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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신명기32장15~33절
제목 : 이스라엘의 반역
사랑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심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배은망덕한 반역이 하나님의 혹독한 징벌을 초래합니다.
1. 여수룬의 배신(15~18절)
1) 여수룬의 배은망덕에 대한 반어적 표현입니다(15절)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
여수룬. - '예수룬'을 음역(音譯)한 이 말은 이스라엘을 명예롭게 일컫는 시적(詩的) 표현 또는 별명입니다(33:5, 26;사 44:2).
70인역(LXX)은 이 말을 '사랑받는 자'로도 번역했으나.
델리취(Delitzsch)는 이 말의 어원을 '아솨르' '옮음', '곧음'로 보고 '옳은 자' 또는 '의로운 자'로 번역했습니다(민 23:10).
따라서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명예롭고 존귀한 명칭이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사악(邪惡)함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즉 마땅히 그 이름의 뜻답게 의로운 길을 걸으며 살아가야 할 백성들이 오히려 사곡한 배교(背敎)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이를 꾸짖기 위해 이스라엘을 풍자적으로 '여수룬'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Calvin).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였다는 뜻입니다(Luther).
업신여겼도다(나발). - 원뜻은 '시들다, '마르다'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다'(KJV, lightly esteemed), 또는 '거부했다'(NIV, tejected)는 뜻입니다(미 7:6).
2) 그들은 다른 신, 가짜 신들을 섬기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격분하십니다(16절).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
다른 신. – 11:27, 28;13:6 주석 참조.
가증한 것(토에바). 원뜻은 '구역질 나는 것'으로서 곧'우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것들을 얼마나 혐오하시는지를 잘 나타내 줍니다.
그러므로 NIV는 이를 '혐오스러운 우상들'(detestable idol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23:18참조.
3)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습니다(17절).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
귀신. – 이 말에 해당하는 '쉐딤'은 본래 반신반인 (demigod, 半身半人)이란 뜻을 지닌 앗스르의 수호신(守護神) '쉐두'(Shedu)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도 '귀신'(demons)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신약적 개념의 마귀나 귀신을 뜻하지 아니하고, 어디까지나 '이방 우상들'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동일한 말이 시106:37에서는 '악귀'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 - '근래에'(믹카로브)는 통상 시간적, 장소적 근접 상태를 모두 의미한, 여기서는 시간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근래의 신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먼 열조 때부터 오랬 동안 알아왔던 신, 곧 여호와 하나님과는 뚜렸이 대조되는 헛된 신들입니다(13:2, 6).
한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종교적 성향(性向)을 갖고 있습니다(행 17:22).
그리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무수한 새 신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참 신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섬기던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흥망성쇠와 더불어 명멸(明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살아계신 참 신이신 까닭에 역사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도 영존하시는 것입니다(시 102:26, 27).
4) 하나님은 그들을 낳으시고 조성하신 분인데 그들은 잊고 삽니다(18절).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상관하지 아니하고. - '괘념하지 아니하다', '무관심하다'(KJV, be unmindful of)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 하였는 지(15절) 그 과정을 시사해 주는 말
입니다.
2. 진노의 심판(19~25절)
1)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백성(19~21절)
(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습니다(19절).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
여호와께서 보시고. - '보다'에 해당하는 '야레'는 '놀라다', '두려워하다'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배은망덕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극도로 실망하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2)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들입니다(20절).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 하나님께서 더 이상 상대방과 관계하지 않으시고, 그들에 대한 모든 보호와 긍휼을 중단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31:17, 18참조.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 영역본 RSV는 이를 '그들은 완악한 세대이고 신실하지 않은 자녀들이다'(They are a perverse generation, children in whom is no faithfulnes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5절과 흡사한 표현입니다.
(3) 하나님께서도 ‘민족이 아닌 사람들’을 지원하여 이스라엘의 질투와 진노를 일으키실 것입니다(21절).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
본절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감정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묘사한 구절입니다.
즉 이는 한 남편이 음란한 아내에게 자신이 멸시당하고 있음을 알고, 그 역시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함으로써 보복하는 질투 심리를 연상시켜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나 보복은 미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랑에 근거한 교육적 차원의 징계입니다.
이 선고(宣告)는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로마등과 같은 이방 민족이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들을 괴롭힘으로써 역사상 성위 되었습니다.
한편 신약 시대의 사도바울은 이러한 본절을 구속사적 측면에서도 이해하였습니다. 즉 그는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들보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을 먼저 교회 안으로 이끄심으로써, 유대인들로 하여금 시기 나게 하여 그들도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실 하나님의 구속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본절을 인용하였습니다(롬 10:19;11:11).
내 질투를 일으키며. –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을 의인화시킨 표현 방법으로 신학적으로는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입니다(출 20:5;사 42:8).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 헌신과 애정을 바치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표현한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질투'는 고대 근동의 여타 신(神)들처럼 인간의 성공이나 번영 그리고 배반 등에 대해 시기하고 암투하는 그러한 질투가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올 고유한 영광이나 찬송이 자신의 피조물인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체에게 엉뚱하게 주어질 때 하나님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의 영혼이 헛된 우상에게 빼앗길 때 그것을 질투하시는 것입니다(출 34:14;수 24:19).
하나님의 이러한 품성은 우상 숭배하는 행위를 '음행'이라는 말로 정죄한 사실(렘 13:27;겔 16:20;호 9:1)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허무한 것. – 우상의 속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4:23). 레 26:1참조.
2) 백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22~25절)
(1) 재앙에 의한 전면적 파국입니다(22절).
“[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
내 분노의 불. – 하나님의 분노를 '불'에 비유한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타납니다(렘15:14 ; 17:4 ; 애 4:11).
실제로 하나님은 불로써 이스라엘에게 분노를 표하기도 하셨습니다(민 11:1-3).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 신약 시대의 '지옥'(하데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당시에는 '사후(死後)의 세계'에 대한 계시가 명확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스올' 곧 '음부'(陰部)는 선악간을 막론하고 일단 죽은 자들이 가서 거하는 곳으로 여겼던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창 37:36주석 참조,
그러므로 결국 본절은 분노의 극렬함으로 인해 땅 속까지 미치는 듯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2)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라(23절).
“[23]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쌓으며(사파). '문지르다', '깨끗이 하다', '면도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이를 '완전히 멸망시키다'는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로 '쌓아 올리다'(heap)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 하나님의 재앙이 위에서부터 쏘아대는 화살에 비유되고 있습니다(시 7:13;슥 9:14).
이는 곧 하나님께서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더 이상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물리쳐 없앨 대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입니다.
(3) 재앙의 목록입니다(24절)
“[24]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하나님의 심판의 화살(23절)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곧 극심한 기근과 각종 질병 그리고 전쟁(25절)입니다.
이러한 재앙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무모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 – 이는 각각 '열병'(fever)과 '흑사병'(pestilence)을 가리키는 듯합니다(RSV, Living Bible).
들짐승의 이. – 사나운 야수들의 송곳니(fangs, NIV)에 의해 갈갈이 찢겼으리라는 경고입니다.
티끌에 기는 것의 독. - '티끌에 기는 것'이란 뱀(serpent, KJV)을 가리킵니다(창3:14). 그러므로 이는 각종 독사(viper, NIV)에 의해 입는 상해를 의미합니다.
(4) 두 가지 즉 칼(검)과 놀람(공포)를 추가합니다(25절)
“[25]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 후일 남왕국 유다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가"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애 1:20)라고 탄식했던 것은 바로 본절의 성취일 것입니다.
실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으나(레 26:7, 8;잠 3:6). 그렇지 못한 자들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기 마련입니다(레 26:36, 37;잠 28:1).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 – 패역한 세대, 사곡한 종류에게 임할 하나님의 철저 한 심판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예외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정성을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3. 이스라엘의 원수에 대한 경고(26~33절)
1) 심판을 오해하는 대적들(26~31절)
(1)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어서 기어기 끊어지게 합니다(26절).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흩어서(파아). - 원뜻은 '훅불다'입니다.
여기서는 강한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는 먼지와 같이 비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하나님을 멸시하며 우쭐대는 모습을 저지하기 위해서입니다(27절).
“[27]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 이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치 자기들의 힘과 용맹 때문인 줄로 오해하여, 이스라엘을 멸시할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까지 비웃을까 걱정된다는 뜻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그 지엄 하신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낱 조롱거리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 너무도 자명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되 당신의 영광을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민 이스라엘을 완전한 파국에 까지는 이르지 않게 하실 것임을 시사해 줍나다.
우리 수단의 높음이요. – 자신들의 힘이 강하고 용맹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의 어리석은 교만을 가리킵니다(Keil).
(3) 자신의 능력에 의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며 우쭐대는 그 대적들은 모략도 없고 분별력도 없으며 지혜도 없습니다(28,29절).
“[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29]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그들은. – 본절부터 이하에 나오는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대명사입니다.
혹자는 이를 27절과 연관, '이스라엘의 대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Wycliffe) 전체 문맥에 상치되는 견해입니다.
모략이 없는. –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주(Lord)로 깨달아 아는 지각(知覺)이나 분별력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Lange).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만일 지혜로운 마음을 품어서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하나님도 그들을 대적에게 내어 주는 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일종의 가정법적 탄식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징계의 채찍을 맞고 돌아오기 전에,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히 축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심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지혜(호크마). -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기교적인 지식이나 사변적인 학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과 언약 백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그 관계를 올바로 유지시켜 주는 이론적인 총명함과 명철함, 실천적인 유능함과 슬기로움, 도덕적인 정직함과 성실함, 영적인 온전함과 청결함을 총체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혜는 결코 세상에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만 얻을 수있습니다.
그런즉 한마디로 말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호크마' 곧 지혜의 근본이라
하겠습니다(시 111:10).
따라서 이러한 지혜가 없는 백성은 결국 멸망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는 선지자 호세아의 말도 지혜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그의 메시지의 주제였습니다.
(4)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팔고 그들을 내주지 않았다면 어찌 대적들이 그들을 격파할 수 있겠는가(30절).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
그들의 반석. - '반석'(4절), '너를 낳은 반석'(18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반석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19-47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 하셨더면 어찌. – 이스라엘 대적들의 자고(自高)한 생각(27절)을 직접적으로 반박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써 겪게 되는 패전의 참담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5)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들의 반석이 이 일을 도왔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제압했다고 오판합니다(31절).
“[31] 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 여기서 '그들의 반석'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믿고 의지하는 이방의 각종 신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석'이란 물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킵니다.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을 때 물질, 재산, 권력, 심지어 허탄한 우상 신까지 자신의 반석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 앞에 대적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모세와 겨루다 결국 하나님의 권능에 굴복하고 말았었습니다(출 8:16-19).
그러므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2)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 혹자는 대적이 스스로 자신들의 신보다 여호와를 더 전능하다고 인정할 리 없다고 하면서 본절을 의심하기도 합니다(Schultz).
그러나 성경 기록만 보더라도 이러한 예는 많습니다.
즉 애굽 군사들의 경우(출 14:25), 이방의 술사 발람의 경우(민 23:23), 가나안에 거했던 라함의 경우(수2:9,10), 그리고 블레셋 족속 아스돗 사람들의 경우(삼상 5:7) 등이 스스로 여호와를 자신들의 신보다 능하다고 판단한 경우입니다.
2) 대적들이 받을 심판(32~35절)
(1)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똑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는 의미입니다(32절)
“[32] 이는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
그들의 포도나무. - '이스라엘'을 초칭하여 가리키는 말입니다(호 10:1;욜 1:7). 시편 기자와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한 극상품 푸도나무를 애굽에서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심으셨다고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시 80:8;사 5:2).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 이스라엘이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음란을 좇는 타락한 백성이 되었음을 비유하고 있는 말입니다(창 18:20;19:4-9;사 1:10;렘 23:14).
후일 선지자 이샤야도 "이스라엘이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 5:2)라고 탄식했습니다.
(2)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입니다(33절).
“[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 '뱀'에 해당하는 '탄닌'은 코브라 종류를 가리키는 듯합니다<출 7:10>.
그리고 '독사'에 해당하는 '페텐'은 살모사와 같이 치명적인 독(毒)을 지니고 있는 뱀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절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치명적인 것임을 의미합니다(Cavin).
후일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고 말함으로써, 죄의 해독성(害毒性)을 한 마디로 요약하였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기름진 여수룬 이스라엘은 배부르고 살이 찌자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창조주를 잊었고, 구원자를 잊었고, 인도하신 자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들에 반했습니다.
새로운 신들에게 매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가증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변절과 배반은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켰습니다.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가 나오고 경외함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패역했고 진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열국을 들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풍요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을 때 풍요는 죽이는 독이 됩니다.
고난의 시험보다 풍요의 유혹이 위험한 법입니다.
오늘도 풍요 속에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루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사랑한 백성에게 격노하십니다(19~21절).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을 거두시고, 그 자리에 미움과 질투를 채우셨습니다.
눈종자처럼 사랑하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던 백성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시고 얼굴을 숨기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불같은 사랑이며, 전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배타적 사랑입니다.
곁눈질을 허용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세상을 향한 눈길을 거두고, 나누어진 마음을 속히 수습하여 하나님을 향한 숨결한 사랑을 회복합시다.
2) 패역한 백성을 가차 없이 심판하십니다(22~25절).
스올의 깊은 곳까지, 화살을 다 사용하실 때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이 맹렬하게 타올라 땅과 소산을 모두 불태울 때, 누구도 그 불길을 잡거나 끌 수 없을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는 단순한 엄포가 아닙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심판의 경고가 현실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로 속히 돌이키는 것이 살 길입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남겨두십니다(26,27절).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심판도 그 사랑에서 비롯된 징계입니다.
혹독한 심판 중에도 마음 아파하시고 속히 돌아오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심판의 상황까지 치닫치 않도록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점검합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삶이 윤택할 때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15~18절).
‘여수룬’(의로운 자)으로 불리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의 풍요에 젖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버립니다.
평화와 평안과 풍요로운 삶을 얻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자칫 방심하고 나태하게 되면, 축복의 삶은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지속적으로 복을 누리는 길은 복 주신 분을 잊지 않는 것, 복을 누리는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