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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통조림 (純粹/전혀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함)
흐뭇한 미소가 멀찍이서 나타나 내 입가에 조우(遭遇)한다.
기분좋게 가슴은 뛰고 있고, 이내 희미한 노랑과 파랑의 무수한 점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그것들은 조금씩 선명한 색을 띄기 시작했고, 아지랑이처럼 괴적을 만들기도 하고 힘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익숙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것들도 있다. 하지만 내 손가락 사이로 “메롱” 하면서 빠져나가기만 한다.
왜 몸이 내 맘대로 움지이지 않지?
‘잡았다’
‘미지근하다’
‘더 선명해진다’
가까이 가져가 모양을 살핀다. 혹시 위험한 건 아닐까 조금 망설여지기도 한다.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이게 뭘까? 모르겠다.
‘비타민 냄새? 가 난다’
목덜미와 어깨죽지에 내리던 그때 그 여름의 따스한 햇살이랑 감기 걸리면 생각나는 엄마 몸 냄새.
정말 싫은 미역국의 비릿한 맛, 오금이 저리게 무서운 아버지. 순서없이 꼬리를 물어버린 기억의 봄바람이
“스타벅스 카라멜 마끼야또 4300원” 이라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떠오른 동시에 나를 그곳으로 대려간다.
그 놈은 얼마나 돌아치고 다녔는지 부시맨이 울고 갈 정도로 새까맣고 조그만 아이였다.
그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골목 골목 모르는 지름길이 없었고, 산수 실력은 형편 없었지만
서리한 사과를 친구들과 사이 좋게 나눠먹을 줄은 알았던 그런 아이였다.
산딸기나 머루, 으름 같은 아주 맛나고 익숙한 간식거리와, 도마뱀이나 물방개,
대왕 잠자리 등 경이롭고 신비한 자연의 선물은 그 시절을 한없이 풍요롭게 했다.
똑같이 생긴,,, 친구들과 산이며 들로 다니면서 매일 그렇게 놀았던 것 같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손이며 발이 흙투성이가 되서 집으로 뛰어오면 언제고 아늑하게 기다리는 우리집.
그 포근함 중심에 있었던 우리 엄마. 초저녁 백열등 전구 아래 지금은 별미가 되어버린 김 나는 칼국수.
두런 두런 둘러 앉은 좁은 방과 우리 식구 여섯. 별은 빛났을 것이고 개구리는 우리 가족을 위해 노래해 주었다.
그 날의 아련한 졸음은 아지랑이를 그리면서 그렇게 침전되어 갔다. 백열등 전구 밑으로.
그때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그 지역 수영장이었다. 강 폭은 그리 넓진 않았지만,
깊은 곳은 내 키 두배 이상 가는 곳도 있었다. 해가 머리위에 뜨면 강 바닥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도 보였던 것 같다.
다리 위로는 사람들도 다니고 차도 다니고 했는데, 그 밑에서 홀랑 벗거나 수영복은 무슨, 팬티 바람으로 수영을 했다.
중간에 배고프면 미리 준비해서 벗어놓은 옷가지에 숨겨 논 라면을 부셔 먹곤 했다.
맛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그런데 왜 그런지 난 맥주병이다. 물가를 그렇게 돌아쳤는데도 난 수영을 못한다.
그냥 물장구를 치거나 키보다 깊지 않은 곳에서 개 혜염치는 정도 였다. 해가 뉘었뉘었 질라치면
우리들은 입고 있던 팬티를 말려야 했다. 벗어서 다리 기둥에 쳐서 물기를 빼거나 널어놓곤 했다.
그때 여자 애들은 거진 수영복을 입고 왔었던것 같다. 개네들은 저만치 숲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리 인상깊게 느껼질 나이는 아니였던 것 같다. 이성 보다는 신기한 물건이나 먹을 거리가 더 좋았던 그때 였다.
그 시절 재법 규모가 큰 마트가 우리동네에 생겼다. 친구네 할머니가 운영하는 hole store나 야채,
건어물을 팔던 무슨 무슨 상회, 기타 잡화점의 독주를 일거에 일축한 “모든 물건은 우리 가계에 다 있어요”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말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앞설 뿐만 아니라 개업 상품이라는 전무 후무한 컨덴츠는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었고, 마트를 다니는 아주머니(우리 엄마 포함)들의 옷차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들도 이에 질새라 시원한 에어컨 앞에 서 있다가 장보러 오신 어머니들을 만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얻어 먹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그 마트의 뒤쪽에는 창고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뭐 건물이라고 해 봐야 알루미늄 뼈대에 천막을 뒤집어 씌우고 철사 울타리로 주위를 둘러친게 전부였지만.
소문의 핵심은 그 창고안에는 엄청난 양의 초콜릿과 음료수, 과자 등 마트에 있는 모든 물품들이
그곳에 전부 다 있다는 것이었다. 벌써 누구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초콜릿을 먹고, 천원씩하는 과자를 맘 것 먹는다는 것이다.
창고 사이에 큰 길로 통하는 좁은 길이 있었는데, 누가 발견 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그랬는지는
생각 나질 않지만, 그쪽에 울타리가 망가져서 벌어진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작업은 아주 간단하다.
커터 칼이나 날카로운 것을 이용하면 우리 배고픈 어린 순레자들은 그 성지에 무리없이 입성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약해보이는 천막만 통과한다면 그 속에 있는 통조림이니, 음료수나 여러 가지 달콤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인내심이나 양심, 혹은 그밖에 우리들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질 않았다. 한마디로 뵈는게 없었다.
생각대로 작업은 쉽게 끝났고, 그렇다고 우리는 방심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챙겨서 우리들의 기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전까진 긴장을 놓지 않는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문이 열리자 뛰어들었다. 우리들의 상상을 압도하는 엄청난 양의 먹을거리들에
잠시나마 황홀감을 맛보고 난 뒤 정신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변변치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하나를 사면 통째로 먹어 본적 없던 H사의 아삭한 초콜릿,
먹으면 항상 후회하지만 중독성있는 아주 신기한 맛을 내는 “아이짜” 죽을 때 까지 먹어도 남을 것 같은 양의
반듯하게 쌓여있는 라면 박스들,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으랴.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에 냉동고가 없는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었다. 있었다면 그 속에는 아이스크림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분이나 흘렀을까? 처음의 황홀감과 흥분이 잦아들고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할 때 쯤.
우리는 창고 제일 구석에서 한글이 아닌 글씨가 쓰인 박스를 발견했다.
그순간 누구라고 말할것도 없이 우리들이 동시에 ‘이것은 꼭 챙겨가리라’ 라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한 호흡의 감탄사 “앗!”으로 외친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90년대 최고의 유행어 “따봉” 이란 유행어로 더 유명한
외국계 식품 회사 D사의 파인애플 통조림 8개들이 셋트였다.
이미 주머니는 껌 한통 넣을 수 없을 만큼 차있었다.
그렇다고 내 몸통만한 박스가 그 조그만 호주머니에 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린 어리석지 않았다.
하지만 불룩해진 주머니와 가지고 가기 위험한 크기의 통조림 박스는 우리의 상황을 묘하게 대조 시켰고,
그 순간을 갑자기 긴박하게 만들었다. 점점 더 초조해져만 갔다. 절대로 포기할수 없다.
어린애들의 단순한 머리로 얼마나 고민하길 기대하겠는가, 게다가 어른 보다 더 심한게 어린애들의 욕심 아닌가.
상황은 아주 간단하게 해결됐다. 결론은 다 갖고 가자였고, 우리셋은 사이 좋게 박스 하나씩을 가슴에 안고
자연스럽게 좁은 길을 빠져나와 당당하게 큰길로 접어들었다. 어떻게 그리 태연했는지.
들고 가기엔 부담스런 크기의 박스를 그것도 셋이서 나란히 들고, 반전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유유히 기지까지 걸어갔다. 지금도 그 대담함이 놀랍기만 하다. 아마도 파인 애플 통조림에 대한 집착과 환상이
우리셋에게 그런 대담한 행동을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원초적인 에너지가 인간에게 신비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몇일이 지나서야 통조림의 맛을 볼 수가 있었다.
왜냐면 그 당시 통조림에는 간편 따게가 없어서, 통조림을 개봉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고,
나중에 친구 중 하나가 가정용 통조림 따게를 구해왔고,
그제서야 통조림은 안달이 낳있는 우리에게 맛에 비밀을 허락했다.
그 맛이란 미각과 후각, 시각의 경계를 넘어서서 온몸의 새포들을 몸부림치게 만드는 그런 환상의 맛이 었다.
그 아삭 아삭한 과육의 씹는 느낌과 깨물면 달콤하고 풍부한 과즙이 톡 터지듯 입안을 만족스럽게 채워줬다.
단어의 뜻은 몰랐지만 연신 “따봉”이라고 맘속으로 만 외쳤었다. 말하면 많이 못 먹으니까.
그날 셋이 앉아서 얼마나 먹었는지, 나는 그날 밤부터 심하게 배탈이 나서 몇일을 고생했다.
항문이 헌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저녁 기차의 느낌처럼, 아련한 지난 추억들과 지금의 훌쩍 커버린 내 모습이
묘한 대조가 되어 서글픔으로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어두운 내방 저만치 앉아있는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이 카페에 가입하고 몇일이 지났습니다. 사람이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며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추억을 공유하는 방법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분들과 좋은 글 이야기하며 지내고 싶어, 엄마가 저녁 먹으라는 최후 통첩도 무시하며
편엽하고 극히 미화된 범죄 수필/족보 알수 없는 글 끄적 거렸습니다.
첫댓글 떠오르는대로 솔직하게 써내려 가는 듯한 시원한 필체가 작가의 성격을 짐작해 보게 하는군요.잘읽고 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