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 인내와 안위는 성경을 통하여 오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이다. 이 같은 인내와 안위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하고 또한 현재에는 형제간에 사랑과 협조를 갖게 한다.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크리스톤 예순'은 직역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특성과 모범을 본받아'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표준이며 모본이 되신다.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 본절은 희구법으로 미래의 소원을 나타내는 관용어적 표현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을 함으로써 서로 일치된 정신을 가질 뿐만 아니라 다같이 모든 일에 같은 확신과 생각을 갖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롬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한 마음과 한 입으로 - '한 마음'의 헬라어 '호모뒤마돈'은 '같은 심정을 가진', '만장 일치로' 등의 의미이며 바울은 본절에서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 입으로'(엔 헤니 스토마티)는 '하나의 일치된 고백'을 뜻한다. 이것은 일치된 신앙에 대한 생생한 표현으로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항상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호칭한 것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한 것으로 당시 초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표현이었다. 당시 사도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구원론적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 전부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우리의 구속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독립적으로 혼자서 구원을 이루신 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구원의 예정 가운데서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분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론적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의 중심이 되며 기독교 신앙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다.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영광'의 헬라어 '돝사제테'는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너희가 계속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는 뜻이다. 성도들 개개인의 삶의 목적이나 교회 일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연합의 중요성과 또한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실로 성도들이 서로 마음과 뜻이 일치되지 못하고 불화와 갈등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일치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참된 영광을 돌릴 수 없다.
[롬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이러므로 - 바울은 접속사 '그러므로'를 사용하여 14:1 이하에서 계속 되어온 문제 즉,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에 대한 내용을 총결론 내리면서 그가 서술하였던 바를 함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 바울은 이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들어 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가장 큰 목적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란 말이 헬라어 성경에 '카도스 카이 호 크리스토스 프로셀라베토 휘마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께서도' 또는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도'라고 강조점을 두어 해석함이 옳다. 즉 거룩하신 주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받아주셔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런 우리가 어찌 다른 형제를 용납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강력한 권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는 표준과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받으셨는데 하물며 우리가 그 연합을 파괴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느냐는 호소로, 서로가 용납하여 일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너희도 서로 받으라 - '받으라'의 헬라어는 '프로슬람바네스데'로 '영접하다', '환영하다'의 뜻을 가진 명령적 권고이다.
본절은 14:1의 내용을 되풀이한 것으로서 14:1에서 사용된 동사와 여기서 사용된 동사 '프로슬람바네스데'가 동일하지만, 여기서는 그 명령이 강한 자에게만 돌려지기 보다는 오히려 강한 자와 약한 자 양쪽 모두에게 돌려지고 있다. 따라서 '너희'는 성도 전체를 가리킨다.
[롬 15: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차별하시지 않고 모두 받아주신 이유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래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것으로서(갈 2:7-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이며 인l)으로 받게 한 것이다.
이처럼 이방인과 구별되어 선택받은 선민의 상징으로 실시되어온 할례는 유대인의 약속과 특권의 표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태어나셨고 또 친히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계약인 할례의 법에까지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
언약을 맺은 계약 백성 중의 하나가 되셔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수종자' 곧 '봉사자'가 되셨다는 뜻이다.
특히 '수종자'란 말이 가리키는 의미는 '종' 또는 '섬기는 자'란 뜻이다. 그리스도는 종으로서 낮게 되시기까지 하여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친히 수행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역은 당시 유대인에게 국한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분명 그것은 전인류를 위한 구속의 사역이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종으로 보내진 것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신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입증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배반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 신실하신 속성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종으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하시고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효과 및 목적을 나타내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즉 아브라함에게 한 자손을 허락하셔서 그 자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오게 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리라(창 12:1-3)는 약속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견고케 된 것이다. '견고케 하시고'의 헬라어 '베바이오사이'는 '성취하다', '확증하다', '확립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증명될 뿐만 아니라 실현되고 확립되어 결실케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 말을 언급한 것은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 신자들을 경시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우선권을 주셨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를 가진다. 즉,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근원 역사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 있어서도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목적을 상기시켜 구원이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까지 포함함을(9절) 가르친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진행 순서상 이스라엘이 먼저일 뿐이지 결코 이방인을 제외시킨 것이 아님을 알게 하므로써 유대인 신자들로 하여금 이방인 신자들을 멸시치 못하게 한 것이다.
[롬 15:9]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던 첫번째 목적이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견고케 하려 하심이었다면 이제 두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긍휼을 이방인에게도 나타내셔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긍휼의 참여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먼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은 것이다. 즉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의 계획과 그들을 통하여 영광받으실 것을 이미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구약의 인용문을 언급하고 있는 주된 요인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합심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힘으로 로마 교회의 구성원인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갈등과 불화를 종식시키고 서로 연합하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결국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돝사사이 톤 데온)는 구절이 앞절의 '견고케 하시고'란 말과 연결되어 평행을 이룰 뿐만 아니라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는 구절의 목적이 되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기록된 바 - 바울은 구약의 인용 구절을 주의 깊게 선택하여 8절과 9절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 즉 이방인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으며 자발적으로 영광을 돌리게 되었는지 구약의 구절을 인용하여 순서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러므로...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 이 구절은 시 18:49을 인용한 것으로 다윗이 주변 이방인들을 정복한 후 그 승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이다. 이것은 유대인인 바울 자신이 이방인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고 그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