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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와 베드로(행 10:1-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인 고넬료와 유대인인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이방인인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야”라고 그를 부르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베드로에게 경건한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성전 앞에 앉아 있는, 일어서지 못한 사람을 일으켜 세웠던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그릇 하나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보자기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먹지 않는, 금지된 음식들이었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또 다시,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금지된 음식을 왜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계속 생각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에게,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은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고넬료는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다가, 베드로를 보고는 그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가,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말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 안에,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하여, 이야기 한 후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말한 후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라고, “선지자들이 증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왔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말한 후에, 고넬료와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은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고, 베드로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만난다고 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은 위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속된 것이었고, 깨끗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만남이 이루어졌고,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그 만남을 축복해주셨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역사적인 만남이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바란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만남으로 인하여, 이해와 양보와 타협으로 나아가, 협치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과는 조금의 변함도 없이, 각기,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길로 가는 것을 우리는 똑똑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쟁을 종식하고, 하나가 되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전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쟁은 계속 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유대인 베드로의 만남은, 사도 바울이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라고 말한 것처럼,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나무나도 아름다운 만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2-13)라고 말한 것처럼,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예수님의 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가까워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이 하나가 되었음을 인정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온 세상에 선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다툼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념과 종교로, 분열과 다툼과 전쟁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잘 섬기고,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어 버립니다. 여야를 떠나, 상대 진영에서 한 일들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자기들이 한 일들은 다 이유가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에, 모든 것이 다 똑같은데, 자기가 한 일은 무조건 옳은 일이고, 상대방이 한 일은 무조건 나쁜 일이라고 여깁니다. 거기에 함께, 덩달아 춤추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대 진영과 함께 한다는 것은 배신이라고 여깁니다. 상대 진영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 같으면, “당장 그 쪽으로 가라”고 외칩니다. 그래서인지, 절대 하나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 3:29-30)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고,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롬 10:12)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차별했습니다.
초대 교회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였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이방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차별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는 것을 보고,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 유대인들만 열심히 챙겨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원망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 2:44-47)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끼리만 서로 챙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들끼리만 따로 모여, 맛있는 것을 먹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라고 했는데, 그렇게 모아진 교회 재산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끼리만 챙기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일에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소외시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아래에서 태어났고, 8일만에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할례를 행하지도 않았고,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들어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했는데, 그 하나가 되는 과정이 결코 쉽지가 않았습니다.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믿고, 교회 안에 먼저 들어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15:5)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교회 안에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서 큰 회의가 열렸을 때, 베드로는 고넬료와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행 15:7-9)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라고 말했습니다.
회의 결과, 이방인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 때문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일 뿐인지, 할례를 행하거나,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동일하게, 아주 공평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고넬료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환상 중에, 천사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는 경건한 사람을 택하여, 베드로에게 보냈습니다.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은 고넬료에 대하여,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왔을 때,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향하여,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경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고넬료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비로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았을 때, 이만한 믿음을 가진 경건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가 있다고 하면, 고넬료가 이방인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현실로 보면, 일제 시대, 칼 찬 일본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 지금도 납득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고 있습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우리와 민족이 다르고,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가,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속으로는 차별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어릴 적, 흑인 혼혈아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했습니까? 또한, 지금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동남아 사람들을 멸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탈북자라고 멸시하고, 조선족이라고 멸시하고, 동남아 사람들이라고 멸시하고, 아랍 사람들이라고 멸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에 나갔다 입국할 때 보면,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하여, 줄을 서야 합니다.
입국 수속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자세히 쳐다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과 “한국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 사람”이 서야 하는 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 여권을 소지했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줄 선 사람들을 보면, 피부색이 다르고, 누가 봐도 외국 사람인데, 한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단일 민족”, “한민족”이라고 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이제는 그런 말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일 민족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다문화”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 아빠와 라오스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하면, 그 아이는 아빠를 따라 한국말을 할 것이고, 엄마를 따라 라오스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마도 동시통역이 가능할 것입니다.
훗날,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누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언어가 다르다고, 무시하고, 멸시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방인들을 멸시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후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나라 성도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입장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좋게 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가기 때문에,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도 유대교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의 시작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열정이 식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나라가 아닙니다. 거기에서 시작되었지만, 식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지만, 예루살렘은 복음화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라오스는 공산국가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방문을 통하여,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복음의 불씨를 보았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 떨어진 오지로, 복음을 전하려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오래 전, 교회에서, 기도원에서, 열광적으로 기도하던 성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많이도 식어버렸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과거가 되어 버렸습니다. 진행형이 아니라,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믿음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갈 2:12-14)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선언했던 베드로가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다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밥 먹던 숟가락을 내던지고, 36계 줄행랑을 쳤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차별이 없다. 하나이다”라고 외쳤던 베드로가, 그 외침대로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 한 번 넘어졌던 것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걷다가,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1896년에, 폴란드 작가, “헨리크 셍키에비치”가 쓴 장편소설 “쿠오바디스”에 보면, 로마 대화재 때, 베드로는 박해를 피하여, 로마를 빠져나가다가, 예수님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 바디스 도미네)”라고 말했습니다. “너가 버린 로마로 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로마로 되돌아가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큰 믿음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나의 믿음을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함으로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더 낮은 섬김의 자리로 나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모임이든지간에,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일치와 평화를 위하여, 힘쓰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라는 칭찬을 들었던 고넬료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날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날마다 성장하는 믿음이 되기를 원하오니,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는 믿음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일에 힘쓰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