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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말씀/ 마태복음 7:1-12 요절/ 마태복음 7:12 | 2026. 5. 10 | |
| 마태복음 제 8 강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합니다. 천국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도 비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비판하는 대신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천국백성으로서 품격을 배우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은 천국 백성들이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인간관계에서 남을 비판하기 쉬운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비판’은 책망과는 다릅니다. 비판의 원어적 의미는 심판을 가리킵니다. 비판은 남을 무시하고 깍아내리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비판하기를 좋아합니까?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 잠시 스트레스가 풀리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산상보훈을 들었기에 의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을 겁니다. 그 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이 사람은 돈밖에 모르는 세속적인 사람이야’, ‘저 사람은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이야’ 말하면서 비판합니다.
하지만 천국 백성들은 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이 자기에게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하는 자는 똑같이 비판받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산울림, 메아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내가 산에 올라가 ‘나쁜 놈’ 외치면 ‘나쁜 놈’이라는 메아리가 돌아옵니다. ‘사랑해’ 외치면 ‘사랑해’ 라는 메아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남에게 비판 받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비판은 남을 죽이거나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하는 비판이 상대방을 죽일 수 있습니다. 나는 재미 삼아서 남을 비판하고 악담을 퍼부었는데, 그런 악플을 견디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치 혀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격언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선언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야3:6). 칼은 가까운 사람만을 죽이지만, 말은 먼데 있는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말로 입은 상처가 칼에 맞아 입은 상처보다 아프다’는 모로코 속담도 있습니다. 칼에 맞은 상처는 치료하면 나을 수 있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수년이 지나도 낫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의 영향력을 마음에 새기고 함부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사람은 다 죄인으로서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죄인, 너도 죄인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정죄하거나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인격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깊은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심판할 자격이 있는 분은 완전하신 재판장이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판하는 마음이 들어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빼주고자 하기보다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고 빼라고 하십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먼저 내가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으라는 겁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은 작게 보고 내 잘못은 크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허물에 대해서 지적질하기보다 하나님 말씀의 거울을 통해 나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하시며, 천국백성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보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먼저 내가 회개하고 천국백성 다운 삶을 보여줄 때, 다른 사람들도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천국 백성으로 부름 받은 제자들은 남을 비판하는 대신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여기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천국복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천국백성은 천국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죄인이요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불특정 다수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개에게 주지 말며,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 언급된 ‘개’는 공격성이 강한 들개를, ‘돼지’는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돼지를 가리킵니다. 천국복음을 개와 돼지 같은 자들에게는 주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밟고, 복음전도자들을 찢어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악인들을 멀리하도록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아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7-11절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또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판하지 않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는 회개에 이를 수 없고 내면과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천국백성 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럴까 자책하지 말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남을 비판하는 대신 사랑으로 대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해야 합니다. 또한 영적 분별력을 갖길 원한다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내게 필요한 것들과 바라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도 들고나가 주님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사람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1:5)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사랑을 구할 때 사랑도 주십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야4:3).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믿음으로 구해야 하며, 응답 받기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응답이 미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장 응답 받길 원하지만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 응답을 뒤로 미루기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 복의 근원’의 약속을 붙들고 아들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기도 응답은 계속 지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아브라함 100세 때, 다시 말해 기도제목을 붙들고 기도의 씨름을 한 지 25년만에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할 뿐 아니라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적극적인 자세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중품을 잃어버리면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고 또 찾습니다. 기도도 한 번하고 끝나서는 안 되고, 응답을 받기까지 찾아야 합니다. 이는 마음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입을 크게 벌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며,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어떻게 들으시고 어떤 사인을 주고 계신지 삶의 현장에서 살피고 하나님의 손길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포기치 않고 간절히 찾는 자가 마침내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찾는 자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면은 찾게 되는 것 같이, 은혜의 주님을 찾기에 갈급하면 은혜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441장은 심프슨 목사가 작사 작곡한 은혜로운 찬송입니다.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 속에 주님 오셨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더 나아가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기도의 가장 적극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인이 보이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것입니다. 양을 달라고 끈질기게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 양을 보내어 주십니다. 내가 전도한 양이 아니더라도 다른 목자가 소개해 주거나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이더라도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신 양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내가 도와야 할 양으로 삼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좋은 것은 성령님이시며, 사랑과 능력과 지혜와 영적 분별력이며, 물질과 건강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입니다.
저는 군대 다녀와서 2학년으로 복학한 후 부활절을 앞두고 대학생들의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양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의 과 한 학생이 제게 다가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첫 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와 생애 처음으로 일대일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저의 첫 제자요 좋은 동역자가 되었고, 캠퍼스 개척역사와 세계선교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요한계시록 말씀을 새롭게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배우고자 하는 목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즉시 금요기도모임에서 요한계시록 강해를 시작했고, 이를 통해 복음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을 더 깊이 맛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세계선교대회가 일산 킨덱스에서 열립니다. 10년 만에 현장에서 전국 지부들과 세계지부들이 함께 모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 6장 메시지를 전하는 세계대표 란워드 목자님을 위해서 그리고 4명의 인생소감 강사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해야 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양들의 마음이 준비되어 참여함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선교비전과 믿음을 덧입을 수 있도록 또한 천 명의 선교자원자가 일어날 수 있도록 간구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7월 3-5일에 가평 승동수양관에서 열리는 춘천, 전주2부 연합여름수양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겠습니다. 주제는 ‘복음과 새로운 삶’입니다. 로마서의 중요한 말씀들을 주제강의로 정했는데, 풍성한 말씀과 프로그램과 양들 초청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날마다 기도해야 겠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며,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절망감을 물리치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림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천국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산상보훈의 결론으로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정받고자 하고, 사랑 받고자 하고, 존중 받고자 하고, 선물을 받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면 나도 그 사람을 인정해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인정해 주라고 하십니다. 사랑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먼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먼저 존중하라고 하십니다. 선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먼저 선물하라고 하십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한다면, 인간관계는 잘 풀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힘있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남을 대접하라는 것은 구약성경의 핵심적 가르침이요 천국백성의 삶의 방향입니다. 이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똑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남을 대접하려면 내 안에 아가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남을 대접할 수 있고 순수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요구하는 마음으로 남을 대접한다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민폐가 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천국을 얻게 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순수하게 한 사람을 대접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세계 각처에서 770명의 선교사들과 현지 목자들과 자녀들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우리 춘천 출신 선교사들도 유럽과 일본과 미국에서 들어옵니다. 또한 스웨덴에서 장아브라함 목자님의 딸 리부가가 캔과 함께 입국하여 세계선교대회 참석하고 23일 스몰웨딩식을 하고 24일 춘천 주일예배에 참석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춘천을 방문하는 선교사들과 손님들을 환영하고 잘 대접해야 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고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천국백성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응답받기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며, 빚진 자의 심정으로 남을 대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