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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지옥’ |
인권유린·비리 ‘복마전’ 에바다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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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1999년 09월 09일 (목) |
경기도 평택·成宇濟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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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경기도 평택시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른바 ‘에바다 사태’를 이만큼 잘 설명하는 말은 없다.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 청각 장애인들은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소리를 지를 수 없다. 소리 없이 수화와 글로써 항의할 뿐이다.
소리가 없기 때문일까? 그들의 요구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에바다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대통령이 세 번이나 약속했어도, 문제가 풀렸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국민 여론도 ‘사회복지시설에 또 문제가 생겼구나’ 하는 정도에 머무를 뿐 아우성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청각 장애 학생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1000일이 넘도록 ‘소리 없는 아우성’만 계속되는 것이다.
지난 8월19일로 ‘에바다 농성’은 1000일을 맞았다. 96년 11월27일 새벽 5시 평택시 진위면 하북리에 있는 에바다농아원에서 원생들이 집단 농성을 하면서 시작된 에바다 사태는, 두 번에 걸친 국정감사, 감사원 특별 감사, 평택시 감사, 경기도 교육청 감사, 검찰·경찰 수사 등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기관이 위기를 넘기고 보자는 미봉책만 내놓았을 뿐, 인권 유린과 비리를 발본 색원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3년 가까이 지나면서, 에바다 사태는 에바다복지원 차원을 넘어 이 땅의 사회복지 정책과 관련한 문제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3년 전 사태가 발생한 직후 평택 지역에서 ‘에바다 비리 재단 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전국대학생연대회의’가 결성되었고, 지난 7월19일에는 공공연맹·민주노총·인권운동사랑방·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33개가 참여한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가 발족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동(東) 티모르가 국제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과 마찬가지로, 에바다 사태가 사회복지시설의 앞날을 가늠케 하는 전국적인 문제로 떠오른 셈이다.
에바다 사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온 사회복지시설 비리의 전형으로서, 해를 거르지 않고 터져나오는 장애인 수용 시설의 문제를 고스란히 집약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해마다 터져나오는 사회복지시설 사건과 달리 원생(학생)·교사·학부모가 처음으로 주체가 되어 문제를 제기하며 버티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태의 발단은 에바다농아원에 거주하면서 에바다학교에 다니는 청각 장애인들이 재단 비리 척결과 공립화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에바다농아원·에바다학교·에바다장애인종합복지관이 소속되어 있다)가 받아온 국가 보조금은 1년에 16억원. 원생과 학생의 생활비·교육비, 교직원 인건비 등 시설 운영에 관한 비용을 국가가 모두 책임지는 곳이다.
에바다복지회가 활용해온 가장 고전적인 수법은 족벌 체제를 통한 폐쇄적 운영과 국가 보조금 횡령이다. 96년 11월27일 농성이 시작될 당시 에바다복지원의 운영 전권은 최실자씨 남매가 쥐고 있었다. 최씨가 농아원장·복지관 관장·학교 서무과장·법인 상임이사를 겸했으며, 최씨의 동생 최성창씨가 법인 이사장(공식 명칭 대표이사) 겸 교장을 맡고 있었다.
한 가족이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바다복지원은 폐쇄적인 족벌 경영이 야기할 수 있는 온갖 비리를 저질러 왔다. 먼저, 평택시와 경기도 교육청 감사에서 밝혀졌듯이 최실자씨는 공금 3억6천여만 원을 횡령했다. 최씨는 96년 농성 사태 발생 직후 긴급 구속되어 97년 9월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성 추행·의문사·구타 사건 잇달아
최씨 일가가 에바다복지원에서 저지른 비리는 해당 관청의 느슨한 감독(혹은 봐주기), 족벌 경영으로 인한 폐쇄성이 야기한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학교에 근무하지도 않는 친인척을 직원으로 둔갑시켜 국가 보조금을 받았으며(유령 직원은 모두 15명이었다), 원생을 이중 등록해 그 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보조금을 더 타냈다(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는 졸업생을 포함해 모두 88명이다).
국가로부터 더 받은 보조금의 수혜자는 물론 장애인이 아니었다. 보조금 수혜는커녕 농아원 원생들은 굶주림과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일이 많을 때면 초등학생들도 오전 1~2시까지 제본소에서 본드 냄새를 맡으며 작업했고, 낮에는 학교에 가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농성에 들어간 청각 장애인들은 재단 비리 척결과 공립화를 요구했으나, 농성의 직접적인 원인은 추위와 굶주림이었다. 푸석푸석한 밥조차 늘 부족해 원생이 가게에서 빵을 훔쳐 먹는 일이 숱하게 발생했으며,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원생은 개밥그릇에 들어 있는 라면 찌꺼기를 주워 먹기도 했다.
사회복지시설에는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각계의 후원금과 물품이 답지한다. 그러나 에바다복지원에는 후원금 장부조차 없었으며, 복지원에 기증된 전자제품은 며칠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횡령과 강제 노역뿐이 아니다. 자매 결연을 맺은 주한미군 부대 병사의 농아원생 3명 성 추행, 강제 결혼 및 구타 사망 의혹 사건, 원생 실종 사건, 의문사 사건, 학부모에 대한 금품 강요 등 운영과 관련한 비리와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80년대 초까지 원생 70여 명을 1인당 만 달러씩 받고 미국에 입양시켰다’고 제보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최실자씨가 법의 심판을 받는 동안 농성 학생과 그들을 지지하는 교사 11명에 대한 재단의 핍박은 계속되었다. 특히 교사들이 집중 타깃이 되었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뭇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119구급대에 실려갔는가 하면, 임신 6개월 된 여교사가 재단 직원(최성창씨의 처남 이경수씨)으로부터 가슴과 배를 맞아 실신하기도 했다. 수업 중인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벽에 찧는 일이 다반사였고, 여교사의 목에 뜨거운 물을 붓는 일까지 자행했다. 재단측이 데리고 있는 이른바 ‘신학생’을 중심으로 자행된 테러였다. 교사 11명 중 2명이 파면·직위 해제되었는데 교육부와 사법부에서 복직 판결이 난 지 1년6개월이 가까운 지금도 그들은 복직되지 않고 있다. 학교가 예나 지금이나 무법 천지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최실자씨가 법의 심판을 받고 최성창씨가 이사장·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가족 경영의 폐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복지회 이사진이 사태 발생 후 세 차례나 교체되고, 평택시와 도 교육청의 감시가 어느 때보다 강화되었다고 하는데도 농성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족벌 체제가 옷만 바꾸어 입었기 때문이다.
“비리 관련자인 최실자·최성창 씨가 현직에서 물러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엔 해결이 안된 게 없다.” 에바다복지원을 담당하는 평택시청 허성범 사회담당 계장의 말이다. 최실자·최성창 씨가 물러난 뒤 그들의 동생인 최성호씨가 재단이사회에 이사로 들어왔지만, 사태 당시 복지원에 몸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평택시가 최실자 일가 비호한다”
법원에서 ‘죄인’으로 판결받은 사람의 동생이 이사가 되었다고 해서 문제 삼을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가족을 통해 최실자씨의 영향력이 지금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실자·최성창 씨가 직함을 내놓은 이후, 에바다복지원에는 ‘실무형 친인척’이 대거 진입했다. 8년 동안 유령 직원이었던 양봉애씨(최성호씨의 처)는 농성 사태 이후 학교 서무과장으로 취임했고, 그의 동생 양봉말씨도 서무과 직원으로 근무한다. 최성창씨의 처남 이경수씨와 그의 처 권명희씨(전 유령 직원)도 정식 직원으로 발령 받아 일한다. 사태 이전보다 더 많은 ‘가족’이 복지원에 포진한 것이다.
농아원에 근무하는 직원에 따르면, 최실자씨는 석방된 이후 지난해 11월 국정감사 이전까지 법인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이사장·원장 직인으로 서류를 결재했다. 최씨는 지금도 복지원에 수시로 들른다. 그가 갈 때마다 새로운 관선 이사(이성재·김홍신·김명섭 의원 등)를 비방하는 플래카드가 나붙는가 하면, 구재단측을 비판하는 교사의 책상이 옥상에 올려지기도 한다. 법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지 몰라도 현실적 영향력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에바다복지원은 농성 사태가 터지고 난 다음에도 비리를 저질러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2월 감사원 특별 감사에서는 양봉애 서무과장이 경기도 교육청에 허위로 급여를 신청해 2천6백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평택시 특별 감사에서도 정상아를 장애아로 둔갑시켜 보조금을 타내는 등 비리 사실 16건이 새로 적발되었다. 감사원은 업무 부당 처리자 양봉애씨와 형사 처벌을 받았던 양봉말씨, 최성창씨의 처남 이경수씨를 해임하도록 통보했으나 그들은 ‘정직 1개월’ 정도의 처벌만 받았을 뿐이다.
평택시와 김선기 시장이 지역 사회복지시설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데서 연유한다. 평택시가 최씨 일가를 비호한다는 비판은 사태가 터질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지역 토착 비리 세력과 관이 맺고 있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유착 관계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6월에 공개된 최씨 일가와 시청이 작성한 비밀 합의서이다. 98년 12월 8일 김선기 시장, 남규우 관선대표이사(전 평택시 사회환경국장)와 최성창·최성호 씨가 합의한 ‘에바다복지회 정상화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98년 5월16일 에바다복지회 대표이사를 최성호씨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98년 5월10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사태 해결’을 약속해 이 합의서가 이행되지 못한 것으로 에바다 공대위는 보고 있다.
이 문건이 아니더라도 평택시가 최씨 일가를 비호한다는 혐의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시장이 최씨 일가 또는 측근을 관선 이사로 임명했는가 하면, 지난 4월8일 세 번째로 구성된 관선 이사회에도 최성호씨를 비롯한 구재단측 인사 3명이 들어가 있다. 에바다 사태에 관심을 보여온 이성재 의원이 이사장에 임명되었으나, 이사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의결할 수 있다는 정관 때문에 지난 8월12일에 열린 첫 이사회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인권 대통령’ 나라에서 짓밟히는 인권
최실자씨는 98년 KBS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발하려면 하라고. 나도 고발할 것이 있지. 비리 내가 다 알고 있다’라고 평택시를 위협한 적이 있다. 농아원의 전직 직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에게) 원장님이 봉투 주는 것 봤다. 봉투 주라 해서 주면 찔러주고 그런다’라고 증언했다. 평택시가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유를 간접으로나마 짐작하게 하는 ‘증언’들이다.
학생·교사·학부모가 ‘해아래집’(36쪽 딸린 기사 참조)이라는 곳에 모여 1000일이 넘게 농성하고, 33개 시민단체가 에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한 것은, 에바다 사태에 사회복지시설의 앞날이 걸려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희망이다. 당신들이 무너지면 앞으로 20~30년 동안 이같은 구조가 계속될 것이다’라는 전화가 여러 사회복지시설 수용자들에게서 걸려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시설의 비리 사건은 단발로 끝나 최실자씨와 같은 이들이 형을 마치고 다시 복귀하는 악순환이 거듭되어 왔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이들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아 세금을 도둑질하는 ‘장애인 장사’가 백주 대낮에 버젓이 자행되는 셈이다. 복지가 문제가 아니다. ‘인권 대통령’의 나라에서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편집 : 2009.10.5 월 11:1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