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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5월 1일 오전 9시 40분경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의 한 건물 지하 2층 화장실에서 느닷없이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중년 남자가 발견됐다. 금형기계 중간도매상인 김중석 씨(가명·40)였다. 총상을 입은 김 씨는 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많은 피를 흘리기도 했지만 가슴 부위의 급소를 맞아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원칙적으로 총기소지가 금지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총기살인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수사결과 검거한 범인에게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범인은 각종 무기류 제작에 거의 미쳐있는 사람이었고 그가 만든 무기만도 5000여 점이나 됐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부천중부경찰서 강력2팀 손은호 팀장이 전하는 수사백서 속으로 들어가보자.
가장 특이했던 것은 김 씨를 살해한 도구였다.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칼이 사용되는데 이 사건은 총기가 사용된 것이었다. 현장을 분석한 결과 김 씨는 화장실 내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가슴 부위에 총알을 맞고 즉사한 것으로 판단됐다. 언제 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중화장실에서 그것도 오전 시간에 총으로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분명 보통인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을 쏴본 사람의 솜씨였다고나 할까. 여하튼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의 소행임이 확실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소지가 금지되어 있는 데다가 휴대하기도 어려운 장총으로 살해했다는 점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총을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조사결과 김 씨가 타고 왔던 코란도 승용차도 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범인은 김 씨를 살해한 후 김 씨의 승용차까지 빼앗아 달아난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범인의 목적은 결국 돈이었을까. 하지만 단순히 돈을 빼앗고 차량을 갈취하려는 강도의 우발범행으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는 것이 손 팀장의 얘기였다. 수사팀은 우선 목격자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른 오전 시각 지하 2층에서 발생한 터라 목격자는 없었다. 또 현장에는 범인을 특징지을 수 있는 단서조차 없었다.
가장 큰 의문은 금형기계도매상인 김 씨가 왜 이른 아침부터 이 건물에 나타났는지였다. 아무 볼일도 없이 여기까지 이른 시간에 왔을 리는 없었다. 또 인적이 없는 건물 지하 2층까지 굳이 내려간 이유도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와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수사팀은 김 씨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조사를 실시하는 동시에 피살되기 전 김 씨의 행적을 샅샅이 훑었다. 그 결과 사건 직전까지 김 씨가 해당건물 2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김 씨가 레스토랑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중년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자리에서도 두 사람은 분위기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간간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는 것이 목격자의 증언. 통화내역을 살펴보니 김 씨는 유독 한 남자와 통화를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남자와 여러 차례 통화한 남자가 동일인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팀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김 씨가 피살되기 직전까지 같이 있었던 문제의 남자는 공장근로자인 서재국 씨(가명·45)였다. 수사팀은 우선 서 씨가 타고 달아난 김 씨 소유의 코란도 승용차를 수배했다. 그리고 이내 문제의 차량이 서울 시내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뺑소니 사건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경 신원미상의 남자가 김 씨의 코란도를 몰고 마포경찰서 관할구역내에서 6중 추돌사고를 내고 그대로 달아난 것이었다.
당시 이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코란도 차량에 20대 청년 두 명이 타고 있었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수사에 혼선이 오기도 했지만 수사팀은 목격자가 혼동했을 수도 있다고 결론짓고, 서 씨의 행방을 계속 추적해나갔다.
동시에 수사팀은 서 씨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조사결과 두 사람은 돈 문제로 얽혀있었다. 두 사람은 사건 직전에도 레스토랑에서 돈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으며 서 씨가 먼저 자리를 뜨고 곧이어 김 씨도 자리를 뜬 것으로 확인됐다. 또 통화내용을 분석한 결과 두 사람이 그동안 수차례 통화를 하며 돈 문제로 말다툼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조사결과 서재국은 김 씨에게 빚이 있었다. 그런데 약속한 대로 돈을 갚지 못해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쯤되니 대충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우리는 채무에 의한 살인사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인 서 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건 발생 나흘 만인 4일 오후 서 씨는 집 근처에 잠복하고 있던 수사팀에 의해 검거됐다. 검거 당시 서 씨는 도망은커녕 이렇다 할 반항도 없이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며 순순히 범행을 시인했다고 한다.
조사결과 서 씨는 전과가 전혀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서 씨가 어떻게 살인자가 된 것일까. 서 씨의 범행동기는 수사팀의 예상대로 돈 때문이었다.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서 씨는 2003년 초 김 씨에게 1500만 원 상당의 금형기계 한 대를 할부로 구입했다고 한다. 빠듯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돈을 잘 갚아나가던 서 씨는 범행 몇 달 전부터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서 씨에게 갚아야 할 돈은 600만 원가량이 남아있었다. 서 씨는 김 씨에게 ‘남은 돈은 좀 나눠서 갚겠다. 기한을 좀 연장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김 씨는 매몰차게 거절하며 당장 갚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서 씨에 따르면 김 씨는 채무변제를 독촉하며 모욕을 줬다고 한다. 평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공공연히 빚 얘기를 꺼내며 자신을 무시하곤 했다는 것.
김 씨의 행동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서 씨는 결국 해서는 안 될 무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돈을 갚겠다’며 김 씨를 약속장소로 불러낸 서 씨는 건물 지하 2층 화장실에 미리 장총 한 자루를 숨겨두었다. ‘마지막으로 사정해보자. 이번에도 똑같이 나온다면 참지 않겠다. 계속 수모를 당하느니…’라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서 씨는 김 씨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사정이 너무 힘드니 단 10만 원이라도 감면해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다. 마지막 애원이었다. 하지만 서 씨의 이런 심경을 알 리 없는 김 씨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오히려 욕설을 하는 등 톡톡히 ‘망신’만 줬다.
서 씨는 분노했다. 그동안 김 씨에게 당한 모욕적인 장면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서 씨는 사람이 없는 지하 2층 화장실로 김 씨를 유인한 뒤 미리 준비해둔 장총으로 김 씨를 살해하고 만다.
놀라운 사실은 범행에 사용된 총이었다. 이 총은 개머리판이 없는 길이 1m가량의 단발 소총이었는데 서 씨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조사 결과 그는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는 바람에 군대를 가지 않아 총을 다뤄본 적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각종 기계 부품을 깎아 만드는 정밀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체격도 왜소해 키가 160cm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서 씨가 이런 총을 어떻게 만든 것일까.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조사결과 서 씨가 만든 총기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는 1995년경부터 총을 비롯한 각종 무기류를 직접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누구를 죽이거나 범죄에 이용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취미삼아 만들어 호신용으로 갖고 있었다고 했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전과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줬다. 유난히 뛰어난 손재주를 갖고 있었던 서 씨는 독학을 통해 각종 무기들을 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계천과 용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총 제작방법이 나와 있는 전문서적과 잡지, 외국책들을 구입해 연구를 해가면서 일일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총신과 방아쇠, 노리쇠 뭉치 등 부품까지 하나하나 직접 만드는가 하면 공포탄 탄피에 쇠를 깎아 만든 총알을 결합해 실탄까지도 직접 만들었다. 장비문제로 직접 만들지 못하는 총열 등은 공장에 맡겨 해결한 것으로 보였다.”
서 씨는 자신이 만든 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부천 상동 신도시 굴포천 인근에서 수차례 발사실험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험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총알은 3m 떨어진 곳에 있는 3cm 두께의 합판 두 장을 관통했고 두꺼운 전화번호부도 뚫는 위력을 보였다. 호신용으로 취미삼아 시작된 총기제작이 결국 살인도구로 사용된 셈이었다.
한편 서 씨의 집을 수색한 수사팀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은 손 팀장의 얘기.
한 평이 조금 넘는 다락방 문을 열어본 순간 우리는 입이 딱 벌어졌다. 다락방 안에는 엽총과 권총 같은 총기류는 물론 날이 시퍼렇게 선 단도와 석궁 등 각종 무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서 씨가 무기제작에 광적인 취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많은 무기가 집안에 있을 줄은 몰랐다. 듣도 보도 못한 무기류들을 한꺼번에 대하니 기가 막히더라.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 군용 소총 실탄과 엽총 탄알 등 갖가지 종류의 실탄들이 탄알집에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작은 무기고나 다름 없었다.”
만든 무기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좁은 집안에 더 이상 보관하기 어려워지자 서 씨는 일부를 박스에 나눠 담아 형의 집 베란다에 갖다놓기도 했다. 경찰이 찾아낸 무기들은 소총 2정과 권총 3정, 단도와 석궁 93점, 실탄 4000여 발 등을 포함해 무려 5000여 점에 달했다. 물론 그 ‘흉기’들은 모두 서 씨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서 씨는 법정에서 10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