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용 갤리선)

(군용 갤리선인 갈리아스선)
중세기 유럽은 도시국가의 발달로 지중해에서는 베네치아, 제노바 등 이탈리아 주요도시들이 번영했다. 베네치아는 시초에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후에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11 세기 에는 강력한 함대와 상선단을 조직하여 아드리아해를 제압하고 동방과 유럽 간의 국제 무역을 중개했다. 제노바도 10세기말 이슬람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피자와 연합하여 무장하고 도시국가의 면모를 갖추어 동방무역에 종사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가 활용한 배들은 고대 로마제국이 쓰던 배와 그 계통이 꼭 같은 것이었으며 이들 지중해의 배는 군용 갤리선 과 라운드 상선으로 구분할 수 있고 13,14세기부터는 대형 갤리 상선도 나타나게 된다. 이무렵 지중해의 상선은 선저가 둥글게 되어 있으므로 round ship 이라 한다.
<갈리아스선(Galliass) >
갈리아스선은 16세기에 출현한 초대형 군용 갤리선 이다. 갤리상선을 더 대형화하여 전투용으로 꾸민 배라고 할 수 있다. 갈리아스선은 여러 사람이 한 노를 같이 젖는 스칼로치오 방식의 노역을 하고 lateen sail 3개를 장비하고 있으며, 함포도 장비하고 있었다. 갈리아스선은 1571년 회교국인 오토만 터키의 함대와 에스파니아, 베네치아, 제노바, 교황국 등의 서구연합 함대와의 그리스 근해 레판토 해전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레판토해전은 사상 가장 규모가 큰 갤리선간의 전투였으며 선수 중앙에 50파운드의 탄환을 발사할 수 있는 무게 8,000파운드, 구경 7.5인치 정도의 주포를 고정하고 양옆에 6파운드 탄을 쏘는 2,000 파운드 무게의 부포를 두고 현측과 기타 요소에 보다 작은 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대형화한 갈리아스선은 기동력에 있어서는 대단히 부족하여 17세기 들어서는 점차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군용 갤리선 >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자취를 감춘 군용 갤리선은 9세기 말부터 다시 등장 여러 도시 국가에서 해군력의 주축으로 사용되었다. 16세기 까지 지중해의 군선으로 군림하였는데 이는 당시 해전이 배와 배가 맞부딪치는 접전에 적합하고 지중해에는 계절풍이 없고 바람방향이 불확실하여 범주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노에 의한 인력으로 빠른 기동력과 조종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운드상선>
13세기 무렵의 지중해의 상선은 선수루와 선미루가 있고, side rudder 가 있다. 선수 선미모양이 둥굴게 되어 있는 것은 영국 배와 비슷하나, 갑판이 있고 삼각범장(lateen sail)을 한 것은 영국 배와 전혀 다른 점이다. 당시 북유럽 배의 범장이 사각범인 것과 큰 대조를 이루며 중세 지중해선의 공통 범장이었다. 이들 상선의 크기는 연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나 1268년 프랑스 왕 루이9세가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발주한 수송선 요목을 보면 전장 26m, 용골길이 17m, 폭 6m, 깊이 6m 이고 2층 갑판에 돛과 돛대는 2개씩이었다. 13세기 말부터 갤리선도 상선으로 쓰여 졌으나 본격적으로는 14세기 초에 대형 갤리선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인데 갤리상선은 군용갤리보다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고 배의 길이와 폭의 비를 볼 때 군용 갤리선은 8 : 1인데 갤리상선은 6 : 1 이었다.
(출처: http://hometown.chollian.net/~loves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