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곳곳에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치적 갈등, 노사간의 갈등, 노정간의 갈등, 빈부의 갈등, 가정안의 갈등, 뿐 만 아니라 도덕윤리문제, 경제 문제, 청년취업 문제, 남북간의 문제 하여튼 커다란 문제들이 우리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둠이 온 땅을 덮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 이렇게 어둡습니까?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살기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한 마디로 온통 자기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갈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욕망, 자기성공, 자기만족에만 목적을 두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입니다.
죄악의 뿌리입니다. 창세기 6장에서 인류가 노아홍수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직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여기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말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고 대적하고 싸우고 갈등하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온통 세상이 어두웠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무질서입니다. 어둠은 혼돈입니다. 어둠은 차가움입니다. 어둠은 죽음입니다. 어둠은 죄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둠을 몰아내고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평화를 주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보라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역시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라는 사명인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이후로 어두움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어두움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12절에서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 빛이 비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어두운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너무 어둡기 때문에 우리는 빛을 기다립니다. 빛을 사모합니다. 빛을 보기를 원합니다. 빛가운데 우리의 눈이 활짝 열리기는 원합니다.
예수님은 드디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빛으로 오셔서 "보라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다’라는 일곱가지 자기선언을 하신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주제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선한 목자, 이 위대한 주제를 주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시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이요,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약점이나 한계나 모순을 안고 있는 인간은 비록 그가 아무리 성자라 할지라도 "나는 빛이요, 나는 생명이요"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위대한 선언을 보게 됩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신 것을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 3:19-21)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세상이 빛을 싫어하고 대적합니다.
자기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봐 빛을 싫어합니다. 빛을 대적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서 비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앞에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이렇게 세상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자기는 세상적인 상식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은 말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이렇게 그는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요 8:28-29절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라고 하니까 말씀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세상의 빛으로 나를 내세우기 때문에 내가 내세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버지의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는데 너희는 왜 믿지 않느냐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 사람들이 영접했든 안했든 빛으로 인정하듯 안하든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진리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영국의 화가 핸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린 그림가운데 "세상의 빛"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은 예수님이 손에 등불을 들고 서 계시는 그림입니다.
등불에서 비치는 빛이 어두운 복도를 밝히면서 드디어 이세상의 어두움을 놓고 한탄하시는 예수님의 얼굴까지 비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한 때 그 그림이 인기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샀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술 평론가였던 그린 호프가 그 그림을 호되게 비판하였습니다. 비판하는 요지는 간단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손에서 들려 있는 등불에서 빛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에게서 나와야지 어떻게 예수님이 들고 있는 등불에서 빛이 나오냐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성경적인 그림이 아니다. 바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등불을 들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큰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비치는 반사하는 작은 달이 아닙니다. 그분은 빛 자체입니다. 믿습니까? 그분은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요,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명제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 빛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12절을 다시보시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비로소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빛되신 예수님을 따르면,
어두움에 다니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길을 잃어버리고 헤메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약속하십니다. 절대로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따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는 것은 무엇이고 따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따르는 것은 믿음으로 일단 시작됩니다.
그래서 따르는 것은 믿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을 따름의 조건이요, 따름은 믿음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따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따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심을 알려면 먼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는 반드시 주님을 따라갑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닮으라는 말씀이기도 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묻고 그 해답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행동의 기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말씀 속에 굉징한 긴장이 있습입니다.
믿으라고 할 때는 그런 긴장이 별로 없지만 나를 따르라는 말씀속에는 긴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의 분위기에 긴장이 감돌고 있음을 우리가 느낍니다. 따르라고 하는 말씀을 듣자마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한동안 가정도 포기했습니다. 직업도 포기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내놓고 따라야 했습니다. 주님은 따르는 자에게 다시한번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 그러니까 이 말씀 속에 얼마나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것은 단순히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금방 압니다. 여러분, 설교를 들으면서 각자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예수님이 빛이시라면 내 마음도 밝아야 되고 내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야 될 터인데 왜 나는 어두움속에서 헤메고 왜 예수믿으면서 이렇게 앞이 캄캄할까? 마음이 왜 이렇게 답답할까? 뭘 해야 될지 어디를 가야할지 도대체 이렇게 몰라가지고 갈등을 할까? 여러분, 자문해보세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고 있는가?
주님을 따르는 일에 문제는 없는가?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나는 끝까지 나를 부인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따르는 것은 내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지금 십자가는 벗어던지고 그냥 편안하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빛은 나를 은혜와 평강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 어떤 시험이 다가와도 은혜와 평강이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1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유령처럼 나타나서 환하게 빛을 비추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어둠을 몰아내 주시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이 말씀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 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주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이 빛을 비치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비추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빛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한참 일어나던 16세기 당시에 제네바를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생명을 걸고 힘겹게 개혁에 앞장섰던 장로교의 창시자 존 칼빈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네바의 모토를 "어두움 후에 빛" 어두움 후에 빛이요,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움을 몰아내고 비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네바시에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이 오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541년 제네바시의 규정을 보면 설교자는 1주일에 6번씩 설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에서 적어도 꼭 1주일에 6번 나와서 설교를 들어야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말씀을 들어야 눈이 열리고, 말씀을 들어야 빛을 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심을 체험하기를 원합니까? 그의 말씀을 듣는데서부터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의 말씀을 배우고 체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떠나 버렸을 때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그렇습니다. 따르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생명임을 알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빛이심을 알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스스로 성경을 읽기도 하지만 예배시간에 참석하시면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근본은 예배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빛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생활을 회복하십시오. 요즘 주일 저녁에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도 한분두분 더 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우리의 영이 살고 말씀을 들어야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빛이 비쳐져서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그 빛이 내 마음을 비칩니다. 깨달을 때 그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됩니다. 내 길에 빛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주님을 따르는데 문제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참 답답하게 여기는데요. 하루빨리 여러분 믿는다 믿는다 하지말고 진짜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말씀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오늘 여기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순종할 때에 주님의 빛이 비치어서 기뻐하고 삶을 즐거워하는 성도들을 많이 봅니다. 어두움에서 헤메던 생활에 종지부 찍고 예수님과 함께 힘차게 걸어가는 형제들을 봅니다.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3.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빛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가 아니라 단 몇 분이라도 태양이 없다면 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태양빛이 사라지면 순간 전 지구는 빙하시대가 될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나, 땅 위에 있는 모든 동물이나, 물속에 있는 모든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빛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빛이 우리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빛을 받고 빛가운데 거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태양과 달의 빛의 차이입니다. 태양을 빛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달은 빛의 반사체입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그것을 반사할 뿐입니다.
어두운 밤에는 달빛만 가지고도 환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자체의 빛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빛"이라는 것도 자기의 빛을 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태양과 같은 하나님의 빛을 얼마나 받느냐가 빛을 얼마나 발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마치 보름달처럼 만월은 태양을 정면으로 받았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달은 햇빛을 받는 만큼만 우리에게 되비춰 줍니다. 그래서 정면으로 받은 보름달도 있고, 초생달, 반달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의 사자로서 빛을 발하려면 하나님의 빛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표어중의 하나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성도,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한 성도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충만이라는 말이고 빛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빛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다시말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어둠을 몰아내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빛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깊은 교제를 나누는 관계를 가지며 사는 사람은 그 생활 전체가 밝습니다. 항상 기뻐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50%만 받거나 극히 부분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초생달이나 반달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조금밖에는 예수믿는 냄새가 나지를 않아요. 빛이 보이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교회에 왔을 때는 빛을 받은 것 같다가 집에 돌아가면 어느 사이에 다 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의 모세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의 40일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쳐다볼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얼굴에 수건을 가리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빛을 발하려면 주님과 깊은 사귐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사귄다는 말은 만난다는 것이요, 사랑한다는 것이요, 계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로 동행한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 빛을 받고 계속 사귐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직장 그 어디에든지 예수의 향기가 나고 빛이 되는 것입니다. 마 5:16절 말씀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발하는 빛은 곧 착한 행실입니다. 여기 착한 행실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격과 삶을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이 부족한 것은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고 세상의 빛으로서 살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세상에 빛으로 살아갈 소명과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참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엡 5:8,9)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의 사명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이요, 또 어두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모든 것이 폭로됩니다. 빛이 없을 때에는 어두움이 어두움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곳에 불이 켜졌을 때 내가 어두움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속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내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으나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나의 삶이 얼마나 절망 속에 있었고, 허무와 좌절 속에서 비뚤어진 삶을 살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빛으로 인해 우리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빛으로 인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또 우리속에 있는 모든 어둠을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이 빛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빛이 나를 찾아오셔서 먼저는 내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세상의 빛이어야 합니까?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어둡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곳에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두워진 이 세상에 복음의 빛, 생명의 빛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주님의 빛을 증거해서 어둠을 몰아내어야 합니다. 내 가정안에 어둠이 있습니다. 먼저 내 가정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이 우리가 머무는 것마다 빛이 가득하게 저와 여러분의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춤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결과들만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의 빛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빛을 통하여 세상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밝아지는 영광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