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적어도 내가 벌인 일은 내가 마무리진다,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도 내 일인 이상 내 책임이다가 나의 모토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암튼 이젠 강호동의 천생연분 가지곤 안되겠기에 아즈망가대왕까지 함께보고있다.그러고 보니 생각없이 웃을 수 있다는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나는 삶의 긍정에 대한 증명을 하지 못했다.그리고 부정에 대한 증명도 하지 못했다.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것이 자유의지라는 것을 부각시키게 됐다.자유의지라는 것이 적어도 막연히 관념적이거나 몰라서 대충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알게됐다.
드뎌 대단원의 시즌7이다(갠적으론 이유도 없이 무자게 기쁘다.)인용된 글은 에이프릴풀(해석하면 만우절바보쯤 될까나?)의 엑파리뷰싸이트에서 무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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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함'의 수용 - 그것이 <The X-files> 마지막(일 뻔한) 시즌의 테마다. 사라지는 우주선, 파도에 씻겨가는 모래 우주선, 사라진 영혼들, 남는 영혼들... 손을 뻗쳐 세상에 가득한 공기를 잡을 수 없듯, 끝내 사실로 집적되지 않는 삶의 진실이 있음을 M&S는 수용한다. 진실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임을 - "She's dead. They're all dead"는 멀더가 택한 진실, 그가 내린 closure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긴 잠을 잔다 (스컬리가 깨워야 했을 정도로!). TV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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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콜버그나 에릭슨이 말한 인간성 발달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아날로지다. 인간이 겪는 마지막 위기는 생산성 위기 (generativity crisis), 다시 말해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결혼해 자식을 낳는 것으로 해소한다 (이 '대부분'이란 것 때문에 이것이 인간성의 가장 성숙한 단계로 오인되는 것이다. 파울리가 "It's all childish, Mulder. ...You won't know the true joy of responsibility until you plant your feet in the world and become a father"라고 한 것처럼). 그러나 가장 성숙한 단계는 사실 자아와 세계를 분리하는 것, 즉 자신과 상관 없는 익명의 다수 (=남의 자식, 남의 나라, 후손)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멀더는 생물학적으로는 소년의 부모가 아닐지 모른다. 그에게 걸음을 가르쳐준 것은 멀더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atxfa의 롤리고가 말했듯이 소년은 멀더의 아들이다 - 멀더 아닌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와
우주선을 지어주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파도에 허물어진 모래 우주선에 눈물 흘리는 소년의 아픔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멀더만이 자신에게 모래를 집어던지며 "It's your spaceship. You were supposed to help
me!"라고 하는 소년의 비난에 귀기울였기 때문에.
누군지도 모르는, 혼자 모래성을 쌓고 있는 소년을 걱정하고 계속 찾아가는 것은 약물과 자극으로 육체에 대한 자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가운데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우리의 멀더다. CSM도, 어떤 주술도 앗아갈
수 없는 멀더의 정수 - 그는 깊은 최면의 와중에서도 이 소년의 의미를 알아내려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스컬리의 여정은 동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Folie a Deux'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여정은 멀더가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듦에 따라 약물이나 외부적 유혹/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녀마저 같은 주술의 세계로
잡아 끈다.
보는 사람에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우주선의 문자처럼 (알버트 호스틴은 창세기를, 엔게베는 코란을, 스컬리는 인간 지놈을 읽어 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보는 사람의 욕구에 따라 형상화되는 - in the 'Eye of Beholder' - 동화의 세계다.
따라서 스컬리가 멀더를 구할 수 있는 길은 논리적 해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우주선의 문자를 해독하려 한 것은 그런 시도다), 실제로 적에게 검을 꽂기보다 가슴 속에서 용기를 찾아냄으로써 악을 물리치는 동화의 주인공들처럼, 멀더의 위기를 함께 하고 기도하는 것
이다 ("Have you looked for him here?" "Are you asking me to pray?").
왜냐 하면 이것은 기이한 일들이 인과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기이한 일들 자체로써, 오직 히어로가 지금껏 알던 좌표가 모두 사라진 가운데서도 스스로 좌표를 세울 수 있는가 - 삶의 "touchstone"을 찾아낼 수 있는가 - 를 시험하기 위해 존재하고 발생하는 내면의 세계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멀더를 찾아낸 스컬리가 왜 들것이나 카트를 끌고 와 그를 옮기려 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라고 호소하는지, 뇌수술로 "기적의 유전자"를 빼앗긴 채 내버려진 멀더가 어떻게 스컬리의 포옹 한 번에
소생하는지 따져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And you believed him. Traitor. Deserter. Coward!"란 스컬리의 질책에 CSM의 꿈을 박차고 나올 힘을 찾은 멀더처럼, 스컬리는 믿었던 세계 (=과학이라는 질서)가 모
두 산산조각난 가운데서도 멀더라는 방향타를 따라 생의 좌표 - 기도 - 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눈물 방울마저 함께 흘리는 (의도적 연출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서로'라는 이정표를 찾아낸 그들은 주술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FtF의 Near-Kiss 씬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복도 씬은 <x파일>에서 기대할 수 없던, 기습적일 만큼 조용하고 안정된 정서적 종결(emotinal closure) - 내러티브적 종결은 아니지만 - 을 보여준다. "your friend"라고 하긴 했지만 실은 멀더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확신할 수 없는 다이아나 파울리의 죽음을 전하며 일종의 사과를 하는 스컬리에게 "Even when the world was falling apart, you were my constant... my touchstone"라고 하는 멀더의 목소리는 FtF에서보다 훨씬 확고하다.
이마에 긴 키스를 남긴 뒤 "다음에요" 하듯 그의 입술을 어루만지고 간 스컬리 뒤를 쫓아가지 않을 만큼 스컬리의 마음도 확신한다. 대신 그는 눈을 감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간다. 스컬리를 사랑하는 한 자신에게 생물학적 번식의 기회가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년과 모래 우주선에 마지막 장식을 함께 하는 멀더의 행복한 모습은 그가 그런 인생에 만족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생산성은 뭔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Be fruitful,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Biogenesis)" 하진 못해도, 우주선 (= 물증 = 성과 = 업적)이 사라진 자리에 곧 씻겨 없어질 모래 우주선을 쌓고 소년 (= 약자/낙오자/패배자 = 익명의 타인)의 욕구를 보살핌으로써 업적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성의 약한 수호자가 되는 것, 그것이 그가 후세에 기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극히 감동적인 것은 6E I/II가 멀더가 희생자(victim)임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햄릿도, 그리스도도, 랄프 네이더도 아니다". 6E I/II에 예상 밖의 감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도/폭스 멀더의 마지막 유혹' 구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의 수술대는 틀림 없는 십자가다 : 가시관을 연상시키는 모니터 장치들이 박힌 금속 관에서 양 팔을 벌려 묶은 자세, 국소 부위만 가린 하얀 시트까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다.
그러나 스스로 유혹을 헤치고 나온 그리스도와 달리 멀더는 스키너나 크리치고, 스컬리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진짜 희생자기 때문이다.
약물과 정체 불명의 외계 물질로 정신과 육체에 대한 주권을 침탈당하고 실험쥐로 전락한 명실상부한 피해자, 희생자인 것이다. 육체적 고통을 당해도 정신적 주체성은 잃지 않는, 다시 말해 악의 손아귀에 빠지는 것이 정신력으로 시련을 뚫어 내는 영웅적 시험이 되는 헐리우드 컨벤션과 달리 주인공을 이렇듯 진짜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실버와 TV 스크린을 통틀어 전례 없는 전략이다.
그것은 제도화된 악에 대한 두 무력한 희생자 (One Breath, FtF에서 스컬리도 멀더처럼 육체를 violate 당했다)의 싸움을 더 미약하고, 그런만큼 더 감동적으로 만든다.
부인할 수 없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비주얼은 오히려 CSM의 범죄적 과대망상을 말해 주는 장치다.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멀더를 바라보는 CSM의 대사가 동반하는 것도 이것이 CSM의 관점임을 강조한다. CSM이 자신을 인류를 위해 아내 (카산드라 스펜더)와 자식 (멀더)까지 희생하는 구세주적 인물로 착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섬뜩한 것은 그가 멀더를 거리낌 없이 자기 아들로 간주하는 것이다. "But a father demands more than mere survival. ...a father demands worldly adulation, success, heroism"이란 말로 알 수 있듯, 그는 성에 차지 않던 스펜더는 미련 없이 제거하고 자신이 던지는 미끼에 따라 긴 세월 충실하게 꼭둑각시 노릇을 해온 - 불행히도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 멀더를 자신의 적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I'm so proud of this man - the depth of his capacity for suffering").
그러면서도 그런 '아들'을 서슴 없이 실험에 희생시키는 데 그의 진정한 악마성이 있다. 범죄자라 해도 보통 가족이나 아는 사람은 그 대상에서 제외시키는데 ('익명성'이 그들이 저지르는 짓을 '대의'로 포장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완충 장치다), 그런 마지막 감상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CSM은 목적을 위해선 누구든,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는 진정한 마
키아벨리적 악당이다 ("I hope you see the poetry in this, Diana").
어쩌면 역사를 바꿔놓는 것은 그런 사람들일지 모른다. CSM의 말처럼 "forcing the next step in evolution to save man. ...doing the God's work"를 할 수 있는 사람들 - 한번 전쟁이 날 때마다 의학은 획기적 발전을 하지 않는가. 그러나 멀더와 스컬리는 어떤 대의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는다.
FtF에서 멀더가 스컬리를 구하기 위해, 6E I/II에서 스컬리가 멀더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의 존재를 알아 내고 다가올 바이러스 대멸종을 이길 유전자 암호를 밝혀 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서로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운좋은 부산물일 뿐 그들 스스로 찾아나선 업적이 아니다.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는, 남지 않는 삶을 수용한 라스트 씬의 센세이셔널한 감동은 거기서 나왔다. <x파일>이 국외자/낙오자/아웃사이더의 삶에 대한 찬가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이렇게 확실한 선언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은 와이에스처럼 황폐하고 에드워드 하퍼처럼 적막한 선언이지만, 그 감동은 500여 페이지의 혼란을 읽어나간 끝에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문 팰리스'(폴 오스터)의 감동처럼 마술적이다. 6E I/II는 어떤 식으로도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에피소드다 : 외면할 수 없는 결점은 너무 큰 반면 카타르시스는 '아이 오브 비홀더'다.
그러나 나는 이 3부작을 어떤 걸작과도 바꾸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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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 또 이런 긴 글을 인용하고 말았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갈매기 조나단을 읽으면 누구라도 쉽게 신약성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 시킬 수가 있다.당연히 리차드의 이 글이 성서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엑스파일도 어떤 의미에선 대단히 성서적이다.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명색이 카톨릭 신자인 내가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메시아로 표현됐다면 갈매기 조나단에서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너무나 한참 앞서간 의미에서의 초월적 존재로 표현되었고 엑스파일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론 결코 극복하지 못하는 희생자로 표현된다.
엑스파일의 많은 팬들이 나(혹은 그들)을 멀더나 스컬리와 동일시하는 것은 그래서 일거다.영생이든 영혼이든 영원이든 간절히 바라면서도 또한 너무 멀기에,..너무나 어리고 약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거나 서로 돕지 않으면 살아가기조차 힘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