002년)
#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지에 우승(2003년, 2005년)
KNVB컵 우승(2005년)
요한 크루이프-실드 우승(2003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우승(2007년, 2008년, 2009년, 2011년)
리그컵 우승(2006년, 2009년, 2010년)
커뮤니티 실드 우승(2010년, 201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2008년)
FIFA 클럽 월드컵 우승(2008년)
첫댓글 화이팅ㅋㅋ
지느~♥
QPR에서 이제 팀의 중심으로 큰 건 하나 터뜨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물론 맨유 시절도 팀의 주축이긴 했지만 조연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는데...팬심 담아서 이제 정말 팀의 중심에서 멋진 모습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성이형 화이팅ㅋㅋ
내영웅
♥♥♥♥♥
단순히 선수 소개하는 글이 아닌거 같은데요. 이것은 지느님 찬양글.txt
지느님
지느님 화이팅~!!!
지느님♥
지느님은 사랑입니다~!!
♥지느♥
♥
사랑해요♡.♥
지느님♥
지느님은 사랑입니다♥
지성... 지성이형 좋아한지 어느새 12년이 되었군..
지느님 ♥
나의 영웅 캡틴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