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대표적인 선비로 목은
이색(牧隱 李穡)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4세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여 세인을 놀라게 한 뒤 원나라에
건너가 회시(會試)에 1등을 하고 황제가
친히 임석하여 실시하는 전시(殿試)에도 2등을 차지해
중국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당시 원나라 제일의 문장가로 회자되던 구양현(歐陽玄)도 목은의 글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귀국하자 공민왕은 그를
중용했는데, 목은이 입궐하면 왕이 자리를 정돈한 뒤 향까지
피워놓고 그를 맞았다고 한다. 성균관이 중영(重營)되어
판개성부사로서 성균관 대사성을 겸한 그는 정주
성리학을 진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김구용, 정몽주, 이숭인, 정도전, 권근 등 당대의 선비들이 모두 목은 밑에서 학덕을 쌓았다.
“반드시 말할 것은 반드시 말해야(必言必言)”
역사 속의 대 선비를 언론사상의
선구적 학자로 꺼낸 이는 《한국일보》논설위원을 지낸
김용구(金容九)다. 그는 그의 명저 《언론사상연구》에서
처음으로 목은의 필언필언(必言必言) 사상을 소개했다. 제자가 글을 쓰는 법을 묻자 목은은 아주 짧게 답했다.
“반드시 말할 것은 반드시
말하고, 반드시 쓸 것은 반드시 쓸 것이다. 이뿐이다.(必言必言 必用必用 止矣)”
글을 쓰는 데도 그러려니와 언론을
펴는 데도 금과(金科)로 삼을 만한 명언이다. 선비는
목에 칼을 들이대도 할 말은 해야 한다지만 언론
역시 어떤 압제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색의 이런 말을 찾아낸 언론인 김용구에게 후배들은 감사드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필언필언을 실천하는 데는
뜻밖의 어려움이 따른다. 해야 할 말을 하다보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제자가 그 우려를 말하자 목은은 명답을 내놓았다.
“말이라고 꼭 말하지 말고,
쓸 것이라고 꼭 쓰지 않는 것이 삼감이 아니겠는가?(言不必言 用不必用 不亦愼乎)”
여기에 이르면 말하는 법, 언론
펴는 법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하자면 말이 많아지고, 말이라고 다
말하지 않으려면 말이 적어진다. 그럼 말을 많이 해야
하는가, 아니면 말을 아껴야 하는가? 어느 것이 선비의 도이며 언론의 법인가?
중인(衆人)이 나설 때 삼가고, 중인이 침묵할 때 나선다면
이에 대한 목은의 직답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정주 성리학의
대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옛 군자의 행실법도에서 그 답을
대충은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모름지기 군자란
나서야 할 때 나서되 나서지 말아야 할 때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 나서야 할 때 나서려면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 나서지 않으려면 늘상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군자는 중인(衆人)이
나설 때는 제 자리를 지키다가도 중인이 엎드려 있을 때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소신을 밝힘으로써 군자다움을 지킨다.
말도 중인이 나설 때 삼가고 중인이 침묵할 때 나선다면 그것이 목은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 될 것이다.
목은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요즘 우리 언론의 행태 때문이다. 우리 신문이나 방송은
중인이 나설 법하면 선수를 친다. 대통령 탄핵 때는
방송이 요란을 피우더니 며칠 전에는 신문이 법석을 떨었다.
전에는 야당을 초죽음상태로 몰아붙이더니 이번에는
여당이 딱 걸렸다. 이른바 박근혜 피습사건으로 여당은
치명적인 피습을 당했다. 이 회오리의 선두에 있었던 것이 주류 신문이다.
그럼 언론이 바치는 충성의 대상은
중인인가? 아니다. 언론이 섬기는 대상이 장막 뒤에
숨은 주군(主君)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 유력한 언론은 있어도 권위 있는 언론은
없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언론인은 언론을 권력 창출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참된 저널리즘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첫댓글 대학교수님의 얼굴은 안보이고 보일랑 말랑하는 촌장시인님이 그립고 보고싶어 눈앞이 캄캄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