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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슬쩍 지나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괜히 신경 쓰고 싶지 않는 그런 일입니다. 저의 경우는 마트에 가서 우리 교민을 만났을 때에 인사를 하며 아는 척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쳐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합니다.
유명하지도 않는 목사인데, 모른 체하면 교만하다고 할 것 같고, 아는 체하면 나부댄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조용히 피해서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전도할 수 있는 기회인데 … 하는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슬쩍 지나치고 싶은 그런 일이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두고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6절을 설교하지 말고 7절로 넘어갈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에게 잘해라’는 설교를 의도적으로 하게 될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성경 여기 저기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설교를 하지 않고, 여러분이 알다시피 가능하면 한 권의 성경을 택하여 구절구절 순서대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순서가 되면 고민 없이 설교하여 왔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주로 목사 임직식, 특히 목사 위임식 때에 성도들에게 하는 권면 시간에 목사님들이 많이 선택해서 전하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
그런데, 이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하니,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저는 신학교에 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교회를 섬겼는지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부교역자로 다섯 교회, 담임 교역자로 세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교회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어떤 목회 방침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섬겼는지를 직간접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교회 생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한다. 장로는 어떻게, 집사와 권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어떤 교회는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성도와 직분자들이 은혜 받은 대로 섬기도록 했습니다.
어떤 교회가 사랑이 넘치고 활발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목사님이 구체적으로 성도님들에게 미주알고주알 가르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경험이 가지고 있지만 성도님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마치 헌신을 강요하는 것처럼, 혹은 성도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모르는, 보이는 교회만 생각하는 완고한 목사로 비칠까봐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조금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행하도록 하는 것이 바른 교회, 건강한 교회가 되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6절을 넘어 뛰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6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가르침을 받는 사람’는 어떤 사람입니까?
헬라어에서는 ‘믿음에 지도를 받고 있는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을 예로 든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한 목적 혹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데오빌로’라는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데오빌로가 누구일까요?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데오빌로는 믿음의 세계에 들어서기를 원하는 데오빌로라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 즉 모든 성도들을 염두하고서 기록했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누가는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이 들은 바요 목격한 바를 정리해서 데오빌로에게 예수님과 그의 삶과 사역을 전하여 가르쳤습니다. 데오빌로는가르침을 받는 사람, 신앙을 지도 받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가이사랴에서 고넬료라는 이름을 가진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는 온 가정과 함께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백성들에게 구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는 욥바에 거하고 있는 베드로 사도를 청하여 신앙의 가르침을 받도록 했습니다.
베드로도 비몽사몽 간에 부정한 음식을 먹도록 지시하는 환상을 경험합니다. 성령의 지시함에 따라서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베드로는 성령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바로 고넬료와 그의 온 집안 사람들이 바로 ‘믿음에 지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오늘날, 누가 ‘가르침을 받는 자’라 할 수 있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르침을 받는 자이며 가르침을 받는 자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교인들이 바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들에게 어떤 당부의 권면을 합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
이 구절은 다소 생뚱 맞은 독립적인 구절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이 불쑥 끼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문맥을 주의해서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6절 앞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6:2)고 했고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5)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과 연결해서 보면 서로의 짐을 지고, 각자의 짐을 지는 구체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 6절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멤버가 되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갈 때에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에게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일이 서로 짐을 나누는 일이 되며 나아가 성도의 개개인이 져야 할 짐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7절 이후에 나오는 말씀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루리라”(7)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와 함께 좋은 모든 것을 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제 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화단이나 텃밭에 무엇을 심고 계십니까?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좋은 씨앗을 심은 자는 좋은 열매를 맺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둡니다.
우리교회는 호산나 새순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이심을 믿고 이 신앙으로 새순처럼 자라야 합니다. 많이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민사회에 봄을 맞이해서 모종을 나눔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민들과 접촉점이 되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 안 집사님께서 상추모종을 준비해서 오늘 나눔에 참여합니다. 상추 모종을 나누기 위해서 지난 한 달 동안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들여다보면서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모종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귀한 복음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구체적인 예로써 보여준 것이 바로 6절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여기서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는데, ‘좋은 것’이 무엇이며 ‘함께 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말씀 사역자에 대한 물질적이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 헌법(교회정치) 54조에 보면 교회가 목사를 청빙할 때에는 청빙서를 작성해서 노회와 청빙 받는 목사에게 전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3항에 보면 목사 청빙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를 구레적으로 말합니다.
( ) 교회 교인들은 귀하께서 목사의 재덕과 능력이 있어 우리 영혼의 영적 유익을 선히 나누어 주실 줄로 확신하여 귀하를 본 교회 ( ) 목사로 청빙하오며, 겸하여 시무하는 기간에는 본 교인들이 범사에 편의와 위로를 도모하며, 주 안에서 순복하고, 주택과 생활비 월 ( )원과 ( )연(몇 개월)을 드리기로 서약하는 동시에 이를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 성명 날인하여 청원하오니 허락하심을 바랍니다”
이렇게 교회 헌법은 교회 교인들이 목사를 청빙할 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므로 사역에 전임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70인을 파송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눅 10:7)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도 분명하게 심음과 거둠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 9:11)
그래서 오늘날까지 교회는 이 가르침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 가운데 교인들이 바친 헌금으로 인해서 교회가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고, 이 넘치는 부가 성직자들이 타락했던 어두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더 많은 부를 챙기기 위해서 면죄부, 면벌부를 판매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일부 목회자들이 누리는 사치, 혹은 안일한 사역도 문제가 되고 있고, 교회의 잘못된 물질 사용이 있습니다. 교회와 목회자가 반성하고 갱신해야 할 요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은 그 권리를 사양하고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손수 천막을 지어 생계를 벌어가며 전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목사들이 최저 생계비도 안되는 생활비를 받으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잡, 스리잡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게 오늘날 사역자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밤낮으로 생계에 매달리면서 동시에 전도사역에 필요한 말씀의 연구를 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습니다. 목사들은 오직 말씀의 탐구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비에 연연하지 않고 교회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하여 설명을 보십시오.
“곡식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일군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말씀을 맡은 자들로 하여금 말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회가 배려하고 섬기도록 했습니다.
“남을 잘 지도하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시오. 특히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을(목사들) 더 존경하시오”(딤전 5:17)
다시 본문을 보십시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렇다면 ‘함께 하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함께 나누다’ 혹은 똑같이 갖거나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헬라어에서 교제(코이노이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으로 목사와 성도가 함께 하는 것은 성령 안에서의 친교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성령 안에서 친교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는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서 공급하고 성도들은 생업터에서 얻은 물질적인 양식을 그에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물질적인 재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교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손실을 경험할 때가 언제 인지 아십니까?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의 불화할 때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를 못하는 치명적인 손실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님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위해서, 사랑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관계가 되도록 말입니다. 나아가 좋은 것을 나누며 성령 안에서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서로의 짐을 지는 일이 교회 안에서 1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러기 위해서 바른 헌금을 하십시오. 내가 가진 모든 소유의 전부는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하십시오.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자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서 감사헌금하십시오. 앞으로 우리 교회는 매주 첫째주일에 감사헌금하는 주일로 삼으려 합니다. 앞으로 살게 될 한달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또 감사를 낳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셋째 주일에는 내가 받은 바 복음에 대한 감사,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서 선교헌금을 하도록 하십시다. 힘껏 해 보십시오. 자원하는 마음으로 심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이든지 거두게 하시는 은총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어서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물도 간혹 받습니다. 받는 데에 익숙하고 무감각하지 않기를 조심합니다. 그 선물에 감사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되갚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받은 바를 그대로 갚지를 못합니다. 안합니다. 많이 받았을 때에 그것에 상응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저는 줄 때에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성도들에게 공평하게 주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많이 주었는 데에 작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에 인간적으로 섭섭해 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말씀 묵상을 나누면서 집사님 한 분이 수박 한 덩어리를 가지고 왔을 때의 저의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수박 한 덩어리는 수박 한 덩어리가 아니라 그 집사님의 땀과 수고가 밴 것, 그 농사의 전부로 받아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와 성도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사이를 다시 한 번 정립해 보십시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령 안에서 서로 좋은 것을 함께 나누므로, 서로 짐을 지고, 각자 짐을 지는 영적이 교제가 깊이 있게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찬송 / 사랑하는 주님 앞에 220, 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