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41/200423]“고향이 생긴 것같아 고맙다”
최근 들을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이 불쑥 생각났다. 지난 토요일 대부도에서 고교동창모임 행사가 있었다. ‘2020 재경전라6회 안녕제’가 그것. 10여년째 해오던 ‘시산제始山祭’가 역병 극성으로 못하게 되자, 몸이 근질근질해진 친구들의 열망에 부응코자 회장단이 만든 빅 이벤트. 올해에는 불암산 산신령님께가 아니고, 청정지역인 섬에서 우리 친구들의 안녕을 용왕님께 빌자는 ‘기특한’ 퍼포먼스가 거행되었겠다. 졸지에 23명이 모였다.
남원 운봉에서 8시 출발한 3인조팀, 시화방조제 교통체증(12km를 앞두고 1시간이나 터덕거림)으로 인하여 ‘우리밀칼국수’ 식당에 1시간도 더 늦게 도착했다. 일행은 이미 ‘해솔길’ 산책에 나섰고, 조금 늦게 온 인천에 사는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허기진 배를 같이 채웠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이 친구가 대뜸 하는 말이 “야, 너그들 때문에 ‘고향이 생긴 것같아’ 너무 좋다. 고맙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 친구의 딸을 2015년 3월 1일, 내가 주례를 섰다. 덕담으로 삼일절이니 만큼 세 쌍둥이를 낳아 이름을 '대한' '독립' '만세'라고 하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이 친구는 이미 '손녀바보'가 되었다.
“그래? 무슨 말이야? 듣기는 허벌나게 좋은데” “아니, 너희 고향생활 동향이 우리 단톡방에 올라올 때마다 내가 다 행복해지는 것같아. 말하자면 ‘행복 바이러스’를 쐬는 느낌. 나도 촌놈이라 고향에 살고 싶은데, 너희가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셈이랄까”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안착한 친구는 평생 그곳에서 산 것처럼 적응을 잘하고 있는데, 간간이 글소식이 올려 ‘독자(동창들)’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인동 장씨, 노환에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부농富農’을 이어받아 쌀농사, 밭농사를 짓고 있다. 행랑채를 1년 동안 혼자서 다 지을 정도로 ‘일머리’와 ‘눈썰미’가 뛰어나 사방에서 그를 찾는데, 사양하는 법이 없다. 등치는 황소만하고 삼국지 장비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겼는데도 마음은 비단결, 섬세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최근에 숨겨진 문학적 재능을 발견한 듯, 사색에서 우러난 짧은 성찰의 글들이 시인을 방불케 해, 여러 친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요즘엔 중장비 ‘공3’를 구입, 야산 8천여평을 혼자 개간하고 있는, 놀라운 내공의 소유자이다.
동행한 또 한 친구는 ‘지리산 산사나이’라고 해야 딱 맞게 귀향 5년여만에 ‘도사道士’가 다 됐다. 작달막한 키에 턱수염을 제대로 기르고, 오로지 ‘막걸리 귀신’이 된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에서 국사선생님으로 봉직하다, 명예퇴직해 내려와 노모를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친구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는지, 큰 모임(신년하례회 등) 때마다 지리산 속을 헤매며 채취한 각종 특산품(송담, 초석잠, 각종 버섯, 덖어 말린 나무순 등)들을 ‘조마니 조마니’(봉지의 사투리) 싸서 친구들에게 앵겨(안겨) 준다. 발품을 판 게 무릇 몇 날일까, 생각하면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또한 소생은 거의 매일 새벽에 일기체日記體 생활글을 끄적거려 단톡방에 올리고 있다. 하여, 단톡방에 참여하는 80여명의 친구들이 ‘나의 동정動靜’에 대해 환하게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향산천故鄕山川은 의구依舊하여 잘 있’고, 친구들이 염려하는 것과는 반대로 너무 잘 적응하여 ‘날마다 행복’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 제법 넒은 텃밭을 가꾸는데, 일이 좀 많겠는가. 생강도 땅콩도 솔찬히 심었다. 대문 앞에는 아버지와 넓은 해바라기 꽃밭도 만들었다. 키 큰 해바라기가 만발하면 동네가 다 훠언해질 것이다. 요즘엔 고사리 꺾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 일들을 ‘도道 닦는 마음으로, 벌罰 서는 심정으로’ 기꺼이 즐겁게 하고 있다는 글소식을 연신 내보내고 있으니, 친구들이 어찌 부럽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일까? 보는 사람들, 만나는 친구들마다 “얼굴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한다. 지난해만 해도 고향집 수리네 뭐네 하며 피골이 상접될 정도로 꺼칠하고 환자같았는데, 360도로 바뀌었다는 것. 무엇보다 ‘얼굴이 편하고 맑아보인다’는 말이 듣기에 심히 좋다. 서울의 아들·며느리도 두어 달만에 보더니 놀란다. “아버님, 얼굴이 아주 좋아졌어요” “진짜 그렇게 보여? ‘신간(심장과 간장을 뜻하는 심간心肝이 올바른 표기인 듯)’이 편해서 그런 모양이다. 고맙다”
그 친구의 “마치 고향이 생긴 것같다”는 말은 100%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일 터이고, 어쩌면 다른 친구들의 마음까지 대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우리 셋이 친구들의 소싯적 추억과 고향 회귀본능을 연신 자극한 때문일 것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직접 내려와 못사는)’ 현실에 마음이 허虛할 수도 있을 듯. 그래서 그런 마음의 빈 자리를 메워주는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적선積善일 터이고, 우리의 귀향은 성공한 것일 게다.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이 ‘한 여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만도 성공적인 남자의 삶’이라 했듯이, 친구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선사한 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