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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팔순을 맞았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동료 사원이었다. 퇴직한 후로도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사이다.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허물이 없다. 그가 가족과 함께 찍은 팔순 기념사진이 카톡에 올라왔다. 사진 속에는 팔십이 된 아버지 옆에서 오십이 넘은 아들딸은 어린아이처럼 어리광 부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뒤에 걸려 있는 ‘팔순’이라는 배경 문구가 없었다면 영락없는 젊은 가족의 생일 잔치 분위기다.
나이는 보는 지점에 따라 느낌과 행동이 다르기도 하지만, 요즘은 오십이 넘어도 늙은이의 티가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지인이 건강하게 팔순을 맞이한 것도 노년의 시작이라고 했던 환갑의 나이와 고희(古稀)라 부르는 칠순을 잘 관리했던 평소의 노력 덕분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문 일이다.
어릴 적, 옆집은 부유한 집이었다. 어르신은 면장을 지낸 분이었다.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볼 때마다 손으로 쓰다듬곤 했다. 허리는 항상 꼿꼿이 펴고 걸었다. 짚고 있는 지팡이는 옻을 칠해서인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들판에 있는 논을 매일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그분의 일과였다. 길을 나서면 머리는 뒤로 젖히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헛기침을 간간이 하곤 했다. 우리들은 그분의 별명을 ‘백두산’이라 불렀다. 밑으로 내린 안경 속의 눈빛은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한참 동안까지 ‘노인’은 무서운 사람으로 알았다.
어느 해, 그분의 환갑잔치가 열리던 때였다. 그 집 마당에는 가마솥이 몇 개나 걸렸다. 앉을 자리가 부족했는지, 겨울철 보리심은 논에도 멍석을 깔아 손님을 받았다. 동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면내에 사는 사람이 다 모인 것 같이 동네가 떠들썩했다. 돼지를 잡고, 소도 잡았다. 돼지 잡는 것은 결혼식이나 초상 때면 가끔 있었지만, 소 잡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소는 집안의 큰 일꾼으로 여겨서 웬만해서는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환갑잔치는 온 동네의 잔치로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사랑방에 앉은 그분은 가족 친척의 인사뿐만 아니라, 면장과 지서장과 같은 지역유지의 인사도 받았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환갑은 오래 살았다는 축하의 인사와 더불어 더 오래 사시라는 축원의 자리였다. 본인에게는 살아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풍성한 잔치이기도 했을 것이다. 잔칫상에 쌓아 올린 음식 높이에 따라 자손의 효심과 장수에 대한 기대를 가늠하기도 했다 한다. 지난 시절, 환갑잔치는 가족 구성원에게는 어느 다른 행사보다 중요하고 기념적인 생일 잔치였다.
환갑 다음 해를 진갑(進甲)이라 하여 새로운 육십 년의 시작을 약속한다. 환갑잔치로 얻은 생명력으로 새로운 십 년의 마디를 만들어 간다라는 뜻이다. 환갑을 끝이 아닌, 향후 또 다른 십 년의 디딤돌이라는 인식이다. 환갑은 순환된다는 수동적 의미를 가진다면, 진갑은 능동적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생동하는 진갑을 통해서 생활의 활기와 마음의 긍정을 만들어 가면 고희(古稀)라는 칠순의 언덕에 안착할 수 있다는 장수 약속이기도 하다.
칠순 이후에는 따로 ‘진(進)’자를 붙이지 않는다. 대신에 ‘망(望)’을 붙이기도 한다. 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제는 스스로 힘을 만들어 가는 것보다는 장성한 자손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로 보았던 것 같다. 가족과 주위 사람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서도 칠십이 되면 사람과의 관계나 사회적 관계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져서, 마음을 따라가더라도 말과 행동이 조화와 균형에 맞을 것이라고 했다.
‘백세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환갑나이는 청장년에 불과하다.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공공연하게 덕담도 주고받는다. 환갑은 노인을 상징하는 효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육십 년이나 살았다고 축하할 대상의 나이는 더욱 아니다. 모두의 축하를 받았던 떠들썩한 환갑잔치는 이제는 사라졌다.
하지만, 숫자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의미를 새겨야 다음 마디로 나아갈 수가 있다고 한다. 육십은 오십 대가 건실해야 설 수 있는 기초 나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모래 위에 쌓은 집이 파도 한 너울에 무너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칠순은 환갑을 기초한 육십 대를 건실히 지켜온 사람에게 보장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팔순은 칠십 대를 기초로 얻어지는 인생의 황금이요 다이아몬드다. 보석은 그냥 얻어지는 법이 없다. 결과는 언제나 원인을 묻고 있다.
어느 때든 자신의 나이를 잊지 않아야, 나이에 걸맞은 건강과 행동, 그리고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인은 겸손한 행동과 온화한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혹자는 십 년마다 고비가 찾아온다고 하며, 아홉수의 나이를 잘 넘겨야 한다고 한다.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다. 십 년을 단위로 삼든 구 년을 단위로 삼든 스스로 세월의 마디에 의미를 둔다면, 의미는 목표를 만들 것이다.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는 나이에는 활력과 행동이 따르게 마련이다. 거대한 목표보다 행동하는 목표가 좋다. 행동하는 목표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흘러가는 시간이 보여서 좋다.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 모임의 비용은 자기가 내겠다는 통 큰 호언이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고스톱도 한판 치자고 했다. 가족의 축복 속에 맞이한 팔순을 자랑스러워하는 지인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