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들과의 산책(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황금내공원)
우리 집 개들은 유기견으로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해서 그런지 집안에 갇혀 지내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이상 개들을 데리고 한두 시간씩 산책을 나가고 있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하더라도 ‘치즈’와 ‘츠요’를 데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개화산, 궁산, 봉제산, 용왕산, 선유도, 등을 돌아가며 산책을 나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에 척추장애가 있는 ‘츠요’가 암 수술을 받은 뒤로는 휠체어를 착용시킬 수 없어 유모차에 태운 채 집에서 가까운 ‘황금내공원’이나 ‘구암공원’, 또는 ‘한강공원’에 산책을 나가곤 한다. 어제 개들을 데리고 황금내공원을 다녀왔다.
황금내공원은 서울시 강서구 가양3동 아파트단지 뒤편에 동서로 길게 이어진 근린공원이다. 예전엔 갈대가 무성한 강변이었으나 한강변에 올림픽대로를 만들고 난 뒤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공원 남단에는 염창산이 있고, 공원 북단은 가양대교로 이어지는 도로를 건너 구암공원과 연결된다. ‘황금내’라는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있던 한강 지류의 내천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했던 데서 비롯됐다. 사금은 한강 상류의 금광석이 침식작용으로 잘게 부서져 떠내려오다가 강폭이 넓은 한강 하류에 이르러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황금내 하류의 점토층에 쌓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구암공원에 있는 공암나루 앞을 ‘투금탄(投金灘)’이라 불렀으니 곧 ‘금을 던진 여울’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고려 때 어느 형제가 길을 걷다 아우가 우연히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워 하나를 형에게 주었다. 공암나루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다. 형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아우가 “지금 금을 나누고 보니 욕심 때문에 갑자기 형이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금덩어리를 차라리 강물에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형도 따라서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조선조 말까지만 하더라도 황금내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금 채취꾼들이 득시글거렸으며, 공암나루에는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싣고 오던 배들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황금내와 공암나루는 불과 500여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형제가 공암나루로 가는 길에 우연히 황금 덩어리를 주웠다는 ‘투금탄’의 전설은 황금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는 황금내도, 공암나루도 1980년대에 건설한 올림픽대로에 막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투금탄’의 전설로 인해 두 곳의 이름이 잊히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투금탄(投金灘)’에 대한 전설은 <고려사절요>, <고려사열전>, <동국여지승람>, <양천읍지> 등의 문헌에 실려 있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그 어떤 재물보다도 소중하다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인해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에서는 <성산이씨가승(星山李氏家乘)>의 내용을 들어 투금탄에 나오는 형제가 고려 후기의 문신인 이억년과 이조년에 관한 얘기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들 형제의 우의가 남달랐음이리라. 어찌 됐든 투금탄에 대한 전설은 황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