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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흥망과 치유 (사1:2-10)
나라가 어렵습니다.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성도 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애국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한 자세이며 신앙이 있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가 뭐래도 그 시대를 책임감 있게 살고 그 시대를 염려하며 살아가는 계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라를 사랑하는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형편을 보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중심을 잃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책임감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어려울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섰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가 힘 있는 나라가 못되어 강대국 사이에서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전염병은 계속되는 가운데 기업들과 소상공인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된 우리들은 모두 다 망하는 것처럼 이야기 할 때 분명한 소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사업이 안 된 다고해도 옛날 흉년에 굶주리던 때보다는 낫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말해도 그 지난 6.25전쟁을 겪던 시대보다는 낫습니다. 전세방을 산다고 탄식해도 옛날 우리 조상들에 비하면 우리는 잘살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여 우상숭배에 빠지면 망하게 하였지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흥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형편을 보면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시는 처지임이 분명합니다.
나라의 망함에 대하여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무질서와 모순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사회 질서가 해제되는 것이라“고 하는 묘한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알듯 말듯 한 말이고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심판의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멸망의 이유도 명백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죄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심판,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세상을 심판 할 것임을 말씀하시고 심판 중에서 하나의 자비를 또 베푸십니다. 그것이 바로 유예기관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유예기간을 두시고 계십니다.
오늘날 나라의 흥망성쇠는 백성들의 죄악 때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물로 심판하신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성에 불로 심판 하신 사건은 이를 증명합니다.
창세기6장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세기6장 7절에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죄를 미워하고 혐오하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때의 세상의 모습이 바로 노아 때의 세상의 모습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24:37-39)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대가 노아의 때에 비해 더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노아의 때보다 죄악이 더 관영하여 곧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붙잡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더욱 경건한 삶을 통해 죄악을 미워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임을 명심하여 애국자로서 쓰임을 받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1)하나님을 거역하는데 있습니다(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웃시야 왕이 죽기 직전인 기원전 750년경부터였습니다. 당시에 유다는 웃시야 왕의 죽음을 기점으로 하여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번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그 무너짐에 대하여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땅은 황무하였고, 그들의 성읍은 불에 탔으며, 그들의 토지는 이방인들의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7)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주변 강대국들에 의하여 그들이 침략을 당하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때 잘 나가는 나라였던 그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빠졌는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원전 8세기에 유다가 처한 현실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과 너무나 유사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물리적으로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I.M.F의 위기를 잘 넘겼지만 실제적으로 오늘날의 경제적 어려움은 그 때보다 더하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경제도 살펴보면 많은 상가의 건물들이 비어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공장과 산업은 존재하고 있지만 황무한 들판처럼 가동률과 생산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과 토지가 외국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업자는 날로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불황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의 유다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 그들 중 일부를 남겨두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9절에서 "여호와께서 조금 남겨두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완전히 멸망해 버린 곳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로 전멸을 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은 자들을 가리켜 본문 8절은 포도원의 망대와 같고, 또는 원두막이나 적군에 포위된 성같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한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희망입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겨 두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들을 통해 유다를 다시 재건하실 계획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 그나마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그나마 이만큼 여유를 갖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전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비록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의 고통을 수수방관하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그들을 자식과 같이 양육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이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거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길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왕정국가를 통하여 번영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거역했다"라는 말은 반역하고 떠나감으로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말입니다. 짐승도 주인의 은혜를 알고 그 임자를 알아보는데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그들이 고난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첫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첫째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역대하26장16절에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하면 웃시야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분향하려한 것은 왕으로 마땅히 해야할 일이 아니라 교만하여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욥기서 15장25절에 보면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전능자를 배반한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4장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습니다. 교만은 내가 타락하는 지름길이요. 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미움받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요소가 됩니다.
둘째,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거나, 끝없는 대해를 항해하는 배가 해로를 이탈하거나, 철길를 달리는 열차가 철길을 이탈하면 이는 모두 사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면 이는 타락이요. 멸망입니다. 죄의 길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이들이 이탈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탈을 한 사람이 구역에서 사울 왕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울은 사울 혼자의 힘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실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와 말씀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울을 왕삼은 것을 후회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도 사울의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순종하고 마지막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 변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피부로 체험한 사람들이고 두 눈으로 목격한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순종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마음에 미혹을 받아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변절된 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은혜를 대적하는 일이고, 은혜를 무시하는 큰 죄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이내 돌아서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불신앙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나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개인을 망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성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룩한 제물로 성별한 짐승이 세 가지 소 와 양과 비둘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존귀하지만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시편 49편 20절에 말한 것처럼 들에서 일하는 소나 묵묵히 땀 흘리며 짐을 나르는 소를 볼 때마다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이상적적인 교인 상을 소에게서 발견해야 합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압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거역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도다”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타락한 백성을 향하여 탄식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 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하였습니다. 소는 임자를 압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임자되시는 하나님을 몰라 보고 그 은혜를 만흘히 여깁니까?
아사야 선지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소도 자기에게 여물을 먹이는 주인을 알아봅니다. 나귀 는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알고 제 구유를 찾아 먹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 하소서 하리라”'(렘2 : 27)한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아들딸을 많이 낳아 길러 그 자녀들 중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제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남은 여생을 복되게 보내실 줄 알았으나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간으로 들어가 보살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무리 용돈을 넉넉히 드리고 철철이 이불이며 옷가지를 잘해드려도 몽땅 절에 다 바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얼마나 안타깝게 기도했는지, 어느 날 그 할머니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어떤 분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절을 버리고 교회에 나오게 되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께는,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지.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그 길로 절에서 돌아와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며 편안하게 사시다가 천국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오는 순간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
사람은 인격적이며, 이성적이며, 도덕적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파스칼이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고 "사람은 생각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따라서 사람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사람은 과연 생각하면서, 그리고 생각하는 중에 깨달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좀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중에 무엇을, 어떻게 깨달으면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은 하나님이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계심을 새삼스럽게 따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창조하신 만물을 붙드시고 계시며, 마지막에는 심판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창1:1,히11:3,1:1-3,행17:31).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시며 (잠1:7), 하나님께 나아갈 사람을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히11:6). 우리는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사는 존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며, 그것도 수고와 슬픔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된데는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어서 이 모든 것이 인생에게 오게 되었으며,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인생을 위하여 구원을 마련하셨다고 말씀하시며, 이 구원이 심히도 귀중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시49:8).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과 개인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3)여호와를 버리며 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상(罪相)이 어떻게 심각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자의 맺는 열매는 죄(罪)위에 죄를 더 짓는 것입니다.
"범죄한 나라"라는 말은 그 민족의 죄악이 거족적(擧族的)인 죄악임을 가리키고, "허물진 백성"이란 말은, 많은 허물을 짐지듯이 무겁게 질머진 백성임을 보여주고, "행악의 종자"라는 뜻은, 그들의 죄악이 근거 깊이 내부에서 나오는 사실을 가리키고, "행위가 부패한 자식"
이라는 말에서, 특히 "부패한"이라는 말은 그들의 행위가 고칠 수 없으리 만큼, 심각함을 보여줍니다. 이상과 같이 그들의 범죄가 극도에 달하게 된 결과로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다." 하였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모른 결과로 모든 죄악을 연출하고(3,4절 상반), 모든 죄악을 연출한 결과로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멀리 떠납니다(4절 하반).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복을 주시고, 지켜 주시며, 인자와 진리를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모두는 여호와를 만홀히 여기는 자가 아니라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다시 말해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믿고 섬기는 자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다’라는 말은? 원래 ‘만홀히 여긴다’라는 말은 ‘바보취급하다’라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모독하고, 등한시 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만홀히 여긴다’라는 말은? 무심하게 하다, 혹은 소홀히 여기다는 것입니다. 즉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과, 업신여기는 모습을 일컬어서 만홀히 여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을 분이 아니라 정말 경외함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소홀히 여기고,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업신여기고, 모독하고 등한시 하는지 모릅니다.다시 말해 하나님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모습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모르기까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백성들과 개인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사람이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천하의 모든 지식을 다가질 찌라도 제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감화로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일자 무식(一字無識)하여도 하나님을 바로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절대로 떠나서는 안되면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 나라를 흥하게 해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나라가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 지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며 만홀히 여기면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의 망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망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망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도 망합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도 망합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흥하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교회에 모인다면 이 나라는 치유될 수 있고 흥 할수 있습니다.
로마서16장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Logos)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레마(Rhema)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레마는 하나님이 특별히 내게 주시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의 원어를 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Message about Christ). 그러므로 예수님에 관하여 전도하고 설명하고 설교하여 예수님을 알게 해 줄 때 믿음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창세전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은 반드시 믿게 되어 있습니다(행 13:48).
따라서 저와 여러분이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해주거나 설교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누군가 가서 전해주었더라면 믿었을 텐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으니 알지도 못하고, 알지를 못했으니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런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예수님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가르쳐주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 나라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된다면 이 나라 이 민족은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도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법은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400 여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불법은 죄입니다. 그 나라 백성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도를 후손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들으며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을 말씀으로, 하나님의 법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조기교육은 중요합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는 많은 부모들이 열심을 내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는 더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삶은 더욱 풍성하고 윤택하여 지는 것입니다. 시냇가의 심긴 나무처럼 항상 푸르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펼쳐서 가르쳐야 합니다. 순종의 모범을 보여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가 복되기를 원하시면 하나님의 법도를 알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에게 이 법도를 알게 하여 지키게 하며 하나님의 법에 늘 귀를 기울여 살게 하기만 하면 이 땅에 불의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 땅에 죄악은 점점 줄어 들것입니다.
이 나라는 반드시 흥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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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