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는 날씨가 쌀쌀할수록 투명해진다. 가을 들판은 해가 기울수록 황토 빛으로 채색된다. 마당에 한 구루 감나무는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마을마다 빈집들이 들어나고 있다. 지난 세월을 내려 보고 있는 감나무는 지난 세월의 무심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감이 익어가는 모습은 느리게 가는 시간이다. 산언덕 아래 노랗게 핀 감국이 느린 오후를 알린다. 멀리 아득히 멀어져가는 작은 섬을 바라보고 있는 해국은 하나의 풍경과 하나의 만남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현재는 조금 전에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그러나 장독대에 비쳐오는 가을 햇살은 느리게 가고 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자연의 풍경을 본다. 아주 오래된 시간 속에도 순간의 아름다움이 있다. 지금 보기에는 빠른 세월이겠지만 아주 천천히 걸어 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현재의 영상을 보내온다고 해도 내가 직접 가지 않고선 순간적인 느낌을 찾지 못한다. 나의 몸을 싣고 아주 빠르게 달리는 도구가 있으면 거기에서 직접 느끼고 싶다. 아직 그렇지 못하니 나와 가깝게 있는 풍경을 본다. 해마다 마을로 내려오는 가을 풍경을 보면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게 생동감이다. 감수성을 더 예민해지고 민첩성과 기발함이 생동감이다. 유명한 관광특구보다 동네 한 바퀴 도는 데에서 생동감이 밀려온다. 요즘은 건축자재들이 간편하고 집 짓는 데에 도구가 좋아져 어느 날 갑자기 집을 지어놓는다. 일회용품도 언제 내 곁에 있는지도 모르게 왔다 가버린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천천히 왔다가 천천히 멀어지는 것이 자연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마을에 간혹 나이가 많은 감나무가 보인다. 5월에 꽃을 피우고 점점 굵어져 가을에 익는다. 처음에 떫지만 시간이 갈수록 달다. 초록이 짙을 땐 열심히 광합성을 하다가 가을이면 가을 햇빛을 투명하게 투과시킨다. 가장 부드러운 것으로 함축된 홍시는 공유하는 영역이다. 비록 주인의 터이지만 그 열매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공중에 새들까지 같이 공유한다. 풍요로운 동네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창조해 내는 것이다. 긴 세월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지난 흔적이 지금 순간에서 비롯된다.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재의 생동감을 느끼는 것이다. 지난봄에 연한 잎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망설였던 생각들을 이제 여물게 한다. 느림 속에서 한순간의 눈빛이 오늘의 풍경이다. 오늘 동네 풍경은 서둘지 않는다. 선택하는 순간이 오면 거기서 자유 의지를 발현할 뿐이다. 잘 익은 홍시에 가까이 가 본다. 가을의 열매는 가을 햇빛에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