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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소감>
제목: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저자: N. T. Wright
작년 4월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읽은 책을 금년 2022년 9월 초순에 다시 읽었다. 작년의 소감을 아래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494
톰 라이트는 신약성서 전체를 주석한 대학자다. 그는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깊이 연구했다. 특히 기독교회가 1세기 유대교의 상황 가운데서 일어난 점에 주목했다. 제2성전기의 유대인들의 바람과 희망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1세기 유대교 상황과 맥락 가운데서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방대한 저작들은 바로 저자의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가 이 책의 맨 끝에서 쓴 감사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지금껏 하던 작업과는 달리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리하고자 신약성경 전체를 훑은 것이다. 그래도 주석가로서의 습관은 책의 곳곳에 드러난다. 즉, 성경의 주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이 책은 2016년에 출판되었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2019년이다. 책 제목은 ‘혁명이 시작된 날’(비아토르)이다. 부제는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함’이다. 나는 톰 라이트의 책 몇 권을 읽었는데, 그 중에 우리말로 된 것은 다음과 같다:
1.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2.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3. ‘그리스도인의 미덕’
4. ‘하나님과 악의 문제’
5.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6.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
7. ‘톰 라이트의 바울’
8. ‘성찬이란 무엇인가’
그 중에 가장 재밌게 읽은 것은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와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다.
나는 톰 라이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을 좀 더 느껴보려고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Surprised by Hope)를 영어로도 읽었다. 영어로 책을 읽을 때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단어를 찾는 것은 기본이며, 때로는 문맥을 따라가기 어려워 추측할 때도 있다. 그런데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으므로 좀더 묵상할 시간을 갖는다는 점은 유익이다.
내가 영어로 읽은 톰 라이트의 책은 다음과 같다:
1. ‘Paul: A Biography’
2.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3. ‘How God became King’
4. ‘Simply Christian’
5.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6. ‘Surprised by Hope’
청년들과 독서모임에서 우리말로 읽은 책은 두 권이다:
1. ‘기독교 여행’(Simply Christian)
2. ‘그리스도인의 미덕’(After You Believe: Why Christian Character Matters)
내가 구입한 톰 라이트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1. Matthew1, 2
2. Galatians/Thessalonians
3. Ephesians/Philippians/Colossians/Philemon
내가 톰 라이트의 방대한 책을 읽기 전에 가이드북으로 읽은 것도 있다:
1. Through the Eyes of N.T. Wright: A Reader's Guide to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이것은 ‘바울과 하나님의 의’를 요약한 것으로 데렉 브릴랜드(Derek Vreeland)가 쓴 것이다.
마치 연예인에게 열광하듯이 톰 라이트의 책을 읽노라면 그런 감흥을 느낀다. 아마 그의 생각에 감염 또는 중독되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다시 그의 글을 읽어보니 지난번 독서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다시 발견한다. 언젠가는 그의 생각을 넘어설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직은 따라가기에 바쁘다.
……………………………
이 책을 두 번 정도 더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톰 라이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붙든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며, 그 의미를 사도 바울은 어떻게 설명했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서양의 기독교회가 초기교회의 생명력을 상실한 원인을 세 가지로 꼽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왜곡으로 나타난다고 그는 주장한다: 종말론, 인간론, 구원론. 이에 대하여는 2021년 4월에 쓴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톰 라이트의 강연 요약
(2017년 10월 11일, Wheaton College 강연)
기독교의 세 가지 오해: 종말론, 인간론, 구원론에서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491
그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초기교회가 가진 종말론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시고 그 백성들과 오래 전에 언약하신 대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신다는 강력한 기대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는 그 이후로 헬라의 플라톤식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식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늘에 누가 올라갈 수 있는가 라는 조건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조건에 미치지 못한 타락한 존재로 이해된다. 그런 관점으로 성경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다 보니, 본래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왕 같은 제사장처럼 이 세상을 관리할 존귀한 존재라고 성경은 인간을 소개하는데, 교회는 인간을 도덕의 시험대에 걸려 넘어지고 실패한 존재로 설명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불러 자신의 세계를 함께 경영할 동반자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을 지으시고 끊임없이 감시하는 분으로 인식된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희생제물로서 이해된다. 신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전형적인 이교도의 제의라고 톰 라이트는 강하게 우려한다. 십자가를 화목제물로, 또는 희생제물로 설명하는 것은 신약성경에 나타난다. 그런데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구약성경 전체의 이야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톰 라이트의 주장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톰 라이트는 십자가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해야 할 대답이 이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대답을 간략하게 하지 않고 기나긴 이야기 속에서 그 의미를 설명해 나간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줄기의 이야기와 모티브가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이해될 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
톰 라이트가 이 책에서 여러 번 우려하는 십자가에 대한 해설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그 결과로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모든 인간의 죄를 담당하여 이제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식처럼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신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십자가의 의미다.
저자는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기서 ‘성경대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설명한다. 저자는 구약성경 몇 구절을 따와서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담과 아브라함과 모세 등 구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흐르는 하나님의 언약 이야기의 절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늘의 기독교회가 이처럼 허약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와 비슷한 종교적 상황 가운데 있던 초대교회의 강력한 변혁성과 혁명적인 특징이 오늘에 사라진 이유를 저자는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 오후에 이 세상은 전적으로 다른 곳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그렇게 강력하게 증거했다.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곳이 될 만큼 위대한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것은 상당히 낯선 주장이다.
이 책은 그 혁명이 무엇이며, 어떤 기대를 성취한 것이고, 그 혁명에서 무너지고 쫓겨난 세력은 무엇이고, 그 세력을 쫓아낸 세력은 어떤 무기와 방법을 사용했는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 혁명이 계속되기 위해서 오늘의 교회는 그 최초의 혁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어가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은 내세를 향한 도피주의적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되며,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승리주의적 오만함으로 나서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해한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며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을 결국 완성하실 것을 성경 이야기가 들려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일을 결정적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성경 이야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님은 그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다.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말은 출애굽의 이야기 속에서 보면 죄의 종살이하는 곳에서 해방을 주시고, 그들을 새 언약백성으로 삼으시고 열방을 향한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다는 의미다. 그것은 오래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그 언약이 결국 성취된다는 의미다.
복음서 기자들과 사도들이 죄사함과 회개의 복음을 전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출애굽 이야기 가운데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 ‘성경대로’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성경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신다는 의미가 된다. 그 언약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나라로 만드시고 그들을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그들을 하늘로 데려가시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실 수 있게 하는 화목제사가 된다. 여기서 십자가의 보혈은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씻기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언약과 제사의 정신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들이라야 열방을 위한 제사장과 대리인의 소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떠나시고 그들은 세상의 축복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문제로 전락한다.
여기서 십자가는 다시 한번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열방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열쇠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힘입어 이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 된다.
톰 라이트가 공들여 설명하는 십자가의 또 다른 의미는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십자가로 이기셨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는 점이다. 톰 라이트는 사도 바울을 따라 인간의 상태를 권세자들의 종살이로 이해한다.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왕 같은 권세를 가지고 지음을 받았으나 그 권세를 악한 자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하나님을 등지고 피조물을 섬기고 두려워할 때마다 인간은 자신의 권세를 우상에게 넘겨주고 그 아래서 종으로 살게 된다.
아담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쌓다가 뿔뿔이 흩어질 때 인간의 운명이 그런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인간을 불러 모으시고 하나님의 은총 아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 수 있도록 계획하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와 그 자손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고자 하셨지만 그들도 아담처럼 범죄하고 죄의 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서 인간을 바라보면, 이방인은 물론 아브라함의 자손까지 모두 죄 아래서 종살이를 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을 압제하는 파라오 같은 존재가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 악한 자의 권세가 깨뜨려졌다. 그 백성들의 죄는 용서되었다. 이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악한 자의 권세 아래서 살지 않고 자유와 해방을 누린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이 본래 그들에게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게 된다. 그들은 비로소 인간성을 회복할 것이다.
그런데 악한 자의 권세를 깨뜨린 그리스도의 권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과 용서의 권세다. 십자가는 이 세상 통치자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용서의 힘이다. 그것이 모든 사람을 죄에서 자유롭게 하며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초기교회의 성도들은 이런 확신으로 충만했으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악한 자의 권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 권세들을 어떻게 무력화하셨는지를 잘 알았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었고 장차 어떤 세상을 물려받을지를 기대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로만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그 결과 초기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교회는 자신들이 누구를 섬겨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짓되고 불경건하며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고 대적함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것은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고 그 결과 교회는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고 낡은 제도와 규범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가득했다.
초기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지는 혁명적인 성격에 익숙했으므로 그들을 미혹하는 세력인 돈과 쾌락과 권력을 철저하게 경계했다. 요한계시록의 판타지는 초대교회가 얼마나 분명하게 악한 세력을 파악하고 대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새 날이 밝았음을 알았기에 낡고 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교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형편과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안타까운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앞으로 더 심한 통곡의 기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져온 새로운 세상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혁명이 나와 우리 교회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