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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 6월 21일)
6월 15일(월요일)
1. 뜨거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합니다. 6월 25일-7월6일, 미국 순회캠페인 경비 마련을 위해 다음 희망해 모금과 1인 미디어 몽구님이 트윗을 통해 트위터들과 함께 재정을 마련해 주었습니다.덕분에 시민프로젝트로 미국활동을 잘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2015년 정대협 활동계획을 세우고 예산계획을 세우면서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광복70주년, 분단 70년, 한일수교 50년, 종전70년이라는 의미도 활동계획들에 반영되어야 했고, 예산에도 반영되어야 했지만, 정대협 창립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보니 어떻게 올 한해 살림살이를 운영해나갈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대협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가족이나, 피해자들 혹은 많은 시민들에게 오해를 받았던 것 중에 하나가 '정부에서 실무자들 월급도 주고, 운영비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전혀! 아닙니다.우리에게는 아주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있을 시기였습니다. 권영길 의원께서 우리 할머니들을 참 사랑하셨습니다. 서대문 충정로에 쉼터가 있을 때 보좌관들 데리고 쉼터에 그냥 어머니께 인사하러 오시듯 오시기도 했고, 식사 때가 되면 우거지 김치 반찬에 밥만 내놓아도 모두들 얼마나 맛있게 드시든지.... 국회 외교위원회 국정감사 때 길원옥 할머니를 증인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 때 권의원의 질의 중 "적어도 정대협이 할머니들이랑 유엔 등 국제활동 하는 경비는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게 아니냐"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길원옥 할머니, 그 때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답니다.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생활지원금을 주니, 당연히 정대협에도 주는 줄 알았답니다. 실무자들도 정부에서 월급을 주는 줄 알았답니다. 늘 실무자들이 웃으면서 일해서 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쉼터에서 우리를 이렇게 편하게 보살펴 주고, 그렇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돈을 주는게 아니라니... 그 때부터 길원옥 할머니는 열렬한 정대협 후원자가 되셨고, 홍보대사가 되셨습니다. 사람들만 만나면 정대협 후원회원이 되라고도 말씀하셨죠. 또 하나 슬픈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는데, 유가족들이 우리에게 '장례식을 정부가 진행해 줘야하는 것 아니냐' 등 책임추궁을 하듯이 엄청난 위협을 가한 일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남동생과 조카들이 할머니 빈소에서, 영정사진 앞에서 그렇게 우리를 몰았습니다. 유가족들이 있을 경우 가족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리면서, “가족들이 아무도 안 계실 경우 정대협이 상주가 되어서 장례를 진행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반응은 더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 나가버리면 당신들이 진행하겠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의 그 삿대질과 큰소리가 우리에게 너무나 두려운 공포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위기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도망 나오듯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는데, 주차장까지 따라 나오며 대표를 향해 “당신 이름이 뭐야!” 하던 그 남자조카의 큰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서 가끔 울립니다. 함께 갔던 우리 어린 실무자는 제 옆에서 너무나 속상하다며... 대표님이 너무 불쌍하다며....^^눈물. 그런데 한 참 후에 여자 조카가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가 정부에게 돈받고 일하는 '공무원'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공무원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무원은 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참담했지만, 그제서라도 이해를 받게 된 것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치유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사실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런 이야기도 이제는 전하고 싶어 남깁니다. 올 해, 큰 사업계획들을 세우고, 예산을 세우면서, 여성가족부가 갖고 있는 피해자지원예산과 국제공조사업 및 기념사업예산에 프로젝트를 신청할 것인지 문제를 정대협은 논의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접기로 했습니다. 정부와 더 당당한 관계를 갖고 활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활동을 전적으로 우리 힘으로, 우리활동을 잘 펼쳐서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 후원회원들을 모으고,그 후원금으로 활동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알아챈 시민들께서 정말로 우리 활동을 시민프로젝트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미국방문캠페인을 시민들이 모금으로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DAUM 희망해에서 500만원,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님이 트윗을 통해 트위터들이 참여하여 거의 700여만원에 이르는 활동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세상에 참 멋진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뒤에서 우리의 힘이 되어주는 많은 분들이 든든하게 계시다는 뜨거운 이 감동이 다른 모든 성질의 피로감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게 해줍니다. 오늘도 힘차게 달릴 수 있도록 힘주시는 님들, 고맙습니다.
6월 16일(화요일)
1. 의정부여자고등학교 역사독서수행평가 시간에 [20년간의 수요일] 저자로, 윤미향 대표의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메르스파동으로 취소, 연기되어 오던 지방 간담회, 강연, 회의 등으로 거의 일주일동안은 에너지가 되어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비로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의정부여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의정부여고에서는 한국사를 1학년이 배우고 있는데, 역사독서수행평가로 수업시간에 <20년간의 수요일>을 읽고 모둠별 토론도 하고 글쓰기도 진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6시, 특별히 좁은 강의실 문제로 인해 150명을 선발하여 저자초청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2시간동안 강의와 질문, 답변시간으로 이어졌는데, 사회를 맡은 2학년 학생의 진행도 참으로 진지하고, 감동이었습니다. 미리 받은 질문도 형식적인 것이 하나도 없이 미리 공부하고 고민한 듯 했습니다. 마지막, 학생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자에게 답을 듣기보다 스스로 학생들에게 제안을 듣고, 그 제안에 대해서 저도 보태는 방식으로 했는데, 대견하기 까지 했습니다. 앞으로 의정부에서도 평화나비가 만들어져 활동을 시작한다 하니 이 또한 참으로 의미있고, 신나는 일입니다.
6월 17일(수요일)
1. 오늘, 희망나비는 포항의 박필근 할머니와 울산의 김옥귀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박필근 할머니는 포항시내가 아니라 몇 구비 산을 넘어 하천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할머니께 드릴 몸빼 바지와 모자, 음료수와 파스, 과일 등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다른 건 큰 반응이 없으셨는데.... 몸빼랑 모자를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하셨다고 하네요. 희망나비! 성공했네!!!! 할머니께선 계속 걷기가 힘들다고 하십니다.. 전동차를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쌀이 떨어졌다고 하여 정대협이 보내드린 쌀이 한쪽에 쌓여있었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할머니는 밥을 준비해서 희망나비들에게 차려주셨습니다. 전화를 드렸을 때는 아파서 밥을 못한다고 하시기도 하고, 매 번 갈 때마다 밥을 주셔서 너무 죄송스러워서 이번 방문에는 기습적으로 한 시간 먼저 도착했는데, 할머니는 적적하셨는지 혼자서 화투를 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번에도 그렇게 후딱 밥을 차려 주셔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화투 치자고 하셔서 민화투를 쳤는데 잘못 쳐서 희망나비들, 한소리 들었답니다.
희망나비들이 할머니랑 함께 있는 동안에 매주 방문하고 계시는 포항시 노인복지센터에서 오셔서 항균비누랑 반찬 국 등을 할머니께 주셨다고 합니다. 희망나비 청년들에게 누구냐고 물어서 혹시나 피해자인줄 모를까봐 대충 넘어가는 센스도 보여줬답니다. 할머니도 메르스 얘기 계속 하시면서 걱정을 많이 하셔서 마스크도 드렸습니다. 최근에 아프셨는지, 입술도 터져서 이제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울산에 살고 계시는 김옥귀 할머니는 경로당에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희망나비를 기억을 못하셔서 희망나비들이 좀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그랬는데 이야기하면서 할머니가 기억을 해내셔서 좀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답니다.저번에 정대협이 준 홍삼때문에 아직도 잘 돌아다닌다고. 아픈 것도 필요한 것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이번에 방문하면서 과일과 소고기를 사들고 갔습니다. 메르스 때문에 혹시나 경로당 안에 계신 할머니들께서 꺼려하실까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할머니가 문 입구에 나와서 희망나비들과 40분가량 이야기 나누다 왔습니다. 할머니는 나비들이 사들고 간 과일들을 경로당에 큰소리치시며 쏘셨고, 고기는 따로 잘 챙겨 가셨습니다. 매번 고기 사들고 찾아와주고 너무 고맙다고 하십니다. 자기가 육식체질인걸 잘 알아 너무 좋다고. 다음에는 경로당이 시끄러우니 할머니 집에서 보자고 하셨습니다. * 희망나비의 할머니 방문 활동비는 정대협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 1183차 수요시위를 평화로에서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주관으로 진행했습니다. 첫 시작은 지난 주 목요일인 6월 11일 불과 30분 간격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故 김외한, 김달선 할머니에 대한 추모의 시간으로 시작했습니다. 두 분의 영정 앞에 몇 몇 참가자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참가자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평화의 함성을 지르며 문제해결을 위한 단합된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신윤주 작가의 2015 WCD 조각보 퍼포먼스와 오늘 주관단체인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에서 준비한 행복 CD드림 공연단의 난타공연이 참가자들의 기운을 북돋았습니다. 참가단체로는 안양 여성의전화 성폭교육생 15명, 인천서구 민중의집, 이화나비 7명, 평화나비 4명, 극단 고래,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성가소비녀회 15명,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미디어 몽구, 그리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자유발언에는 정나영 이화나비 8.14기림일 서포터즈 팀장, 방순자 글라라 성가소비녀회 인천교구 수녀님, 김소담님(마포구 성산동)께서 나서주셨습니다.
3. Marymond 마리몬드가 할머니들께 보내는 선물이 할머니들을 웃게 만듭니다. 오늘 수요시위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새 신발을 신고 수요시위에 참석하셨어요. Marymond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써달라고 성금을 기탁해 주셨는데, 그 성금으로 할머니들께 필요한 것을 사드리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요청하는 것을 마련하여 드리기도 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시내에 계시는 할머니들께는 여름에 잘 드셔야 한다는 생각에 소고기를 사드리고 있으며, 옷이 필요한 할머니께는 옷, 의자가 필요한 할머니들께는 의자 등... 각각 할머니들에게 맞는 선물들을 준비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께는 어제 함께 밥도 나누고 쇼핑을 하며, 구두를 사드렸습니다. 직접 만져보시고, 색깔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멋쟁이 김복동 할머니는 흰색, 우리 길원옥 할머니는 옥색으로 고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요시위에 두 분이 나란히 신고 오셨습니다.
6월 18일(목요일)
1.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6월 월례세미나를 저녁 7시, 이재승 건국대 법학과 교수님을 초청하여 “식민주의와 과거극복의 정치”라는 주제로 개최했습니다.
6월 19일(금요일)
1. 제13차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나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수고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정대협 주간소식 2015-23호 6월 22일(월) - 28일(일)
6월 22일(월요일)
1. 정대협 6월 정기이사회를 열었습니다. 정대협은 참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대협에 참여하는 분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참 선하신 분들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문제가 있어 보이죠?하지만 사실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이사회 때마다 그것을 느낍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에서 가장 바쁘신 여성들인데, 세월호 투쟁현장, 국가보안법 피해현장, 이주여성인권현장, 기지촌여성들의 인권현장 등을 쫒아다니느라 힘겨울 법도 한데 늘 얼굴에 웃음꽃 활짝 피우고 들어오시고,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책 한권에 가까운 서류들을 보시고, 실무자들 칭찬도 해주시고, 또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의견들을 주십니다. 오늘도 그렇게 웃음으로 시작합니다. 윤미향 대표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회의, 오늘 검토해야 할 자료는 67쪽 분량입니다. 한국염 공동대표, 김선실 공동대표를 비롯하여 정태효, 배외숙, 조윤희,손미희, 신미숙 이사가 출석하셨고, 이정희 이사는 해외출장으로, 강혜정, 최소영 이사는 위임하셨습니다. 사무처보고, 생존자복지위원회, 국제협력위원회, 문화홍보위원회, 교육위원회, 대외협력위원회, 재정위원회 보고와 아울러 나비기금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쉼터 평화의우리집 보고,특별위원회로 법률전문위원회 보고, 마지막으로 회계보고가 있었습니다. 안건토의는 제3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기념행사 개최의 건과 나비기금 베트남지원사업과 관련한 건, 미국 방문 캠페인 등에 대해서 심의했습니다.
6월 23일(화요일)
1. “과거사 해결 없이 상생은 없다.” 긴급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6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에서 개최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국교정상화 50년인 올해는 한일 양국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원년이 될 것”이라면서,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해 나아가자"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일본 언론 발로 쓰여지는 기사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들이 각자의 마음대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의 식민주의청산과 동아시아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대일과거사단체 연대체인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소속 단체들과 함께 오후 1시 30분, 일본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과거사 해결 없이 상생은 없다”라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6월 24일(수요일)
1.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할머니들의 만남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있었습니다. 오전 9시에 자이드 대표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관람한 후 할머니들과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유엔인권최고 대표지만 여러분이야말로 세계인권대표라고 할머니들을 격려하면서 할머니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캠페인을 하는 것은 앞으로의 인권활동에도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나는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다” 라고 말문을 여신 후에 “일본은 거짓말을 그만두고 양심적, 법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우리가 죽기를 바라지만, 일본은 나쁜 일을 저질렀지만 이웃나라 일본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며 호소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먼 길 와줘서 고맙다.”고 말문을 여신 후, “우리를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결이 나지 않고 있어 가슴 아프다”며 현재의 안타까운 상황을 언급했습니다. 또한“우리가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돈이 탐나서가 아니다. 우리가 입은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또 수요시위에 나가야 한다. 긴 얘기를 하지 못하지만 우리 한을 풀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지원을 호소하며, “나는 나비기금을 통해 각지에서 전쟁으로 피해입은 여성들을 돕는 데 힘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비가 되어 그 고통을 덜 수 있도록 해달라며 호소하고 있다.그러기 위해서라도 꼭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길원옥할머니는 “13살 어린 나이에 고향인 평양에서 나와 지금껏 가족과 동기간도 보지 못하고 88세가 되도록 살고 있다. 더 바랄 것 없이 빨리 이런 말씀을 해주셔서 해결되도록 해달라는 것이 바람이다.”며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할머니의 소망을 전했습니다. 할머니들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최고대표는 할머니들에게 “마치 나의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 같다”며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니까 노력하겠다.”고 하여 할머니들과 함께 큰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에 대해 “할머니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다. 전세계 여성들과 전쟁 피해자들을 위한 노력에 감사드린다. 콩고를 방문해서 어린 소녀들과 얘기해보면 그 소녀들은 자신이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며 할머니들의 활동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와 손가락을 서로 걸고 노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래야 과거사가 청산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할머니들은 나의 자문위원이다. 제네바로 꼭 와 달라. 전 세계에서 고통받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해 계속 활동할 것이며 이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간담회 후에, 김복동 할머니는 대표의 옷에 나비 뺏지를 달아줬으며, 정대협은 평화비 작은모형을 선물했습니다. 인권대표는 그 이후 일정에서도 계속 나비뺏지를 달고 있었고,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던 강연내용에서 오늘 만났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기자회견 때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2. 6월 24일, 1184차 수요시위장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해방/종전 70주년을 맞이하며 평화를 향한 메세지"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의 아동 지원 및 평화활동가 양성을 위한 장학금 50,000,000원을 나비기금에 전달하였습니다. “일본에서 배상금이 나오면 한 푼 안 쓰고 딱한 사람들에게 바치겠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는기라. 더우기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얼마 안 되지만 5000만원을 장학금으로 전하기로 마음먹고 나왔어요." 하시고는 어린 나이에 끌려가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것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 보면 (전시 성폭력) 피해자 자녀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살아가는 게 굉장히 힘이 든다고 들었다면서 그래서 이렇게 기부를 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비를 한푼 한푼 아껴서 모았어요.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 할매는 이 돈을 모으는 데 진짜 힘이 들었다고요” 하시고는 전달식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집회에 참석한 분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여러분도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도와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더 감동은 몇 일 전 한 연극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앞에 우리 모두 가슴이 무거웠는데,늘 수요일에 빨간 열정으로 함께 하고 있는 극단 고래 단원들이 김복동 할머니가 시작한 김복동 장학기금에 40만원이라는 큰 돈을 더해 주셨습니다. ‘나비기금’은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정대협이 개최한 자자회견에서 일본정부로부터 법적 배상을 받으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선언하여 정대협이 이 뜻을 펴기 위해서 만든 기금입니다.이 나비기금은 콩고의 전시성폭력 피해자와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피해자들을 매월 열심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3. 아름다운 가게에서 나비기금 마련을 위한 특별행사를 진행하여 오늘 50만원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아름다운가게에는 '놀라운가게'라고 매달 가게 수익의 1%를 기부해주시는 파트너들이 있습니다. 그 중 17호점인 카페 '삼청동 커피방앗간'에서 카페 앞 공간을 제공해 주어 지난 19일 12시부터 7시까지 특별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수익금 전액 50만원을 나비기금에 전달해 준 것입니다.
4. 1184차 수요시위를 희망나비 주관으로 진행했습니다. 1184차 수요시위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나비>주관으로 대학생들과 취재진이 많이 참석한 가운데 2015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팀의 바위처럼 율동으로 시작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김복동,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께서 참석하셨고, 사회적기업 <마리몬드>가 기증한 편안한 의자 덕분에 할머니들께서는 여느 때보다 더욱 힘차게 발언하셨습니다. 1184차 수요시위에는 서울경기 평화나비 네트워크 50여명,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극단 고래, 한실림 경기남부 안양지부,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광구, 홍익표 국회의원, 희망나비, 그리고 김복동,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자유발언에는 김샘 평화나비 대표, 김동완 극단<고래> 부대표, 홍익표 국회의원, 이의선 제주평화기행 단장이 참여했고, 전북 희망나비는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고, 윤희주 희망나비 대표는 전국각지에서 캠페인을 펼치며 받은 서명지와 모금한 나비기금을 전달했습니다. 극단<고래>도 소중한 마음을 담아 할머니들께 나비기금을 전했습니다.
6월 25일(목요일)
1.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과 평화를 호소하는 12박 13일간의 미국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번 미국 캠페인은 오하이오 클리브랜드-워싱턴-시카고로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미국무부 면담, 조지워싱턴 대학 세미나,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일리노이 평화비 건립 관련 간담회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미국사회와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고 종전 70년을 맞이하여 전쟁을 멈추고 평화의 길을 만들어 가자는 호소를 널리 전할 계획입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아침에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이번 활동은 시민프로젝트로 진행합니다.
2. 김복동 할머니의 평화를 향한 아름다운 활동이 또다른 평화를 만들어냅니다. 힘들게 모은 돈 전액을 전시성폭력피해 아동과 평화횔동가양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내 놓으시며 법적 책임 인정과 사죄, 법적 배상을 부정하고, 회피하며, 인도적지원, 경제적 지원 운운하는 일본정부에게 인도적이란 것은 이런 것이라며 일본정부를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휴 매니지먼트 장상욱 대표님이 할머니 뒤를 이어 새 차 사려고 모으던 돈 5,000,000원을 김복동나비장학기금에 보내 주셨습니다.
3. 오늘 김연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서울 강동구에 사시다가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이 있는 근처 용인의 한 요양병원으로 옮기시고, 수년 째 병원생활만 하시다가 이렇게 가셨습니다. 그 누 구보다도 트라우마가 심하셔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는 무슨 일들이 느껴지면 입에 침 가득 고인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의 말을 토해내시던 김연희 할머니, 과거 '위안부' 기억에 대한 괴로움이 너무 크고 깊어 힘겨워하셨던 할머니, 찬송가를 도취하듯 부르면서 자신의 아픔을 달랬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오늘 계속 떠오릅니다. 인권캠프에 참석하셔서도 다른 피해자 할머니들과 친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서 외톨이가 되셨던 김연희 할머니, 다른 피해자들이 즐거워 노래를 불러도, 웃음을 웃어도 그 웃음조차, 그 즐거움조차 싫어서 기피하시고, 그래서 더더욱 다른 피해자들과도 담을 쌓았던 할머니. 할머니는 참 외로우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같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유독 우리의 마음을 잡아당긴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바로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지극히 작은 분들...목소리도, 몸짓도, 그리고 과거역사를 대면하는 모습도 힘들어 하셨던 분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몰라 늘 적을 만들고, 등을 돌리게 만드셨던 분들. 그래서 우리도 할머니 생각하면 마음이 늘 아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수요시위에 참석하셔서 마이크를 잡고 당신의 목소리를 내신 때가 있었습니다. 일본정부에게 책임을 인정하라고! 사죄하라고! 일본정부에게 배상하라고! 이제 우리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어드릴 차례입니다. 김연희 할머니는 다른 피해자들보다도 나이도 많이 어렸습니다. 1932년생. 올해 84세. 그래서 아직은 더 살아 주셔서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오랜 병원생활 끝에 목숨 거두시고, 저 먼 나라로 떠나버리시네요. 할머니, 평안하세요.
4. 드디어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우리들의 미국 첫 번째 활동지인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니 미국 UCC(The United Church of Christ) 소속 목사님께서 공항으로 픽업을 나오셨습니다. UCC정기총회는 2년에 한 번씩 하는데, 이번에 3천명이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평화통일위원회 조현정 목사님이 참석하셨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김복동 할머니, 피곤한 흔적도 없습니다, 단지, 서울을 떠난 이후 담배를 한 대도 피지 못해 그 스트레스가 보였습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씻으시더니, 서울에서부터 미리 준비해 온 미숫가루에 꿀을 넣어 타드리고, 현미볶음을 내어드리니 잘 드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녁 다 먹었다. 안 먹는다." 하시며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5. 망향의 동산에 김연희 할머니를 모셔 드리고 손영미 소장, 양노자 팀장, 류지형 간사는 남해로 달렸습니다. 바로 남해의 박숙이 할머니를 뵙게 위해서입니다. 할머니댁 마당으로 들어가니 동네 할머니들 서너 분과 둘러앉아 계십니다. 다른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우리끼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데 남해여성회 대표님도 오려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머니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어서 여쭤보니 약주를 조금 하셨답니다. 얼굴이 좀 붓기도 했는데 요즘 자꾸 붓는다고 하십니다. 왼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계신데 손으로 눌러야만 들린다고 연신 누르고 들으십니다. 낮에 남해여성회에서 오셔서 꽃꽂이 원예치료를 하고 갔다고 하며 옆에 놓여 있던 꽃병을 보여주십니다.할머니는 눈이 안 좋아서 흐릿하게 형체만 보이는데도 손으로 만지시며 아주 예쁜 꽃꽂이를 완성하셨습니다. 할머니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해 주십니다.
6월 26일(금요일)
1.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정대협은 첫 번째 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활동을 시작하시는 김복동 할머니의 시간에 따라 우리 일정도 달라집니다. 늘 쉼터에서 아침 7시면 식사를 하시기에 해외에 나와도 우리의 아침식사 시간은 7시입니다. 알람소리가 거칠게 울며 우리를 깨우고, 부스스 눈을 비비며, 기지개도 키며 날은 아침이지만, 우리 몸은 아직 밤중인지라 그렇게 아침을 깨웁니다. 할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안 가득 담배연기가 자욱합니다. 일찍 일어나서 몸 다 씻으시고, 담배 한 대 뿜는 중이랍니다. 편히 주무셨는지 여쭈니, “잘 잤다.” 짧은 한마디.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아침 준비할게요.” 후다닥, 우리들은 아침을 준비합니다. 한국 자연드림 매장에서 미리 구입해 온 음식들로 아침상을 준비합니다. 가마솥누룽지를 끓이고, 김치와 김, 멸치볶음, 콩자반, 할머니 좋아하시는 창란 젓갈을 냅니다. 오늘 아침에는 야채가 없지만 그런대로 첫날 식사로는 행복한 아침상입니다. 이른 오전, UCC 총회가 열리는 컨벤션센터에 도착하여 미리 신청해 놓은 부스를 꾸밉니다. 사진전시물을 부착하고, 배너를 달고, 작은 소녀상을 책상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그 옆에 홍보물들을 놓고, 세계1억인 서명지를 놓으니 준비 끝! 이어서 저녁에 있을 개막식 예행연습을 한답니다. 해외에서 참석한 분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소개도 드리고, 인사를 드리는 순서가 있는데,그 순서를 미리 해보는 것입니다. 리허설까지 필요할까 싶지만,주최측의 제안에 기꺼이 “예” 하며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해 봅니다. “뭐 이런 것까지 연습을 하노, 우리야 전문가들인데...” 김복동 할머니 한마디. 그렇게 리허설이 끝나고, 부스에서 본격적으로 서명을 받습니다. 부스활동을 함께 하는 할머니를 본 사람들은 서명을 하면서 벌써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다가와 환영과 감사의 말을 전하며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중간에 한반도 통일문제를 다루는 토론회가 잡혀 있어 우리도 참석했습니다. 저녁에는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순서 중에 해외에서 함께 한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고, 드디어 정대협 차례입니다. 윤미향 대표가 먼저 호명되어 무대에 오르고, 김복동 할머니, 안선미 팀장 차례 차례 무대에 올랐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큰 박수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3천명의 참석자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며 화답했습니다. 개회예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미리 행사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오시자마자 미숫가루에 꿀 한 숟가락 넣어서 타드리니, 할머니는 그것도 한 그릇 다 드시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2. 손영미 쉼터 소장님과 양노자 팀장, 류지형 간사는 경상도 지역 할머니들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먼저, 남해에서 사온 맛난 콩죽을 아침으로 먹고 이막달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할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이렇게 먼 데를 어떻게 왔냐, 고생했다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살이 조금 빠지신 할머니는 얼굴에 살짝 분도 바르신 고운 모습이십니다.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 다리가 너무 아프다면서도 시원하고 달디단 수박을 내와 잘라주시고 어서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십니다. 할머니 집을 나오는데 아픈 다리로 2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오셔서 차까지 배웅해 주셨습니다.이 문제가 진전이 없다고 걱정하시는 할머니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얼른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3. 원주시의회가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촉구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원주시의회는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이 사망하여 명예를 회복시켜 줄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이하고 광복 70주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일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와 국제사회의 권고를 일본 정부가 하루속히 받아들여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켜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의했습니다. 하나. 일본정부에게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우리나라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소녀와 여성들을 연행하여 성노예적 착취를 자행한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 특히 여성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반인륜적 범죄임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사죄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 일본정부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살아있을 때 사죄와 배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행정적, 입법적 제도를 신속히 마련하여 역사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 일본정부에게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유사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일본 국민 스스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역사교과서에 올바르게 기록하고,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교육시킬 것을 촉구한다. 하나. 일본국회에게 일본군 위안부 진실규명과 피해자 공식인정, 법적 배상을 실현하는 특별법을 하루속히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 대한민국 정부에게 세계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피해자와 민간단체들을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일본정부가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및 역사교과서 기록을 이행하도록 외교적ㆍ행정적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6월 27일(토요일)
1. 미국 방문 두 번째 아침을 우리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맞이합니다. 오늘 식탁은 야채가 추가되었습니다. 오이와 피망이 추가되고, 계란 프라이도 더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미역을 불리고, 된장을 풀어 미역된장국도 준비했습니다. 쉼터에서 매일 손영미 소장이 블루베리요구르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늘 아침에는 블루베리도 씻어서 할머니 곁에 내어 놓습니다. 오늘 아침도 할머니 컨디션은 양호한 듯합니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어서 걱정했는데,오히려 할머니는 괜찮으신 듯 하여 마음을 놓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일정, 오늘도 UCC총회장에서 부스활동을 힘차게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서명을 하고 가고,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드리면 시작부터 눈물을 글썽이면서 서명을 하고 가기도 하고, 자신도 성폭력 피해자라면서 할머니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말하며 손을 잡고 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오후 3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란 제목으로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제법 큰 강의실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먼저 UCC측에서 우리를 소개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소녀이야기’ 애니메이션에 담긴 정서운 할머니의 삶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였던 여성들의 삶을 먼저 전하고, 김복동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할머니는 “우리나라는 힘이 없어 일본제국주의 나라에 수년 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살았습니다.” 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만으로 열네 살에 끌려간 이야기에서부터 한 군데도 아니고 대만을 거쳐 광동,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일본군이 전쟁을 치루는 곳 마다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끌려 다녀야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장내로 퍼져 나갔습니다.참석자들은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이며 때로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할머니 이야기의 마지막은 역시나 나비기금으로 끝이 났습니다. 커피 한 잔 값이면 어려운 처지에 놓은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도울 수 있다며 호소했습니다. 교계 총회인 만큼 다수의 참석자가 미국 전역과 각국에서 온 목사님들이기에 할머니는 함께 기도해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할머니의 말씀이 끝나자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 윤미향 대표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피해자들의 상황을 보다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수요시위가 20년을 넘어섰다는 말에 모두가 놀라워했고 자신도 서울에 가면 수요시위에 참가할 수 있냐고 묻는 참석자도 있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책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비록 주어진 한 시간은 짧았지만 많은 이들이 할머니와 교감했고 워크숍이 끝나자 한 사람씩 다가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 중 한 젊은 여성은 자신도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다며 할머니의 말씀이 큰 용기가 되었다는 고백도 전했습니다. 할머니는 힘내라는 말씀과 함께 따뜻한 포옹으로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번 총회 중, 최고의 워크숍이었다는 소감도 전해주었습니다. 오늘의 참석자들이 할머니의 입이 되어 널리널리 이 이야기를 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저녁, UCC 아태지역담당 목사님이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셔서 모처럼만에 외식, 그러나...한국식당에서^^. 오늘의 일정도 많은 분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기분에 뿌듯함을 안고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2. 수녀님들의 전국조직인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가 나비기금에 1,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수요시위 평화기도 잇기를 1995년부터 계속해 오면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평화로를 지켜주시는 수녀님들이 이렇게 할머니들의 평화의 날갯짓에 앞장서 주십니다. 아울러 정대협에도,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도 각각 1,000,000원씩 후원해 주셨습니다. 고습니다. 이 많은 뜻들이 전쟁을 평화로, 전쟁에서 고통받는 여성들,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지난 6월 24일, 김복동 할머니께서 전재산 5,000만원을 전시 성폭력피해아동과 무력분쟁활동가 장학기금으로 기부하신 이후, 기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6월 30일에 나비기금 통장에 [나비기금8]라는 입금명으로 3,300,000원을 후원해 주신 분, 그리고, [AG02] 라는 입금명으로1,000,000원을 두 차례 입금해 주신 분, [허은영]이라는 이름으로 3,000,000원을 후원해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사연도 함께 나누고싶은데, 무통장입금으로 후원이 되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4. 양산의 최옥이 할머니는 많이 아프신 듯합니다. 쉼터 손영미 소장과 양노자 팀장, 류지형 간사가 할머니 댁을 찾아뵈었는데, 온 몸의 통증 때문에 밤에는 잠을 못 주무시고 낮에 조금 주무십니다. 통증 때문에 허리에 복대를 하고 계신데 조금 움직이는 것으로도 아주 많이 아프신 듯 얼굴을 찡그리십니다. 누워 계시던 할머니가 오늘이 며칠이냐 물으셔서 알려드리니 또 음력으로 며칠이냐 물으셔서 5월 12일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우리 아들 생일인데” 하십니다. 큰아드님 말로는 둘째 아드님 생일이 보름 정도 뒤라는데 뭔가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몸이 그렇게 아프셔도 늘 두 아드님 생각에 여념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그대로 곤히 잠드시고 아드님과 한참을 이야기하다 인사드리고 나왔습니다. 아파서 찡그리는 할머니의 표정이 내내 떠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좀 더 기운을 내시고 아프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6월 28일(일요일)
1. 미국에서 맞이하는 일요일, 오늘 할머니는 숙소에서 위싱턴으로 이사할 짐도 싸고, 여독을 풀겸 숙소에서 쉬고 계십니다. 윤미향 대표와 안선미 팀장은 클리브랜드 한인회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간담회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택시를 타고 찾아갔습니다. 회장도 여성, 모든 임원들이 여성이고 아주 활달한 모습으로 우리가 미국에 온 이야기, 앞으로 할 활동 등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였습니다. 정대협 주간소식 2015-24호 6월 29일(월) - 7월 5일(일)
6월 29일(월요일)
1. 요일이 어떻게 가는지, 해외 캠페인 중에는 날짜도 혼돈되고, 요일도 혼돈되기 일쑤입니다. 오늘은 월요일이랍니다. 시민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하는 미국방문 활동, 우리는 워싱턴에 도착했습니다. 클리블랜드를 떠나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비행기가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하늘에 떠있는데, 그 시간에도 할머니는 잠을 안주무십니다. 비행기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내려다보며, “참 희한하다. 계속 땅이 보이네. 비행기가 잠시 쉬었다 가나?” 하시고는 웃으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즐거운 한시간이 지나고, 워싱턴달라스 공항에 내리니, 엄청난^^ 환영단이 할머니를 맞이합니다.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 이정실 회장님도 나오셨고, 미주희망연대 회원들도 나오셨습니다. 할머니와 가족같은 사람들을 공항에서 만나니, 할머니 얼굴에 함박꽃이 핍니다. “하이고...” 하시는 한 마디로 할머니의 감정이 표해집니다. 꽃다발이 할머니 품에 전해지고, 모두들 환한 해바라기 같은 미소가 싱글벙글... 공항에서 바로 기자회견장으로 직행해 먼저 워싱턴 및 미국방문 목적과 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방송카메라 뿐 아니라 신문사 기자들도 많이 왔습니다.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 총무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이정실 회장의 인사, 이어서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사’다니기 힘들다며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던 김복동할머니는 비행기에서 금방 내려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데도 차분히 일본군성노예가 되어 겪었던 고통스러운 세월을 카메라 앞에서 증언하고 우리에게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며 동포들과 미국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특히 일본은 ‘위안부’문제해결은커녕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며 그런 친구를 옳은 길로 가도록 충고해야 할 미국의 책임도 강조했습니다. 윤미향 대표가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 최근에 한일정부간에 진행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8차례 양자협의와 이후 계속해서 가질 협의에 거는 기대와 피해자들과 정대협의 요구에 대해서 설명하고, 미국 캠페인에 오게 된 이유와 활동들에 대해서 일정도 소개를 했습니다. 클리브랜드에서 있었던 United Church of Christ(UCC) 총회에 참석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설명도 하고, 총회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가졌던 워크숍에 대한 보고도 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가지는 수요시위를 앞두고 심정이 어떠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봐야 알지!” 답하시는 바람에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아들처럼 생각하는 이재수 씨 부부가 삼겹살을 준비했지만, 할머니는 피곤해서 드시지 못하고 호텔에서 간단하게 미숫가루로 저녁을 하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6월 30일(화요일)
1. 시민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정대협의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하는 미국활동 6월 30일, 워싱턴에서의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오늘 오전에는 호텔에서 9시에 출발했습니다. 10시에 국제엠네스티 미국지부 사무실을 방문하고, 쿠마 대표와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주희망연대 국제팀 서혁교 씨가 오늘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우리를 숙소에서 엠네스티 사무실까지 데려다 주고,또 쿠마 대표와 면담섭외도 진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엠네스티 사무소를 들어서는 순간, 김복동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에 삥 둘러 자리를 가득 채운 활동가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쿠마 대표와 만나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인턴들과 직원들 모두 할머니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쿠마 대표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현 상황을 설명하고, 현재 한일간의 분쟁이 되고 있지만 사실은 이것은 여성인권문제라는 설명과 함께 현재 할머니들의 상황이 좋지 않아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바로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힘이 없어서...” 시작은 늘 비슷합니다. 왜 여성들이 그렇게 무더기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총 한 번 잡아보지 못했던 학생들은 학도병이라 해서 총을 들고 전쟁에서 싸우게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강제처녀모집이라, 각 군 면마다 몇 명씩 모집하라는 할당량을 줘서...” 그렇게 할머니의 증언은 낮은 목소리이지만 강한 에너지를 담고 엠네스티 활동가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해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이 일을 해결할 때까지 우리는 해방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아직 우리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 전쟁준비를 한다고 하는데, 미국 대통령이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미국정부가 압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참으로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드시는 할머니이십니다. 이어서 윤미향 대표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일본정부가 군 시설로 위안소를 입안.설치하고, 관리.통제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성노예’가 되었고,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한 식민지, 점령지, 일본 여성들의 피해는 각각 다른 양태이며, 또한 그 피해가 막대했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 일본군’위안부’제도는 당시의 여러 국내법.국제법에 위반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점 등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국가의 책임인정은 번복할 수 없는 방식의 사죄, 사죄의 증거로서의 배상으로 뒤따라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역사교육과 피해자 추모사업도 실시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현재,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차에 이르도록 협의를 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의 요구가 이 협의 속에서 해결책으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국제인권활동가들, 평화활동가들의 지원과 연대가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또한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그 보고서에서 일본정부에게 해결을 권고했던 때로부터 올해가 10주년이 되는데, 그 권고사항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지 점검하고, 미완의 과제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지부가 더 적극 나서주기를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한국정부는 피해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본정부를 향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지, 할머니는 결혼을 하신 적이 있는지, 할머니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2.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엠네스티에서 나온 후, 한국음식이 나오는 식당에서 간소한 점심을 마치고 바로 이어서 조지워싱턴대학으로 향했습니다. 그 대학 엘리엇 스쿨에서 세미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방학기간이어서 걱정을 했지만 학생들, 교직원들, 시민들이 준비된 좌석을 다 채워줬습니다. 준비해 간 사진은 복도에 전시를 해뒀습니다. 약속된 시간인 오후 2시를 조금 넘어 세미나는 시작되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미국 활동 내내 시차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낮이 되면 졸려서 머리가 멍- 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개받은, 서울에서 온 피해자 김복동, 나이는 올해 90세입니다.”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입을 여신 후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힘이 없었고, 공장에 군복만드는 공장에 가지 않으면 집 재산을 모두 몰수해버린다며 협박하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연행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만으로 열네 살, 우리나라 나이로 열다섯 살 때부터 당한 그 고통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정부가 민간인이 했다고 그러는데, 그 전쟁을 치르는 일선지구까지 어떻게 여성들을 민간인이 데리고 가겠습니까? 이미 도착해 보니 우리가 온다는 것을 부대가 다 알고는 우리가 있을 집을 합판으로 만들어 다 준비해두고, 군의관이 검사할 준비도 다 해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겪은 경험을 증언하시면서 사이사이에 그렇게 일본정부가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도 토해 내셨습니다. 그런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전쟁범죄자를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한다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없도록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나비기금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하루에 커피한 잔만 줄이면 나비기금을 모아 수많은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할 수 있다면서 나비기금 홍보대사의 역할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윤미향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가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분쟁지역 아동들을 돕고 평화활동가 양성을 위해 전재산을 기부한 사연을 더 보태어 설명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과정도 소개했습니다. 참석자들은 평화비가 세워진 곳이 어디인지 묻기도하고 북한과의 연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나타냈습니다. 어떤 참석자는 베트남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범죄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윤미향 대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이 반일운동이 아니라는 점과 범죄를 저지른 국가라면 그것이 한국정부든 미국정부든 일본정부든 책임져야 한다는 응당한 원칙을 설명하고 나비기금의 취지와 활동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공식적인 사죄가 어떤 것이면 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번복할 수 없는 사죄와 법적 책임에 대한 설명을 풀어냈습니다. 두 시간동안 진행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듯 그렇게 질문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크다고 느껴졌습니다.
3. 저녁시간에는 미주희망연대 회원들이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시 여성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깜짝 축하모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회도 마련되었고, 할머니가 콩국수가 생각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콩국수도 준비되어 식탁위에 올라왔습니다. 와인을 나누며, 축하 건배를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할머니의 노래솜씨도 뽐내며 그렇게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아...김복동 할머니가 참 많이 웃으셨습니다. 할머니가 웃으시니, 와 이리 좋노... 너무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 고향은 지역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웃고, 울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7월 1일(수요일)
1. 시민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김복동할머니와 함께 하는 정대협 미국방문 활동, 오늘은 워싱턴에서 수요시위가 있는 날입니다. 워싱턴 일본대사관 앞에서 1185차 수요시위를 개최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유럽평화기행을 진행 중인 희망나비가 에펠탑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미국 워싱턴에서는 김복동 할머니와 정대협,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 미주희망연대, 워싱턴시민학교,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풍물패 한판, 필리핀의 진보여성단체인 Gabriela in USA가 함께 한 가운데 1185차 워싱턴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한국기자단, 일본기자단을 비롯하여 로이터통신이 긴 줄을 만들어 취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대사관 앞에 도착하자마자 취재진의 마이크가 할머니를 향해 뻗는 관경이 만들어졌습니다. 피곤하실텐데도 할머니는 참으로 당당하신 모습으로 일본대사관을 마주보고 좁은 자리 중앙에 앉았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최근에 돌아가신 김외한, 김달선, 김연희 할머니의 영정이 놓이고, 그 앞에 이미 누군가 헌화를 하여 빨간 장미꽃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풍물패 한판의 길놀이가 대사관 앞을 들썩들썩 울립니다.청소년들로 이루어진 풍물패 한판의 아이들을 보신 김복동 할머니, 갑자기 귓속말로 속삭입니다. “돈 갖고 왔어? 저 아이들 용돈 좀 주고 싶은데...” 또 손주사랑 할머니의 마음이 발동되었습니다. 해외에 가실 때마다 동포 아이들을 보면 예뻐서 뭔가 할머니의 사랑을 선물로 주고 싶어 하는 할머니....오늘은 그럴 경황이 나지 않아 결국 할머니의 마음은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각 단체 대표들이 할머니들 영정 앞에 헌화와 묵념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합니다. 워싱턴정대위 이정실 회장의 인사말이 시작되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언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서서 발언하시는 것을 주장하시던 할머니 방식과 달리 휠체어에 앉은 채 말씀을 이어나갔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에서 온 피해자, 나이 90세,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라고 소개를 한 후에 “일본 정부가 말을 안 들어서 미국까지 왔습니다." 하며 당신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배경과 전쟁터에서 겪었던 아픈 과거에 대해 짧게 요약하여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일본 정부가 어린 애들을 속여서 끌고 간 뒤 성노예를 시켜놓고는 그런 적 없다, 민간인이 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고 규탄하며, 일본정부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으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전쟁범죄 국가인데, 과거의 잘못한 일을 하나도 해결을 안했는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적 이득 때문에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고 있다면서 미국정부를 향해서도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할머니는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하면 죽으려고 해도 억울해서 죽지도 못한다며 죽기 전에 과거 전쟁 때 저지른 일을 아베가 깨끗이 청산해 주길 바란다며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윤미향 대표는 “수요시위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1992년1월 8일부터 시작하여 23년을 넘어섰으며, 오늘 1185차를 맞이하고 있다”고 소개한 뒤, 오늘 이 수요시위는 서울에서도 진행되고,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도 희망나비 청년들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일간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전쟁시에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 성노예 범죄이며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며, 이것은 이미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공인한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에 기록하고 추모사업 등을 통해 재발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아울러 올해, 2015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70년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70년 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범죄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행을 국제사회가 함께 이루도록 노력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를 통해 종전 70년이 오기 전에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해방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발언을 마쳤습니다. 한 여중학생은 할머니께 존경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읽고, 필리핀계 미국인 여성운동단체 '가브리엘라'의 활동가 조 퀴암바오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필리핀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라고 언급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는 제국주의 일본군에 희생된 여성, 그리고 모든 군국주의의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요구했습니다. 미주희망연대 이재수 사무총장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 '일본은 거짓말과 부정을 중단하고 진실을 말하라'는 내용의 영어 구호도 힘차게 외칩니다. 할머니에게 힘내시라, 함께 한다는 말도 합창으로 전달합니다. "일본 "화해와 상생?" 과거사 해결부터 먼저하라!"는 성명서를 낭독한 후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이정실 회장과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일본대사관에 전달할 서한을 들고 대사관 앞으로 향했습니다. 정대협은 제12차와 13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제언을 담아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사전 협의 과정에서 대사관 안에는 이정실 정대위 회장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대사관 직원에게 정대위의 서한과 정대협의 서한을 전달하고, 힘찬 구호를 외친 후 워싱턴에서 진행된 1185차 수요시위를 마쳤습니다. 2. 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과 전시성폭력 반대 캠페인을 함께 할 나비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모임들을 가집니다. 1185차 수요시위가 끝나고 재미필리핀여성단체 가브리엘라 상근활동가와 함께 만났습니다. 미리 미주희망연대 국제팀을 통해 약속된 모임이었습니다. 오늘 모임에서 앞으로 재미 아시아커뮤니티 및 무력분쟁지역 여성단체들 등과의 연대로 확산키로 하고, 8.14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에 가브리엘라, 미주희망연대 등이 공동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재미 일본인 여성 및 중국 여성들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논의했으며, 2016년 3월 8일세계여성의 날에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캠페인을 미국 워싱턴에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3. Marymond는 이번 우리 방미캠페인에 마리몬드 티셔츠를 협찬해주셨습니다. 워싱턴에서 진행한 1185차수요시위에 참석한 미주희망연대 회원들이 잠시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마리몬드에 감사하답니다.
4.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이 파리현지시각, 7월1일 12시에 프랑스 인권광장에서 유럽평화기행팀의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개최되었습니다. 유럽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수요시위를 마친 후 상상백도 씨와 함께하는 셔플아리랑 플래시몹, 대형걸개그림그리기,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1억 서명운동, 포토존, 세월호리본 나누기 등의 다채로운 행사들을 진행하며 세계인들을 만났습니다.
7월 2일(목요일)
1.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땅은 젖어있습니다. 비 오는 아침이면 늘 몸이 무겁다 하는 김복동 할머니,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서 밉습니다. 아침 일찍이 서둘렀습니다. 지난해 페어팩스 정부청사에 세워진 일본군’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 30분에 미주희망연대 국제팀 서혁교 씨와 교육팀장 주희영 씨와 함께 기림비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 이정실 회장님과 김광자 전 회장님이 나와 계셨습니다. 알자지라 방송도 미리 나와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기림비에 예쁜 장미꽃 한 다발을 헌화하고는 기림비를 쓰다듬으며 애정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비모양 의자에 앉아보기도 했습니다. 나비의자에 앉아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 응한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미국사람들과 정부에 알리러 왔다며 일본의 전쟁준비를 막는데 미국이 힘써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일본 아베가 미국이 손만 잡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안 되는 일이에요.” 하시며 일본과 미국이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행태에 대해서 강한 반대의사를 드러냈습니다. 한동안 나비 의자에 앉아 계시다 다음 약속 장소로 우리는 다시 서둘러 떠났습니다.
2. 시민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하는 정대협 미국방문 활동, 미국 국무성을 방문하여 제13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채택 결의문과 미국 정부를 비롯한 연합국 나라들에게 불처벌에 대한 자료공개 및 책임을 촉구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열네 살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며 모진 세월을 다시 증언하였습니다.그리고 할머니는 “내가 죽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하러 왔다”며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렇게 먼 타국까지 와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일본정부가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 민간업자가 한 일이라고 망언하는 것”이라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사죄할 것은 하고 배상할 것은 해야 한다며 돈이 탐나서 배상하라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했습니다. 90살이 된 늙은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고 남아있는 피해자도 50명이 이제 안 된다며 미국과 각국정부가 문제해결에 힘써줘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윤미향 대표는 일본정부가 강제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렇게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는 김복동할머니 처럼 생존자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증거임을 강조하고 나비기금에 담긴 할머니의 뜻도 전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담아 채택한 일본정부를 향한 제언을 전달하고 일본정부의 책임 이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도 요청했습니다. 전후 70년인 올해 문제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은다면 할머니들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전후처리 과정에서 제대로 규명되고 처벌되지 않은 ‘위안부’ 범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눠달라는 요청도 잊지 않았습니다. 국무부측은 할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 정말 감동적이라며 깊은 감사를 표하고 미국정부도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양국 정부와 대화하고 있으며 더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3.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오후에 미 국무부 방문면담 활동 후에 미주희망연대 심영주 국제팀장님과 서혁교 팀원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녹두빈대떡과 잡채, 영덕게와 같이 생긴 게 요리를 맛있게 하여 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희망연대 분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복동 할머니는 바닷게에 대해서 부를 때 “기 -”라고 해야 “개”와 달리 들릴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맛있게 드십니다. 워낙 녹두전을 좋아해서 함께 외식을 할 때에도 녹두전을 주문하곤 하는데, 오늘도 할머니는 녹두전을 여러개를 드십니다. 할머니가 맛있게 식사를 하니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합니다. 특히 요리를 하며 하루종일 고생한 심영주 팀장님은 보람을 느끼는 듯 합니다. 그렇게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저녁시간을 함께 나누며, 지난 29일부터 진행된 워싱턴 캠페인에 대한 평가와 각자의 감상, 각오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직적인 고민에서부터 연대, 교육, 차세대로 이어가는 활동 등 각자의 마음속에 느낌으로만 머물러 있던 이야기들을 밖으로 끌어내니 향후 활동에 큰 틀을 잡아가는 듯합니다.
7월 3일(금요일)
1. 시카고로 이동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시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시간 여 날아 도착한 시카고 공항. 여성핫라인 지영주 사무국장님과 평화비건립추진위원장 등이 공항에 마중을 나와계셨습니다. 공항에서 짐을 차에 싣고 바로 한국식당으로 건너가 맛있는 밥, 냉면을 먹고 오늘은 휴식을 취합니다. 2. 메르스의 여파로 많은 관람객들이 취소되었지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는 7월에 들어서면서 초등학교 친구들이 발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오늘 박물관을 관람한 팀은 고양시 신일초등학교 스카우트 단원들이었는데요. 4-6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소녀이야기를 함께 보면서 왜 그 이장이란 사람이 정서운 할머니를 거짓말로 속여서 위안소를 가게 했는지를 질문하면서 궁금해 했습니다. 이것을 집요하게 질문했던 친구는 왜 그렇게 끔찍한 곳을 속여서 데리고 갔는지 이해 할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친구들의 모습도 매우 진지하였습니다. 다른 어떠한 초등학교 보다 진지한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세상을 책임질 평화지킴이들이 보는 듯하여 참 좋았습니다.
7월 4일(토요일)
1. 시민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김복동할머니와 함께 하는 정대협의 미국방문활동, 시카고에서 김복동 할머니와 팔레스타인 할머니가 함께 만났습니다. 라스미아 오데라는 이름을 가진 팔레스타인 여성이었습니다. 라스미아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아직 3개월밖에 안됐을 때 이스라엘군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당연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다녀온다는 편지만 남기고 집을 나섰던 것이 벌써 70년 전의 일입니다. 그녀는 아직도 집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민가로 들어가 사람들을 죽이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는 악행들을 저질렀다며 그녀의 절규가 이어졌습니다. 그녀 역시 이스라엘 정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강간을 당했습니다.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참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거짓 자백을 했고 그녀도 그랬다고 합니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딘 이후 변호사였던 그녀는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의 암 간병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팔레스타인 이민지와 여성들을 위한 권익활동에 투신해왔습니다. 그러던 2013년 FBI가 집으로 들이닥쳐 그녀를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의 투옥생활을 빌미로 그녀에게 징역 1년 8개월과 추방을 선고했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의 탄원으로 현재 보석으로 풀려 나와 있지만 한 달간의 감옥 생활 동안 3주간을 독방에서 햇빛도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항소 상태로 다음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였기에 김복동할머니가 겪은 고통이 그녀의 분노와 절규로 그대로 전이되어 버렸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 끝에 눈물을 훔치며 부정의한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다른 공간 다른 역사이지만 우리 역사와 닮아있는 비극이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복동할머니는 힘내라며 손을 꼭 잡아주었고 라즈미아는 우리의 정의가 곧 할머니의 정의라며 자신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해 나갈 것이라 약속했습니다.그리고 김복동할머니의 바람을 담아 만들어진 전시성폭력 피해여성들을 돕기 위한 나비기금이 오늘 이 만남에서 라즈미아에게도 전해졌습니다.
7월 5일(일요일)
1. 오늘 시카고에서는 <평화를 위한 외침>이라는 제목으로 김복동할머니와 윤미향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시카고 지역 한인 커뮤니티와 현지 미국 시민들이 함께 한 자리에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이어지는 공휴일이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일리노이주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앞장섰던 일레인 네크리츠 의원도 할머니를 반겼습니다. ‘소녀이야기’ 애니메이션으로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을 전한 후 김복동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참혹한 과거를 다시 증언하던 할머니는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 끝에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여기저기서 할머니와 함께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윤미향 대표가 미국에서 펼쳐 온 일정과 함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와 그녀들이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할머니에게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해줄 말씀은 없는지 그리고 앞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을 물었습니다. 현재 일리노이에선 평화비를 세우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청소년 아이들은 시카고에서 평화나비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복동할머니는 오늘 눈물은 고마워서 흘린 눈물이라고 합니다. 각지에서 함께하는 평화를 향한 목소리들, 함께하는 나비가 되어주는 이들이 점점 많아져서 할머니들에게 계속 희망을 전하는 바람을 일으켜주길 바랍니다. 오늘 행사에서 나비기금이 약 200만원이나 모였습니다.
2. 또 한 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께서 7월 5일 밤 11시 20분에 별세하셨습니다. 1925년 11월에 출생하신 최금선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에 비해 늦은 2000년을 훌쩍 넘어서야 일본군'위안부' 피해 신고를 하셨습니다. 그만큼 해방이후 긴 시간이 할머니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2002년, 수원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를 처음으로 찾아뵈었을 때 할머니는 과거의 아픈 이야기를 여전히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2004년 1월, 집에서 쓰러지셨고, 아주대학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시다가 노인전문병원으로, 그리고 강남병원으로 옮겨 떠나시기 전까지 오래도록 입원생활을 하셨습니다. 병원 의료진들의 정성어린 치료를 받는 중에도 여러 번 위독상황으로 가기도 하셨지만 늘 오뚜기처럼 다시 건강해져 병문안을 가면, 따님의 안내에 따라 노래도 불러주시고, 사랑한다고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7월 5일 밤 11시 20분경,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드셨습니다. 이제는 고통받지 않는 곳으로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주십시오. 올해 벌써 일곱 분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심으로써 이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48분이 남아 계십니다.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사죄를 받으시고 마음의 고통을 덜 수 있도록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금선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정대협 주간소식 2015-25호 7월 6일(월) - 12일(일)
7월 6일(월요일)
1. 오랜 일정을 소화해 낸 김복동 할머니와 우리는 미국 시카고에서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집으로 간다니 너무 좋다는 우리 할머니.... “공항에 우리 소장님이 나와 있을거야.” 하시는데,별 말씀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 장례식 때문에 나올 수 없다는 것 아시면 서운해 하실 것 같아서.
7월 7일(화요일)
1. 정대협 실무자들과 이사님들은 최금선 할머니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좋은 곳으로 가시는 길 평화롭길 기원드리며 절 올렸습니다. 할머니의 장례는 [나눔과 나눔]과 [태양상조]가 자원봉사로, 후원으로 진행해 주었습니다. 일반 시민,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 국회의원, 여성가족부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공감하고 노력해 주시는 분들이 할머니 가시는 길에 함께해 주셨고 특히 할머니들께 언제나 힘이 되어 주는 평화나비, 희망나비 학생들이 빈소를 가득 매워 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주시는 밥도 맛있게 먹고 정성어린 글씨로 쓴 나비편지도 한가득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11시에 빈소를 떠나 망향의 동산에 잠드셨습니다. 가까운 자리에 먼저 가신 다른 할머니도 계셔서 외롭지 않으실 거 같습니다. 운구는 평화나비 친구들이 도와주었습니다.유족들께서 고맙다고 다시 한 번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해주신 신화병원, 나눔과나눔, 태양상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만 해도 너무나 좋은 우리 정대협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김복동 할머니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그 때서야 손영미 소장님 못오신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미국 방문활동에 함께 힘을 모아주신 클리브랜드, 워싱턴, 시카고에서 만났던 모든 분들, 보도로 힘을 실어준 언론 방송인 여러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7월 8일(수요일)
1. 1186차 수요시위는 <이화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나서는 이화나비>주관으로 길원옥 할머니와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맞이 서포터즈 대학생들, 그리고 삼삼오오 수요시위를 찾아온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고 최금선 할머니를 추모하며 시작했습니다.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1186차 수요시위를 주관하게 된 <이화나비>는 작년 12월 대학생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한 동아리로서 이화여자대학교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여성인권 향상에 대한 학우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화나비 학생들은 <바위처럼>과 샤이니의 <초록비>율동을 선보이며, 조속한 문제해결을 염원하는 우리의 외침에 기운을 복돋아주었습니다. 이 날 수요시위에는 예수수도회 8명, 한국수녀복자수녀회, (사)평화의친구들 6명, 서울경기 평화나비네트워크 30명, 이화나비 및 이화여대 학생들 30명,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미디어몽구, 일반시민 참가자들과 길원옥 할머니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2.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은 독일 뮌헨 마리엔광장에서 제1186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오전 10시 플래시몹과 서명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날이 괜찮은 것 같았는데 11시경 수요시위를 시작하니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모여든 독일시민들,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바위처럼으로 힘차게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첫 발언으로 유럽평화기행 김형준 단장은 "유럽곳곳을 다니며 유럽 대륙에서 만나는 2차 대전의 흔적들이 극동지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과거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청산이 다른 것처럼 그 피해자들 역시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올해만 벌써 국내에서 일곱 분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심으로써 이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48분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한일간의 수교가 있은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진정한 관계의 개선의 시작은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빼고는 이야기 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한 두 나라간의 관계 개선뿐 아니라 전 인류의 정의와 양심, 평화의 측면에서도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단죄와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섰다"며 수요시위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오사카에서부터 오신 간사이네트워크 공동대표 오쿠다 가츠히로씨는 "2차세계 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역사적으로 큰 전환점에 서있다. 아베정권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헌법을 개정하려고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우선 헌법 해석을 왜곡해 자위대를 전쟁터에 파견 하는 법안을 필사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또 "희망나비의 큰 활약으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유럽까지 넓고 깊게 전달되고 있는 사실을 일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다. 가해국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강하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많은 이들의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굵어지는 빗줄기에도 끄덕없이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있는 나비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이었습니다. 이십년 넘게 이보다 더 궂은 날씨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를 지킨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인 듯 했습니다. 평화캠페인을 지켜보던 한 독일대학생은 감동적이라며 수요시위 첫줄에 함께했고 여행 중이던 우리나라 대학생이 고생한다며 초콜릿과 음료로 응원 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덕분에 오히려 힘이 나는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7월 10일(금요일)
1. 부산시민모임에서 부산, 양산의 두 할머니를 뵙고 소식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막달 할머니를 방문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경로당에서 전화가 와 내가 대신 받아 "오늘 누가 경로당에 맛있는 음식 해오니 놀러 오라신다, 경로당에 모셔다 드릴 테니 가시겠냐"니까 바로 옷 갈아 입으십니다. 그다음 최옥이 할머니를 방문했습니다. 이마에 난 상처가 다 아물어 이젠 작은 딱지만 남아 있고, 마루에 서 계시기도 하고 문밖 평상에 앉아 햇볕도 쬐셨습니다. 식사도 조금 하시고 빵, 두유, 요플레도 드시고 병원에서 받아온 약도 드시게 했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으신지 오래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2. 오늘 윤미향 대표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두레자연중학교에서 1,2,3학년 전교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펼쳤습니다. 두레자연중학교에서는 특강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오늘 특강은 ‘전쟁과 인권’을 주제로 한 학기의 마지막 특강 시간이었습니다. 쉽게 지칠 수 있는 무더운 날씨에도 학생들은 대표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답하는 등 날씨보다 더 뜨거운 특강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오늘의 느낌을 이어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평화를 어떻게 만들까 잊지 않고 생각해보길 기대해 봅니다.
7월 11일(토요일)
1. 김복동 할머니께서 2015년 서울시 여성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오늘 양성평등주간기념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상을 받으신 김복동 할머니, 우리 모두 함께 참석하여 축하드렸습니다.할머니는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 상은 비단 나 뿐 아니라 우리 피해자 모두에게 주는 상이며 정대협에 주는 상이라 생각한다며 감사히 받겠다”고 소감을 밝혀 주셨습니다. 소감도 멋져요. “할머니 때문에 오늘 기념식이 더 빛이 났다”는 평가를 해 주신 서울시 관계자의 말씀이 참 감사했습니다.
2. 정대협 초기 실행위원이셨던 김신실 선생님께서 오늘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유가족이 사무실로 알려주어 빈소를 방문하여 조문 드리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왔습니다. 가는 길에 전직 정대협 실행위원들이 함께 주신 위로의 말씀과 부의도 전해 드렸습니다. 정대협 운동이 출발할 때부터 함께 참여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까지 정대협의 재정위원장으로,생존자복지위원장으로 오래도록 수고하셨던 김신실 선생님께서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셨습니다.무거운 마음으로, 우리 할머니들보다 짧게 사신 그 분의 삶이 슬퍼서 그 분의 빈소를 찾았습니다.큰 아드님께서 저를 보자마자 "윤간사님 오셨어요?" 합니다. 오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해주시는데,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세월이 20년이 지났지만, 제 모습에서 여전히 윤간사의 모습이 남아있나 봅니다. 정대협이 가장 힘들 때 재정위원장, 생존자복지위원장을 하시느라 할머니들께 욕도 가장 많이 먹었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 할머니들로부터 욕먹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들으면서도 그 욕조차도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아픔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저도 어렸던 지라 어른이 욕먹고 있는 것에 대해 위로도, 사랑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내 아픔이 더 컸고, 나에게 쏟아지던 욕조차 감당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들의 아픔, 상처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 이 생에서의 마지막 고별인사를 나누려니 머리숙인 고개가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죄송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희생이 지금 정대협을 만들고, 지금 할머니들의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 분의 사진을 뒤져보니.... 역시, 그 많은 사진 중에 주역으로서의 사진은 몇 장 밖에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뒤에 서 있었나 봅니다. 아니면 행사를 진행하는 계산을 하고 있었을까요? 우리 정대협, 내일부터는 더 뒤에서,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 하나 기록해 둬야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청와대 앞 릴레이 1인시위에 이어 8.14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맞이 릴레이 포토선언을 진행합니다. 널리 알려주시고, 모두 함께 참여해주세요!! 아래 피켓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거나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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