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 에스페로] 'Endless' 풀버전 무대 영상
https://youtu.be/sJFB7JBatHE
[오늘의 사건]
1962년 12월 25일
차범석 원작 ‘산불’ 초연
극작가 차범석의 대표작 ‘산불’.
차범석(1924~1960)은 전후 문학의 1세대로 전통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희곡을 발표해
한국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하는 데 공헌한 당대 최고의 극작가이자 현대 연극의 파수꾼이었다.
평단이 그를 가리켜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이라고 극찬한 이유는 1930년대
유치진이 시작한 우리나라 리얼리즘 연극이 그에게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차범석은 전남 목포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막연하나마 그에게 예술에 대한 영감을 처음 불어넣어 준 것은 세계적인 무용수 최승희의 무대였다.
13세 때인 1937년 목포 평화극장에서 본 최승희의 춤사위는 그의 예술 의지를 자극했다.
1942년 광주 고보 졸업 후 일본의 명문 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하자 2년 동안 도쿄에서
백수로 생활하며 연극과 영화에 심취하고 각종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그 2년은 이후 차범석의 끊임없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1946년 22살의 늦은 나이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해 교내에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고
1949년 10월 제1회 전국대학연극 경연대회에서 그가 번역·연출한 ‘오이디푸스왕’으로
연출상을 차지하는 등 해방공간에서 연극에 심취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고향 목포로 낙향해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고
1951년 봄에는 목포의 한 예술제에 그가 각본·연출·주연한 ‘별은 밤마다’로 비공식 데뷔했다.
그의 이름이 중앙무대에 알려진 것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가
가작으로 입선하고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귀향’이 당선되면서였다.
이후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에 매달린 그는 1956년 김경옥, 최창봉 등과 함께
직업 극단인 ‘제작극회’를 창단해 흥행주의와 상업주의를 배척하는 소극장운동의 선봉에 섰다.
당시 그는 6·25 전쟁을 겪은 전후문학 세대로서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식이 강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특히 전쟁의 상처로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인간상을 그린 ‘
불모지’(1957)와 이념의 허구성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산불’(1962)은 6·25의 비극을 부각하고 반전 의식을 일깨운 전후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았다.
‘산불’은 이진순의 연출로 1962년 12월 25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져 대호평을 받았다.
‘산불’은 6·25 전쟁 중 남자들이 다 전쟁터로 나가고 여자들만 남은 한 과부마을에
빨치산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인간 본연의 욕망과 이데올로기를 다룬 작품으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실주의 희곡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산불’은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답게 영화, TV드라마,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총 90여 편의 희곡을 남긴 차범석은 2005년에도 신작 ‘연오랑세오녀’를 발표하며
영원한 현역임을 과시했다. 2006년 세상과 작별한 그의 죽음은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마감이었으며 한국 정통 연극의 종언이었다.
[오늘의 인물]
1995년 12월 25일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별세
부산흥사단의 ‘존경받는 인물상’ 제7회 수상자로 선정된 고(故) 장기려 박사.
평생 인술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장기려 박사(86)가 그토록 사랑하던 북녘땅의 부인과
자녀들을 이승에 남겨둔 채 1995년 12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장박사는 1909년 평북 용천군 양하면 입암리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월남하기 전인 1950년까지 경성의전 교수, 평양도립병원장 등을 지냈다.
6·25가 발발한 1950년 12월 2남인 가용 씨(60·서울대의대 교수)만 데리고
야밤에 집을 떠난 것이 북에 두고 온 부인 김봉숙여사(84)와 5자녀와의 이별이었다.
월남 이후 장박사는 부산에 정착, 1951년 1월 부산 영도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피난민 등을 무료진료하면서 인술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58년에는 부산 서구 토성동에 있는 지금의 부산대병원 뒤쪽에 행려병자
진료소를 차려놓고 2∼3년간 무료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창설, 영세민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1976년에는 부산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설립
, 무료진료에 나서 최근까지 중풍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려운 이웃의 건강을 보살폈다.
장박사는 서울대의대, 가톨릭의대, 부산대의대, 부산인제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 후진을 기르고 1959년 국내 최초로 간대량절제술에 성공하는 등 국내 의학계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는 이 같은 인술 구세의 공로로 그동안 부산시민상, 막사이사이상,
국제적십자사기장(봉사부문), 국민훈장, 호암상 등을 받았다.
춘원 이광수는 그를 두고 “성인 아니면 바보”라고 했고,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32건
ㆍ2008년 · 기니 쿠데타 성공
ㆍ2002년 · 시베리아 철도, 전철화 완공
ㆍ1995년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별세
ㆍ1994년 · 자일 싱 전 인도대통령 사망
ㆍ1991년 ·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연방 대통령 활동 중단 선언
ㆍ1989년 ·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총살형
ㆍ1989년 · 타임지,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80년대의 인물`로 선정
ㆍ1983년 · 스페인 화가 후안 미로 사망
ㆍ1977년 · 찰리 채플린 사망
ㆍ1977년 · 베긴-사다트 2차 평화회담
ㆍ1976년 · 중국 예술인 창작활동 재개
ㆍ1974년 · 국문학자 이재수 사망
ㆍ1971년 ·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
ㆍ1968년 · 10.5 구락부와 무소속 정우회 발족
ㆍ1963년 · 키프러스 내 그리스 터키 양군, 4일간 전투 후 휴전협정
ㆍ1960년 · 부산 국제시장 화재, 234개 점포 손실
ㆍ1949년 · 맥아더 장군, 일본전범에 특사
ㆍ1949년 · 북한, 소련과 영사협정 체결
ㆍ1941년 · 일본군 홍콩을 점령
ㆍ1938년 · 체코의 극작가 겸 소설가 카렐 차페크 사망
ㆍ1932년 · 한중연합 토일(討日)군 (한국 측 이청천 황학수, 중국 측 채세요)
ㆍ1926년 · 일본의 제123대 왕 대정(大正) 사망
ㆍ1926년 · 히로히토(裕仁) 제124대 일왕으로 즉위
ㆍ1918년 ·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출생
ㆍ1915년 · 중국 진남에 제정반대의 혁명군 봉기. 제3혁명 개시
ㆍ1906년 · 전자현미경 발명한 독일의 전기공학자 루스카 출생
ㆍ1899년 ·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 출생
ㆍ1898년 · 독립협회 강제 해산
ㆍ1878년 · 독일 소설가 한스 카로사 출생
ㆍ1861년 · 프랑스 조각가 마이욜 탄생
ㆍ1642년 · 만유인력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 뉴턴 출생
ㆍ0336년 · 크리스마스 행사 시작
[출처 : 조선닷컴]
첫댓글 [김호중 & 에스페로] 'Endless' 풀버전 무대 영상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는 김호중이네요 ㅎ
즐감 합니다
차범석 원작 ‘산불’ 초연
차범석 극작가님의 우리나라 문화계의 거성이셨죠
게시해 주셔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별세
장기려 박사님은 정말 우리나라의 슈바이쳐시죠
북한에 부인을 두고 오셔서 평생 재혼도 하지 않고
부인을 그리워하시다 돌아가셨으니 그런 것도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즐거운 성탄절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김호중 사랑은 오늘도 변함없지요 ㅎ
그 시절엔 작품이 나왔다 하면
차범석...
아...
장기려 박사님의 인생 한 페이지
마음이 시큰해 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생을 마감하시려니
얼마나 괴로우셨을 까요
그래도 마음에 치유가 될 수 있는
진정한 마음 나눔을 하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