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반 나절을 자전거로 달렸을 뿐이지만, 이번 출타는 그 전과 달라진 게 두드러진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여행 시스템의 변화'랄까?
그 전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아날로그 식이었다면, 이젠 제법 이 세태에 맞춰 제법 업그레이드된 모양새다.
우선, '지도'가 어쩌면 '네비게이션' 급으로 격상돼서, 길을 잃는 빈도가 확 줄어들었고(그만큼 안전한 면도 있고), 길도 주로 자전거 도로로 달리다 보니, 여기저기 마을을 들리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같은 것도 많이 줄어든 특징이 나타나고 있었다.
(지도는 출발전에 인터넷 상에서 핸드폰에 다운로드 받아, 이렇게 다니면서는 와이파이 존 밖에서도 바로 내 위치가 뜨는 식으로 편리화돼 있다.)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핸드폰을 자누 열어 지도를 확인하다 보니, 집에 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 빨리 밧데리가 소진돼가는 약점이 드러나고 있었고,
그래서 밧데리를 아끼려다 보니(지도 보기를 꼭 필요할 때로 줄이려다 보니), 이런 편리함 속에서도 '길잃기'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곤 했다. 그것도 적잖이.
세상 일이라는 게 편리한 게 있으면(생기면) 또 그만큼 불편함도 감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바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인데,
그렇잖아도 뙤약볕에 달리다 보면 땀에 젖고 힘도 많이 빠지게 마련인데, 길을 잃어 쓸 데 없는 곳(거리)에 힘을 쏟은 걸 알게 되는 순간, 김이 곱절로 새버리기 일쑤인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니 '남한강'엔 '강천섬'이 있었는데, 거기서 길을 잃어... 적어도 4-50분은 왔다갔다 했고(세 차례나),
그런 뒤 겨우 섬에서 빠져나오니, 여태까지는 강변자전거 도로를 타고 왔지만, 그 부분은 산의 절벽 때문인지 자전거 길이 없어 우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국토를 타게 되었고,
국도를 타고 오르막을 자전거를 끌고 오르다 보니 어찌나 힘이 들던지,
더구나 고개를 오르는데 여전히 신발 밑창이 너덜거리는 바람에, 그것도 떼어내 버리려고...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차량의 통행은 없는 편이었기에, 그 갓길에 덜푸덕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런 뒤에도 힘들게 그 고개를 넘어가다가,
물까지 떨어져,
그렇다고 거기에 때 맞춰 물을 파는(수퍼, 마트 등) 곳이 있을 리가 없어,
그 주변의 산에서 물 떨어지는 곳을 지나다 갈증을 해소했고, 병에 물도 채워(내가 옛날에 군대생활할 때는 강원도 산골에서 이런 물들을 많이도 마셨었다.)
이제는 내리막이었는데, '강원도(원주)'였다.
그리곤 '섬강'이 나왔는데,
그 즈음이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삼각지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렸는데,
거기서는 오른 쪽으로 꺾어져 '충주' 방향으로 가야 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그냥 '원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충주 방향으로 갈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도상으로 확인해 보니, 충주쪽은 그나마 자전거길로 달리는데 원주 방향은 국도를 타야만 했고, 지도상의 거리로만 봐도 거기서 원주가 가깝지만도 않았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충주방향'을 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 이제는 그저 무덤덤한 느낌으로 길만 따라서 달리고 있었다.
오늘, 어디까지 가게 될 거라지? 하고 은근히 걱정은 되었지만, 아직은 나른한(더운) 오후라 그 더위에 지쳐, 당장 다급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힘은 점점 빠져가고 있었고, 이젠 쉬고도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점점 커지던 잠 자리 걱정에 선뜻 멈출 수도 없었다.
어찌 됐든 조금이라도 큰 도심 쪽으로(충주) 더 가 둬야만, 내 운신(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너무 힘들고 허기도 지다 보니(입에서 단내가 나고도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생고생을 한다지? 하는 불평도 절로 솟아나오고 있었는데,
이럴 줄 모르고 떠나왔던가? 하는 자각에,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끈질긴 인연)
더는, 허기가 져서도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장소를 찾다가, 거기 고속도로 교각 아래 그늘 쉼터가 보이기에 거기에 멈췄다.
그리고, 아까 다 먹지 못했던 도시락을 다시 꺼냈다.
중간에 산 개울에서 채웠던 물만 맛있었고, 여전히 가져갔던 음식은 왕모레 같았다. 그래도 먹어야만(뱃속에 뭔가를 채워야만) 해서, 꾸역꾸역 억지로 씹어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초콜릿을 하나 먹었는데, 초콜릿은 한낮의 열기로 그야말로 죽이 돼 있었다.
그렇게 불안한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랜 건 어쩔 수 없었고 또 좋았다.
그런데......
그 즈음의 이정표로는 충주까지 23-4Km가 남은 지점이었는데,
잘 하면 해지기 전에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또 어쩌면 못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죽자사자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힘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눈 앞에 '충주보'인지 '댐'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저 사진은 한 장 찍어둬야겠지? 하고 멈췄는데,
어? 하고 내가 놀랐던 건,
어깨에 메고 있던 휴대용 가방 안에 있어야 할 '디카'가 없었던 것이다.
어딨다지? 하고 찾다가,
아! 하고 내가 탄식을 내뱉었던 건,
얼마 전 휴식을 취하며 그 상황 사진을 찍고는, 정신이 없어서 디카를 그 곳에 그대로 둔 채 자전거와 가방만 챙겨서 달려왔던 것이란 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그냥, 디카를 포기하고도 싶었다. 그동안 수 차례 떨어트렸거나 작동도 멈춰 나를 힘들게 했고, 이젠 낡아서 그만 써도 전혀 아깝지조차 않을 만큼의 오래된 것이기도 해서...... 어디 그 뿐이던가. 그만큼 내가 피곤한 상태에다, 이제 날도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종일 찍어두었던 사진들은? 하는 생각과 함께 특히, 노란 들판을 달리던 사진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기록에 남겨두었던 그런 일들이 이제 이 세상에서 없었던(?) 일로 되는 거라고? 하면서는, 억울해서도 안 될 것 같아, 내 발걸음을 다시 뒤로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그 사진들을 이 세상 어딜 가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모처럼 나온 출타라 딴에는 성심성의껏 찍어두었던 것들인데......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출발을 했건만, 내 삶의 어설픔은 여기서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인데, 하필이면 결정적인 순간에(아주 다급했던) 그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자책과 한탄을 하면서도 나는 자전거를 뒤로 돌려, 정말 죽자사자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 그 디카가 없어졌으리라는 가능성을 전혀 배재할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그런데 문제는, 내가 디카가 없어졌다고 인지하던 지점이 잃어버렸던 지점과 적어도 4-5 Km의 거리는 될 거라는 현실이었다.
날은 저물어가 더구나 시간도 없는데, 그 8-9Km의 거리를 억울하게(?) 달려야 하는 괴로움과 허탈함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댐의 모습은 이제는 핸드폰에라도 담아둬야겠기에, 사진을 찍어두고는(아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하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지나왔던 길로......
아, 그 길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그렇게 한참만에 도착했던 그 곳엔,
아, 있었다. 그대로 그 자리에.
물론, 다 저녁 시간에 사람들의 통행도 거의 없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멀쩡하게 놓여 있는 디카를 보며,
너하고 나하고는 참, 인연이 질기기도 하구나! 하고, 반갑다고만은 할 수 없는 묘한 연민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디카는 찾았지만,
아, 문제는 이제 해가 지고 있었다는 현실이었다.
이 디카 사건이 없었다면, 어쩌면 충주에 거의 도착할 수도 있었을 즈음인데......
첫댓글 자전거 여행기 정말 재미있습니다.
디카 때문에 저도 마음이 졸였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돼요.
연속극처럼.....
봄터님, 감사합니다만... 이성을 찾으세요.
여기(제 자전거 여행)는 '넷플릭스'가 아닙니다...