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구유에 넣고 싶은 것이 뭐가 있니?" "음~ 하느님이요!" "하느님?" "아들이 태어나는 걸 보러오셨을 거 아니에요!"
충주성모학교 중학교 1학년 미술시간. 교사 이영신(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의 질문에 규호(안토니오, 14)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한다. 성탄을 며칠 앞두고 구유를 만들기로 한 날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은 황규호, 강혜규, 정상진, 김하종 군과 이승연 양 등 총 5명.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국내 유일 시각장애인학교인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자라면서 시력을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거나, 저시력인 아이들이다.
잘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구유를 어떻게 만들까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시각장애를 알고 어릴 때 빨리 촉각을 익혔기에 촉각이 발달한 아이들은 지난해부터 매년 서울 평화화랑 등지에서 도예전시회를 열어왔을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혜규(야고보)는 나무판 위에다 찰흙을 반죽해 나무칼로 자르고 동그랗게 만든다. 요셉 성인 머리다. 가늘고 길게 반죽한 찰흙은 달팽이처럼 말아 곱슬머리를 표현해 내고 턱은 긁기칼로 긁어 수염을 표현한다.
반에서 유일한 여학생인 승연이는 구유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님을, 부끄럼 많은 하종이는 예수님께 선물할 장갑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만든다. 상진이는 병아리, 타조, 거북이 등 온갖 동물들을 척척 만들어낸다.
"상진아, 거북이는 왜 만들었어?"(이 수녀)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근데 어떻하니, 33살 밖에 못사셨는데?" "하하하~" 웃음바다가 된 교실에서 승연이가 넉살 좋게 받아친다. "괜찮아요. 스케쥴 빡빡~하게 살다가셨잖아요!"
이렇게 만들어진 구유의 등장인물들은 미술실 한쪽에 있는 전기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유약을 바르고 800도에서 10시간 초벌구이하고 다시 유약을 발라 1250도에서 12~13시간 재벌구이하면 완성이다.
▲ 찰흙으로 만든 구유를 꾸미는 충주성모학교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미술교사 이영신 수녀.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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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선생님은 너희가 내년에도 지금처럼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갔으면 해."
충주성모학교에서 10년을 가르쳤다는 이 수녀에게 아이들은 자식과 같다. 새해소망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듯, 아이들에게 향한다.
"아빠가 안 계셔서 엄마가 힘드신데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잘 지내실 수 있게 예수님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승연이가 새해소원으로 엄마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가 엄마 이야기로 잇는다. 지난해 여름 간암으로 자상한 아버지를 잃은 승연이는 자신보다 의지할 곳을 잃은 엄마 걱정이 우선이다.
"엄마, 내년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어요!" 지적장애 3급과 시각장애 3급을 갖고 있는 상진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상진이의 엄마도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히 잘 계셨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떠난 규호도 씩씩하게 말한다. 규호는 맹아원과 그룹홈에서 수녀들 손에 자랐다.
아이들은 "구유를 만드니 예수님이 빨리 오실 것 같다"면서 "내년엔 선생님, 수녀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에서 이미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느껴진다.
글=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충주성모학교는
충주성모학교(교장 이순복 수녀)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국내 유일 시각장애인학교다.
충북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해 있으며 유ㆍ초ㆍ중ㆍ고등부 학생과 중도실명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및 직업재활 과정이 마련돼 있다.
1955년 옥보을(메리놀 외방선교회) 신부에 의해 충주성심맹아학원으로 개교한 충주성모학교는 현재 사랑의 씨튼 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50년 전통 교육 노하우로 재활과정별 최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뛰어난 이료(理療) 교사진을 확보, 직업기능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히딩크재단 지원으로 조성된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 맹아원 기숙 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86명 학생을 교사 45명(보조교사 포함)이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다. 문의 : 043-843-1374, 누리방 http://chungjusm.sc.kr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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