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는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무서운 성실성으로
인류사에 남을 과학적 성과를 잇따라 내놓았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연구 성과로 한국 과학계의 거목으로 떠오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53) 교수의 성공 신화는 1988년 시작된다.
이 해 그는 국내 처음으로 소를 수정란 이식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해
언론에 이름 석 자를 알렸다.
이어서 93년엔 국내 최초로 시험관 송아지를, 99년엔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켰다.
여기까지가 1막. 이때까지의 연구 성과엔 늘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황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막은 2001년부터 인간 배아를 복제해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미션 임파서블'
(성취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는 것.
그 성과는 2004, 2005년 봄의 연타석 홈런으로 이어졌다.
2004년엔 체세포 복제에 의한 사람 배아줄기세포 확립,
2005년엔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에 의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을 성공시켰다.
이번엔 '세계 최초'였다.
◆성실은 하늘을 움직인다고 믿었다=황 교수 성공 비결의 첫째는 성실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박사는 뉴욕 타임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황 교수의 연구팀은 1년 365일 일한다. 예외인 때도 있다.
윤년엔 366일 일한다. 평일엔 오전 6시30분에 첫 회의를 하고,
일요일에만 회의시간이 오전 8시로 늦춰진다"고 소개했다.
황 교수는 "우리가 자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은 깨어 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자. 하늘을 감동시키자"며 연구팀을 독려한다.
"너무 힘이 들고 능력에 한계가 있다"며 연구원 생활을 접으려는 후학들에게
"이 사람아, 웃기지 마시게. 차라리 자네 성실함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게.
그럼 받아들이겠네"라며 분발을 촉구한다.
◆연구원들의 고민거리를 먼저 챙겼다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는 "연구팀을 잘 관리하고 다른 연구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황 박사의 오늘에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진단한다.
연구원들의 표정을 살펴 고민거리가 없는지 챙기는 습관은 20여 년간 변함이 없다.
그늘이 보이면 "무슨 일이 있느냐"며 캐묻는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자 연구원에겐 "나중에 좋은 놈 나타나면 내가 강제로 코를
꿰어서라도 맺어주마"라고 위로한다.
황 교수는 지금도 해외에 학술 발표를 하러 갈 때 비행기 일반석을 고집한다.
일등석.비즈니스석을 탈 비용을 아껴 연구원 두세 명에게 해외의 선진 과학.기술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간암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교수는 황 교수를
'쓸개 빠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담석이 생겨 쓸개를 떼낸 수술을 받은 사실을 놓고 하는 우스갯소리다.
이 교수는 "1990년대 중반엔 간암에 걸렸으나 이를 극복했고,
지난해엔 급성 맹장염으로 연구 현장에서 쓰러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2, 3년 전엔 수정란 이식 복제소의 진위를 놓고 축산 농민들의 공격을 받는 등
심적인 고통도 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이제는 아픈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했다
황 교수의 전공은 수의 산과학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그는 소가 임신했는지를 진단하기 위해 소의 항문 속으로 손을 넣는 일을
수천 번 반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수정란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갖게 됐다.
수정란을 잘 다루게 된 그에게 복제 기술이 보태진 것은 첫 해외 연수를 통해서였다.
1981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3, 4년간 시간강사를 전전하던 황 교수는 80년대 중반 일본
홋카이도대에서 1년가량 연구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이 대학은 복제 동물 생산을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는 "여기서 수정란 이식 전문가인 가나가와 박사를 만난 것이
황 교수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나가와 교수는 캐나다 유학(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시절 지도교수가 한국인 문영석
교수라는 이유로 평소에도 "한국인에게 기술을 배웠으므로 다른 한국인에겐 기술을
120% 가르쳐 주겠다"고 밝혀 온 인물이다.
순수 토종학자인 황 교수는 일본에서 연구 도중 능력이 뛰어난 우량종(種)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선 복제 기술이 필수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수정란+복제+정교한 손기술+성실'이라는 자신의 장기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틈새 시장을 공략했다
황 교수의 연구 결과가 알려지자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대학(USP) 생물학과
리자아 페레이라 교수는 미국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황우석이란
스타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이라고 말했다(20일 브라질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지 보도).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늘 윤리 논쟁을 부른다.
한편에선 '의학의 혁명'으로, 다른 한편에선 '프랑켄슈타인 과학'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생명공학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미국.일본 등에서 아직 뒷짐을 지고 있는 상태다.
연구자들은 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기가 어렵다. 게다가 손기술이 우리보다 훨씬 못하고
휴일도 없이 일할 연구팀을 구성하기도 불가능하다. 일종의 틈새 시장인 셈이다.
◆미디어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황 교수는 기자들 사이에선 어려운 과학용어를 쉽게 잘 풀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황 교수가 특별히 언론의 속성에 대해 배운 것도 아닌데 미디어의
관심을 극대화하는 기술은 과학자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며 "이번 발표 뒤 '우린 여전히
연구에 배가 고프다' 등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뽑을 수 있는 말을 시의 적절하게 제공하는
조어 능력도 대단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