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문현화)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구약에서는 율법이라고 했지만 신약에서는 복음, 옛 계명, 새 계명 옛 언약과 새 언약 신약성경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구약도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의 중심에 계신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새롭게 나타난다. 새 계명과 옛 계명이 무엇이 다른가? 오늘 본문에서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옛 계명과 어떻게 다른가?
첫째는 이 계명을 주신 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구약의 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권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백성이 이러한 하나님을 볼 때에는 두려움이 앞선다. 모세를 부르셔서 말씀을 주실 때는 짐승도 얼씬하지 말라고 하신다. 여호수아도 산 중턱에서 기다린다. 산 위는 사람이 감히 올라가 볼 수 없는 곳 이였다. 구약에서 옛 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두렵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 하나님이 몸을 입고 오셔서 제자들과 일상을 함께 하신다. 그들의 어려움과 슬픔을 함께 나누시며 그들과 친구가 되신다. 신약시대에서 하나님을 생각해보면 더 이상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시다. 나를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주신 하나님이시다. 이 것이 두 계명사이의 특징이다.
둘째로 다른 점은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친히 시범을 보여주신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범인가? 공생에 가운데 하셨던 일이 뚜렷하게 세 가지이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다. 이 세 가지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다. 인간은 육신적인 것을 해결해주었을 때 은혜를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을 가르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하나님을 몰랐다. 지식에는 하늘의 지식과 세상의 지식 두 가지가 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떻게든 천국을 알려주시고 싶은 마음 이였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기도하는데도 모범을 보이신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아셨지만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고 하신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며 탄식하시며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기도로 내 앞의 위험이 물러 갈 때가 있고, 또 부드럽게 넘어 갈수도 있다. 예수님은 섬김과 겸손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본이 되셨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크냐 잘난척 하고 싶어 하는 제자들에게도 가르치신다.
셋째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성령을 부어주시고 능력을 주시며 사랑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성령을 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가 없다. 성령을 부음 받으면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육신 것을 붙잡고 애를 쓰며 살았지만 변화를 받으면 이 세상의 것을 가볍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네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다. 이 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새 계명이다.
예수님은 양의 문
요10:7~9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양이라고 하지만 이 문으로 드나들지 않는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양의 문이라고 하시며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절도요 강도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절도요 강도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씀 하실 것이다. 나보다 먼저 온자라는 뜻에는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 많이 담겨 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라는 말씀을 조금 더 해석해보면 먼저 선생이 된 사람들(예수님 앞에서 잘난척하는 자들)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보다 잘 났다고 하는 자들, 예수님의 스승이라고 하는 자들을 절도요 강도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 날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강도나 절도가 되지 않도록 자기를 살펴 근신해야 한다. 마리야와 마르다를 볼 때 마르다는 음식을 대접하느라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누가 이 문으로 드나들 수 있겠는가? 목자에게 절 대 순종하는 양이어야 한다. 이 문은 우리의 육신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목자의 보호권은 문이다. 사도바울은 바울에 갇혀 있지만 그리스도 있다고 선포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한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담을 쌓고 있다할지라도 평안이 없다. 시편37:5 하나님의 사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진치고 둘러 있다고 말한다. 누가 이런 보호권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도 즉각 행한다. 또한 갈바를 알지 못하고 지시할 땅으로 떠나라고 할 때도 순종한다. 이런 아브라함이기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오늘 날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말씀 한마디 한 마디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린 이삭을 희롱하는 이스마엘을 내 쫓으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라에게 이해를 구했을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낸다. 이스마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그 복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양은 말이 없다. 사람은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 불평을 많이 할수록 불평이 많이 나온다. 우리는 선한 말을 해야 한다. 둘째로 양의 특징은 화목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양들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화목하기를 잘한다. 또한 양은 낮은 곳을 좋아하고 염소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약점은 높아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북한의 김일성, 이단의 주교 등 자신들을 신격화 한다. 우리는 낮아져야 한다. 신명기 8장에서는 이스라엘이 40년동안 광야를 돌아온 이유는 그들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우리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하나님이 높아져야 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
요10:11~15
성경전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 아마 요한복음 3장 16절일 것이다. 시편 중에서는 누구든지 23편이다. 많이 듣고 암송도 하지만 들을 때 마다 새롭게 깨달아지며 하나님을 목자로 살아가는 것은 복이 아닐수가 없다. 다윗은 주님을 의지해 살았지만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선한목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 선한목자는 양들에게 양식을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 해야 되는 첫 번째 문제도 백성들이 굶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윗왕은 이러한 것들을 이루었다. 하나님은 한국 땅에 대통령들을 세워주시고 복을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푸는 초장으로 인도하신다. 베드로에게 양을 치고 먹이라고 하신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목사님들은 백성들에게 좋은 양식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목자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이 양 무리에게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의양식을 잘 받아 먹어야 한다. 사복음서를 열심히 읽으면 좋은 양이 되며 분별력이 생긴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양이 되려면 예수님을 잘 아는게 필요하다. 예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계신다. 우리의 소원이 예수님 알기를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나를 아신다. 나의 마음과 생각까지 아시고 나를 인도하시는데 내가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선한 목자는 또한 우리를 인도하신다.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종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신다. 그러나 어떤 길로 갈지라고 항상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야 한다. 사람은 제일 불쾌해 하는 것이 대접을 받지 못할 때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높고 거룩한 분이신가? 이러한 예수님을 우리는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보다 잘난척하지 말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계시록의 십사만 사천명을 소개할 때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르는 어린양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성령이여 오늘도 우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거룩하고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마11:7~11
예수님은 많은 무리를 보고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라고 물으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둘째는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선지를 보려고 나갔느냐고 하시며 세례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하신다. 여자가 나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나은 자가 없다고 하신다. 구약에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제쳐놓고 세례요한을 높이 칭찬하신다. 그러시고는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그들 앞에 있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너는 무엇을 보려고 세상에 태어났느냐 라는 질문과 같다. 이 땅의 좋아 보이는 것은 진정하고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한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선지자는 누구인가? 선지자는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먼저 알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이러한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 구약성경에는 거짓선지자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따르는 자들은 멸망을 당했다. 우리는 참 선지자를 잘 마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선지자는 다른 말로 예언자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맡기셨다는 의미가 있다. 세례요한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아 거룩한 사역을 이루어가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나가서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를 인도하여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 요셉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선지자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며 동시에 죄인임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선지자는 우리의 사명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물어야 한다. 사도바울과 같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야 하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야 한다. 사도들은 윤리도덕이 아닌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쳤다. 성령을 힘입어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느낀점: 요즘 구약성경과 병행하여 신약성경 사복음서를 읽고 있다. 말씀이 새롭게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것을 느낀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주님께 순종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하고,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인 사복음서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사복음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