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막 2장 1절)
답] 1절에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집에 계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시면서 사역하실 때 중심지로 삼은 곳입니다. 집은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으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3절에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셔서 사셨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집일 수도 있고 시몬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9절에 시몬과 안드레의 집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2절에 “도를(the word)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셨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미완료 시제가 쓰여 한 중풍병자가 찾아올 때까지 계속적으로 말씀을 전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시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셨습니다.
[2] 예수님을 찾아온 중풍병자와 네 사람은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막 2장 3-4절)
답] 한 중풍병자가 있었고, 그 사람에게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스스로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4절에 그는 누워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사람이 그를 메고 예수님께서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2절에 문 앞까지도 들어설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왔고, 그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러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대로 멈추지 않고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아주 창의적인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유대인의 집은 대개 지붕은 평평했고, 그 지붕으로 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네 사람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9절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겼다”고 합니다. 회반죽 아래에 돌기와를 깔아놓은 집이었을 것입니다. 네 사람은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립니다. 갑자기 지붕이 뜯기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이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일이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네 사람에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막 2장 5절)
답] 2절에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셨다”고 했으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중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갑자기 지붕이 뜯기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이 내려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의미할까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중풍병이 왜 왔는지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참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5절에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단지 자신의 병만 고침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중풍병자는 자신에게 있는 중풍병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예수님께 왔다고 보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이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막 2장 6-7절)
답] 서기관들은 그 당시에 율법을 가르치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그 집에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예수님에 대한 특별 조사를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각자 생각을 했지만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이 같은 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7절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할 수 없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신성 모독”(7절)에 해당되었습니다. 신성 모독죄는 사형에 해당이 되었습니다(레 24장 16절). 서기관들이 생각하기에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출 34장 6-7절. 시 103편 3절. 사 43장 25절).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은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믿으면 예수님의 말씀은 은혜의 말씀이 되고 믿지 않으면 신성 모독이 됩니다.
[5]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막 2장 8-10절)
답]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생각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말을 해서 안 것이 아니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고 물으시고 질문을 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말씀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중 어느 것이 더 쉬운지 묻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기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말은 쉽지만 능력을 드러내는 것은 특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10절) 있음을 알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을 알게 하겠다는 것은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서기관들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하나님께만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예수님께 자신이 그런 분이심을 나타내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나타내신다면 예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신성 모독죄에 걸리게 됩니다.
[6]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이고 중풍병자는 어떻게 합니까?(막 2장 11-12절)
답]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겠다고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네게 이르노니” 하시면서(11절) 자신의 권세를 나타내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신적인 능력을 행사하실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은 신적인 능력을 나타냄으로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시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도 고칠 수 없는 중풍병을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바로 고치셔서 정상적으로 걷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12절에 중풍병자는 바로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갑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런 일은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펼쳐진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자신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십니다. 중풍병자가 물론 몸의 치료를 받은 것도 큰 은혜를 누린 것이지만 예수님께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다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