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산 겨울나기/靑石 전성훈
가을이 떠나간 지 언제인지 모른다. 가을의 빈자리를 차지한 겨울이 하루가 다르게 깊어간다. 깊어가는 겨울은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럽다. 한없이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으로 세상을 덮을 듯한 벌거벗은 모양이 겨울 산이다. 이십 년 넘게 일주일에 몇 번 찾아가는 동네 뒷산 초안산도 그렇게 처량하다. 이른 봄부터 연둣빛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여름날을 푸르름으로 감싸 안았던 생동감 넘치던 숲의 충만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 잔재조차 찾을 수 없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로 매서운 겨울 찬바람을 고이 맞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윤기 없어 볼품없고 초라하게 변해버린 쇠약한 내 몸 같아서 마음이 쓰라리고 아리다.
집에서 초안산(115.5m)에 가려면 녹천역을 지나서 건너가야 한다. 녹천(鹿川)이라는 이름은 사슴이 맑은 물을 마시러 와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수십 년 된 자동차운전학원 옆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서면 초안산을 만나는 지름길이다. 오솔길을 조금 가면 몇 년 전부터 구청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야영장이 있다. 멀리 야외로 가지 않고 가까운 숲속에 꼭 안겨 있는 자동차 야영장을 만날 수 있어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이다. 야영장이 생긴 곳은 예전에는 벌을 키우던 장소이다. 아까시나무가 많아서 5월 중순이 되면 하얀 꽃이 탐스럽게 달린 달콤한 아까시나무 향기가 온 동네에 진동한다. 어린 시절에는 아까시나무 꽃잎을 따서 먹었는데 요즘은 먹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어머니께서 아까시나무 꽃잎으로 술을 담그셨던 게 생각난다. 자동차 야영장을 벗어나 조금 가파른 곳으로 올라가면 황톳길이 있다.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황토가 깔린 곳이다.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열풍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길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황톳길 옆에 구청에서 만들어 놓은 쉼터가 있다. 안내문에는 ‘숲속 치유 테크’라는 조금 어색한 설명이 붙어 있다. 쉼터를 지나가면 묘지가 나타난다. 꽤 많은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왜 이곳에 무덤이 있을까 하고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조선 왕조 내시묘역으로 불리는 곳으로 내시와 궁녀 그리고 평민의 묘역이다.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둘레길에도 내시묘역이 있다. 정식 명칭은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이다. 어느 해 여름, 아마도 20년도 넘은 때인 것 같다. 내시묘역 부근을 지나가는 데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쏟아지고 사방이 어둠에 싸여, 갑자기 머리 뒤끝이 쭈뼛해지면서 소름이 확 끼쳤던 기억이 난다. 두려움이 솟구쳐서 정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그냥 집 방향으로 내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시묘역을 지나서 정상으로 오르면 헬기장이다. 세상이 어수선한 그때 그 시절에 헬기가 앉을 수 있도록 평평하게 땅을 고르고 둥그렇게 돌을 쌓아놓았는데, 지금은 세월 따라 많이 훼손되어 조그만 원형 흔적만 보인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초안산 숲속 생태계를 안내해주는 숲 해설 모임이 있다. 이런저런 나뭇잎을 보면서 숲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연필로 나뭇잎을 그리는 학생과 어른을 보기도 한다. 숲에는 이름 모르는 산새들이 많다. 산새들 노랫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땅에 내려앉아 뭔가를 찾고 있는 산새 모습을 종종 볼 수도 있다. 엄동설한 겨울철을 지내려면 인내의 세월이 필요하다. 한겨울 세찬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주 작은 여린 새싹이 솜털처럼 눈에 보일 듯 말듯 부끄러운 듯이 나뭇가지에서 고개를 쳐들면 어디선가 봄의 소식이 전해지겠지. 추운 계절이 왔다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기지개를 켜고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자. 말없이 겨울을 겪는 안쓰러운 초안산 모습을 생각하며 기운을 차리고 용기를 내자. 생명의 봄이 다시 돌아오는 그때를 기다리자. (202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