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Stendhal (스탕달 1783-1842)
19세기 소설가로 근대 심리소설의 효시이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이다.
스탕달은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와 함께
19세기 대표적인 프랑스의 대문호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자,
근대 심리소설이 그로부터 시작했다고 일컬어진다.
에밀 졸라는
스탕달을 일컬어
18세기 소설과 현대소설을 잇는 가교라고 평가했다.
스탕달의 본명은 마리 앙리 베일로,
1783년 1월 23일 프랑스 동남부 지방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셰뤼뱅 베일은 변호사였으며,
어머니 앙리에트 가뇽은 의사 앙리 가뇽의 딸로, 집안은 부유한 중산층이었다.
8세 때
어머니가 출산을 하다 숨을 거두었는데,
스탕달은 이때
'내 모든 행복이 끝났다'라고 표현할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는 이모인 세라피를 불러 집안 살림을 맡겼는데,
스탕달은 둘 사이를 의심하고 어머니를 잃은 데 대한 원망을 모두 아버지에 쏟아부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스탕달은
냉철한 변호사인 아버지,
까다롭고 독선적인 이모 세라피와 성격도 잘 맞지 않아
고립되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문학으로 도피했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자애로운 외할아버지뿐이었고,
할아버지에게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 천문학 등 많은 것을 배웠다.
어린 시절에는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고,
13세 때
그르노블 중등학교가 개교하자 그곳에서 공부했다.
학창 시절에 성적이 우수했으며,
16세 때
집에서 나오고자 에콜 폴리테크닉(공과대학) 시험을 본다는 핑계로 파리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스탕달은 이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스탕달은 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생활에 목적조차 없었다.
그런데다 병까지 앓고 대학 입학자격고사를 포기하는 등 1년간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국방성 고위 관리였던 친척 피에르 다뤼의 주선으로
국방성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 후 기병대에 들어가 제6용기병 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나폴레옹이 생 베르나르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와 피에몬테 지방을 침공한 지 5개월 뒤였다.
이듬해
스탕달은 클로드 미쇼 장군의 부관으로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복무했으나,
군대 생활이 잘 맞지 않아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말라리아에 걸리자
고향 그르노블로 내려가 사직서를 냈다.
이때부터 스탕달은 파리와 그르노블을 오가면서 문학 습작을 시작했다.
그러나 스탕달이 습작 생활을 마감하고 작가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희극 작품, 스
페인 왕위 계승 전쟁사나 이탈리아 회화사 등과 같은 책들을 집필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다 중단했으며,
그사이에 상점 점원, 육군성 복귀, 행정관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1814년에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밀라노로 가서 약 7년간 딜레탕트 생활을 했다.
그리고 1821년,
오스트리아 왕정복고에 대항하는 젊은 지식인들에게 가담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정치적 불온분자로 낙인찍혀 밀라노를 떠나야 했다.
밀라노에 머물던 시기에 그
는 《로마, 나폴리, 피렌체》라는 기행문,
《하이든, 모차르트, 메타스타시오의 생애》,
《이탈리아 회화사》 같은 예술 관련 저술,
《나폴레옹의 생애》 등의 역서 저술을 쓰고 파리에서 출간했다.
스탕달이라는 필명은
1817년 《로마, 나폴리, 피렌체》를 출간할 때 처음 사용했는데,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이 태어난 슈텐달 지역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파리로 돌아온 이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1819년 6월 사망하면서
그에게 많은 빚을 남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이따금 다양한 잡지의 문예란에 칼럼을 기고하고,
살롱에 드나들면서 사교 활동을 했다.
첫 소설 《아르망스》는
1827년에 출간되었는데,
비평가도, 대중도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근대 심리소설의 창시자답게
스탕달은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을 만들어 내는 근원을
인물의 심리에서 찾고
이를 대담하게 묘사했으나, 아
직 소설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수법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군인연금도 끊기고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던 칼럼 일마저 떨어지면서
재정적으로 극심한 궁핍에 처한다.
1830년,
《적과 흑》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낭만적인 산문 비극을 쓰겠다는 그의 포부를 실현한 작품이자,
'1830년의 연대기'라는 부제처럼
당시 프랑스 사회와 시대에 대해 그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옮긴 작품이다.
스탕달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라는
위대한 프랑스의 시대가 지난 후에야
어른이 된 자신을
'시대를 잘못 택한 르네상스인'으로 여기면서,
숭고함과 열정,
위대함이 사라진 시대에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그가 바라본 프랑스 사회는
속물적이고 위선에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지난 시대의 낭만성과 위대함을 소설 속에서
어느 정도 복원함으로써 그런 결핍을 메우고자 시도했다.
《적과 흑》은
목수의 아들 쥘리앵 소렐이
잘생긴 얼굴과 속물들에 대한 경멸,
야심만만함을 무기로
상류 사회에 진입하여
승승장구하다
결국 가정교사로 일하던 집의 안주인과 사랑에 빠져 몰락하는 이야기이다.
연애소설의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하층 계급의 남자가
상류 사회 및 구체제 귀족들을 농락하는 사회소설이자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의 정치적 연대기를 그린 정치소설이라 할 수 있다.
1830년 7월,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
7월 왕정이 성립되었다.
작가로서 대단한 인정은 받지 못했으나
사교계의 저명인사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던 스탕달은
트리에스테 주재 영사 자리를 얻어 임지인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후 치비타베키아 주재 영사가 되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일했고,
그 기간에
《뤼시앵 뢰뱅》,
자전적 에세이 《앙리 브륄라르의 삶》, 《에고티즘의 회상》, 《한 여행자의 회상록》 등을
집필했다.
1838년,
스탕달은 〈르뷔 데 뒤 몽드〉 지에 이
탈리아 고문서를 토대로 쓴 〈카스트로의 수녀원장〉을 발표했다.
이 작품을 늘려 쓴 것이 《파르마의 수도원》으로,
밀라노의 대귀족 델 돈고의 차남 파브리스가 겪은
성직에서의 성공과 사랑 및 이탈리아의 정치적 음모를 중심으로 한 개인의 야망을
심리적으로 묘사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았으며,
오노레 드 발자크는
'현대판 《군주론》'이라 일컬으며
'글의 행마다 숭고함이 폭발한다'라고 평했다.
사회 고발과 인간의 심리적 통찰,
16세기적 낭만과 열정을 지닌 주인공 파브리스와
19세기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사회상이
조화롭게 얽혀
감동과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파르마의 수도원》을 집필하면서
다시 치비타베키아에서 영사로서의 의무에 충실하던 스탕달은
1841년 3월
뇌졸중 증세를 보여
11월에 요양 휴가를 얻어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집필 작업을 하던 스탕달은
1842년 3월 22일
거리에서 뇌졸중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고, 의
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이튿날 사망했다.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스탕달의 대표작은
앞서 소개한 《적과 흑》과 《파르마의 수도원》, 두 작품이다.
스탕달은
당대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으나,
후대에 들어
사실주의적 사회소설,
내밀한 심리 묘사 및 역사 발전 단계(혹은 사회 환경)와
인물 심리 간의 상관관계를 그려 낸
근대적 심리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얻었다.
프랑스의 문학사가 랑송은
《적과 흑》을
'역사적 심리와 역사 철학에 관한 깊은 연구'라고 칭하면서
"대혁명이 형성해 놓은 프랑스 사회에서 행위의 은밀한 동기와
영혼의 내면적 성질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라고 극찬했다.
이 작품이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작가 본인의 낭만주의적 성향으로
곳곳에서 낭만주의의 흔적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 시대를 사실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그려 낸 사실주의적 수법,
법전같이 명료하고 단조로운 문체가 현실 도피 성향
및 낭만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 거북하게 여겨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탕달은
그 자신의 예언대로
사후 50여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
1800년대 후반
폴 부르제 등의 심리학자들은
스탕달 개인 및 그의 인생,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에밀 졸라와 자연주의자들은
스탕달을 자신들의 선구자로 여겼다.
초현실주의자나 실존주의자 역시
스탕달을 추앙했는데,
이들은 스탕달의 작품이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심리학적 진리는 없다'라는 명제를 그리고 있으며
사실주의적 측면은 지니고 있지 않다고 여겼다. 스
탕달이 남긴 심리학적 성찰,
개인의 심리를 사회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인식은
20세기 소설의 주요 테마가 된다.
- 형설출판사(이한이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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