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산행기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 1월 정기 산행지인 검단산에 오르기 위해 집결지 ‘하남검단산역’으로 나갔다. 전에 버스로 갈 때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지하철이 개통되어 많이 단축되었다. 전철 안에 배낭을 휴대한 다른 승객들도 보였다. 10시 정각에 맞춰 역 밖으로 나가니 먼저 온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새해 처음 보는 터라 서로 반갑게 새해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몇 분은 마천역으로 가서 다시 이쪽으로 오느라 조금 늦을 거라고 했다. 5호선은 강동역에서 마천 방향과 갈라지는데 모르고 계속 갈 수도 있다.
10시 15분 역 광장을 출발했다. 다리를 건너다보니 올라갈 검단산 정상이 우뚝 솟아 보였다. 큰 길을 건너 우측으로 돌아 등산로로 들어서다보니 좌측에 베트남 참전 기념비가 보였다. 한국전 참전 기념비는 여러 곳에서 보았지만 월남 참전비는 여기가 처음이다.
산길로 조금 들어가다 길 우측 공터로 올라가 준비 체조를 한 다음 신임 백인철회장 인사말을 듣고 다시 출발했다. ‘검단산 정상에서 본 서울 전경’을 여러 번 그리느라 이쪽 길로 많이 올라서 정상까지 가는 길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정상까지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유길준 묘까지는 완만한 길이 길게 이어져서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길준 묘를 지나고부터 오르는 길의 경사가 점차 급해지고 있었다. 북사면 쪽이라 주변의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설 능선 너머 시선이 트여보였다.
능선에 오르니 그 너머 산세가 바라보였다. 벤치에 앉아 쉬면서 일행과 얘기를 나누는 다른 일행들이 보였다. 거기서부터는 이어지는 능선 길을 계속 가다보니 종소리가 들렸다. 앞에 가던 두 남녀가 나무에 매달린 종을 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작은 종에서 높은 금속성 소리가 깨끗한 공기 사이에 퍼지고 있었다. 나도 종을 치고 지나갔다.
오르는 방향이 산 그림자가 드리운 쪽이어서 그동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소복이 쌓여 있었다. 어릴 적 농사짓는 마을에 살 때는 눈에 쌓인 풍경 속에 겨울을 보냈다. 겨울이 되면 으레 체험하게 되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가 기억에 그립게 남아 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눈을 금세 치워서 눈이 내려도 내릴 때뿐이지 설경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산에 들면 제대로 눈 덮인 산천을 대할 수 있다.
길 주변의 두텁게 쌓인 눈 위에 잎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나무들이 미라처럼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시리게 다가왔다. 움이 트여나올 시절을 기대하지도 않은 채 깊은 잠결에든 것 같았다. 시야가 멀리 퍼져나가는 산천에 적막이 감돌고 정신은 더 맑아지고 있었다.
쉬지 않고 걸어 깔딱 고개를 지나 전망대에 올랐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서울 쪽으로 흘러가는 강과 굽이굽이 펼쳐 보이는 산수풍광이 시원스레 바라보였다. 다른 일행들이 정자와 주변 데크에 앉아 쉬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햇살이 들어 눈이 녹는 곳도 있었다.
바람이 살갗을 움츠리게 해서 목도리를 두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앞쪽 근경으로 보이는 산과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용문산 등이 광활한 깊이감을 자아냈다. 옆으로 넓게 펼쳐 보이는 풍광을 종이 크기에 균형감 있게 구도를 잡았다. 두물머리 부근 집들도 점점이 나타냈다. 먹물이 얼기 전에 그리려고 빠르게 그려나갔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이 올라와 풍경을 돌아보다 정상 쪽으로 갔다. 집중해 그림을 그리고 일행을 뒤따라갔다.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길을 가다보니 우측 눈밭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회원이 나에게 “배낭을 새로 샀네요” 라고 말했다. 지난주 작년 가을학기에 가르친 학생들과 북한산을 가면서 옷과 배낭을 새로 구입했다. 그동안 매고 다니던 배낭이 낡아서 그들에게 너무 볼품없게 보일 것 같았다.
회원들에게 그 예기를 하니 “원래 애들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30년은 쓸 것 같다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정상 쪽으로 향했다. 북사면 쪽이라 주변이 모두 눈에 덮여 있었다. 가다보니 젊은 일행이 눈발에 누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소복이 쌓인 눈에 누워 눈도장 찍던 때가 떠올랐다.
12시 24분 검단산 정상(657)에 도착했다. 검단산은 한성 백제시대 하남 위례성의 진산으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신성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검단선사가 이곳에 은거한데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니 정상석 앞에 조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서 다른 일행들이 조망을 감상하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가가 바라보니 양수리 북한강 남한강 일대가 훤칠하게 펼쳐 보였다. 아까보다 보는 시각이 높고 바로 보였다. 정면 방향 멀리 용문산이 높게 솟아 보이고 그 주변으로 첩첩한 산세가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서북쪽 데크 언저리로 다가가보니 서울쪽 풍광이 거침없이 트여 보였다. 가스가 끼어 북한산은 흐릿하게 보였다. 한강 건너 이쪽에서는 검단산만이 홀로 우뚝 솟아 있어서 시선이 가릴 곳이 없다. 여기가 전망대 같은 구실을 한다. 정면 쪽으로 남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옆으로 펼쳐 보였다. 좌측으로는 청계산과 관악산이 보였다. 오래전 혼자서 ‘서울경계걷기’를 할 때 관악산과 청계산을 넘어 앞쪽에 보이는 하남시 경계부분을 걸었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 한강이 보이는 쪽으로 가니 한 분이 손에 새 먹이를 올려놓고 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줄 곤줄박이와 검회색 동고비 새가 주변 나뭇가지 위로 날아다니다 그 분 손바닥 위로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었다. 신기한 생각에 나도 새 먹이를 얻어 손바닥에 펴놓고 기다리니 날아와 쪼아 먹었다. 발톱이 닿는 느낌과 먹이를 쪼아대는 감각이 느껴졌다.
거기서 양수리 쪽을 바라보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일행이 도착해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정상석 앞에 모이고 있었다. 그 쪽으로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일행이 먼저 출발하면서 식당에 2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
그림을 다 그리고 지도를 보며 내려갈 길을 확인하고 뒤따라갔다. 정상에서 100M 내려선 지점에서 우측 길로 접어들었다. 전에 이 회에서 단체 산행 때는 거기서 직진해 산곡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갔었다. 그 때 혼자 뒤따라가다 지금 내려가는 우측 길로 갔다 방향이 다른 걸 알고 다시 올라와 직진 방향으로 지나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내려서는 길이 북측 경사면이라 눈이 녹지 않고 두텁게 덮여 있었다. 목재 계단 턱에 눈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미끄러웠다. 계단이 수평을 유지하지 않고 비스듬히 뉘어서 더 미끄러웠다. 계단 양옆 난간 밧줄을 잡으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내러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양방향 모두 검단산 정상 쪽을 가리키는 표지가 있었다. 다른 쪽이 거리는 멀지만 조금 완만할 것 같았다.
다시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다 보니 길이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병충해를 입은 잘라낸 나무들을 비닐로 동여 매둔 곳들이 보였다. 한때 참나무 병충해가 번져서 여기저기 산에서 그런 조치를 할 때가 있었다.
내려서다 보니 너른 공터 한쪽에 정자가 보였다.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서니 미사리 앞을 지나는 한강과 조정경기장이 보였다. 그 주변에는 높은 고층 아파트 들이 즐비해 보였다. 십여년전만해도 강변 쪽으로 카페만 드문드문 있던 곳인데 천지개벽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우측에 샘이 나왔다. 음료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옆에 놓인 그릇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요새는 산에서 마실 수 있는 샘이 귀해졌다.
에둘러 내려오다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끝지점에 일행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가다 다시 좌측으로 돌아갔다. 우측에 충혼탑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밭이 있어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입구로 제일 앞서 나와 식당을 찾아갔다. 백 회장이 먼저 내려와 식당 앞에 서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고 후미 일행을 기다렸다. 3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화판과 함께 들고 다녔던 쇼핑백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모자와 목도리와 등이 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빠진 것 같았다. 충혼탑 근처까지 올라가 찾다가 보이지 않아서 다시 식당에 들어섰다. 식사를 하고 위까지 올라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뉴는 만두전골과 제육복음이었다. 동치미가 시원했다. 백회장이 새해 첫 산행을 무사히 마쳐 감사하다며 인사말을 했다. 이어서 전임 회장 등이 건배사를 했다. 식사를 먼저 마치고 배낭을 맡겨두고 분실물을 찾으려 검단산을 올랐다.
중간에 찾으면 바로 내려오려고 생각하고 두리번거리며 올라갔지만 보이지 않아서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하루에 정상을 두 번 오르게 되었다. 뒤돌아 오면서 아까 지났던 눈길을 내려서기가 조심스러웠다. 다시 오를 때 빈 몸으로 나와서 아이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계단길 양옆에 설치된 줄을 잡고 암벽에서 하강하듯 조심스레 급경사 구간을 내려갔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소진되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5시 55분 다시 뒤풀이 식당에 도착했다. 정상까지 왕복 7.8km나 되는 눈길을 다녀왔는데 시간은 1시간 5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인이 아까 일행이 전화기가 꺼져서 전화 통화를 못했다고 했다. 주인에게 부탁해 핸드폰 충전을 시작했다. 목이 말라서 동치미 국물을 조금 부탁하니 작은 옹기그릇에 가득 가져다주었다. 충전을 기다리는 사이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전화기를 켜보니 부재중 전화 표시가 보였다.
잠시 후 식당을 나와 전철역으로 가면서 전화를 걸어 잘 내려왔다고 예기해 주었다. 날이 저물어 사방이 깜깜했다. 옷 속에 배인 땀이 식으며 추위가 느껴졌다. 눈길에 두 번이나 정상을 오르내린 날로 기억될 것 같았다.
(202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