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은
귀납법적 스토리텔링을 가진 아들로 유명합니다.
압살롬이 태어난 곳은 헤브론이요, 다윗의 세째 아들이며
다윗의 세째 아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압살롬에 대한 인물을 평하기를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삼하14:25)
압살롬의 불행은 누이 다말이 맏형 암논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맘논을 미워하다가 2년 후 바알하솔에서 왕의 아들들을 모아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암논을 암살하였습니다.
그 일로 압살롬은 외가로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였습니다.
압살롬은 3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였는데
요압의 권유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압살롬이 언제 결혼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무엘서 저자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삼하14:27)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여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면서 요압을 자극하여 결국 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삼하14:30-32 )
이렇게 하여 압살롬은 다윗 왕을 만나 부자상봉을 하였고
그 후 성문 곁에서 호위병 50명을 대동하고 4년 동안 재판을 주관하며 백성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삼하15:5-6)
그 후 헤브론으로 가서 반역하여 왕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다윗은 전령의 보고를 듣고 황급히 도망하였으며
다윗의 감람산길은 도망자의 처참한 몰꼴이었습니다.
☞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 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15:30)
마하나임으로 도망한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를 군단장으로 세워 3군단의 군대를 정비하여
에브라임 수풍에서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을 하였고 결국 압살롬은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여
눈물의 애가를 남겼습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 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사무엘서 저자는 압살롬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압살롬이 살아 있을 때 아들이 없어 기념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를기록하였습니다.
☞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삼하18:18)
그런데 삼하14장 27절 말씀에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압살롬이 기념비를 세울 때
아들 셋이 모두 조사(早死)하고 요절한 것 같습니다.
아들이 없는 압살롬은 자기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으나
오히려 아들이 없는 수치가 되었습니다.
딸의 이름을 다말이라고 하였는데
누이 다말에 대한 애잔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압살롬의 딸 마아가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왕비가 되었다는 대하11장 20절의 기록입니다.
☞ 르호보암이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으니
마할랏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이라
그가 아들들 곧 여우스와 스마랴와 사함을 낳았으며
그 후에 압살롬의 딸 마아가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가 아비야와 앗대와 시사와 슬로밋을 낳았더라(대하11:18-20)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딸 하나 밖에 없는데
역대기의 압살롬의 딸 마아가는 다말의 딸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다말의 남편은 우리엘이요,
마아가는 다말과 우리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대하13:1)
열왕기 기자는 아사의 모친을 마아가라고 하였는데 조모로 이해해야 하며
마아가는 아사의 부친 아비야의 모친이며 르호보암의 아내입니다.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왕상15:13-14)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아비야)이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왕상15:1-2)
아비야는 3년 동안 재위하였는데 어린 손자가 왕위에 올라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수렴청정하였을 것입니다.
남 왕국 유대의 열왕들 가운데
왕이 될 때 나이가 언급되지 않은 왕은 아비야와 아사입니다.
그러므로 아사는 아비야의 아들이 아니라 모친이라는 말 때문에 형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마아가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하고
르호보암이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으니
마할랏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이라는 말씀이 난해합니다.
마할랏은 누구인가?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이요,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아들과 여리못과 다윗의 형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은 부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쉽게 의역하였는데
르호보암은 다윗의 아들 여리못이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에게서 낳은 마할랏을
아내로 맞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단순히읽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은
여러 말씀을 비교 종합해서 이해하면 난제의 벽을 하나씩 극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난제에 대한 상식이 없다면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은 사람일 것일 것입니다.
설교로만 아는 성경의 이해는
성경의 난제, 그 벽에 부딪히면 거의 절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