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8 평화가 깃들기를 시 125; 잠 22:1-2, 8-9; 약 2:1-18; 막 7:24-37
지난 주 소개한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첫머리부터 긴장감을 돌게 합니다. 1906년, 1907년 평양에서 태어난 두 인물을 소개합니다. 식민본국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법학부(과)를 다닌 두 사람입니다. 당시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보통인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갈리기 시작합니다. 거의 유사하거나 같은 시대와 환경, 동시대를 보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한 사람은 법정의 판사가 되었습니다. 훗날 두 사람은 재판정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앉았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던 그때, 그들은 장차 어떤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을까요? 결과처럼 나라의 독립이거나, 개인의 출세였을까요? 아니면 과정에서의 변화와 선택이었을까요? 엘리트 과정에서의 식민지 사람, 조선인이라는 설움과 차별 때문에 친일을 택한 것일까요? 이를 악물고 독립을 택한 것일까요? 어제는 오랜만에 소성리에서 평화행동이 있었습니다. 솔이와 여친에게 참석을 권했습니다. 선경험 있는 솔이가 분위기를 귓뜸하자, 그녀는 “이미 끝난거 아닌가?” 라고 합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보자”
분주한 시대속에, 어쩌면 먹고 살기 팍팍한 시간들 속에 잠시 짬을 내어 촛불을 드는 일을 두고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모를 일입니다. 17세 여고생이 난생 처음 전국이나 세계에서 모여든 촛불을 보고 변화가 일어나고 회개가 일어나고 미래가 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전혀 기대없지만, 마음 속에 작은 의문부호 하나 들어 있는 것 또한 시작이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본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을 압박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부자들이라고 합니다. 수천년 전에도 부자들의 횡포나 만행은 심각했나봅니다. 오늘 자본주의 시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혹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부자는 권력을 독점한 이들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권력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위해 권력을 손에 넣으려 하고, 권력을 위해 돈이 필요한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야고보서 본문의 시작, 전제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예수를 믿는 다는 것, 예수를 믿는 사람의 의무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첫째를 차별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본문도 말합니다. “율법의 으뜸을 사랑”이라고 하듯, 차별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간접으로 ‘이’를 갈 수 있습니다. 식민지배에서의 조선인으로 살아가기란 차별은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일 것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 죽기보다 힘든 살아있음일 것입니다. 그런 차별 속에 어떤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요? 갑이 되어서 갑질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런 경우, 더 큰 갑에게는 무릎을 꿇지만, 을에게는 같은 을이면서 조금 세다고, 조금 힘있다고 악랄한자가 되어서 갑질을 할 것입니다. 일제시대 가장 악랄한 자가 같은 조선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악랄하게 할수록 더 힘을 갖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치욕을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독립운동을 꿈꾸는 것입니다. 당장에는 설움을 당하지만, 당장에는 말못할 차별에 있지만, 자유와 평화의 독립을 염원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극소수인 것은 영원히 망할 것 같지 않은 제국 때문입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로마로 연결되었다고 했지만 결국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불가능입니다. 그래서 극소수입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는 존경에 존경에 존경을 더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지 못함에 그저 고개를 숙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본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언급합니다. “여러분이 서로 차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존귀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차별없이 고귀하다고 하십니다. 감격과 감동입니다. 그런데 우리끼리 서로 차별합니다. 이 얼마나 모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차별하지 않는데 우리끼리 차별한다니, 그래서 연약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아 가는 인생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끝난 사드라고 하지만, 이땅의 주인으로 사는 일이 촛불입니다. 세계를 재패한 로마,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일본, 부자들의 갑질, 부자들의 차별, 제국대학의 조센징. 암울합니다. 암담합니다. 불안합니다. 불투명한 미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논할 수 있습니다. 촛불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산으로 우리 곁에,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깃들기를!
240908 시 125; 잠 22:1-2, 8-9; 약 2:1-18; 막 7:24-37
시 125
1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시온 산과 같아서,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영원히 서 있다.
2 산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이, 주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감싸 주신다.
3 의인이 불의한 일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려면, 의인이 그의 몫으로 분배받은 그 땅 위에서는, 악인이 그 권세를 언제까지나 휘두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4 주님, 선한 사람과 그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5 주님, 비틀거리면서 굽은 길을 가는 자를 벌하실 때에, 악한 일을 하는 자도 함께 벌받게 해주십시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잠 22:1-2, 8-9
1 많은 재산보다는 명예를 택하는 것이 낫고, 은이나 금보다는 은총을 택하는 것이 낫다.
2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다 함께 얽혀서 살지만, 이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님이시다.
8 악을 뿌리는 사람은 재앙을 거두고, 분노하여 휘두르던 막대기는 기세가 꺾인다.
9 남을 잘 보살펴 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그가 자기의 먹을거리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약 2:1-18
1 나의 1)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2 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가락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에 서 있든지, 2)나의 발치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하면,
4 바로 여러분은 서로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1)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박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7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3)"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그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전체를 어긴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4)"간음하지 말아라" 하신 분이, 또 5)"살인하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당신이 비록 간음은 하지 않아도, 살인을 하면, 결국 당신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12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14 나의 1)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러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막 7:24-37
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7)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으나,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8)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수로보니게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시기를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8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아이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하였다.
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9)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10)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기를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