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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9. 15. 오늘의 양식 : 교회란 무엇인가? - 목회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 350 우리들이 싸울 것은
88 내 진정 사모하는
381 나 캄캄한 밤 죄의 길에 --------------------------------------
3. 신 앙 고 백 ---------- 사 도 신 경--------------------------------------------------------
4. 찬 송 ---------- 426 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
5. 기 도 ----------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 벧전 2: 5-9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 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7. 설 교 ---------- 교회란 무엇인가? - 목회
IV. 교회와 신학의 만남의 장이 되는 목회
1. 목회란 무엇인가?
앤더슨 교수는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계시와 화해의 사역을 세우신 하나님 자신의 기초적인 역사에 나타난 목회의 근본적 공식을 찾게 되는 질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말씀 및 행위를 묻지 않고서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목회란 첫째로,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주어진 계시(말씀)과 화해(응답)의 상호 참여로써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해해야 하며,33) 다음으로 모든 목회는 하나님의 목회이며 아버지의 뜻인 화해의 역사를 이루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일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최상의 목회자이시며,34) 끝으로, 성령께서는 우리의 목회를 계속시키고 있다고 하였다.35)
1) 목회의 의미
목회는 목자가 양을 치듯이 영혼의 목자인 목사가 양과 같은 신자들을 진리의 가르침으로 가르치며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36)
첫째, 목회의 어원적 의미 ;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목회라는 용어가 쓰여졌고, 목사라는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가 다 목회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어원적 기원은 포이메닉스( )라는 말이 포이멘()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그 뜻은 양 떼를 먹이고 돌본다는 동사에서 왔다.37)
둘째, 성서적 의미;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이 양들을 돌보기 위해 제사장, 선지자, 왕을 세워 그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축복하고, 재판하는 일로 백성들을 돌보는 사역을 담당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주님께서 양을 먹이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는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셔서 목회의 사역을 담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성서의 중심은 구약의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목자로써, 계시하셨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선한 목자로 계시되어 있다.
결국 하나님 자신이 직접 온 인류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목회의 성서적 의미는 내용상 구원의 메시지인 복음을 선포하여 양들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며 형태상으로는 말씀 안에서의 봉사이다.
셋째, 목회의 신학적 의미 ;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목회에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는데, 그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심이라.(엡 4:11)는 말씀에서 목회의 신학적 의미를 찾고, 교회의 기능이 곧 목회적 동기임을 말하였다38)
2) 목회 사역의 본질
첫째 : 들어가는 말
기독교 역사는 확장과 내적 충실이라는 두 경향을 항상 그 특징으로 삼고 발전해 왔다. 특히 19세기에는 확장의 물결이 거세었다.1) 선교 2세기를 맞이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불과 100년의 짧은 선교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열심과 순교의 피를 뿌리신 신앙의 선배들의 피 위에서 한국교회는 놀라운 교회부흥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이 100년의 한국교회 역사는 무려 130 여개나 되는 교단을 생성하는 세계교회 역사상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어놓은 죄요 우리에게 있어서 극복해야할 부끄러움이라 하겠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아시아 제일은 물론 2000년 대에는 세계적 교회로 성장하리라는 예견들을 받고2) 있으며 이것은 한국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이며 감사의 제목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한국교회에 이같은 축복을 허락하셨을까?”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 앞애서 분명히 회개해야할 부분이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또 그들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열방이 있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부르셨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선택된 민족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된 우리를 그의 기이한 덕을 선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성도를 부르신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 되는 선교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으며 어떤 사역을 하고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하여야할 것인가?
2000년대 세계 선교는 한국교회에 달려있다.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듣고 있다. 그것은 우리 내부의 이야기만이 아닌 세계교회가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지금 한국교회에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는 바로 하나됨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자로 중보자로 오셨다. 바로 그 주님을 전하는 교회는 하나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관점에서 19세기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 불려지는 이 시기3)에 선교의 현장에서 제기되었던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요청들과 그 요청에 대한 결과로 탄생하게 되는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해 살핌으로 21세기 한국교회의 과제에 대한 대안점들을 찾으려 한다.
연구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그 한계
나는 먼저 이 글의 목적과 한계를 교회일치를 위한 대안의 탐색에 한정시키고자 한다. 그와 같은 한계설정에 의해 나는 1948년 이후 W.C.C.의 변화에 대해 취급하는 것과 19세기 이전의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 살펴보려는데 그 목적을 두지않을 것이다.
즉 나의 연구는 에큐메니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을 통한 한국교회 일치를 위한 시사점 찾기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다. 나는 먼저 에큐메니칼이라고 하는 용어의 의를 그 변천 과정에 따라 살펴보고 현대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태동과 그 태동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흐름들과 특징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의 형성에 대해 에딘버러 선교대회와 그 특징 사항, 신앙과 직제운동을 통한 교리와 의식의 문제, 사회개혁의 생활과 봉사 운동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W.C.C.헌장을 통해 세계교회협의회의 기능과 성격에 대한 정의에 대해 고찰하며 결론적으로 오스카. 쿨만의 “다양성을 통한 일치”를 통한 한국교회 일치에 대한 방안을 찾고자 한다.
몸 말 :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적 고찰
1. 에큐메니칼의 용어와 그 역사
에큐메니칼이란 용어는 희랍어 “oikoumene”에서 생긴 것인데 신약에 이 말이 14회나 나타나 있다. 그 뜻은 대체로 두 가지 곧 특수한 문화적, 정치적 의미가 없이 단순히 “온 세계”라는 뜻으로 쓰인 것과 “제국과 같은 큰 정치적 단위”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 말을 “온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랜데 가장 근대적인 사건으로는 1910년 영국 에딘버라에서 모인 선교 대회이다.1)
에큐메니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하나됨과 세계 선교에 관계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나누어서 그 쓰인 용례를 보면 대략 일곱 가지 정도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온 세상에 관련된 것과
둘째는 로마제국 전체와 관련된 것,
셋째 교회 전체와 관련된 것,
넷째 보편적인 교회론적 유효성을 갖고 있는 것,
다섯째 교회의 전세계적인 선교적 확장과 관련된 것,
여섯째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교회들간의 또는 여러 교파들에 속한 기독교인들 간의 관련된 것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하나됨에 대한 자각과 그 바램을 표현하는 내용 혹은 태도로 구분할 수 있다.2)
히브리서에서는 대비적 요소로 나타나고 있는데 참된 오이쿠메네는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로마 제국)이 아닌 “그리스도의 왕국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와있다.4)
초대교회의 몇 세기 기독교 저작물에서 세상 또는 가끔 제국이란 표현을 했으며 폴리캅의 순교에서 처음으로 교회와 관련되어 사용했다.5) 그러다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니케아 공의회를 처음으로 에큐메니칼 대회로 언급하면서 공식적인 교회 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교회 전체에 걸쳐서 권위있고,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9세기와 그 이후 내내 이 용어는 “지리적 의미, 또는 교회적 의미”로 계속해서 전통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00년 뉴욕에서 에큐메니칼 세계 선교사 대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이때 에큐메니칼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2. 현대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태동
18세기 말 10년 동안과 19세기의 초엽에 많은 선교회들은 근대 선교 상호협력의 새롭고 장려할 만한 고안들을 순수한 필요에 의해서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선교단체들이 큰 세력을 지니게 되었고, 교파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괄목할만한 일련의 사실들에 의해 선교협의회의 전체성이 사라지고 그러한 사실들은 국제선교협의회의 배경으로 남지 않으면 안되었다.6) 19세기는 교파들의 연합과 사귐의 필요성을 피선교 지역의 선교현장에서 느끼기 시작했다.7)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세계에 교회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는 하나이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이어야 할 교회의 통일성을 제시하지 못한채 분열된 교회의 다양성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교 현장에서 교파주의의 한계를 깨닫게된 선교사들은 교파의 분열이 복음 증거의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따라서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협력과 협의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교사역과 사회봉사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에큐메니칼화 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일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시작하지는 않았으므로 교회 일치에 관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근본적인 기독교 일치를 모든 진실한 기독교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공유하고 그 공유를 통해 하나가되며 이 하나됨은 본질적인 기독교의 일치라고 생각하였다.8)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들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선교의 협력을 요구하는 문제들에 직면하였다. 이것은 도움이 되는 정보와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방법이 되었다. 고국을 떠나온 선교사들은 모임을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며 분명하게 이러한 모임들이 1910년 에딘버러 대회의 중요한 의제가 되었고 친교의 선례들은 1910년 에딘버러 대회를 위한 규정이 되었으며 에큐메니칼 대회들이 후속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3.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초가 되는 흐름들과 특징
이 초교파적인 조직체 형성 중에서 가장 처음되는 일이면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이 외국 선교 기관의 출현이다. 선교지역에서는 제 교파의 정당성 같은 것을 가지고 피차 경쟁을 할 형편이 못 되었다. 가능한 대로 협조하고 상호 신뢰하면서 사업을 진행시킬 도리 밖에 없었다. 선교전선에서는 이처럼 처음부터 보람있는 초교파적 협조가 실현되었고, 교파의 자기의식에 법과 다른 차원의 생각이 양상되기 시작했다.9)이와같은 배경에서
첫 번째로 세계 선교 운동이 하나의 공동의 목표를 위한 일치를 원했다. 즉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단체들의 공동전선이라는 의미의 일치이다.
둘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이 진행된 활동의 영역은 청년 사역과 기독교 교육이었다. 교파에 관계없이 시작된 최초의 이러한 운동은 1886년 런던에서 윌리엄즈가 시작한 YMCA이다. 같은 해 같은 곳에서 YWCA가 조직되고, 1894년에는 그 세계연맹이 형성되었다.
다른 하나의 운동은 무디의 하기 캠프에서 1886년 조직된, 외국 선교를 위한 학생 자원운동이다. 여기서 장차 에큐메니칼운동의 지도적 위치의 인물들이 배출되었다.10)
세계기독교교육운동도 교회일치운동에 공헌이 컸다. 학생운동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평신도가 주로 되어 이끌어 갔다.
에큐메니칼운동의 셋째 영역은 기독교적인 사회봉사와 원리적 활동의 연합과 협조 사업이었다. 이런 계통의 운동들은 총괄해서 후에 생활과 사업이란 명칭이 붙여졌다.11)이 운동은 1925년 스톡홀롬에서 첫 번째 회합을 가졌다. 서로 갈라져 위태한 지경에 빠져 다투고 있는 세계 속에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겠다는 의지에서 그들의 목표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공동협력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 교리는 분열을 가져오나 봉사는 단합시킨다.” 라는 표어를 가지고 새롭게 강한 모습으로 출현하는 반기독교 세력에 대항하고 각 나라에서의 정치적 통일노력에 어떤 정신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12)
에큐메니칼 운동의 네 번째 영역은 다른 분야에서라고 할 것 같으면 직접 대결하지 않아도 되는, 교리적 차이의 문제의 해결과 그 의미를 발굴하는 영역이었다.13) 이는 1927년 로잔느에서 첫 회합을 가졌다. 그들은 일치를 향한 길은 토론에 의한 교파적 차이성의 극복이라고 증언했으며 무엇보다도 신학적 연구는 차이있는 전통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포괄적인 공동체 안에 이끌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14) 이 회의에서는 솔직하게 각 교회 간의 신학적 차이가 논란되었는데, 놀랍게도 피차의 교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치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15)
이런 네 가지의 흐름에 대해 워커 사가는 여섯 가지를 20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19세기의 이정표라고 본다. 즉, 선교활동, 기독교 청년의 운동과 기독교 교육, 봉사와 윤리 행동, 교리의 일치운동, 교회의 유기적 연합, 교파들 내의 일치와 연합, 그리고, 한 교파의 일치와 연합이다.
이상과 같은 주요한 교회 일치의 흐름 속에서 WCC의 기반이 되는 세대들은 1927년 로잔느에서 WCC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맹아를 획득했다. 즉 각 교회의 유산에 충실하는 것이 필요한 예비조건이지 그것이 결코 에큐메니칼 운동의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치는 교파의 차이를 가져오면서 분열된 교회의 신앙고백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들은 상호간의 현존하고 있는 상호간의 문제들을 교정할 수 있으며 성서의 증언에 대한 공동적인 검증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16)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569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
10. 폐 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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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이랍니다.
어머니에 조건 없는 사랑, 우리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