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산사 3色 기행
본격 휴가철을 앞두고 '충절의 땅' 충남의 천안·공주·아산을 둘러봤다. 테마는 '사찰 3색 기행'으로
잡았다. 둘러본 절집은 광덕사(천안)·마곡사(공주)·봉곡사(아산)다. 모두 오래된 절집으로 들머리에 아름다운 나무들이 가득하다.
묵은 때를 벗겨내며 맑은 기운을 받기에 좋은 이들 사찰은 각기 특색을 갖추고 있다. 절집에서 건져 올린 특색을 미리 밝히자면 호두과자(광덕사), 템플스테이(마곡사), 소나무 숲길(봉곡사)을 꼽을 수 있다.
천안 광덕사 신라 때 창건… 호두나무
첫 재배지 먼저 찾은 곳은 광덕사(廣德寺). 광덕사는 숫제 주변에 '광덕'이라는 이름을 달고 산다. 광덕사의 주소는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다. 절집이 자리한 곳은 광덕산(699m)이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고개를 돌리니 바로 절집이 나온다. 절집 계단에 오르기 전부터 40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나무가 눈에 띈다. 계단 옆의 호두나무다. 2층 누각인 보화루와 그 오른편의 범종루를 가릴 만큼 드넓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광덕사에서 머물고 있는 한 보살의 이야기를 듣고 안내판의 설명을 읽어본다. 천안의 상징과도 같은 호두나무는 광덕사를 최초 재배지로 하고 있다. 호두나무가 이 땅에 들어온 때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9월이었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몰고 돌아온 영밀공 유청신(柳淸臣)이 묘목과 열매를 가져온 게 계기가 됐다.
묘목을 광덕사 경내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광덕면 매당리) 앞뜰에 심었다. 7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호두나무는 광덕면 일대에만 25만그루 넘게 자라고 있다. 이 덕분에 호두과자는 전국의 휴게소와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주전부리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영밀공 유청신은 목화를 전래한 문익점에 비견해도 될 듯싶다. 호두나무 앞의 돌비석이 더없이 반갑다. '유청신 선생 호두나무 시식지'라는 문구가 보인다.
광덕사의 역사는 14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수행을 마치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광덕사를 세운 때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이었다. 개창 당시 암자만 89개에 달해 기호와 호서 지방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이어 흥덕왕 7년(832년)에 진산화상이 중창 불사했으며, 고려 충혜왕 5년(1334년)에 삼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공주 마곡사 태화천 해탈교 건너며 삶 관조
광덕사를 나와 달려간 곳은 태화산(416m) 산허리에 있는 마곡사. 광덕사와 달리, 한참 좁은 길을 달려가도 마곡사는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2000원을 주고 매표소 입장권을 구입해 숲 터널을 오르니 아름드리 나무들의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전해진다.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자리한 조계종 6교구 본사인 마곡사는 갑사의 본사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마곡사는 갑사와 함께 사랑을 받아왔다. 마곡사는 봄에, 갑사는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마곡사의 주지인 원혜 스님은 "봄볕의 희망이 드러나는 '춘마곡'이라는 말은 부처님과 큰스님들의 가르침이 희망의 에너지로 표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곡사도 신라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2년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마곡사를 높게 평가한 기록은 숱하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마곡사'를 당시 가장 부유한 사찰로 언급했고, 택리지와 정감록에서도 마곡사는 십승지(十勝地)로 설명됐다. 백범 김구 선생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백범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일본군 장교를 처단하고 3년간 스님 생활을 하며 은신한 곳이 마곡사의 백련암이다.
태화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를 건너야만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곳이 마곡사 경내다. 태화천은 마곡사를 감고 도는 계곡으로, 마곡사 앞에서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나간다. 국내 사찰들이 마련하는 다양한 템플스테이 중에 눈길을 끄는 게 마곡사의 '자비 명상'이다. '자기 안의 근본적인 상처를 드러내고, 이를 치유해 그 안에 상처를 담는 수행법'이라고 마곡사는 설명한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해 마곡사를 품에 안은 태화산 등산로를 걷고 깨닫는 맨발산행은 여러 사람이 추천하는 수행법이다. 자갈밭을 걷고 나뭇잎을 밟으며 삶을 관조하는 여유를 생각할 수 있어서다.
아산 봉곡사 백년 넘은 소나무 숲길 열병식
절집 두 곳을 둘러보니, 여름날의 오후 시간도 금세 흘러갔다. 이튿날 아침 일찍 찾은 곳은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의 봉곡사. 신라 진성여왕 원년인 887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봉곡사는 봉황의 머리를 닮은 봉수산(534m) 산비탈을 차지하고 있다. 봉곡사에 가는 길에는 소나무 숲이 마중나와 있다. 족히 수령 100년은 넘어보이는 소나무들이 700m가량의 오르막 숲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봉곡사도 광덕사와 마곡사처럼 조그마한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마곡사의 태화천에 비하면 작은 물줄기에 불과하다. 소나무 숲과 좁은 물줄기에서 숨어 있는 사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찾는 이들이 많은지 조그마한 사찰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때문에 경내를 오롯이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보다 더한 안타까움은 몇 차례 지적됐다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소나무 숲길이다. 매일 절집을 오르내리는 스님들과 불자를 위해서였다지만, 어쩌다가 방문한 여행자는 비포장 숲길에 대한 간절함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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